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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145화 (145/154)
  • #145

    끝내 내뱉어 버린 말에 서의우를 둘러싼 공기가 달라졌다.

    불씨를 던지면 스파크가 튈 것처럼 바짝 날이 섰다. 숨통을 죄는 듯했다.

    “처음엔 단순한 꿈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게 반복되니 찝찝했고, 또…….”

    참혹한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처럼 경고해 대곤 해서.

    “아직, 이어져 있는 건가 싶고…….”

    “이어져 있다고요?”

    “아니…….”

    서의우가 권재진의 양 뺨을 두 손으로 거머쥐었다. 그러곤 재진의 목이 뒤로 젖혀지도록 힘주어 눌렀다. 권재진은 버둥거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허리가 둥글게 꺾여 위태로운 자세가 되었다.

    “뭐가.”

    “…….”

    “재진 씨랑?”

    그대로 서의우가 얼굴을 가까이 내려뜨렸다. 천장 전등에서 내리쬐는 빛을 등지고 있었기에, 그가 다가올수록 재진의 얼굴에 까만 그림자가 졌다.

    눈을 맞추고 지그시 바라보는데, 오롯이 쏟아지는 서의우가 느껴졌다.

    권재진은 귓전을 때리는 고동이 자신의 심장 소리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박동이 차츰 커졌고, 가슴이 짓눌리는 것처럼 무거웠다. 내리꽂히는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맞닥트린 서로의 눈동자가 거북한 긴장과 초조한 정서를 공유했다. 확신이 상실된 심리가 표표히 분화했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의 호출기가 쌍으로 울렸다.

    동일한 간격으로 삐빅, 삐빅, 삐빅……. 긴급 호출 알림음이다.

    동시에 팔을 뻗어 호출기를 읽었고,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확인했다. 운명의 부르심이 내린 것 같았다.

    ***

    까마득한 지평선 너머. 흙먼지가 부옇게 일었다. 미개척지구에 폐허가 된 빌딩이 지하로 가라앉고 있었다.

    대양 깊이 침몰하는 여객선처럼. 사막 유사 모래 늪에 가라앉는 캐러밴 마차처럼. 거대한 철골 구조의 건물들이 속속들이 지표 아래로 잠수했다.

    그곳에 검은 블랙홀이 있었다.

    둘레를 어림잡아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싱크홀이었다. 하물며 하나도 아니고 네댓 개는 된다. 수직으로 뚫린 갱도가 빛을 차단하고 암흑의 끝에 닿아 있었다.

    저 먼 바닥에서 구워어어- 하는 끔찍한 고동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밑에 무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서지는 토사를 밟고, 암벽을 타고 오르며, 검은 마물들이 꾸역꾸역 기어올랐다. 지옥굴 아귀도에서 나타난 괴물 떼 같았다.

    β크리처들 중에서도 지표 위를 망령처럼 떠돌던 부류보다 게이트 내부에 남아 서식하다 처음 세상 빛을 본 녀석들이 더욱 사납고 흉포했다. 습하고 어두운 지하 환경과 달리, 새롭고 눈부신 지상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에 경계심이 강하고 더 기민했다.

    크르르륵, 크르르…….

    게이트 외부로 쏟아져 나온 β크리처들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짓쳐 들었다. 그러더니 무슨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튀어 올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건물 곳곳에 남아 있던 다른 β크리처들과 합류하여 하나의 군집을 이루었고, 철새나 물고기 떼처럼 무리 지어 남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 싱크홀 밑바닥에서 확연히 이질적인 외형의 크리처 하나가 솟아올랐다.

    α크리처다.

    마지막으로 치솟은 그 괴생물체는 게이트의 입구를 찢듯이 싱크홀 외벽을 무너뜨리며 기어 나왔다. 뿌연 흙먼지가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다.

    α크리처는 왕처럼 군림하며 β크리처들 무리에 합류했고, 당당히 남하하기 시작했다.

    [ Urgent! ]

    순회하던 무인 정찰기가 크리처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입력된 시스템에 따라 위험 경보를 띄웠고, 조종간 앞 화면이 붉은빛으로 변했다. 그 즉시 센터 본부로 긴급 통신이 전해졌다.

    정찰기가 마물들 머리 위를 돌며 조종간을 틀었다. 주변 상황을 영상 기록으로 생생히 전송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능선의 뒤쪽, 까마득히 먼 거리에서 솟구치는 용오름 기둥이 보였다. 한 개도 아니고 몇 개씩이나 하늘로 뻗쳐 구름과 맞닿았다.

    각지 곳곳에서 흙바람이 회오리처럼 피어올랐고, 이는 여러 군데의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릴 징조였다.

    [ Urgent! ]

    [ Urgent! ]

    [ Urgent! ]

    용오름의 수가 자꾸 늘어났다.

    깊은 싱크홀 아래서 휘몰아친 바람이 하늘 높은 곳까지 흙먼지를 쏘아 올렸다.

    곳곳에 신호탄이 터진 것처럼 보였다.

    전쟁을 개시하는 신호탄이다.

    무인 정찰기는 쉴 새 없이 연이어 센터 본부에 통신을 걸었다. 바로 그 순간, 조류 형상의 β크리처가 구름을 뚫고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우드드득!

    떼 지어 날아든 크리처의 습격에 정찰기 프로펠러가 무참히 부서졌다.

    추락하는 정찰기의 잔해를 짓밟고 넘으며, 마물의 군세가 끝없이 진격했다.

    크리처 웨이브.

    제2파.

    검은 파도가 더욱 높고 거세어져 외경계벽을 덮치려 달려들고 있었다.

    끼유우우웃-

    카락, 카라라락!

    으르르르…….

    그렇지만, 이번에는 대비가 되어 있다.

    정찰기가 전쟁의 시작을 잡아내었고, 각성자들은 전원이 크리처 웨이브를 인지하고 출격을 준비한 상태였다.

    전폭기와 미사일도 진즉 대기하고 있다.

    힐링 팩터, 가이딩 대체 약물, 그리고 각성자들의 폭주 위험도 관리도 완벽하다.

    통신을 받은 센터에서 즉각 특임부대원들을 소집하였고, 신속히 출격을 명하였다. 육군뿐 아니라 공군, 해군까지도 인력을 차출하여 모병했으며, 수송기가 속속들이 하늘로 떠올라 대원들을 외경계벽까지 옮겨 주었다.

    “전열을 갖추어 3교대 한다! 앞줄은 무릎 쏴, 뒷줄은 서서 쏴, 후방은 재장전이다!”

    “예, 장 중령님!”

    “전방 20km 앞, 대규모 크리처 군집이 빠른 속도로 접근 중입니다.”

    “상공에도 조류형 β크리처 떼가 까맣게 깔려 있습니다.”

    “하늘은 공군 특임부대가 담당할 것이다! 우리는 지상을 맡아, 외경계벽 수호에 전력을 다한다!”

    “예!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특임부대원들이 최적의 대형을 이루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난 전투에서는 전황을 파악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으나, 이번에는 다소간 여유 있게 수비 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서의우와 권재진도 지난 전투에서는 전황이 엎어지는 와중에 좌표 이동해 왔다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앞서 전선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이 어디서든 좌표 이동을 사용해 대는 서의우가 권재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다. 환한 빛 방울이 어른어른 퍼지며 외경계벽 위에 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

    그들을 알아본 특임부대원들이 반사적으로 흠칫댔다. 다소 낯선 기색으로 흘금거리긴 했지만, 별달리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진 않았다.

    권재진이 새롭게 지급받은 전투복과 고글을 착용하고 소총을 든 모습인 데다가, 발급된 각성자등록코드가 내장된 인식표로 인해 현재 아군으로 표시되고 있어서였다.

    물론 권재진 옆에 짐승같이 커다란 근육질 몸뚱이로 딱 붙어 선 서의우가 시퍼렇게 눈 뜨고 지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최전선, 장태산 중령이 두 사람을 향해 느릿하게 묵례했다. 뒤이어 제1특임부대원들도 옛 동료 서의우를 향해 차례로 조심히 경례했다.

    후방, 제7특임부대원들이 진을 친 곳에서 마태오 대위가 권재진에게 눈인사를 건네었고, 그의 곁에 선 누구인지 모를 낯선 대원들까지도 줄줄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

    아마도 폭주했던 박호원 중위의 동료들이 아닐까 싶었다. 권재진에게 호의적인 것을 보니, 마태오 대위가 좋게 이야기를 전한 것 같았다.

    그때쯤 서의우가 드넓은 어깨로 권재진의 시야를 휙 가려 버렸다.

    “그만 봐요.”

    내뱉는 목소리가 퍽 단호했다.

    “이제 됐잖아요. 눈길 주지 말아요.”

    “…….”

    “자꾸 들쑤시면 나 힘들어요.”

    서의우가 진지하게 당부했다. 애원하는 건지 아니면 협박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투였다. 냉정을 유지하려는 듯 억누르고는 있지만 불쾌하게 뒤틀린 심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권재진이 느린 한숨을 삼켰다. 서의우의 심사가 꼬여 버린 원인은 이곳에 널린 각성자들 때문만이 아닐 터였다.

    ‘1회차 서의우…….’

    <아직, 이어져 있는 건가 싶고…….>

    <이어져 있다고?>

    ‘그도 나처럼 이게 단순한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혹은, 뭔가 구체적으로 짚이는 것이 있나?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긴 하지만, 서의우와 서의우는 동일인이니…… 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아는 게 당연하겠지.’

    힐끗 보이는 서의우의 눈가가 심해처럼 어둑했다.

    잿빛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욱 건조하게 메말라 있었고, 전투 직전의 살기 어린 몰입까지 더해져 평소보다도 훨씬 서슬 퍼랬다.

    ‘하…….’

    권재진이 소총을 손아귀에 단단히 쥐었다. 장갑을 착용한 손에 빠듯하게 힘이 들어갔다.

    무인 전폭기가 개척지구로 근접하는 크리처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고, 접근해 오는 검은 마물들의 선봉이 짓뭉개졌다. 머릿수가 줄어드는 전황이 꿈처럼 멀게 느껴졌고, 요란스러운 발포음과 폭발음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헤집었다.

    “재진 씨.”

    “……어?”

    “하나만 말해 두겠는데요.”

    서의우가 이능을 끌어올렸다. 그의 주위로 막대한 힘이 뭉치며 대기가 바짝 얼어붙었다. 회오리처럼 몰려드는 이능에 휩쓸려 옷자락과 머리칼이 뒤집혔다.

    “난 상대가 나 자신일지라도 재진 씨 마음 나눠 가질 생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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