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지하철에서 내린 김 차사는 휴대폰으로 스케쥴을 확인했다. 오늘 하루 저승으로 인도해야 하는 망자는 일곱.
하루 평균 많아도 세 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두 배가 넘는 노동량이다.
“저승은 노조도 없습니까? 노동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김 차사 뒤를 어슬렁거리며 따라오던 묵범이 투덜거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일하기 싫은 티가 팍팍 풍겼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다시 하늘로 올라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기에 김 차사는 인상만 쓰고 입은 다물었다.
“이런 코딱지만 한 땅에 망자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쯧. 거, 염라께선 인력 추가할 계획은 없으시답니까?”
“없습니다.”
“김 차사가 염라도 아닌데 어찌 그런 대답을 내놓는단 말입니까?”
묵범이 짜증을 내며 물었다. 우리가 건의를 안 해 봤을 것 같소? 김 차사는 목구멍까지 밀고 올라온 울분을 꿀꺽 삼켰다. 하계로 내려온 지 고작 백 년도 안 된 저자는 저승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어찌 운영되어 왔는지 모른다.
그러니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저자는 천지왕이 총애하는 진인이 아니던가. 내 평범하고 평탄한 미래를 위해서 참자.
묵범은 김 차사가 인내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느낀 저승의 거지 같은 시스템을 하나하나 꼬집기 시작했다.
“하계의 조직과 시스템을 따라 한 것은 옳으나 사람의 피, 땀, 눈물을 쥐어 짜내어 노동시키는 것까진 배우다니. 대별왕이 아시면 아주 기뻐하시겠습니다?”
“그분은 모르는 일입니다.”
“오… 그러면 염라께서 대별왕 몰래 차사들의 고혈을 쭉쭉 빨고 있다는 것이군요.”
“묵범 진인…!!”
앞서 걷던 김 차사가 결국 화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김 차사의 외침에 출근하던 직장인들이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인간들의 시선에 눈살을 찌푸린 김 차사는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 40분.
12시가 되기 전에 부지런히 오전 스케쥴을 끝내야 하는데, 뭐가 그리 뒤틀렸는지 시비질이다. 첫 번째 망자의 집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한다. 계속 이런 식이면 오늘도 야근 확정이란 생각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서 이동해야 합니다. 오전 중으로 망자 여섯을 인도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지 않습니까?”
묵범에게 다가간 김 차사는 어서 이동하자며 묵범의 손목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다.
“어허. 어디 외간 남자가 함부로 손목을 잡으려 합니까?”
“외간 남자…….”
옷소매에 손끝도 닿지 않았는데 묵범은 마치 희롱당한 여인처럼 과장스럽게 손을 빼내 가슴에 올렸다. 서로 피 안 섞인 남남이니 외간 남자인 것은 맞긴 하다. 하지만, 덩치는 태산만 한 묵범이 수절 중인 과부처럼 행동하니 기가 차다 못해 열불이 터질 지경이다.
“묵범 진인. 지금 이렇게 농담을 할 때가 아닙-.”
-니다. 라고 말하려는데, 묵범이 갑자기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어딜 갑니까! 버스 정류장은 이쪽인데!”
“저 반차… 아니, 월차 내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갑자기?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김 차사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굳어 있자 묵범은 다녀오겠다며 손을 휘휘 흔들고는 그대로 튀었다.
“저, 저… 호랑말코 같은 놈이 있나!”
결국, 김 차사는 길 한복판에서 분노를 터트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출근하던 직장인과 등교하던 학생들이 김 차사를 보며 수군댔다. 한여름에 더워 죽겠는데 검은 도포를 입은 것도 수상한데, 혼자 저리 화를 내는 걸 보면 미친놈인 것 같다며 김 차사를 피하기도 했다.
제길. 오늘 외근이 끝나는 즉시 강림 도령께 가야겠다. 가서 더는 묵범 진인과 함께 일을 할 수 없다고, 파트너를 바꾸든가 차라리 혼자 일을 하겠다고 하소연을 해야지.
김 차사는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손가락을 한 차례 튕겼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로 흑립이 스르륵 생겨났다. 그와 동시의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야에서 김 차사는 사라졌다. 혼자 화를 내던 한여름의 광인이 있었다는 것도 행인들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졌다.
“차라리 잘됐지. 저딴 놈 옆에 두고 일하다 스트레스로 쓰러지느니 차라리 혼자 일하는 게 낫겠어.”
김 차사는 혼잣말을 하며 부지런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흑립으로 모습과 존재감을 지웠다지만,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묵범이 월차를 외친 건 반은 충동이었고 반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김 차사하고는 오늘로 끝인가.’
오늘 외근이 끝나면 김 차사가 누구에게 찾아가 무슨 말을 할지 안 봐도 훤했다. 잘되었다. 안 그래도 김 차사는 너무 고루해서 따분했다. 사실 그건 김 차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김 차사는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삶을 사는 묵범과 손발이 맞을 리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김 차사가 속해 있는 감직부는 얌전히 저승으로 따라오는 망자만 담당하는 부서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니까, 감직부는 김 차사와 같은 저승사자들로만 구성된 부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계에서 저승을 돕기 위해 내려온 묵범은 별일이 없으면 감직부에서 일을 했고, 별일이 생기면 추혼부에서 일을 했다.
추혼부는 감직부의 사자들을 따르지 않고 도망친 탈주 망자나 원귀, 악귀 등을 나포 또는 소멸하는 부서로 저승에서 가장 유능하고 유명한 차사들이 모인 부서다.
추혼부의 차사들의 전투 실력은 천상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유능하다. 또한 온갖 개차반이 모여 있기로도 유명했다.
하늘님이 천하의 사고뭉치와 망나니들을 최대한 써먹기 위해 만든 부서라는 말이 정설처럼 돌 정도였다.
갑자기 예기치 않게 망자가 늘어나는 통에 염라는 천계에 SOS를 쳤고, 하늘님은 직접 엄선한 신선들을 저승으로 내려 보냈다. 그중 하나가 묵범 진인이다.
묵범은 감직부와 추혼부, 두 부서를 오가며 일을 했는데 최근 감직부 일만 들어오기에 따분해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신기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원귀?’
버스 정류장으로 바삐 가던 김 차사는 보지 못했지만, 묵범은 저 멀리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비좁은 골목으로 덩치 큰 남자가 비실거리는 남자를 질질 끌고 들어가는 광경을 보았다. 끌려 들어가는 남자의 등에 시커먼 게 붙어 있는 것을 보자마자 월차를 외친 것이었다.
건물 사이 골목으로 다가가는 묵범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경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원귀의 크기를 보니 소짐승이나 아기의 원혼인 것 같았다.
묵범은 고개를 옆으로 휙휙 꺾으며 굳었던 근육을 풀었다. 움직일 때마다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났다. 평소라면 저런 하찮은 원혼은 무시하고 지나쳤겠지만, 요즘 들어 내내 감직부 일만 하느라 좀이 쑤셔 죽을 것 같던 그에겐 가뭄에 단비였다.
흐흠~ 흐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두 남자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간 묵범은 예상외의 반응에 멈춰 섰다.
‘단순 시비가 아닌가…?’
요즘 인간들이 꽤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비틀거리는 남자를 저렇게까지 엉망으로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다.
원귀가 달고 있던 남자의 얼굴은 거친 시멘트 바닥에 쓸려 온통 피투성이였다. 게다가 시멘트 가루와 먼지, 기타 등등 지저분한 것들로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마치 빵가루를 묻힌 돈가스 같았다.
그에 비해 그를 골목으로 끌고 들어온 남자는 멀쩡했다. 키도 인간치고 굉장히 훤칠했고 덩치도 발군이다.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볼캡 아래로 보이는 입술이 붉다. 입술이 붉어서 그런가 피부가 더 하얘 보였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신경 쓰느라 관람객이 온 것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저 남자를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고 싶다. 묵범은 소리가 나지 않게 손가락을 튕겨 흑립을 소환했다. 존재감을 지우는 데 흑립만 한 것은 없었다.
흑립을 쓴 묵범은 큰 걸음으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니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반팔 아래로 드러난 피부도 하얗다. 하지만, 넓은 어깨와 탄탄한 근육 때문에 유약해 보이진 않았다. 그에 비해 허리는 가늘어서 좀 위태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위태롭다…?’
목숨이 위태롭다거나 하는 행동이 위태롭진 않았다. 묵범은 자신이 왜 저 남자를 보고 위태롭다고 느꼈는지 이해 가지 않았다.
남자의 바로 뒤에 서 보니 키는 자신보다 좀 작아도 어디 가서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맞고 다닐 인간으론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위태롭단 생각이 든 것이지? 무얼 보고?
묵범은 남자 주변을 빙빙 돌며 왜 그랬는지 고민에 빠졌다. 슬쩍 상체를 숙여 모자에 가려진 얼굴도 확인했다.
염색이라곤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보이는 새카만 머리카락, 곧게 뻗은 콧날, 앞머리에 살짝 가려진 눈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꽤 생겼잖아? 여자 여럿 울렸겠는걸?’
묵범은 남자의 얼굴에 감탄하며 다시 그를 전체적으로 훑어보았다. 듬직한 어깨와 등은 요즘 사람들의 고질병이라는 거북목과는 인연이 없어 보였다. 팔뚝도 탄탄하고 가슴도 꽤 발달했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던 묵범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시선이 멈춘 곳을 유심히 살폈다.
‘아, 이것 때문인가?’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남자의 허리였다.
가늘다. 넓은 어깨와 등에 비하면 신기할 정도로 가늘었다. 묵범의 혀가 입술을 훑었다. 입 안의 수분이 증발한 것 같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허리뿐이랴? 가느다란 허리와 이어진 엉덩이는 청바지를 입었음에도 탄력 있게 올라붙은 모양새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허벅지도 묵범 못지않게 튼실해서 청바지 천이 주름 하나 없이 팽팽했다.
갈증이 입 안에서 목구멍까지 번졌다. 묵범은 충동적으로 손을 뻗었다.
* * *
“으악!! 뭐, 뭐야!?”
남자의 등에 매달린 원귀가 알아서 떨어져 나오길 기다리던 도화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기겁했다.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손이 도화의 허리를 강한 힘으로 조였기 때문이었다.
너무 놀라서 방어나 반격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하고 잡힌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허리가 아니라 엉덩이를 꽉 잡는 게 아닌가?
허리 붙들린 건 경황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엉덩이는 아니었다. 도화는 품에서 한 뼘 정도 길이의 칼을 꺼내 휘둘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손이 떨어져 나갔다. 도화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건물 벽에 등을 붙이고 서서 방금 자신이 서 있던 곳을 노려보았다.
‘…안 보여?’
보통 이 정도 안력을 높이면 웬만한 혼령은 보이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엎드려 끙끙대는 남자와 남자의 등에 붙어 있는 원귀만 보일 뿐이다.
바로 뒤에서 몸을 만질 때까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안력 높인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존재 자체를 지운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희롱했다.
순간, 도화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이며 스쳤다.
‘설마.’
완벽하게 존재감을 지우고 활동이 가능한 부류는 하나다. 귀마(鬼馬)의 갈기로 만든 흑립을 쓸 수 있는 이들.
“저승차사?”
확실하지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도화의 귀에 ‘딩동댕-’ 저음이지만,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