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105)화 (105/154)
  • #105

    -……어찌 된 건가. 게이트라도 터졌나?

    “아닙니다. 서의우 대위 소행입니다.”

    -서 대위, S급 서의우?

    “예. 서의우 대위 한 사람에게 모두 당했습니다. 임무에도 실패했습니다. 돌연변이는 생포하지도 사살하지도 못하였고, 서 대위와 함께 도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허? 장난하는 겐가. 그게 무슨…… 장 중령, 마침 거기 있군. 서 대위는 제1 특임부대 소속 아닌가? 마 소령은 통 못 써먹겠고, 자네가 설명해 보게.

    장태산 중령이 느릿하게 눈꺼풀을 여닫았다.

    직속 부하이자, 숱한 임무를 함께 해 온 부대원을 고발하는 일이 내킬 리 없었다.

    “전부 사실입니다.”

    장 중령이 진중히 답했다.

    “서 대위가 막대한 이능으로 대원들을 제압했습니다. S급 가이드는 에스퍼의 이능을 비약적으로 향상하는 모양입니다.”

    -이능의…… 향상?

    “S급 가이딩은 그렇다고 합니다. 마 소령이 그리 증언했습니다.”

    -아니, 허…….

    “그런 고로, 이제는 돌연변이 생포나 사살이 문제가 아닙니다. 서 대위를 상대하려면…… 전폭기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사실 그조차도 가늠이 어렵다. 전차나 함대를 가져와도 상대할 수 있을까 판가름이 어렵다.

    -가이딩으로 에스퍼의 이능 향상……?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가능하다는 겐가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자세한 보고는 센터로 복귀한 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임무 속행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힐링 팩터를 소진했고, 대원들의 무기와 장비가 망가져 보급품을 새로 갖춰야만 합니다.”

    -허허이, 이보게, 장 중령. 아니 나도 윗선에 보고는 올려야 할 것 아니야? 소장, 중장, 대장님들 다 내 보고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계시는데. 이렇게 투미하게 일할 건가? 뒷수습을 어찌 하라고!

    “…….”

    -쯧, 자네도 참…… 여전하군그래. 훈련교육생 시절부터 자네는 항상 이게 안 됐어. 이게.

    오 준장이 주름진 손을 입가에 대고 오리 부리처럼 열었다 다물었다 했다.

    -언변이 부족해. 그러니 자네가 아직도 별 배지를 달지 못하는 거야. 그 나이에, 쯧!

    “…….”

    -일단 알겠네. 전 대원 센터로 복귀하도록. 서면으로 보고서 작성해 올리고, 임무 실패의 책임은 수색부대 책임자인 마 소령이 진다. 강등 처분만으로 끝난다면 다행일 테지. 그럼.

    뚝.

    오 준장의 통신이 끊어졌다. 전송되던 화면도 까맣게 죽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중증 부상자부터 차례로 수송 헬기에 탑승하는 동안, 누구 하나 섣부르게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마 소령이나 장 중령뿐 아니라 특임부대원 전원이.

    서의우 대위의 이능을 목도한 이들 모두가 아직 공포에 몸을 떨고 있었다. 죽다 살아난 경험은 전투원 생활이 긴 각성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보기 마련이지만, 오늘 겪은 일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어제까지 동료였던 서의우 대위가. 차원을 넘어선 괴물이 되어 버렸다.

    서면으로 보고를 올린다고 이 충격이 전해질까.

    목격자들의 뇌를 열어 기억을 살핀다면 믿게 되기야 하겠다만, 직접 체감한 자들의 공포마저 전할 수 있을까?

    목숨이 두 개라도 서 대위와 대적하고 싶진 않았다. 맨정신으로 그것과 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윗선의 명령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

    중앙위기대책특임전략본부(Central Crisis Management Special Strategy Headquarters). 통칭 센터라 불리는 정부산하 군사단체.

    미디어를 통해 각성자를 접해 온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센터에 가 보고 싶다고 호기심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죽기 전에 부디 한 번쯤, 하고 말이다.

    일반인들에게 각성자는 수십, 수백억대 연봉을 받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전문직 집단이자, 연예인보다 더 인기 많고 화제성 있는 유명인들이자, 운명으로 타고난 선택받은 인류의 영웅으로 선망받기 때문이다.

    비록 권재진은 각성자를 선망하지는 않았지만, 센터가 어떤 군사 시설인지 약간의 호기심은 품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특수 거주지구 남동부.

    위엄 있고 거대한 센터 중앙관 건물 위에 하얀 빛 방울이 은은하게 퍼졌다.

    곧, 태양을 등지고 선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떠올랐다.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서의우와 긴장한 눈을 한 권재진이다.

    “……넓군요.”

    재진이 센터를 보고서 짧은 소감을 내뱉었다.

    상상했던 이상으로 부지 면적이 넓었다.

    중앙관 건물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서의우의 저택 크기는 우스워 보일 정도로 큼지막한 성 같은데, 주변 건물과 부지까지 더하면 어지간한 소도시처럼 보였다.

    중앙관 좌측으로 솟은 교육훈련관, 우측으로 솟은 연구개발관이 쌍룡처럼 각각 하늘로 승천하고 있고, 건물 주변으로 센터 비행장과 참호, 격벽이 켜켜이 늘어서 있었다.

    비행장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여러 대의 군용 헬기와 전투기, 정찰기, 수송기가 끝을 모르게끔 줄지어 늘어서 있고, 구획도 다양하게 나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저곳이 육군 특임부대 전용 비행장이란 사실이었다. 해군, 공군 특임부대는 각각 임무 성격에 맞도록 다른 지정 좌표에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센터는, 정말 하나의 도시라 일컬어도 될 정도로 웅대한 군사 시설이었다.

    서의우가 위에서부터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 주며 친절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격벽에 센서가 있어요. 동작을 인식하고 인식표를 읽어 내서 센터 내에 등록되지 않은 침입자가 들어오면 경계 알람이 울리죠. 외부인이나, 크리처나, 하다못해 야생 동물일지라도요.”

    “아…….”

    “주변에 솟은 장대 같은 기둥이 보이죠? 저건 보안등이자 감시 카메라 송탑이에요. 야간에 불을 켜서 빛을 밝히고, 24시간 사각 없이 센터 부지를 모니터링해요.”

    “…….”

    “내부 보안은 더 철저해요. 보안 시스템 정밀도도 차원이 다르고요. 우리가 잠입할 최상층, 군사전략총책임본부가 그중 으뜸이에요.”

    이번엔 서의우가 손가락을 바닥으로 내려뜨려 발밑을 가리켰다. 둥근 돔 형태로 덮인 건물 머리꼭지, 바로 그곳이었다.

    군사전략총책임본부는 중앙관 안에서도 구획이 달라 특수 격리된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야 진입할 수 있고, 그 전에 각성자 인식표 증명에 이어 본인 확인과 보안 검색용 전신검색기 통과까지 마쳐야 한다. 애초에 허가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는 구조다.

    “까딱 수틀리면 경계경보가 울릴 테고, A등급 경호원들이 우릴 사살하려 덮쳐들 거예요. 그사이 요인들은 좌표 이동으로 피신하게끔 비상 설비가 다 되어 있고요.”

    이렇게 듣고 보니 참 여간한 일이 아니긴 하다.

    본래라면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군사전략총책임본부에 숨어들어서, 하물며 장성들의 머리를 조작한다니……. 정신 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할 발상이었다.

    하긴,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

    권력의 최정점, 군 수뇌부인데…… 보안이 철저하면 더 철저했지 허술할 리 없다.

    눈을 내리깔고 센터 부지를 천천히 둘러본 권재진이 입을 뗐다.

    “……그래서 이제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네. 긴급 전략 회의가 소집될 때까지요.”

    “…….”

    이런 때 느끼기엔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지만, 센터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각성자들을 도구화하고, 돌연변이를 죽여 없애는 부정의 온상이라기엔 믿기지 않도록 체계적이고 이상적이었다.

    알맞은 곳에 알맞은 것이 있을 때 느끼는 안정감.

    센터에는 그러한 인상이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정비된 철조망이나, 열을 맞춰 쌓인 보급품 상자, 오랜 세월 전투원을 길러 낸 훈련장. 말뚝과 타이어. 튼튼한 밧줄. 관리된 표지판. 천천히 나부끼는 신정부의 깃발…….

    어느 사소한 것 하나도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다.

    크리처로 뒤덮인 지표에서 인간이 생존하고 투쟁하기 위한 전념이 보였다.

    “어렵군요.”

    재진이 이번에도 짧은 소감을 뱉었다.

    이제는 그의 시선이 센터를 떠나 먼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서의우와 함께 다녀왔던 곳이었다.

    센터로 좌표 이동 해 오기 전, 두 사람은 먼저 특수 거주지구 북부 경계벽을 방문했다.

    물론 방문이라고 해도 온건하게 다녀왔다는 뜻은 아니다.

    산산이 부숴 버렸으니까.

    경계벽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거주지구와 거주지구 사이를 나누는 내경계벽과, 거주지구와 외부를 나누는 외경계벽이다.

    다시 말해, 내경계벽은 특수 거주지구, 제1 거주지구, 제2 거주지구 등 인간 거주 구획을 나누는 용도고, 외경계벽은 일반 거주지구 바깥, 크리처를 막기 위한 보호막과 더불어 순찰이 이뤄지는 진짜 경계벽이다.

    센터에 오기 전, 서의우는 특수거주지구 북쪽 내경계벽을 파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 긴급 전략 회의가 소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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