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107)화 (107/154)
  • #107

    방금까지 하늘에 떠 있었는데 이제는 실내다.

    층고 높은 천장에 동그란 백색 조명이 일렬로 박혀 있었다. 바닥에는 딱딱한 사각 대리석 타일이 깔려 있었으며, 타일 색은 모두 검정이었다.

    센터 내부는, 센터 외부 부지를 처음 보았을 때와 똑같은 인상이었다.

    넓고, 체계적이고, 이상적인 안정감이 든다.

    재진이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복도 안쪽에 닫혀 있는 문이 여럿 늘어서 있었다.

    “기밀 유지 때문에 본부에는 감시 카메라가 없어요. 우리에겐 잘된 일이죠.”

    “그렇습니까.”

    “장성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니까요. 잠깐 나 집중할게요.”

    서의우가 목을 돌려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 손목과 어깨를 턴 후, 지그시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길고 얇은 그 특유의 속눈썹이 곱게 깔리며 멈추었다.

    그의 호흡마저 점차 느려지더니만 나중에는 아예 숨을 내쉬지 않는 것처럼 멎었다. 미동 없이 조각상처럼 굳은 그에게서 정적인 이능이 흘러나왔다.

    심연에 가라앉혀 둔 권능. 뱀처럼 똬리를 튼 그것은 강대하고 강력하고 매혹적이지만, 아직 불균형을 완벽히 해소하지 못하여 사특하고 불길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인간의 시력으로는 볼 수 없는 그 힘이 서의우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스르르 퍼져 나갔다. 소리 없이 스며드는 물처럼 주변을 장악하며 차츰 권역을 늘려 갔다.

    서의우는 전략 회의 중인 장성들이 아무런 낌새를 느낄 수 없도록, 극도로 주의해서 이능을 사용했다. 그건 마치 들키지 않고 인간의 피부를 한 꺼풀 벗기는 정도의 어려운 작업이었다. 날카로운 무형의 칼날로 진피층 위의 표피층만 고통 없이 벗겨 내는 그런 수준이다.

    회의 중인 장성들, 누구 하나라도 불온한 전조를 느끼면 끝이었다. 비상경보라도 울리면 일이 단숨에 복잡해질 터였다.

    숨죽이고 이능을 흩뿌리는 서의우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눌러 놓은 것처럼 가만히 굳어 있지만, 그 곁에 서 있는 권재진은 팔뚝이 떨렸다. 혹여 방해될까 싶어 주먹을 세게 움키고 손바닥 안에 진동을 가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초승달 모양 자국이 남았다. 서의우가 깎아 준 손톱이었다.

    “……됐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서의우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가늘고 촘촘한 속눈썹이 젖혀 올라가며 반가운 회색 눈동자를 드러냈다.

    그의 눈은 어둡고 차가웠다. 새카만 늪 속에 깊게 잠겨 있는 듯했다.

    “전부 눌러 놨어요……. 이제 들어가도 될 거예요.”

    눌러 놨다고?

    무엇을?

    서의우가 권재진의 손을 잡고 끌었다. 복도를 지나 거대한 본부실 문 앞까지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러고는 권재진이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조차 없이 염동력으로 양쪽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사진을 연상케 하는 회의실 풍경이었다.

    무심코 감탄할 정도로 드넓은 공간에 모든 것이 멈추어 있었다.

    정면에 붙은 신정부의 국기, 천장과 벽에 드리워져 있는 육군, 해군, 공군 각 관할군 휘장, 그리고 ㄷ자 형태의 거대한 테이블에 빼곡하게 앉아 자리해 있는 장성들까지.

    보이는 것 전부, 서의우의 보이지 않는 이능에 짓눌려 굳어 있었다.

    장성들은 본부실로 들어오는 서의우와 권재진을 보면서도 경계경보를 울리긴커녕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얼어붙은 채 눈동자만 겨우 굴릴 수 있었다.

    “……다 제압해 놓은 겁니까?”

    “네, 눈치채지 않도록 하는 게 좀 까다로웠네요. 이제 이쪽부터 하나씩 머리를 건드릴 거예요.”

    서의우가 테이블 끄트머리에 섰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육군 작전사령관인 오성화 준장이었다. 앞에 놓인 명패에 직함과 이름이 적혀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위로 줄줄이 앉은 장성들의 앞에도 명패가 놓여 있었다.

    하석부터 준장 계급에 해당하는 육ㆍ해ㆍ공군 작전사령관, 방위사령관, 특수사령관, 항공사령관, 군수사령관, 교육사령관, 함대사령관이고, 상석에 소장 계급에 해당하는 육군사령관, 해군사령관, 공군사령관이며, 최상석에는 중장 계급에 해당하는 중앙군사령관과 중앙군부사령관이었다.

    “……우두머리가 없군요.”

    권재진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주의 깊게 본부실을 살폈다.

    군부의 꼭대기, 최상급인 대장 계급에 해당하는 중앙군사총장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테이블에 명패만 달랑 놓여 있을 뿐, 정작 의자를 채운 사람이 없다.

    불참인지 지각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알아봐야겠네요. 어차피 뇌 건드릴 거니까.”

    저건 기억을 읽겠다는 뜻이다.

    서의우가 손을 오 준장의 머리 앞에 대었다. 더는 들키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없기에 단숨에 광포한 힘이 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며 몰려들었다.

    그의 이능이 집결함에 따라 옷자락이 나부끼고 테이블이 웅웅대며 진동했다. 장성들의 가슴에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이 저들끼리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내었다.

    전투 제복을 각 맞춰 입은 근엄한 중장년들 사이에서, 검은 목폴라를 입고 서 있는 스무 살 서의우는 단연 눈에 띄었다. 심지어 그가 걸친 목폴라는 땅바닥에 깔려 흙먼지가 묻고 권재진이 밟아 구깃구깃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끝내, 오 준장의 이마 중앙에 서의우의 손끝이 닿자 장성들의 낯빛이 일변했다. 쳐다보는 쌍쌍의 눈동자들이 각기 다른 빛을 띠며 빛났다. 동공에 비친 감정이 경악인지 괘씸함인지 두려움인지 아니라면 다른 무엇인지 모르겠다만, 저항할 수 없도록 단단히 억압당한 장성들은 존재할 리 없는 사신을 보듯 서의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쯤이면 이 본부실에 있는 모든 이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것이다.

    최초의 S급 에스퍼인 서의우 대위를 모르는 자는 없었고, 특수 거주지구에 나타난 위험인자이자 오염물질, S급 돌연변이 가이드 권재진을 모르는 자도 없었다.

    그 둘이 사이좋게 나타나 터무니없는 반란을 벌이고 있으니, 온갖 수라장을 거쳐 국가 수뇌부란 드높은 위치에 올라선 권력자인 이들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할 리 없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숱한 위기를 넘어섰을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백전노장이고, 능구렁이가 들이찬 괴물 영감들이다. 하물며 지금 당장 머리통이 헤집어지고 있는 오 준장마저도 평소 언동이 조금 가볍고 아랫사람들에게 유독 박하게 굴긴 하지만 못 써먹을 우둔한 천치는 아니었다.

    오 준장은 셈에 능하고 이권 다툼에 민감한 데다, 결정적으로 필요한 경우라면 수하들을 사지에 직접 몰아넣는 비정한 선택조차 빠르고 확실하게 내릴 수 있는 냉정한 자였다. 그건 지금 같은 전시 상황에서라면 사령관에게 필요한 자질이었다.

    “……!”

    그런 그때.

    서의우가 오 준장의 뇌에 정신계 이능을 사용하던 그 순간,

    최고위직인 중앙군사총장의 자리가 메꿔졌다.

    방금까지 비어 있던 의자에 50대 장년 연배로 보이는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앉아 있었다.

    서의우처럼 좌표 이동을 하여 나타난 건 아니었다.

    위엄 있는 커다란 의자를 차지하고 앉은 건 푸른빛으로 빛나는 홀로그램이었다.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에서 빔이 쏘아져 사람의 형상을 똑같이 구현하고 있었다.

    센터의 총책임자이자, 각성자의 우두머리이자, 별이 4개 달린 포 스타.

    중앙군사총장 최율 대장.

    “그만두게.”

    최율 대장이 근엄한 입을 움직이자 본부실 천장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프로젝터 옆에 송수신기가 달린 통신 스피커가 있는 모양이었다.

    “정신계 이능을 사용하려는가. 목적은 그쪽 돌연변이의 보호일 테고?”

    “…….”

    “내가 경계경보를 울리면 어찌 될지 알고 있겠지, 서 대위.”

    ……들통났다.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권재진이 턱을 세게 짓씹고서 심각한 눈으로 최 대장의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서의우 또한, 오 준장의 머리에서 빠져나와 그를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최 대장은 전략회의에 불참하거나 지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애초부터 홀로그램을 통해 화상으로 전략 회의에 참석해 왔던 것이다.

    이 자리에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니 그를 이능으로 짓누를 수는 없다.

    물론, 머리도 조작할 수 없다.

    최 대장을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의 현 소재를 알아내 좌표 이동으로 잡으러 가지 않는 한.

    반면 최 대장은 지닌 공권력을 언제든 쓸 수 있었다. 지금 즉시 통신으로 센터에 경계경보를 내리고, 경호원들과 특임부대원들을 긴급 호출해 총동원 투입해 버리면 서의우는 권재진을 데리고 달아날 수밖에 없다.

    다시 쫓기는 신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감춰 두었던 본연의 이능이 만천하에 밝혀진 채로…….

    “자, 그럼 정식으로 인사부터 나누도록 할까. 중앙군사총장 최율이다.”

    최 대장이 눈썹을 쓱 들어 올리며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었다. 극적인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평범한 태도였다. 그는 센터의 수장이라기보다는 옆집 아저씨처럼 보였다.

    “재진 씨, 뒤로, 물러서요.”

    서의우가 정신계 이능을 흩어 버리고 대신 권재진에게 보호막을 훨씬 두껍게 씌웠다. 새카맣게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도 매섭고 위험했다. 공간을 가득 메운 서의우의 이능이 불길하게 진동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위태로웠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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