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내 것에 흠집 내는 걸 허락한 적 없는데
아무래도 내가 꽤 미쳐 버린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환청이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들릴 리 없었다.
“야…!”
“보기 좋으니까, 옷은 계속 물고 있어.”
“아니….”
“뱉지 말고 잘 물고 있으라니까.”
“윽!”
옷자락을 밀어 내려고 어물어물 입을 벌리자, 무언가 빠르게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흠칫 놀라 시선을 돌리니, 검붉은 줄기가 천장에서부터 스르르 기어 내려오고 있었다.
마물이 이토록 가까워질 때까지 몰랐다는 것에 1차 충격을 받았고, 우악스럽게 밀고 들어온 주제에 뺨을 비비며 애교 같은 걸 부리고 있다는 것에 2차 충격을 받았다.
“너는 입이 비어 있으면 탐욕스럽게 혀를 놀리거든.”
척추로 이어지는 목뼈 부근이 축축해진다 싶더니만 목덜미 뒤를 기던 줄기가 목티를 잡아 벌리고, 겨드랑이 사이로 밀고 들어오더니 팔뚝을 휘어 감았다.
그러는 사이, 바닥을 기던 줄기가 바지와 발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어딜!’
흉측한 줄기를 발로 찍어 눌렀다.
하지만 제법 강한 힘이었는데도 줄기형 마물은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엉거주춤 들린 종아리를 타고 무릎 위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아이템은 대개 착용자의 신체에 맞춰 사이즈가 조절되기 때문에, 무작정 밀고 들어온 줄기를 수납할 공간이 없었다.
옷 속으로 침입하기 시작한 줄기가 둘에서 셋으로, 그리도 다시 넷으로 불어났다.
기분 나쁜 압박감에 놈들을 끄집어내려고 팔을 들었다.
그러나 이미 팔뚝을 휘감은 줄기 때문에, 허벅지 아래로는 팔을 내릴 수가 없었다.
딱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릴 수 있는 정도로만 고정되자, 절로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팔의 자유를 빼앗은 줄기는 거침이 없었다.
자꾸만 기어오르며 축축한 체액을 뿜어내다가 회음부에 가로막히자, 답답하다는 듯 허벅지 안쪽을 툭툭 치댔다.
그때마다 허공에 반쯤 걸쳐진 손끝이 움찔거렸다.
“이건 또 뭘까.”
그 움직임이 하스칼의 눈길을 잡아끈 모양이었다.
놈의 시선이 내 손등에 한참 머무르더니 얄망궂은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나는 내 것에 흠집 내는 걸 허락한 적 없는데.”
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팔뚝을 잡고 있던 줄기가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줄기는 하스칼의 실체 일부라도 되는 양 손등에 선 핏줄과 우윤혁을 때리고 부어올랐던 손등뼈 근처를 더듬어 댔다.
만지지 않았다면 아프지도 않았을 부위가 디버프 때문에 야릇한 감각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여기만 그런 거야?”
잠시 검붉은 줄기에 신경이 쏠린 사이 하스칼의 손가락이 가슴팍에 솟아오른 첨단 끄트머리를 툭 건드렸다.
“응, 윽!”
이미 한껏 긴장한 신경이, 가슴 끄트머리로 쏠렸다.
아마 내 몸을 고정한 줄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
잠시 만지고 떨어질 줄 알았던 손은 제법 집요했다.
놈은 유두를 한참이나 만지고 누르고 쓰다듬고 뭉개다가, 아주 천천히 가슴 주변을 덧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지분거리나 싶던 손이, 어느 곳에 닿았을 때 연거푸 더듬어 댔다.
입에 물고 있는 옷자락 탓에 내 시야에는 비치지 않았지만.
놈의 손끝이 닿았다 떨어지는 부분이 흉터가 위치한 지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후우, 사람 환장하게 하네….’
감질날 정도로 톡톡 건드리는 통에 몸이 흠칫흠칫 떨어 댔다.
특히 골반에서부터 겨드랑이까지 가장 길게 난 흉터를 만졌을 때는 끙하고 앓는 소리가 샜다.
크게 다쳤다 흉진 부분은 누르거나 긁어도 그다지 별 느낌이 없었는데, 감각이 민감해진 상태라 그런지 등골에서부터 시작된 전류가 발바닥까지 내달렸다.
하스칼의 손은 옆구리를 타고, 등판으로 넘어갔다.
면적을 조금씩 넓혀 가며 모든 흉터를 확인할 기세로 온몸을 더듬어 댔다.
“!!”
척추뼈 부근이 만져지자, 내 몸은 갈대처럼 훌렁거렸다.
그때마다 하스칼의 손은 내가 버거워하는 지점을 집요하고 뭉근하게 지분거렸다.
‘이 새끼 이거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하는 모양새가 꼭 네 성감대가 어딘지 익혀 두라는 듯 보였다.
잘못된 성교육을 반복 학습당하는 삶이라니.
이게 악마들이 말하는 용사가 맞나, 참담해졌다.
‘어이없네, 진짜.’
어느새 살갗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달아오른 줄도 모르게 오른 미열 때문에 호흡이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놈의 손은 목티 안쪽을 파고들어 목덜미 뒤, 제가 양껏 물어 씹은 잇자국에 닿았다.
그조차도 개수를 세듯 꼼꼼하게 어루만져 댔다.
특히 목은 면적이 좁아서 그런지, 뼈에 닿는 빈도가 잦아졌다.
내 송곳니가 흡사 옷에 구멍이라도 낼 정도로 턱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알 수 없는 답답함에 흉곽이 크게 부풀었다 꺼졌다.
그제야 오랜 시간 집적이던 놈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위쪽에 내가 모르는 흠집은 없어 보이고.”
“!!”
하지만 안심하기도 잠시.
곱게 떨어져 나가리라 생각했던 놈의 손가락이, 배꼽 아래 부근을 가리켰다.
“여기는 아직도 순순히 협조할 생각이 안 들어?”
“……!”
놈이 배의 어느 지점을 정확히 쿡 찌르자, 슬라임이 화들짝 놀라서는 덜컥덜컥 내부에서 발작하기 시작햇다.
“어훅, 윽!”
간질간질하게 이어지던 성감이 순식간에 차오르며 갑갑하게 갇혀 있는 성기가 불뚝거렸다.
“아으…!”
나는 허벅지를 모아 비비며 반쯤 헐떡였다.
검붉은 줄기에서 배어 나온 점액 탓에 축축하게 젖은 옷이 몸을 휘감았다.
그러는 동안 하스칼의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휘어서는, 바지 윗부분에 걸렸다.
“…….”
“…….”
아주 길게 정적이 흐르자, 하스칼의 손에 미약하게 힘이 더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마 이대로 더 버티면 그대로 주욱 뜯어낼 기세였다.
‘미친. 시발…! 내가 살다가 스트립쇼를 다 하고! 염병, 진짜!’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한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녀석의 손이 걸린 바지 윗부분을 만졌다.
그러고는 찰칵.
작은 금속판이 부딪히며 옆으로 밀려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끔찍한 소리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맛살이 구겨질 정도로 눈을 감고 앞섶 지퍼를 쥐었다.
그 지퍼를 쥐는 데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결국, 재촉하듯 바지 아랫단에서 골반까지 기어 올라온 줄기의 감촉에 굴복하고 말았다.
내 손이 아주 천천히 지퍼를 아래로 긋자 허리를 감고 있던 직물의 감촉이 살짝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변태 새끼! 지가 벗기면 될 걸, 왜 자꾸 나더러 벗으래!’
일단 바지 버클은 모두 풀어냈지만 도저히 그대로 벗어 버릴 자신은 없었다.
이대로라면 누가 죽여주기도 전에 수치사로 내가 먼저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놈이 강제로 좆을 빨게 하건, 구멍을 쑤시건, 온몸을 지분거리고 씹어 대건.
그런 건 내 의지 없이 벌어진 사고이니 오히려 잊어 넘기기 좋았고 육체적인 피로감을 고문의 후유증 정도로 받아들이면 도리어 이해하기도 편했다.
하지만 그 안에 내 자의가 섞이는 순간.
‘……와, 끝장이다.’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앞으로의 내 미래가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이 새끼가 그걸 모를 리 없어.’
소유욕 강한 놈들의 심리 따위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놈이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끔 자꾸 유도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거였다.
내가 먼저 부탁하길 바라고.
놈에게 매달려 애원하길 바라고.
이제는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도록 유도하는 저 행동에서, 기저에 깔린 심리를 조금 엿본 것도 같았다.
“충분히 고민할 시간은 준 것 같은데. 얌전하게 엉덩이 까고 구멍 벌리는 게 그렇게 어려워?”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기분이었다.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천 번이 넘는 회차 동안 하스칼을 이토록 가깝게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놈이 나를 죽이지 않고 이토록 오래 살려 둔 것도 처음.
놈들이 종종 말하는 미개하고 하찮은 존재에게 마왕이 집착하는 것 역시.
그런 상황을 자꾸 반복하면, 아무리 멍청한 나라도 느끼는 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악마들의 왕이, 지금 회차의 내게만 알 수 없는 예외를 두고 있다는 걸 말이다.
생각해 보면 녀석 기준에서는 자비를 베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딜을 시도해도 대체로 하스칼은 내 억지를 받아주었다.
그 딜을 받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바라는 걸 강탈해 갈 수 있는 놈이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나도 모르게 학습했던 거였어.’
그리고 하스칼 또한 내가 그걸 눈치챘음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그래서 입부터 틀어막은 거겠지.
놈은 말과는 달리, 내가 끝내는 스스로 옷을 벗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굴려서 새로운 딜을 다시 시도하리란 것도.
‘그럼 이건 경고라는 거야?’
입 속에서 꿈틀거리는 검붉은 줄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을 정리하다가 문득 확인하고 싶은 게 생겼다.
‘상태 창.’
헌터 자격을 박탈당한 이후, 의도적으로 열어 보지 않았던 상태 창을 불러냈다.
시스템 에러 666. 사용자 정보(�¿/기록 말소)
1. 이름 : ¿태$%준
2. 등급 : S+(현재 잠겨 있습니다)
3. 클래스 : 마스터(현재 잠겨 있습니다)
4. 종족 : 알 수 없는
5. 성향 : 염세적인, 혼돈, 지쳐 있는, 이레귤러, 가면을 쓴, 스스로를 신용하지 않는, 민감한, 부서져 가는, 책임, 타락의(new)
6. 진명 : 부서진 미래의 시간축(현재 잠겨 있습니다), 은둔자(현재 잠겨 있습니다), 변절한 세계 희망, 마왕의 ???, 개복치, 악마 계약자(new)
7. 나이 : 알 수 없는
8. 업적 : -
9. 스탯 : 근력 20(▼1) / 민첩 8(▼1) / 체력 ??(▼2)(▲??) / 성력 0(▼3) / 정신 -43(▼1)) / 마력 988(▲217)
10. 상태이상(저주중첩) : 저주-침식(해주불가) 67% / 저주-개화(해주불가)50% / 저주-인자 주입(해주불가)54% / 성욕LV.3 / 페로몬LV.3 / 감각교란 / 미열LV.2 / 발정LV.2 / 각성 / 환각LV.3 / 이물감LV.2 / 경피신경 미세전류화 / 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