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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7화 (8/146)

7화

의외로 실력이 별 볼 일 없는지 변태 저승차사는 도화가 도망치는 데도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도화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쾅!!

미친 듯이 뛰어 집에 도착한 도화는 집안 공기가 흔들릴 정도로 문을 세게 닫고 잠금장치까지 모두 걸어 버렸다. 책상 의자며 서랍장이며 끌고 올 수 있는 가구는 모두 끌어다 현관문을 가로막고 창문도 잠갔다. 혹시 안을 들여다볼지도 모른단 생각에 커튼까지 꼼꼼하게 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저승차사에게 눈도장을 찍혔으니, 어서 여길 떠나야 해.’

감직부 차사라면 모르겠지만, 추혼부 차사라면 난감하다. 감직부가 맡는 망자는 저승으로 잘 따라올 평범한 망자들이 대부분이기에 감직부 차사들의 성정도 평범했다.

하지만, 추혼부는 전혀 다르다. 재기 불능 악귀를 나포하거나 소멸하는 부서이기에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차사들이 모인 집단이다. 말이 나포와 소멸이지 나포되는 악귀는 없다고 봐야 했다. 아마 항복하고 순순히 저승으로 가겠다고 해도 괘씸죄로 소멸시킬 차사가 수두룩일 것이다.

물론 변태 차사가 감직부일 확률도 있지만.

[악귀가 되어도 그닥 재미는 없어 보이니 신속하게 없애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아까 그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니 감직부보다는 추혼부일 확률이 더 높았다.

“젠장. 더 조심해야 했는데.”

‘내가 그때 힘만 있었어도…….’

스승이 정체불명의 괴한의 손에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막진 못해도 저승 차사가 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간악한 차사 새끼들…! 도화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흐려지지 않는 울분을 눌러 삼켰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승으로 쳐들어가 염라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어째서 자신의 스승이 죽어야 했는지, 스승의 영혼은 윤회의 굴레에 들었는지 묻고 싶다.

하지만, 차사가 스승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던 걸 보면… 윤회는 개뿔. 저승의 열 지옥을 하나도 빠짐없이 순회 중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도 붙잡히면 스승과 함께 열 지옥 강제 심층 탐구를 할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린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스승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린 결론이었다. 강산이 수도 없이 바뀔 동안 그 결론은 바뀐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답을 찾지 못한 것이 있었다.

‘저승차사는 어째서 스승이 죽길 기다렸는가.’

병원 근처나 사고 현장을 지나다 보면 저승차사를 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도화는 차사의 멱살을 붙잡고 왜 나의 스승이 죽어야 했는지, 나도 죽길 기다리는 것인지, 나와 스승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그 즉시 자신도 부용삭에 묶여 저승으로 끌려갈 것 같아서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승이 죽었을 당시 도화는 근처 당집 안에 갇혀 있었다는 점이다. 스승은 괴한이 자신을 죽이러 올 줄 예상하고 있었는지 도화를 안전한 곳에 넣어 나오지 못하게 가둬 버렸다. 도화는 스승이 괴한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분노와 슬픔에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어린 도화는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했다.

혼절의 여파로 도화는 스승을 죽인 괴한과 스승의 죽음을 기다리던 차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제길.’

도화는 주먹으로 제 머리를 퍽퍽 쳤다. 몇 대 때리니 주먹이 붉게 부어 얼얼하다. 머리는 불룩하게 혹이 났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날아간 기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도화는 스승을 자신의 부모라 여기고 극진히 모셨다. 그러니 스승의 복수는 부모의 복수나 마찬가지였다.

“스승님. 제가 꼭 복수해 드릴게요.”

도화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결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록 누구를 찾아가 복수해야 할지도 모르고 차사를 상대할 힘은커녕 차 한 대 뽑을 여유도 없는 참담한 현실에 허우적대고 있지만. 언젠가는 기억을 되살리고 힘도 키워 스승의 복수를 한 뒤에 삶의 여유를 되찾을 것이다.

‘호윤이도 찾아야 하고.’

반드시 복수하고 말리라. 결연했던 얼굴이 동생 호윤을 떠올리자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스승을 생각하면 충격과 분노가 뱃속에 불을 지폈다면, 동생은 그저 안타깝고 슬펐다.

호윤은 도화가 생활고를 겪는 이유이며 저승차사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친남매보다 진한 우애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함께 지낸 시간은 고작 5년이 전부였으나 마치 평생을 함께한 사이처럼 돈독했다. 사악한 요괴의 공격에 생사가 묘연해진 호윤을 찾기 시작한 지도 벌써 수백 년이 흘렀다. 인간인 호윤은 이미 죽어 새로운 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최소 두 번 이상은 환생했을 게 분명했다.

‘작고 귀엽고 착한 아이였지. 몇 번을 환생한다 해도 분명 선함을 잃지 않았을 거야.’

같이한 시간은 고작 5년이었지만, 도화는 첫눈에 호윤을 알아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스승은 못 알아봐도 호윤은 알아볼 수 있다. 그만큼 도화는 호윤을 아끼고 사랑했다.

“아, 맞다. 메일 확인해야지.”

도화는 싱크대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컴퓨터에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은 켰으나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물이 흥건한 얼굴을 수건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부팅되는 모니터 화면을 쳐다봤다.

변태 저승차사 때문에 한참 동안 과거의 감정에 푹 빠졌다. 과거 여행을 하던 도화를 현실로 끌어낸 것은 화린의 의뢰였다.

통장 정리하러 나갔다가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원귀가 뭐라고. 나랑 상관도 없는 거, 그냥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올 것을.

이제 와 후회해 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리고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태아귀를 무시하고 지나쳤을 것이란 확신도 없었다. 또 부모에 버림받은 자신을 겹쳐 보며 참견했겠지.

‘정신 차리자.’

도화는 짝! 소리가 나게 손으로 양 뺨을 때리고 마우스를 잡았다. 조용한 방에 따각따각 클릭질 소리만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번과 마찬가지로 짤막한 인사말이 제목인 메일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보낸 날짜는 새벽 2시 30분. 도화가 불래에서 막 나왔을 때였다.

첨부된 압축 파일을 보니 용량이 묵직하다. 압축을 풀자 여러 개의 압축 파일이 주르륵 생겨났다. 도화는 ‘다온’이라고 쓰여 있는 파일부터 빠르게 정보를 훑었다.

파일 속에는 관상 의뢰를 받았을 때보다 훨씬 많은 다온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네다섯 살로 보이는 어린 시절부터 이십 대 초반 모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진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온갖 표정을 하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곤히 잠이 든 얼굴, 뭐가 그리 심술이 났는지 입술을 내민 모습,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고 펑펑 울거나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화를 내는 모습 등 다양했지만, 가장 많은 사진은 웃는 사진이었다. 하나같이 구김 없이 웃고 있었다. 행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사진만 봤는데도 다온이라는 여우의 행복한 감정이 전달되는 기분이 들었다.

“…….”

도화는 괜히 가슴을 세게 긁었다. 누가 부드러운 털로 간지럼 태우듯 간질간질했다. 생소한 느낌이라 도화는 몇 번이고 긁고 또 긁었다. 피부 아래, 어디라고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깊은 곳에서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간지러움이었지만, 도화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애꿎은 피부만 붉어지도록 긁었다.

도화의 간지러움을 멈추게 해 준 것은 ‘인간 남자 이선후’라는 파일이었다.

‘인간 남자?’

파일을 열어 보니 파일명 그대로 인간 남자를 찍은 사진이 수두룩했다. 얼굴은 꽤 반지르르하게 생긴 20대 중반의 남자였다. 연예인을 해도 될 법한 잘빠진 얼굴은 사진으로도 자신감과 당당함이 드러났다.

하긴, 저 정도의 얼굴이라면 어디 가서 빌어먹진 않겠네. 도화는 사진을 쭉쭉 넘기며 별 감흥 없이 중얼거렸다.

이선후의 사진은 다온의 사진에 비하면 1/3 수준이었다. 다양한 연령대를 담고 있던 다온의 사진과 비슷하게 이선후도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입학과 졸업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남자 쪽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는데?’

아마 허가받은 여우족이 아니면 인간 세상에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없으니 제대로 된 조사나 추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찾은 것이군.’

도화는 다온과 이선후의 사진 중 얼굴이 가장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휴대폰에 저장했다. 그리고 문서 파일을 열어 보았다. 얼굴 파악은 했으니 이제 다온이 무슨 이유로 허락도 없이 하계에 머물고 있는지, 이선후라는 인간 남자와는 무슨 사이인 것인지 등을 알아야 했다.

안녕하세요. 도방님.

불래에서는 경황이 없어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도방 님께서 찾으셔야 하는 여우족의 이름은 다온. 여우족의 귀하디귀한 막내입니다. 10년 전, 다온을 데리고 하계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한 남자의 꾀임에 넘어가려던 것을 구해 호골로 돌아왔었지요.

다시는 하계에서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단단히 교육을 했습니다만… 인간 남자의 꾀임에 어찌나 단단히 홀렸는지 3년 전, 잠이 든 제 꼬리를 세 개나 훔쳐 하계로 도주하였습니다. 야무지게 돈도 두둑이 챙겼더군요.

다온을 꾀어 낸 인간 남자의 이름은 이선후.

하계에서 활동 중인 여우들의 도움을 얻어 다온과 남자를 찾으려고 했으나 그들 사정상 이선후의 기본적인 정보를 얻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럴 만도 했다. 하계에서 활동 중인 여우의 대부분은 배우나 가수, 모델들이었으니까. 공인인 이상 함부로 행동하긴 어려울 테니, 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다온은 어리지만, 요력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제 꼬리를 세 개나 훔쳐 갔으니 기척을 지우고 우리의 추적을 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겠지요. 이선후의 존재감도 감췄을 겁니다. 여우족이 하계를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다면 그런 것쯤은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도방님께 의뢰를 맡기려 합니다.

대충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의뢰를 맡긴다는 글 밑으로 다온의 자세한 정보와 이선후의 기본 정보가 나열되어 있었다.

도화는 이선후가 다녔던 고등학교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곳에 뭔가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다온이 있을 만한 곳을 특정 지을 만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다온의 정보가 많다 한들, 하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다온이 돈을 챙겨 나왔다지만, 하계에 익숙하지 못한 다온이 주도적으로 집을 구하고 생필품을 조달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이선후가 다온의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을 확률이 컸다.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선후의 정보를 이용하는 수밖에.

‘어디 보자. 연창 고등학교라. 9호선이군.’

지갑을 챙긴 도화는 현관문 앞에 쌓아 둔 가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변태 저승차사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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