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대신 네 손으로 직접 벗어 봐
“하스…, 칼?”
지금 만나서는 안 되는 상대가 어떻게 내 앞에 있는지 의아해야 정상이겠지만, 이유를 생각할 틈도 없이 내 몸이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기특하네.”
허리를 감고 있던 하스칼의 손이 옷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뱃가죽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주인 이름부터 부르고.”
“아니, 잠깐만!”
뒤늦게 녀석을 밀쳐 내며 주변을 둘러보니 나는 어느새 마왕성으로 돌아와 있었다.
팔다리도 멀쩡히 움직이는 걸 보면, 거울 속에 있던 제약도 사라진 모양이었다.
시스템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상황부터 파악하고 싶었지만, 놈의 손가락이 어떤 지점을 누르자 배 속 슬라임이 꾸물럭거리며 징징 울리기 시작했다.
“흣!”
기괴한 움직임에 허벅지가 절로 덜덜 떨렸다.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자세가 무너져 놈의 허벅지 위로 주저앉은 꼴이 되고 말았다.
빠듯하게 부푼 내 사타구니가 놈의 단단한 근육 위로 뭉개졌다.
반사적으로 진동으로 울리는 배를 짚었지만, 녀석의 손등에 막혀 흠칫흠칫 경련했다.
“내가 굶기진 않은 것 같은데.”
기다랗고 섬세한 손가락이 마치 내장을 문지르듯 배꼽 주변을 둥글게 그리자 순식간에 성감이 치솟아 올랐다.
“마왕성 근처 산책을 다녀온다더니. 뭘 어쩌고 돌아다녔기에 잠깐새 이런 비루먹은 모양새가 됐을까?”
놈의 팔을 잡고 엉거주춤 밀어 내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놈의 몸이 더 밀접하게 맞붙었다.
“신체 밸런스도 다시 무너졌고.”
놈의 시선은 내 얼굴을 꿰뚫듯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기괴한 달걀귀신 틈을 벗어나 제대로 된 얼굴을 보게 되어 시야가 한결 낫긴 하지만, 눈에 담기엔 좀 과하게 부담스러운 얼굴이라 저도 모르게 놈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러자 하스칼의 손가락이 배 위를 쿡 찔렀다.
마치 급소라도 찔린 것처럼 온몸이 펄쩍 튀어 올랐다.
놈의 손가락은 내장이 잘 있는지 살피려는지, 꾸구국 누르며 배 위를 자꾸만 문질렀다.
습기 없는 손가락에 마찰되며 부드럽게 밀린 살가죽이 흠칫흠칫 놀라서 꿈틀댔다.
“허윽! 기다려 보라니까아…!”
나는 녀석이 휘감은 팔을 잡고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놈이 순순히 놔줄 리 없었고, 오히려 녀석에게 한 번에 훅 딸려 가서는 벽에 내몰렸다.
“큭! 아, 미친놈아!”
나는 팔을 구부려 놈의 가슴팍을 밀쳤다.
허리를 비틀자, 하스칼의 무릎이 귀신같이 빈틈을 파고들어 내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놈의 단단한 다리가 사타구니를 압박했다.
약간의 체중이 실리자 단박에 성기가 부푸는 게 느껴졌다.
그 감각이 불편해서 몸을 웅크렸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맞붙어서 다리를 들지도, 아래로 주저앉을 수도 없는 자세가 되고 말았다.
“쓸데없는 거 주워 먹고 다니지 마. 배고프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잖아. 부족하면 배 속을 전부 채워주겠다고.”
“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음? 이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귀담아들을 게 있었던가?”
하스칼의 손가락이 맡겨 놓은 물건을 가져가듯, 입술 새를 벌려 내 혀를 잡아챘다.
그 갑작스러운 침입에 놀라 앞니로 긁었지만, 녀석의 단단한 손은 거침없이 잇새를 비집고 들이닥쳤다.
“욱!”
순식간에 입 안을 점령한 손이 숨을 곳 없이 몰린 혀를 더욱 밀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단단한 입천장과 목젖 사이, 말랑한 살덩어리를 긁었다.
손가락은 축축하고 말랑한 감촉을 즐기듯 입 안을 슥슥 문질렀다.
처음엔 쓸데없는 말이나 하는 입을 다물게 하려는 짓인 줄 알았더니만, 놈은 점점 손가락을 굽혔다 밀어 넣으며 질척거렸다.
문지르다 한 번씩 강하게 눌러 오는 손짓 몇 번에, 슬슬 혀뿌리가 어릿하게 저려 왔다.
미처 삼키지 못했던 타액이 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고, 무심코 삼키려던 목젖까지 녀석의 손이 밀고 들어왔다.
“쿠욱, 읍, 우욱욱!”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저가 입을 온통 틀어막아 놓고는 뭐라는지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떼자 나는 녀석의 가슴팍을 퍽 내리쳤다.
“더 깊게 넣어줄까?”
‘이 또라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정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비틀었지만, 놈의 손은 유연하게 목구멍을 파고들었다.
“우응…, 윽”
“이거 하나 제대로 못 빨아서야.”
한심하다는 어투에 녀석의 가슴팍을 한 번 더 후리며 노려봤지만, 허리를 잡고 고정하고 있던 놈의 손이 옷 속을 파고들어 척추를 문지르자 고개가 덜컥 넘어갔다.
“후윽, 헉!”
“어디로 받아먹을래.”
“으응! 읏! 욱!”
“이쪽은 손가락 빠는 모양새도 시원찮고 뭘 하나 제대로 삼키지도 못해서 질질 흘리기나 하잖아.”
하스칼의 엄지손가락이 덜덜 떨리는 턱을 훔치자, 끈끈한 타액이 입가에 번졌다.
그러는 동안 등허리를 훑던 엄지손가락이 요추 부근을 문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왕의 기운을 흡수한 슬라임의 진동이 더욱 격해졌다.
“허욱!”
순식간에 치고 올라온 절정감에 허벅지가 모여들었다.
상체가 앞으로 쏟아지면서 하스칼의 가슴팍에 이마를 묻었다.
그러자 손을 놀리기 더 수월해졌는지, 놈의 손이 옴폭 들어간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불룩 튀어나온 뼈까지 훑기 시작했다.
아마도 갈비뼈가 시작되는 부분인 것 같았다.
점점 참기 어려운 흥분감에 근육이 한껏 경직됐다.
엉덩이뼈에서부터 올라오는 저릿한 전류에 목덜미가 시큰거렸다.
“이번엔 여기까지 박아줄까?”
“!!”
위에서 박든 아래로 처넣든 내장이 뚫리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위치였다.
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결과를 떠올리며, 놈의 가슴팍 위로 다급하게 도리질을 쳤다.
그제야 놈의 손이 입 속에서 빠져나갔다.
한껏 헤집어진 입을 다물 힘도 없어서 타액이 녀석의 가슴팍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커억…, 헉.”
헌터로 각성하고 이렇게까지 단시간에 체력이 깎여 본 경험이 없었는데.
고작 입 좀 쑤셔 박힌 걸로 심장이 우당탕 튀어나올 만큼 벌컥댔다.
“…….”
한참 숨을 고르는데 하스칼은 뭘 하고 있는지 조용했다.
그 틈을 타서 나도 머리를 굴려 봤다.
‘설마 이것도 환각인 건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각이고 또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환장할 것만 같았다.
신체에 닿는 감촉, 냄새, 온도.
그 모든 게 선명해서 설사 환각이라 해도 정신적 데미지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고작해야 정신력이나 내 몸을 점령하는 것 외에는 능력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시스템이, 나를 마왕에게 보내 버릴 정도로 능력이 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두려웠다.
“너는 기회를 주면 제 발로 걷어차는 재주가 있어.”
“…?”
등을 훑고 있던 손의 낌새가 수상해지자 나는 재빨리 녀석의 손을 잡아챘다.
하지만 위로만 기어 올라갈 것 같던 하스칼의 손이 쉽게 내 손을 뿌리치고 바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엉덩이골을 느른하게 쓸어내렸다.
“야야, 하지 마.”
이제는 소리치고 반항할 기력도 없어서 녀석을 다시 밀어 내며 말했지만, 녀석은 당연하게도 물러서지 않았다.
입 안을 한참 헤집던 손이 거추장스러운 옷을 잡아 뜯으려는 듯 옷깃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에 다급해진 나는 질척해진 손을 잡아챘다.
“옷은 안 돼! 찢지 마!”
한 줌의 재도 남기지 못했던 옷을 떠올리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옷은 안 되고. 다른 곳을 찢어 달라는 거야?”
“어디서 그런 끔찍한 소릴…!”
나는 엉덩잇살을 벌려 주변 부분을 문지르는 하스칼의 손짓에 까치발을 들며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내 물건 좀 그만 망가뜨려! 넌 마왕이라 모르겠지만, 사람은 옷이 없으면 얼어 죽는다니까?”
“…….”
“진짜야!”
“…그런 걸로 죽기도 한다니.”
놈이 의외롭다는 반응을 보이자, 나는 괜스레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몰려와 몸을 떨었다.
“인간이 나약한 건 알고 있었지만 타고난 신체만으로 살아남지도 못할 만큼 허약한 개체들이 어떻게 그렇게 수를 많이 불렸을까 궁금해질 지경이야.”
하스칼은 정말 이게 그렇게 중요하냐며 신기한 구경을 한다는 듯 코트 자락을 들췄다.
그게 꼭 잡아 뜯으려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황급히 놈의 손을 다시 잡아챘다.
그러나 놈한텐 갓난아이가 잡고 흔드는 정도로 느껴졌는지, 오히려 내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본의 아니게 놈의 손에 결박당한 나는, 남은 손으로 녀석의 팔을 잡아 뜯었다.
그래 봐야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리지도 못했지만, 하스칼은 그 가당찮은 힘겨루기를 보며 생각을 굳힌 듯했다.
“고작 이런 거적때기로 연명하기엔, 몸이 너무 물렁물렁하지 않아?”
그 소리가 기어이 옷을 찢어발기겠다는 것 같아서 나는 다급해졌다.
“거적때기라니! 이거 보기보다 옵션도 괜찮고 쓸 만해! 지금 당장 헌터 옥션에만 내놔도 부르는 게 값이라고!”
“그런데?”
“뭣보다 방어 옵션이 높게 잡혀서, 등급이 잘 뜬 거라니까?”
“그런 괜찮은 옷을 입고도 이런 상처가 몸 곳곳에 남았다고.”
하스칼의 손이 큼직한 흉터를 쓸어내렸다.
“쓰레기를 모으는 취향이라니. 이상한 곳에 물욕이 있네.”
“아, 아니 그러니까….”
어째 말이 길어질수록 내 수치심은 덩달아 상승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걸 설득하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옷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내어줄 테니까, 그런 건 버려.”
설마 옷 하나 못 해 입히겠냐는 듯한 말에 더 아연해졌다.
거울 속에 빨려들어 갔던 사람이 난데없는 차림새로 나타난다면, 가뜩이나 의심하고 있을 헌터 놈들 반응이 어떨지는 너무나도 빤했기 때문이다.
‘마왕한테 옷 얻어 입었다는 헌터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어!’
점점 내가 알던 상식이 비상식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뭘 망설이지? 내가 네게 베푸는 걸 소홀히 한 적 있던가?”
‘이 자식! 베푸는 게 순 제멋대로에 일방적이면서 뭘 당당하게 굴고 있어?’
나는 기가 막힌 억지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 옷은 이걸로 충분해.”
“내가 그 고집을 왜 들어줘야 하지?”
“내 거니까! 내 걸 내 맘대로 사수하겠다는데 왜냐고 묻는 게 말이 되냐고!”
나는 진정해 보려 해도 산통 깨는 하스칼의 반응에 울화통이 터져 버렸다.
하지만 그 말이 하스칼에게는 무슨 기폭제라도 된 양, 입구 근처를 문지르던 손가락이 구멍을 비집고 거칠게 파고들었다.
“윽!”
“내 거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허윽, 아!”
“네 입에서 나온 것치고는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리는 말이야.”
간신히 까치발을 선 채로 하중을 버티고 있었지만.
아래에서 쿡쿡 찔러 오는 녀석의 손가락은 까치발을 선 것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하게 구멍을 헤집어 댔다.
“그렇다면 나도, 내 것한테는 무엇이든 해도 상관없는 뜻인 건가?”
“누가 네놈 거라는, 윽! 찢지 말라니까!”
“너는 분명 네 전부를 걸었고, 네가 가진 모든 건 내게 종속됐지. 아직도 입장 정리가 필요해?”
“…….”
속으로 욕설을 씹어 삼키는 동안 내 손을 결박하고 있던 놈의 손이 목티 아랫단을 쥐었다.
이대로 녀석이 힘을 쓰면 내구도를 다한 옷은 형체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고 말 터.
아무리 반항해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한숨처럼 눈을 내리감았다.
“…….”
“왜 또 그런 표정일까.”
당장에라도 제 안목에 차지 않는 옷을 뜯어낼 것 같던 하스칼은 돌연 옷 밑단을 들추더니, 내 입술께까지 끌고 왔다.
“……?”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녀석이 물려주는 대로 목티를 잇새에 끼우고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놈은 구멍을 헤집던 손마저 끄집어내고는 한 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밥 한번 먹이기 참 번거로워.”
둘 곳 없이 방황하고 있던 내 양손이 다시 잡히고 녀석이 이끄는 대로 바지 버클 위에 얹어졌다.
“좋아, 그럼. 옷 정도는 네 맘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이대로 뭘 하라는 건가 싶어 기다렸더니, 하스칼은 훤히 드러난 내 복근을 툭 건드리며 야살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신 네 손으로 직접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