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106)화 (106/154)
  • #106

    <장성들에게도 긴급 호출이 있거든요.>

    본래라면 기밀 전략 회의는 주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리고 말 뿐이다. 그러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의 위기 상황이 벌어질 시에는 모든 장성급 장교들이 군사전략총책임본부 본부실로 소집된다고 한다. 긴급히 소집하여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수 거주지구의 내경계벽이 갑작스럽게 대파된 건 당연히도 1단계에 해당하는 긴급 호출 감이었다.

    <종 울리면 부리나케 달려가야 하는 게 나뿐만은 아니란 거죠.>

    그렇게 전략 회의가 소집되면, 한자리에 모인 장성들의 뇌를 서의우가 조작하겠다는 것이다. 한 번에. 일시에. 싹 모아서…….

    재진이 자욱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무너진 내경계벽을 떠올렸다.

    까마득한 하늘 위로 떠오른 서의우가 염동력을 벼락처럼 모아 일시에 내리꽂자, 9m 높이의 경계벽이 일순 콘크리트 더미가 되어 주저앉았다. 내경계벽 관문 앞을 경비하던 각성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채지도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센터로 통신하기 급급했다.

    서의우는 발각당하기 전에 권재진을 데리고 곧장 좌표 이동을 했고, 그렇게 두 사람이 현재 센터 중앙관 꼭대기에 서 있게 된 것이었다.

    “……후.”

    저택이 습격받고 수색부대가 침입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서의우는 정말이지 얼이 빠질 정도로 전지전능했다.

    항상 권재진더러 아기라느니, 연약하다느니, 그런 표현을 할 때마다 성질났고 거부감만 들었는데, 막상 서의우가 이능으로 전투, 아니, 압살하는 모습을 연이어 보았더니 서의우 눈에는 권재진이 햄스터보다 더 연약한 미물로 보이겠구나 싶었다.

    재진은 늘 아무 생각 없이 서의우를 도발하곤 했고, 흥분한 서의우는 무의식중에 분출하는 이능을 억누르고자 애쓰곤 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그것도 참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서의우가 까딱 힘을 조절하지 못했으면, 권재진은 그대로 폭사했을 것이다.

    <권재진 인생. 아껴 줄 거야……. 엄청나게.>

    <내가 정말 잘해줄게요.>

    <소중하게…… 하나뿐인, 그렇게 할게요.>

    서의우는 항상 진심이었다.

    봐준다느니, 아껴 준다느니, 소중하게 대한다느니…….

    그 말이 다 맞았다…….

    과장이나 거짓 하나 없는 입바른 소리였다.

    좌표 이동 조금 하고 염동력 조금 쓰고 하늘을 날고 그런 무해하고 신기한 능력을 넘어서서, 지형을 바꾸고 경계벽을 부수고 각성자를 떼로 쓰러트리는 그의 전력을 똑똑히 보고 났더니 비로소 본의가 진지하게 와닿는다.

    잠시 상념에 젖어 있던 권재진을 서의우가 불렀다.

    “있죠, 재진 씨. 사실 나는요…….”

    툭, 터트려 버리듯,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제6 거주지구 가는 거 많이 기대했어요.”

    “예?”

    “재진 씨가 어떤 곳에서 자랐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다 궁금했고. 재진 씨가 잊어버린 가족, 알게 해 주고 싶었으니까요.”

    “…….”

    “심지어 거기서 보는 하늘은 좀 다르려나, 공기는 더 맑으려나, 빨리 봄이 오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도 했어요.”

    느릿느릿 고개를 틀어 서의우를 보니, 그가 그림처럼 유려하게 미소 띤 낯으로 권재진과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북부 경계벽. 그 너머에는 제6 거주지구가 있었다.

    “그리고요, 재진 씨랑 나랑 손수 집 짓고 밭 일구고 대나무 숲 키워서 살게 되면 즐거울 것 같았어요. 뭐, 재진 씨랑 둘이 사는 거면 당연히 어디서든 다 좋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을 것 같았어. 우리 둘이 그렇게 그러면.”

    ……당연한 말을, 서의우가 너무 당연한 말을 했다.

    권재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등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서의우를 밝히는 후광처럼 보였다. 살짝 흐트러져 있는 그의 머리카락이 빛을 반사해 투명하게 빛나 보였고, 동그란 귓바퀴나 모양 좋은 턱선 등이 더욱 똑똑히 보였다.

    새삼스레, 실내 조명하고 자연광은 다르구나. 그런 실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예, 저도 그랬습니다. 서의우 씨하고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재진 씨도 기대했어요? 나처럼?”

    서의우가 넌지시 속살거렸다.

    권재진이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마음이었네요, 우리.”

    “…….”

    “그럼 나중에요. 이거 다 끝나면…… 그렇게 살아 볼래요?”

    뒤이어 서의우가 또 당연한 소리를 계속했다.

    “아, 그런데 재진 씨가 갖고 싶다고 한 신축 주택도 완공 직전이니까. 거기서도 살고, 저기서도 살고, 내킬 때마다 거주지구 오며 가며 지내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쵸?”

    “……집 여러 채 두고, 별장처럼 말입니까?”

    “네.”

    “그럴까요. 좋습니다.”

    산으로 바다로. 날마다 철마다 바꿔 가면서.

    오래전에 그와 나눴던 얘기를 또 하고 있다.

    그때는 권재진을 안전하게 가둬 둘 감옥 별장을 고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게 아니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그 협곡도. 거기도 다시 가요.”

    “협곡…….”

    “네, 난 꼭 거기서 재진 씨랑 데이트해야겠어. 몇 번을 생각해도 그래.”

    “…….”

    “재진 씨랑 그거 못 하면 내가 억울할 것 같거든요.”

    “…….”

    “같이 가요. 나랑 둘이. 반지도 끼고 가.”

    “…….”

    “하하, 아예 커플룩까지 입고, 우리 같이…….”

    권재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풋, 하고 새는 소리가 났다.

    찡그리는 건지, 아니면 미소 짓는 건지 어중간한 사이에서 검은 눈썹이 휘어졌다. 입술이 살짝 떨리더니만 잠시 후에 양쪽 입꼬리 끝이 들려 올라갔다.

    권재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서의우를 바라보았다.

    “……재진 씨, 지금 웃는 거예요?”

    “예, 웃는 겁니다.”

    “눈이, 좀…… 울 것 같은 눈인데.”

    “아니. 그래도 웃는 겁니다.”

    서의우가 내뱉는 말이 권재진을 자꾸 밀어 올렸다.

    그네에 탄 재진을 서의우가 뒤에서 밀어 주는 것 같았다. 이미 센터 꼭대기 위 하늘에 서 있는데 이보다도 훨씬 높이, 높이, 더욱 높이 올라가서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서의우 씨…… 그, 기특하다는 단어가 뭔지 압니까?”

    “알아요. 당연히.”

    “아, 그렇군요. 혹시 모를 수도 있으니 확인해 본 겁니다.”

    서의우 너, 기특하다고.

    재진이 손을 뻗어 서의우의 머리카락을 넘겼다.

    흩어진 머리를 잘 정돈해 준 뒤에 그의 뺨을 그러쥐고 만졌다. 지금은 분홍색은 아니었다. 하얗고, 매끄럽고, 대리석처럼 흠결 없는 빛깔이었다.

    “의우야.”

    재진이 서의우의 얼굴을 차근히 매만지며 의우야, 하고 그를 불렀다.

    “네.”

    “의우야……”

    “네, 재진 씨.”

    “음…… 그럼, 또 자유롭다는 단어도 알고 있습니까?”

    “그야 물론…….”

    서의우가 당연한 말을 한 것처럼, 권재진도 당연한 말을 했다.

    둘이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보았다. 감정의 온도가 맞아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 하나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다.

    딱 알맞게 섞여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권재진. 서의우.

    권재진 서의우.

    그렇게.

    “전 지금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꼭 그런 기분이군요.”

    “그래요?”

    서의우가 한껏 누그러진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뺨에 색이 생겼다.

    “그렇구나…….”

    “…….”

    “응, 그럼 나도 그런 기분인가 봐요.”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안정적이고, 환하고, 소중했다. 어느 무엇도 감히 이것을 빼앗을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들 만큼.

    “자유로운 거네요, 우리. 지금.”

    서의우가 권재진을 껴안고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이제는 이런 자그만 행동조차 습관처럼 익숙했다. 바다 위에서도, 전시실에서도, 두 사람은 오르골 위의 장식처럼 이러곤 했으니까.

    “좋다.”

    “…….”

    “아…… 좋아요.”

    서의우가 달콤하게 녹은 목소리로 좋다, 좋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멀리서 희미하게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까마득한 상공에서 날아오는 수송 헬기가 보였다.

    이대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발각당할 것이다.

    “쯔.”

    서의우가 혀를 차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좋은 순간을 방해받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때마침 시간이 알맞게 흐르긴 했다.

    슬슬 군 수뇌부, 장성급 장교들의 긴급 소집 전략 회의가 시작됐을 무렵이었다.

    “갈까요? 손잡아요.”

    “예, 여기.”

    권재진이 서의우와 손을 맞잡자마자 서의우에게서 이능이 부풀었다.

    하늘로 은은한 하얀빛이 퍼져 나갔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쑥 딸려 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왜인지 이번엔 좌표 이동이 유독 느리게 이뤄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순간이 영원 같았다. 가슴에 고동이 울렸다.

    ‘아…….’

    재진의 심박이 점차 빨라졌고 몸에 열이 올랐다.

    솜털이 쭈삣 곤두서며, 찡한 이명이 들려왔다.

    ‘내가…… 센터에.’

    센터.

    평생토록 연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장소였다.

    일반인으로 살아올 적에는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별나라 별천지라 여겼고, 돌연변이로 발현한 후에는 재진을 사살하려는 각성자들의 소굴 군용지라 여겼다.

    그런 장소에 권재진이 발을 들인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니…….

    ‘……하하.’

    흩어지는 빛의 흐름을 쫓으며 재진이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 순간 자각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었던 권재진의 아비투스(Habitus)는 완연히 변화했다.

    아비투스(Habitus).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규정한 용어로 ‘제2의 본성’, 즉, 친숙한 사회 집단의 습속ㆍ습성 따위를 뜻하는 말이다.

    제6 거주지구로 돌아가 다시 일반인처럼 살고 싶은가 하면, 물론 그러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고향이 주는 끝없는 그리운 울림이 있다. 서의우와 함께 대나무 숲을 꾸미고 지내면 분명 평화롭고도 소박한 즐거움을 얻을 터였다. 그렇지만, 권재진의 앞날은 그것만으로 끝맺어질 수 없었다.

    특수 거주지구에 대저택이 생길 것이고, 아홉 줄기의 계곡과 일곱 빛깔 무지개가 겹쳐 있던 협곡에서 데이트도 할 것이고, 애착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하고, 크리처를 쏠 것이다. 크리처 웨이브에 대비해서.

    그러니 센터로 들어가는 지금…… 재진은 안정감을 느꼈다.

    권재진의 아비투스(Habitus)는 돌연변이 가이드다.

    서의우의 가이드.

    그렇기에 이곳 센터에 발을 들이는 행위가 두렵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마땅히 그래야 할 곳에, 그래야 할 때,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권재진이 당도한 기분이었다.

    권재진은 이미 특수 거주지구의 삶에 적응해 있었고, 그 역시 각성자의 일원이었다.

    그것도 싸울 각오를 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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