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우와! 용사님 한정판 굿즈!
“우와! 용사님 한정판 굿즈!”
용사님과 닮았지만, 결코 용사님은 아닌 존재가 오도카니 서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오닉스는 하스칼의 집무실에 들어오다 말고 제 입을 틀어막았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누구 솜씨인가요?”
오닉스는 하스칼이 말릴 새도 없이 태준의 분신에게 달려들어 손과 뺨, 머리카락 따위를 마구 만져 댔다.
체온이며 촉감, 모발 상태와 흉터의 질감까지.
모든 것이 태준과 똑 닮아 있었다.
“귓바퀴도 그대로고. 홍채 모양도 그대로고. 맙소사, 지문까지 그대로네?”
오닉스는 태준의 분신 입술을 비집어 열고 치아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이 뭉툭한 송곳니의 감촉까지 태준의 치열과 완전히 똑같았다.
“와…. 미쳤어.”
황홀에 젖은 경탄성이 저항 없이 쏟아져 나왔다.
오닉스의 손이 태준의 분신 바지춤에 쑥 밀려들어 갔다.
“두께, 경도, 길이, 탄성. 완벽해요. 요도와 점막 상태는 어떤지 검사해 보고 싶네요.”
오닉스가 분신의 성기를 정신없이 만지작거릴 때였다.
모근이 쭈뼛 설만큼 첨예한 기운이 오닉스를 향해 쏟아졌다.
슬쩍 곁눈으로 하스칼을 보자 시선은 서류를 향해 있지만, 근처의 마력이 불안정하게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손을 놀렸다간, 오닉스가 터져나갈 것이다.
“크흠, 큼. 제 사심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이 정도로 용사님 신체와 똑같이 구현해 낸 솜씨에 감탄했을 뿐이랍니다.”
하스칼의 불편한 심기를 느낀 오닉스는 주춤주춤 손을 빼내곤 누가 들어도 사심 뚝뚝 떨어지는 헛소리를 주절거렸다.
그러면서도 검은 눈동자가 쉼 없이 태준의 분신을 살폈다.
겉모습은 정말 놀랍도록 닮았지만, 태준을 아는 악마라면 누구라도 구분해 낼 만큼 달랐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하스칼이 이런 인형을 용사님 대용으로 삼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불만스러워 보이는걸.’
오닉스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하스칼과 분신을 번갈아 보았다.
역시 마왕님은 티 나지 않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런 게 마왕성에 덜렁 놓여있는 게 불쾌하고.
그렇다고 오닉스가 태준의 분신을 만지는 건 싫고.
그럼에도 없애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까망이 짓이겠지.’
오닉스의 눈이 야살스럽게 접혔다.
너무너무 재밌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쩜 이렇게 기발하고 사랑스러운 짓을 할 생각을 했담?’
오닉스는 사실 마왕성에 들어서자마자 태준의 부재를 눈치챘다.
그와 동시에 하스칼이 어떤 결심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마왕님은 다른 악마와 용사의 신체를 접붙이는 것도, 그렇다고 용사의 넋을 끄집어내 다른 곳에 옮기는 것도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구로 요양 가는 것을 눈감아 줬을 테다.
‘그런데 이런 대용품을 남기고 가다니.’
알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태준은 하스칼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준 셈이었다.
‘역시 용사님 멋져.’
오닉스는 갑자기 용사님의 마르지 않는 수맥이 너무 그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귀두를 보드랍게 감싸던 배꼽의 감촉과 신음을 참으며 입술을 깨무는 그 야릇한 표정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아아, 현기증 날 것 같아. 아무래도 저, 너무 오래 금욕한 거 같아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현기증은 겪어 본 적도 없는 놈이 입을 놀리자, 하스칼의 마력이 더욱 묵직하게 변했다.
“몇 개만 더 손보면 정말 감쪽같을 텐데.”
온몸이 뻐근해진 오닉스는 하스칼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유지한 채, 분신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일단 뇌가 절어 버릴 것 같은 냄새를 추가해야 해요. 참다못해 갸르랑 대는 듯한 신음도 필수고요. 화나면 붉게 달아오르는 눈시울도요.”
“…….”
오닉스는 그 외에도 추가해야 할 몇 가지를 더 읊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다 덧붙이더라도 이 인형은 결코 용사님의 대용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지.’
오닉스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말해 본 거였다.
평소 하스칼이 태준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이기도 했고.
이렇게 공식적으로 마왕을 놀려먹을 수 있는데, 참으면 그건 악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장난은 여기까지.
오닉스는 눈을 반짝이며 하스칼에게 바짝 붙으며 말했다.
“이거 저한테 주세요.”
하스칼에게 조르고 있긴 하지만, 오닉스 역시 용사님 인형에 대고 좆질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 정도로 가벼운 마음이었으면, 꿈속에서 엄청나게 따먹었을 것이다.
오닉스 역시 이런 인형이 아니라 진짜 태준을 갖고 싶었다.
아무리 궁해도 발기조차 되지 않는 인형을 가지고 놀 정도로 악마 대공이란 위치가 심심한 자리가 아니기도 했고.
‘하지만 쓸만하단 말이지.’
이 인형이 정말 피가 흐르고, 세포가 분열하고, 살아서 숨을 쉬는 인간의 몸체를 흉내 내고 있다면.
진짜 용사님이라면 죽어 버릴까 봐 시도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연구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까망이와 더 오래도록 함께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오닉스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태생부터 악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용사님은 때때마다 지구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 그걸 해결 볼 수만 있다면 우리 까망이를 영원히 지옥에 붙잡아 둘 수 있을지도?’
본래라면 지구에서 인간들을 잡아 와 이것저것 실험하며 연구해 봤을 테지만.
나약한 인간들은 개체마다 반응이 다 달라서 자칫 부작용으로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 수많은 변수를 모두 계산해서 용사님에게만 맞는 약을 만든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실험 재료가 나타나다니.
오닉스에겐 천운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네? 제가 가져 가게 해주세요.”
그래서 조마조마한 심경으로 하스칼의 입이 열리길 바랐다.
대답해 주지 않으면 쫓겨나기 전까지 절대 나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채.
“뭐를 달라는 거지.”
“!!”
하지만 하스칼의 무심한 눈이 오닉스를 향하자, 그는 심장이 덜컹했다.
인형을 아예 없는 셈 치겠다는 거다.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오는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마왕님 제법 요망…!’
“번잡스러우니 나가.”
오닉스의 생각이 모두 이어지기 전.
하스칼은 오닉스를 정말로 마왕성에서 내쫓아 버렸다.
* * *
투퉁, 툭.
양손 가득 쥐고 있던 장바구니며 쇼핑백이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허웅석은 신발을 반쯤 내던지듯이 벗어 내고는 허둥지둥 거실로 뛰어 들어갔다.
“으아아! 이눔 시키 어디 갔어!”
허웅석이 한껏 솜씨를 발휘한 전복죽이 외면받은 채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숟가락은 손끝 하나 댄 적 없는지 놓인 그대로 가지런했다.
다급히 방문을 열어 봤지만, 이부자리는 곱게 정리된 상태였다.
화장실, 베란다, 세탁기와 침대 아래까지 살펴본 허웅석은 다시금 신발을 꺾어 신었다.
무슨 야생 고양이도 아니면서, 사람 손타는 게 싫다는 듯 태준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지금 그놈은 혼자 두면 안 된다고!’
집이 1층이라 신경 쓰지도 않았던 엘리베이터를 살피자, 최고층까지 올라가 있었다.
버튼을 연타했지만, 미적미적 내려올 생각을 않는 엘리베이터를 두고 황급히 옥상까지 뛰어 올라갔다.
닫혀있어야 할 옥상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가슴이 절로 선뜩해졌다.
문을 거의 박차듯 밀고 옥상으로 뛰쳐나가자, 난간 바로 앞에 익숙한 뒤태가 보였다.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태준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보는 뒤통수에서 오싹함이 느껴졌다.
허웅석은 앞뒤 생각할 것 없이 재빠르게 달려가서는 태준의 어깨를 잡아챘다.
손아귀에 잡히는 양감에 어쩐지 울컥했다.
“인마야, 너 왜 사람 걱정시키고 그르냐! 어? 빨리 이쪽으루 와!”
허웅석은 코를 훌쩍이며 태준의 팔도 들고 고개고 돌리고 머리채도 훑으며 구석구석 살폈다.
천운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쿵쾅 지랄이 났다.
“…….”
한참을 그렇게 살피고 나서야 태준이 저를 빤히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한참을 우물대기에, 허웅석은 태준이 허튼짓하지 못하도록 어깨를 단단히 붙잡으면서도 잠자코 기다렸다.
화를 내면 겸허히 받고, 욕이라면 뭐든 들어줄 테다.
그리고 사과하자.
아저씨가 다 잘못했다고 깔끔하게 고개 숙여 인정하자.
그렇게 다짐한 순간, 태준이 거스러미가 인 입술을 열었다.
“실례지만… 누구세요?”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묻는 순진한 얼굴을 본 순간.
허웅석은 뭔가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