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아빠라고 불러라
질문이 너무 뜻밖이었던 탓일까.
방금까지 나를 잡아 뽑듯 흔들던 남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내 어깨를 쥐고 굳어 버렸다.
제법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아이템 없고. 무기 없고.’
내 시선은 남자의 귓불과 목, 손가락과 허리춤을 바삐 오갔다.
하지만 평범한 면바지에 카키색 셔츠, 구겨 신은 로퍼만으로는 상대의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누구지?’
안면인식 저항 디버프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나를 이 정도로 반길 만한 사람이 있었다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중년 아저씨 중에?’
천 번을 죽었다 깨어나면서도 있어 본 적 없던 일이 벌어지니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설마 균열을 넘는 동안 뭔가 잘못돼서 다른 사람 몸에 빙의한 건가 싶었다.
세상이 아포칼립스 소설처럼 멸망하고 있고 회귀도 천 번이 넘게 한 마당에 빙의는 불가능하겠냐 싶다만은.
태준아! 신발! 신발 벗어 달라고 하자.
눈앞을 날아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한껏 어필하는 시스템 창을 보면 어림도 없는 상상이다 싶었다.
결국 주변을 휘둘러 보았다.
깨자마자 낯선 곳에 누워 있어서 무작정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와 경관을 살폈지만, 도통 눈에 익은 구조물이 없었다.
여기는 대관절 어디란 말인가.
이 아저씨는 또 누구고.
갑자기 지구에 제대로 도착한 게 맞긴 한 건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과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아닌데. 착각한 거.”
“……그럼 저 진짜 아세요?”
“알지. 알다마다.”
“어떻게 아시는데요?”
“……”
“네?”
“…허, 참나, 이 개 같은 놈들.”
“…예?”
“그럼 그렇지. 어떻게 거길 혼자 빠져나왔나 했더니, 뇌를 아예 주물럭거리셨다? 이런 천하의 상종 못할 쓰레기 새끼들이 있나!”
난데없는 무시무시한 소리에 나는 눈을 끔뻑였다.
‘뇌를 뭘 하고, 쓰레기는 누구라고?’
정보를 주워 담기에는 특정하기 힘든 문장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내 얼굴에서 뭘 읽었는지, 돌연 와락 끌어안았다.
방비할 새도 없이 남자의 품에 폭삭 안겨 버린 나는 이게 지금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서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래그래. 괜찮아. 킁. 불안해할 거 하나 없, 크흥. 없다 이눔아. 킁. 태준이 니는 그래. 다 잊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좋지.”
“……?”
남자는 훌쩍훌쩍 코를 먹더니,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머릿속에는 이해 못할 물음표가 부풀어 올라서는 꽉 차버렸다.
“누구신데 그러세요. 저희 무슨 사이예요? 제가 뭐라고 불러드려야 해요?”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나는 상대방의 정체를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내 등을 토닥이며 한참 목멘 목소리로 아아 거리더니 대뜸,
“아저…, 크흥, 킁. 그냥 아빠라고 불러라.”
하고 말했다.
‘댁이 왜 내 아빠야!’
내 친아빠는 진작 돌아가셨다고.
지금 계신 아버지는 어머니와 재혼하신 새아버지였다.
새아버지한텐 나 말고도 친자식이 넷은 더 있어서, 서로가 데면데면했다.
게다가 내가 헌터로 각성한 뒤 집안의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니며 망나니짓을 했기 때문에, 호적에서 파이지만 않았지 거의 없는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라는 설정이지.’
그래.
그런 설정이었다.
사실 라엘과 계약한 뒤 뭔가 조금 뒤죽박죽 달라져 버렸다.
원래는 아빠와 같이 살았는데, 라엘과 계약한 순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것이 되어 버렸으니까.
솔직히 황당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그 낯선 가족 관계에 익숙해질 새도 없이 세계를 구하러 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없는 셈 치며 살았다.
물론 새아버지가 엄청난 재벌이라, 회귀 초반엔 협회와 거래한다고 재산을 좀 가져다 쓰긴 했지만….
‘돈 버는 법 익히고부턴 스스로 벌어서 썼다고.’
그래도 초반의 부채감이 사라진 건 아니라서, 다음 회차 사람들은 알지도 못할 빚을 모조리 갚아주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인 관계였다.
그런데 대뜸 아빠라니.
돌아가신 아빠가 살아 돌아왔을 리 없고.
새아버지한테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은 이상, 나한테 저렇게 살갑게 대할 리도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새아버지 체격이 이렇게 좋지도 않다고.’
안겨 있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과 굵직한 뼈대는 몸을 단련한 사람 특유의 냄새를 풍겼다.
비록 무기나 다른 아티팩트가 보이진 않았으나, 손에 박인 굳은살이 검을 오랫동안 잡아 온 사람이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사기꾼인가?’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헌터한테는 돈이 많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나한텐 내 이름이며 신분을 증명할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정말 우리가 아는 사이이거나 내 뒷조사를 했다는 뜻일 거다.
‘하지만 뒷조사 좀 했다고 무작정 친한 척을 시도하는 건 수상쩍긴 하지. 악마들의 농간이라기엔, 놈들은 내가 지금 안면인식 저항에 걸려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고.’
결국 원래부터 나를 알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의문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구에는, 나를 이렇게 얼싸안고 반겨줄 사람이 없었던 까닭이다.
결국 나는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남자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랐는지 건장한 몸이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이 남자 또한 나와의 스킨십이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역시 수상쩍잖아!’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남자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누구냐, 당신. 순순히 정체를 밝히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나는 적당히 남자의 장단에 맞춰 주는 척, 정체를 캐낼 궁리를 하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신발 좀 벗어 달라고 하라니까.
* * *
“이제부터 니 이름은 차태준이다. 알겄냐?”
“…….”
“이름까지 다 바꾸면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어색할 수 있으니 그대로 가는데. 성은 일단 임시로 정했다.”
‘이걸 돌고 돌아 본래 성을 갖게 되네.’
“그리고 이건, 앞으로 신분증 대용으로 쓰고. 안에 들어간 칩이 진짜긴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 어디 스캔하는 데 사용하고 다니진 마.”
남자가 주머니에서 헌터증 하나를 꺼내 건넸다.
신소재 금속으로 만든 헌터증에는 ‘차태준’ 하고 달라지기 전의 내 본래 성이 쓰여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크게 F등급이 그려져 있었고.
‘등급 세탁. 나도 몇 번 써먹어 봤지.’
F등급은 각성을 하나 마나 한 수준이라 다른 등급 헌터들처럼 연금도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형편없는 F등급으로 각성할 바엔, 더 좋은 등급으로 각성할 기회가 있는 일반인이 낫다는 인식이 있었다.
혜택은 하나도 없고 무시란 무시는 다 당하면서도 무슨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징집 대상이 되니, F등급으로 각성한 사람 중에서도 헌터증을 발급받지 않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하지만 어디에나 시장은 있는 법.
대개 뒤가 구린 사람들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F등급 헌터증을 찾았고, 남아도는 헌터증을 수거해 판매하는 브로커들이 점차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만들어 준 거지.’
헌터증이 있으면야 좋기는 하지만, 굳이 성까지 바꿔가며 없던 신분증을 만들어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격도 제법 비쌌을 텐데 말이다.
‘나를 알고는 있지만, 정체는 숨기고 싶어 하는 건가?’
점점 아리송해지는 의문을 감춘 채, 나는 헌터증을 마저 살폈다.
‘응?’
등급 아래로 언제 찍어갔는지 모를 내 얼굴이 박혀있었다.
어째선지 헌터증 속 내 눈은 양쪽 다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이걸 굳이 보정 할 필요가 있나?’
내 시선은 자연스레 거실에 놓인 전신 거울을 향했다.
‘눈이 까매졌다고?’
뜻밖에도 내 눈은 정말로 양쪽 다 검게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저주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내 왼쪽 눈은 영영 바뀌지 않을 줄 알았다.
더구나 하스칼의 마력을 품게 되면서 이상한 금빛 가루가 떠다니던 것도 지금은 보이질 않았다.
‘저주가 사라졌다고? 그럼 안 되는데?’
문득 내가 죽으면 새로운 숙주를 찾아 옮겨 간다던 슐츠만의 말이 떠올랐다.
모골이 송연해져서는 무심코 가슴팍을 더듬었다.
심장을 물어뜯고 있을 저주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뭐에 놀랐는지 호들갑을 떨며 내 양손을 잡더니 쎄쎄쎄를 하듯 위아래로 흔들었다.
“야야, 왜 그르냐. 가슴팍이 아파서 그래?”
“예?”
“그래도 상처 자꾸 만지면 덧난다. 가렵다고 긁고 그러면 안 돼.”
가슴팍의 상처를 언급하는 걸 보면, 남자도 내 몸 상태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은 낫게 해줄 수 없지만. 나중에 때 봐서 치료해 줄 테니까 좀만 참고.”
“…….”
‘뭐지, 이 남자.’
어쩐지 남자에게서 진한 호구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잘해 주는 척하다가 뒤통수를 치려고 그러나 싶어 경계하긴 했지만.
어째 나보다 나를 더 살뜰하게 살피는 걸 보면, 그냥 진짜 호구가 맞나 싶기도 했다.
“그 뭐냐. 포션이랑 성수 같은 게 지금 너한텐 안 통하거든? 그러니까 다쳤다고 섣부르게 뭐 찍어 바름 절대 안 돼. 아, 포션이랑 성수는 알아?”
“…예.”
“헌터는.”
“알아요.”
“그래그래. 다행히도 기본 상식이나 인지 능력은 괜찮은갑다. 하여튼 다치지 말고. 너 다치면 진짜 큰일 난다.”
남자는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은지 어린애 타이르듯 나를 앉혀 두고 하나하나 뭔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웬만해선 사람들 조심해야 해. 특히 다른 헌터들 조심하고. 다 나쁜 새…, 사람들이니까.”
“…예에.”
어차피 누군갈 만나러 다닐 생각이 없긴 했다.
지구에서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나는 어쩔 도리 없이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 몸에서 뿜어 나오는 마력은 사람이 오래 노출되어서 좋을 게 없는 물질이었다.
“중요해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상처 절대 만지지 말고. 물 들어가면 안 되니까 씻을 때 무조건 나 부르고. 만약에 나 없는데 찝찝하면, 샤워 물티슈 사놨으니까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써.”
도돌이표처럼 남자의 잔소리는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같은 말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네.’
세상의 모진 풍파가 이 남자만을 비껴간 것일까.
아니면 나는 연기의 달인에게 깜빡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일까.
“…….”
“알겠어?”
나는 굳은살 때문에 거칠거칠한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슬쩍 손을 빼냈다.
“네, 안 만질게요.”
“좋아. 착하다.”
당분간 이 남자의 정체도 캐낼 겸, 신세를 좀 져 볼 생각이다.
감히 나를 속이려는 거면 그에 상응하는 복수를 해 줄 셈이고.
혹여, 정말로 순박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면.
‘세상 매운맛 보기 전에 좀 도와주고.’
이런 사람이 많아야, 그래도 내가 세상 지킬 맛이 나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또 밖에 나갈 때는-”
“…….”
근데 이 잔소리는 언제 끝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