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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13화 (13/106)

13

1. 죽기 싫으면 선하게 살면 된다

철컥.

데미안이 던져 주는 검을 얼떨결에 받아 든 미카엘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은 총을 쓰실 거면서 저에겐 검을 주신다고요?”

데미안은 엷은 웃음을 머금은 채 그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도발하듯이 말했다.

“검술 실력을 한번 봐 주지.”

“저 같은 사람이 검을 쥘 일이 얼마나 있다고…….”

황당하단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던 미카엘은 자연스럽게 그립(Grip)을 쥐어 보다가 두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훠엉.

잘 벼린 검날로 허공을 한 번 베어 본 미카엘은 검을 쥔 손을 몸통 한가운데로 옮긴 뒤 검의 좌우 중심을 맞춰 보았다.

‘아니,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

요리나 바느질처럼 어설피 배운 게 아니다.

미카엘은 본격적으로 검을 배웠던 것 같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강한 스승님 아래에서.

과거의 일이라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건만, 그저 검을 손에 쥔 것만으로도 그를 향한 무한한 존경심과 자긍심이 가슴속에서 번져 나갔으니까.

미카엘이 폼멜(Pommel) 바닥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선생님?”

미카엘은 그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본 뒤 도발하듯이 말했다.

“저에게 반하게 되실지도 모르는데.”

마치 데미안이 그랬던 것처럼.

두 눈을 내리뜬 데미안은 짧게 웃고는 가벼이 미카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나도 하루하루가 행복해지겠군.”

제기랄. 누구하고 자는 남자인지. 정말 끝내주기도 하지.

“최대한 잔인하게 죽일까요?”

데미안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미카엘이 그의 곁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데미안은 그답지 않은 냉랭한 낯빛으로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럴 것까진 없다고 답했다.

“쓰레기를 정성을 다해 주울 필요 있나.”

미카엘은 아하핫 웃어 버렸다.

‘이럴 땐 또 가차 없다니까.’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우뚝 걸음을 멈춘 데미안이 미카엘의 팔을 잡은 채로 말했다.

“자네는 주의를 기울이며 죽이게. 깨진 유리병을 수거할 땐 조심해야 하지 않나.”

“그건 저놈들이 재활용 쓰레기라는 뜻인가요?”

미카엘이 농담조로 되묻자, 데미안은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듯 그의 가슴팍을 검지로 툭 두드리며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저자들은 죽어 마땅한 이들이니 쓰레기를 주우며 괜히 자네 영혼이 상처받지 않게 조심하란 이야기였네.”

“네. 명심하도록 하죠.”

대천사가 악마의 스승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지난 1년간 데미안은 그에게 있어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데미안은 말로 가르침을 전한 적은 없지만, 그의 몸 자체가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미카엘은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도,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데미안은 어둠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는 미카엘에게 등불을 쥐여 주는 대신 그의 손을 잡고 같이 어두운 벽을 손으로 더듬어 나갔다.

데미안이 앞서 걸으며 어떠한 행동을 하면 미카엘이 그를 뒤따라가다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미카엘은 조금씩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바람이나 쐬고 오지.」

살짝 무릎을 굽힌 데미안이 지상에서 건물 5층 옥상으로 단번에 뛰어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카엘은 그를 따라 단번에 높다란 건물을 뛰어오른 뒤 자신의 몸을 이채로운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이게 되네.’

데미안은 잘했다거나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미카엘이 무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눈으로 한번 확인하고는 도로 등을 돌려 섰다.

“습격이다!”

“씨발, 밀레이 놈들이 왔어!”

“몇 명이야!”

“대체 어디에서 쏘는 거야, 젠장!”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데미안은 마치 미카엘이 여기까진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총을 들고서도 굳이 근거리에서 카람을 쏘았다.

“한 명이다! 이런 미친, 한 명이라고!”

“멍청한 놈! 어디에 쏘는 거야!”

“씨발. 저 커다란 새끼 하나 못 맞추는 거냐고!”

“아무거나 방패 삼아서 저 새끼 좀 조져 봐!”

타앙!

권총이 사정거리가 그리 길지 않다고 해도 총구를 이마에 딱 들이댄 채 쏠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나도 놀고만 있을 순 없지.”

모처럼 스승이 본보기까지 보여 주었으니.

데미안이 그랬던 것처럼 미카엘은 빠르게 도약해 카람을 베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 명이 더 왔어, 씨발!”

“저런 괴물 새끼들!”

“밀레이가 대체 뭘 부른 거야!”

데미안은 카람이 시가지로 이동하다가 애먼 사람들에게 오발하는 걸 염려하는 것 같았으니 미카엘은 주로 증원을 부르기 위해 부두를 빠져나가려는 카람을 베었다.

“유리시아에 영광을!”

“우리 땅에서 나가, 이 개잡놈들아!”

투다다다다!

마침내 밀레이까지 도착한 모양이었다.

차 지붕에 고정된 기관총이 샛노란 불을 뿜자, 언제 코앞으로 다가온 건지 데미안이 미카엘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자네 다쳤나?”

미카엘은 수백 발의 총알을 한 번에 등으로 받으면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를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 아뇨. 다치지 않았어요.”

“그래. 다쳤군.”

“아, 혹시 제가 방금 마음속으로만 대답했나요?”

“자네가 다쳤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신기(神器)를 사용할 수밖에.”

데미안은 대놓고 사기 치자는 이야기를 매우 믿음직스러운 얼굴과 신실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아하, 그런 이야기였군요.”

두 손을 자기 가슴 위에 올린 미카엘도 물에 흠뻑 젖은 가련한 꽃 같은 얼굴을 한 채 바람잡이로 가세했다.

“아아, 마음 아파라. 어떻게 이런 절세 미남에게 기관총을 쏠 수가 있죠? 저들에겐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걸까요, 선생님?”

살짝 입꼬리를 올린 데미안은 피식 웃고는 미카엘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눈이 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된 것뿐이었다.

쿠우웅!

어느새 저만치까지 도망쳤던 카람들이 발로 세게 걷어찬 돌멩이처럼 사방으로 나가떨어졌으니까.

왼 주먹을 앞으로 내민 채 오른 주먹으로 가슴팍을 보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 데미안은 정권을 주로 이용하는 격투 태세였다.

그의 신기라는 게 주먹과 발을 의미하는 거였는지 손끝에서 팔꿈치와 발끝에서 무릎까지가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카람인가?”

“방금 자기 쪽 사람을 공격한 거야?”

“상관하지 말고 쏴!”

타타타탕!

1시 방향에서 자동 화기를 든 남자들이 연이어 총을 쏴 대자, 왼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린 데미안이 그 발꿈치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쿠우우웅!

동시에 그의 커다란 몸을 다 덮고도 남을 법한 거대한 바위가 솟아올랐다.

총을 맞아도 멀쩡하다면 굳이 방어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아주 잠시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건 방어를 하기 위해 만든 벽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게 되었다.

커다란 바위를 주먹으로 후려친 데미안은 그 파편을 손에 들고서 어깨를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강하게 내던졌으니까.

퍼엉! 펑! 퍼엉!

말 그대로 인간 대포였다. 아니, 대천사 대포였다.

단 몇 개의 돌덩이로 밀레이의 차량을 완전히 박살 내 버린 데미안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음…… 따라 하지 말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미카엘은 깨끗한 구두에 피가 묻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시체를 피해 걸으면서 데미안에게 향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죽여도 되나요?”

타앙!

차량에 깔리면서 즉사는 피하게 된 밀레이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 넣으면서 데미안은 그 잔혹한 행동과 달리 온유한 어조로 답했다.

“죽기 싫으면 선하게 살면 될 거 아닌가.”

“아아, 그렇네요.”

총을 손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은 뒤 한 남자의 손에 쥐여 준 데미안이 나머지 총을 또 손수건으로 닦으며 물었다.

“자네 다쳤나?”

같은 내용을 담은 두 번째 질문이었다.

미카엘은 제 가슴팍에 시선을 고정한 데미안을 바라보면서 그 의도를 파악하고는 같은 내용을 담은 답변을 두 번째로 돌려주었다.

“아뇨. 다치지 않았어요.”

무심한 손길로 시신 옆에 총을 놓아둔 데미안이 구두가 더러워지는 게 걱정되지도 않는지 그들의 핏자국 위를 저벅저벅 걸어 나가며 말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아, 정확히는 구두가 더러워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 듯했다.

정확하게 피 웅덩이의 한가운데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엔 데미안의 발자국이 남지 않았으니까.

“제가 당신만큼 강한 건 아니지만, 쓰레기 좀 치웠다고 다칠 정도로 연약하진 않거든요.”

미카엘은 그가 그랬던 것처럼 피 웅덩이를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 데미안의 어깨에 팔을 감았다.

“신전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가시죠. 우리의 기념비적인 첫날인데.”

슬쩍 눈썹을 들어 올린 데미안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첫날? 무엇에 대한 첫날 말인가.”

“선생님에게만 일방적으로 이득이 되는 계약을 맺은 첫날이요.”

곰실곰실 셔츠 안으로 파고든 손가락이 은근한 손길로 데미안의 골반을 주물렀다.

“아직 허리 아프시죠? 중간중간 허리에 손을 짚으시던데.”

적당히 힘이 들어간 손가락은 거짓말로도 기분 나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제가 따뜻한 물로 씻겨 드리고 나서 마사지해 드릴 테니까 제 아파트로 가요.”

하지만 데미안은 이 귀여운 제안에 홀랑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난……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네.”

검은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던 데미안은 영 불안했는지 내일까지도 그럴 것 같다며 말을 덧붙였다.

“세상에, 데미안. 대체 저를 뭐로 보시는 거예요?”

미카엘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이어진 데미안의 말에 웃음기를 싹 거두고 말았다.

“나만 보면 발기하는 어린 남자.”

미카엘은 아주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절 믿으세요, 선생님. 적어도 제 상체는 신사적이잖아요? 오늘은, 아니, 내일 오후까지는 선생님께 손대지 않을게요.”

“내일 자정까지.”

“오후라고 했을 텐데요.”

교섭의 여지가 없는 단호한 말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의 팔을 두 팔로 꼬옥 감싼 몸짓엔 애교가 듬뿍 어려 있었다.

데미안이 자신의 콧등에 난 연한 갈색 점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서인지 자꾸만 날렵한 콧날을 들이대기도 했다.

여기 점을 봐 주세요. 예뻐 죽겠죠? 그러니까 빨리 알겠다고 말해.

반은 응석, 반은 윽박같은 애교.

“이런 날에 절 혼자 두시려고요?”

미카엘은 귀엽다는 말을 듣는 걸 질색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귀여운 짓을 잘했다.

지금처럼.

“저 쓸쓸해서 죽을지도 몰라요.”

어깨에 이마를 동글동글 비벼 대던 미카엘이 한껏 처연한 얼굴을 한 채 버려진 강아지처럼 굴면 데미안으로선 도저히 이길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후우…….”

결국 데미안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의 아파트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손 말고 혀나 아랫도리도 대면 안 되네.”

굳이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미카엘이 슬며시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면 역시나 그걸로 건드릴 생각은 있었나 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발은 된다는 뜻이네.

불운하게도 미카엘은 이런 방면에서 그보다 한 수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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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술김에 얼떨떨하게 업로드한 것 치고는 요까지 잘 달려 왔지요...?

조금 쉬다가 <챕터 2. 개와 악마는 부르지 않아도 온다>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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