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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96)화 (96/154)
  • #96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경계벽을 뚫고 특수 거주지구로 들어온 것인지.

    지형을 깎아 날려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대폭발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그 굉장한 폭발 속에서 권재진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아 유령처럼 종적을 감추었던 것인지.

    그리고 가이딩은.

    곱씹어 돌이켜 보아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던 S급 가이딩의 정체는 무엇인지.

    살아 있는 불가사의이자 의문 덩어리였던 권재진이지만, 그조차도 이 순간부로 끝이었다.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모든 해답이 밝혀진다.

    “장 중령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

    포위망 최전선. 팔짱을 끼고 거목처럼 우뚝 서 있는 장태산 중령에게 마태오 소령이 말을 건넸다.

    “이제야 상세 지형 정보 열람 허가가 떨어졌더군요. 이 저택, 서 대위의 거주지입니다.”

    “…….”

    “이번 일에 서의우 대위가 얽혀 있는 겁니까? 알면서도 장기 휴가를 허가하셨다면 그건 방조입니다.”

    “아니, 알았다면 허가하지 않았지. 서 대위 독단이다.”

    확신은 없었다. 의심만 있었을 뿐.

    만일의 경우, 서의우 대위가 S급 돌연변이 가이드를 빼돌린 범법자라면, 돌연변이가 생포당했을 경우 서 대위 또한 처벌받게 된다.

    그러니 시신을 가져오라고 명한 것이다.

    죽은 자의 기억은 읽어낼 수 없으므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을 것이다. 서 대위는 공적을 인정받아 특진하고, S급 돌연변이 가이드의 시신은 해부하여 연구에 쓰이게 되었을 터다.

    장태산 중령은 직속 부하를 잃지 않았을 것이고, 서 대위가 저지른 범죄는 누구에게도 발각당하지 않을 비밀이 되어 어둠 속에 묻혔을 터였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보다시피 항명과 발각으로 끝맺어졌지만.

    장 중령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기우로 끝나길 바랐으나 기우가 아니었다.

    “마 소령.”

    “예, 중령님.”

    “그때. 무엇을 말하려 했지?”

    “그때라 하시면.”

    “그때.”

    <……장 중령님.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저, 오 준장님께 아직 보고드리지 못한…….>

    “이런 대목에 하문하시는 겁니까.”

    “그래. 지금이 아니면 답을 듣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군.”

    “…….”

    마태오 소령이 묵직한 들숨을 삼켰다. 검은 눈동자가 수긍하는 빛을 띠었다.

    어차피 목전까지 와 있다.

    S급 돌연변이 가이드를 생포한다면 금세 낱낱이 밝혀질 사실이다.

    마 소령이 내내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의혹과 유혹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유일하게 권재진과 접촉했던 그만이 겪은 경험이었다.

    “실은 그자에게 가이딩을 받은 후, 이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이능의 향상?”

    “……터무니없는 발상인 줄은 압니다만. S급 가이드는 에스퍼의 불균형 해소뿐 아니라 이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군……. 자네 말이 진실이라면 많은 것이 달라지겠군. 그렇다 해도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니다.”

    “…….”

    “마 소령은 아직도 사욕을 채울 요량인가. 가이딩을 그리 원해?”

    “…….”

    “허, 그 정도인가……. 서 대위, 마 소령, 하나같이 정신을 못 차리는군.”

    “…….”

    자물쇠를 건 것처럼 마태오 소령의 입이 일자로 다물렸다. 대답을 내뱉기 직전, 통신이 울렸다. 마 소령이 고글을 조작해 무전을 받았다.

    “김 소위, 찾았나?”

    -찾았습니다. 건물 내부에 생체 반응이 있습니다. 이 안이 확실합니다.

    “됐군. 위치는?”

    -2층 침실입니다. 표적이 바로 여…… 크아악! 으아아악!

    “김 소위, 응답하라. 김 소위?”

    -아흐아아악! 허, 억!

    뚝.

    단말마와도 같은 비명과 함께 통신이 끊어졌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돌격대원들과 연결이 끊긴 후방 대원들이 긴장한 눈으로 고갤 들었다. 살아남은 통신이 없었다. 모조리 끊어졌고, 누구도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속히 2차 돌입을 지시하도록.”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마 소령이 다급히 전황을 살피며 고글을 조작했다.

    “예, 소령님. 2차 부대 돌입합니다. 대열을 이동한다! 앞으로!”

    특임부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포위망을 좁히며 전진했다. 저택으로 접근하는 동작이 신속하고 정확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읏, 헉!”

    “끄윽!”

    “읍……!”

    저택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끝없이 터져 나오는 강력한 이능이 만물을 압도했다. 시간의 흐름마저 멎은 듯했다.

    맑던 하늘이 꺼멓게 죽었고, 파도마저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것처럼 잠잠해졌다.

    말 그대로, 세상이 짓눌렸다.

    마치 도약을 준비하는 짐승 같았다. 이 절대적인 이능이 일시에 날뛰기 시작하면 지진이 일어 지대가 모조리 무너지고, 파도가 해일이 되어 지상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터였다.

    자리에 있던 특임부대원 전원이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허락받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죽음을 보았다.

    다들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릅뜬 두 눈은 실핏줄이 터질 듯했고,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금세 거품을 물 것처럼 보였다.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더니만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힘없이 바닥에 무릎 꿇은 인간들의 머리 위로, 검은 형체가 새처럼 휙휙 날아갔다.

    앞서 저택 내부로 돌입했던 무장한 특임부대원들이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히, 그리고 너무도 허망하게 각성자들이 저택 밖으로 축출당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폭약으로 부서진 저택 벽 안쪽에서 괴물이 음산하게 솟아 나왔다.

    그건 결코 인간의 존재감이 아니었다.

    전지전능한 초월적인 존재였다.

    생과 사, 낮과 밤처럼 거스를 수 없는 섭리를 마주한 듯했다.

    고요한 적막을 뚫고 그자가 서서히 하늘로 떠올랐다.

    높다란 곳에 올라 미물을 굽어살피듯 무력해진 각성자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공포에 질리고 충격에 빠져 공황 상태인 특임부대원들이 그자와 눈이 마주치는 족족 신음을 흘렸다. 하나같이 태생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아 온 정예 특수부대 전투원인데도 그럴 정도였다.

    심지어는, 얼굴을 정면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그 신적인 존재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압도적인 이능의 위력이 이성을 마비시켜서 이목구비를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냉랭하게 굳어 있는 앳되고 하얀 얼굴.

    색소 옅은 미려한 외모의 소유자.

    눈에 익은 상대였다.

    서의우.

    서의우 대위였다.

    제1 특임부대 소속. 장기 휴가계를 내고 사라졌던. 최초의 S급 에스퍼.

    믿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았다. 저자가 서의우라니. 아무리 S급 에스퍼라지만 서 대위에게 이만한 힘이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럴 리 없었다. 불가하다.

    이제껏 서의우와 함께 임무에 임해 온 제1 특임부대원들을 비롯하여 짧은 시간이나마 공조했던 수색부대원들 전원이 경악했다. 서의우는 S등급이라는 위명에 걸맞은 다중 이능사용자이고, A등급 각성자보다도 조금 뛰어나지만, 딱 그 정도의 수준이었다.

    결코 이렇게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괴물이 아니었다.

    <실은 그자에게 가이딩을 받은 후, 이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이능의 향상?>

    ……설마.

    그제야 그의 곁에 한 명이 더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서의우의 이능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데다가, 견고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사람.

    그토록 힘겹게 찾아 헤매던 S급 돌연변이 가이드, 권재진이었다.

    돌연변이가 경계벽을 넘어 특수 거주지구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 지형을 깎아 없앨 정도로 강력한 대폭발이 벌어진 이유. 그 천재지변 같은 폭발 속에서 권재진이 살아남아 종적을 감출 수 있었던 이유.

    어지럽게 찍힌 발자취가 하나로 연결되어 이어졌다.

    서의우와 권재진이 한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자, 둘의 존재가 하나로 겹치고 핵심을 관통하는 창이 꽂혔다.

    S등급 에스퍼와 S등급 돌연변이 가이드.

    저 둘은, 그런 것이었다.

    아주 처음부터, 그런…….

    마 소령이 기막힌 충격에 빠져 권재진을 올려다보았다. 특임부대원들이 바닥에 무릎 꿇은 모습으로 납작하게 짓눌려 제대로 호흡하지도 못하는 위급한 상황이지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태오가 권재진을 쳐다본다는 사실을 알아챈 서의우가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살의를 넘어선 격렬한 원혐이 치솟았다. 그에 따라 서의우의 이능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형태를 바꾸어 내리꽂혔다.

    포위망 최전선에 불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으흑!”

    “커으윽!”

    앞쪽에 선 특임부대원들이 낙엽처럼 뒤로 나자빠졌다. 마 소령이 다급히 방어계 이능을 끌어 올려 보호막 안에 새로운 보호막을 만들었고, 장태산 중령 또한 강화계 이능으로 신체를 강화했다.

    고통스러워하는 각성자들의 신음이 하늘까지 닿았다.

    비명을 들은 권재진이 미간 사이를 찌푸렸다. 위압당하고 있는 건 각성자들인데도 권재진까지 힘겨웠다. 아니 정확히는, 심란했다.

    <나 지금이라면 정말 잘 죽일 자신이 있어요.>

    <핵만 골라서 으스러뜨려 버리면 특임부대 수십, 수백 명이 몰려오더라도 눈 깜빡할 새 몰살할 수 있을 테죠.>

    연거푸 탁한 들숨을 삼킨 권재진이 떨리는 눈으로 제 곁에서 흉포한 힘을 거침없이 쏟아 내는 서의우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이 새까맣게 보였다. 암담했다.

    재진의 턱이 굳었다. 입술은 바짝 메말랐다.

    권재진이 소리 없이 팔을 뻗었다. 손을 내밀어 서의우의 팔꿈치를 건드렸다. 손끝이 찌릿했다. 비유하자면 마치, 서의우가 아니라 절절 끓어 폭발하는 태양과 접촉한 것 같았다.

    “……다 죽일 겁니까?”

    지금 말을 걸어도, 서의우가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의우 씨, 죽이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분명 그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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