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79)화 (79/154)
  • #79

    이러니 오 준장을 비롯한 장성들이 자신에게 수색을 일임한 것이로군, 하는 생각이 들 따름이었다.

    이 명령은 그에게 내려진 시험이었다. 충성과 충동 사이에서 마 소령이 어느 쪽 무게를 짊어질 것인지 똑똑히 확인해 보기 위한 시험이다.

    <오염…… 말입니까.>

    <자네가 돌연변이 가이드와 필요 이상 가까워진다면, 그래서 돌연변이 가이드가 살아온 일반 사회의 배경과 사상에 감화된다면…… 우린 자네까지 처분해야 해.>

    <자네가 직접 그 S급 돌연변이 가이드를 찾아내어 증명하게. 우리가 자네를 처분할 필요가 없다는 증명. 자네는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명.>

    처음부터 목숨이 걸려 있던 임무였다.

    신중해야 마땅했다.

    마 소령이 딱딱하게 굳은 눈을 돌렸다. 앞서 보내 둔 수색부대원들이 지금도 추적을 계속하고 있을 터였다. 뒤엉켜 혼란스러운 상념을 내리누르고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부대원들과 합류하여 제1 특임부대가 추가 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어야 했다.

    ***

    불운히도, 권재진이 서의우에게 제대로 된 연애를 가르쳐 줄 기회는 오지 않았다.

    데이트, 커플링, 커플룩, 러브 레터…… 그리고 사랑니 할 때 그 사랑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용어인지 설명해 주기도 전에 산통을 깨는 호출음이 요란히 울렸기 때문이었다.

    긴급 호출이다.

    서의우가 험악하게 손을 뻗었다. 검은색 호출기가 화장실 문밖에서 세차게 날아와 그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서의우는 기기를 부술 듯이 힘을 주어 알림을 껐다.

    “하필 지금…….”

    서의우가 소리 낮춰 으르렁대며 호출기에 떠오른 지시 사항을 확인했다.

    그의 눈빛이 사납다 못해 난폭했다. 언짢게 일그러진 콧등 주름도 펴질 기미 없었다. 만약 이곳이 현장이고 눈앞에 크리처가 있었다면 서의우는 앞뒤 따지지 않고 즉각 마물의 목과 머리를 분리해 버렸을 터였다.

    언제 어느 때건 즉각 소집에 응하는 것이 각성자의 의무이고, 망설임 없이 전투에 나서는 것이 당연한 소임이건만, 당장은 임무고 인류고 다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 봐야 합니까?”

    권재진이 서의우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몸을 뒤로 물렸다. 서의우는 어금니를 세게 짓씹고는 살벌하게 답했다.

    “네, 바로 떠나야겠네요.”

    “별수 없군요. 그럼 옷부터 입읍시다.”

    “하…… 재진 씨.”

    “예?”

    서의우가 뜻 모를 시선으로 잠시 화장실 바닥을 보았다. 날카로운 턱과 엷은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만, 탄식하는 소릴 뱉었다.

    “가기 싫어요…….”

    “…….”

    “가기 싫다고요.”

    서의우는 거의 울분에 차서 읊조렸다.

    예전과 비교해 보면 실로 대단한 변화였다.

    한때, 서의우는 권재진을 납치해 가이딩하던 순간조차도 긴급 호출이 울리면 즉각 자리를 떴다.

    언제 어느 때건 긴급 호출이 최우선 사항이다.

    서의우의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그래야 마땅했다.

    인류를 지키는 것이 각성자의 사명이고, 그보다 중대한 일은 없다. 그렇지만, 서의우는 지금 인류 전체보다도 권재진 단 한 사람을 지키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불순한 줄 안다. 스스로 중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도 있다. 돌연변이를 남모르게 빼돌려 감춰 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돌연변이를 지키기 위해 존엄한 사명까지 저버리고 싶어지다니…….

    본래라면 돌연변이는 살처분이다.

    발견 즉시 사살당해 마땅한 목숨이다.

    서의우가 살려야 하는 건 권재진이 아니라 현 인류와 그 미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사실에 뼛속부터 저항감이 들었다.

    “나 그냥 재진 씨랑 있고 싶어요.”

    서의우가 있는 그대로 솔직한 속내를 토해 냈다. 아래로 처진 처연한 눈매와 꺼멓게 죽은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고개를 치든 그가 권재진의 턱을 붙들고 얼굴에 입술을 거칠게 찍어 눌렀다. 호출에 불응하고 미적거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권재진을 이대로 놔주고 싶지 않았다. 재진이 난처하게 그의 어깨를 밀었다.

    “잠시만. 이러다 늦겠습니다. 늦으면 문제 생기는 것 아닙니까?”

    “네, 그렇죠. 의심 사면 안 되는데…….”

    “이런 건 다녀와서 합시다. 남은 얘기도 다녀와서…….”

    “응, 그래야죠. 알겠어요.”

    말로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서의우는 계속 입술을 붙여 왔다. 커다란 손바닥으로 권재진의 동그란 뒤통수를 받치고서 얼굴 곳곳 가리지 않고 키스했다. 입술, 뺨, 코, 관자놀이, 눈썹. 흑발 직모를 뒤로 전부 쓸어 넘긴 뒤에는 깨끗한 이마에도 입 맞췄다.

    그런 뒤에 잠시 떨어져 재진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못 참겠다는 듯 기어이 눈꺼풀 위에도 키스했다.

    “……서의우.”

    “이것만요. 이거만 하고 갈게요.”

    “…….”

    서의우가 노골적인 의도를 담아 눈꺼풀을 핥았다. 권재진은 속으로 한숨을 씹어 삼킨 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려 서의우가 눈알 점막에 입 맞출 수 있도록 응해 주었다.

    붉은 혀를 입 밖으로 낸 서의우가 민감한 점막 안쪽을 부드럽게 핥았다. 눈물이 고여 있을 때 빨리는 건 조금 시큰하기만 할 뿐이었지만 마른 상태에서 빨리는 건 제법 선뜩했다. 재진이 하체를 덮은 타월을 세게 움켜쥐었다.

    “윽…….”

    정말 별 짓거리를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적 세면대 위에 올라앉은 몸이 자꾸 뒤로 빠져 물러섰다. 서의우는 권재진의 뒤통수를 거울에 짓눌러 놓고 속눈썹 사이사이를 핥았다. 검은 속눈썹이 젖어서 저들끼리 가닥가닥 뭉쳤다.

    결국, 또다시 호출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젠 더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서의우가 잇새로 거친 들숨을 삼키며 가까스로 떨어졌다.

    연애는 섹스하고 키스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서의우는 사실 그런 방식만으로 애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직은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에 놓인 권재진의 저 얼굴, 촉촉하게 잘 적신 눈, 곧은 목선 아래 만지기 좋게 생긴 하얀 가슴과 작은 점을 숨긴 겨드랑이 등 보고 있기만 해도 흥분되는데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

    서의우는 당장이라도 권재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가슴골 사이와 밑가슴 접힌 곳을 흠씬 핥아 주고 싶었다. 좁은 구멍에 자지 넣고 살살 비비면서 권재진 양치질해 주는 게, 상상만 해도 이렇게 좋은데 어째서 진짜 연애가 아니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제대로 된 연애는 뭐길래…….

    얼마나 더 좋은 것이길래…….

    4년 후 서의우와도 하지 못했다는 것들이 알고 싶어 돌아 버릴 것 같았다.

    권재진이 제대로 연애해 보고 싶다는데, 풋내 나는 스무 살짜리 서의우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보자는데, 이 극적인 순간에 호출 따위가 방해라니.

    곱씹어 생각해 볼수록 부아가 치민다. 진정 다 쓸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권재진과 서의우. 세상에 단둘뿐인 것처럼 지내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다가왔다.

    어찌하여 서의우는 권재진만 관련되면 번번이 무력해지는 걸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의 발치에 해결하지 못한 불가능이 탑처럼 높다랗게 쌓여 갔다. 최초의 S급 에스퍼라느니, 그따위 건 조금도 쓸모없었다. 이능 좀 타고났다고 대수인가?

    서의우는 불안하고 두려워서 미칠 것 같았고,

    권재진이 좋고 좋아서 또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이쯤 되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옳지 않은가 싶다.

    서의우는 미쳤다.

    미칠 것 같은 게 아니고, 정말 미친 새끼가 되어 버렸다.

    “……재진 씨, 나 다녀올게요. 조심히 있어요. 문자 답장 바로 하고요.”

    “알겠습니다. 어서 가세요. 다치지 말고.”

    “연락해요, 꼭. 답장 늦으면 싫어요 진짜.”

    “……예. 답장하겠습니다.”

    서의우가 어렵게 발길을 돌렸다.

    화장실에서 돌아 나와 곧장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배는 다급하게 전투 복장을 갖추고 무기를 장비했다. 하네스를 차는 손이 급해서 고리에 손등이 긁혔다. 생채기 난 손으로 소총을 장전하고 무균이동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하얀 샤워 가운을 찾아 걸친 권재진이 무균이동실 문밖에서 서의우를 배웅해 주었다. 이중으로 밀폐된 유리문 너머에 서로의 모습이 희끗희끗하게 보였다. 호환 신호가 떠올라 서의우가 좌표 이동 하여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두 사람은 계속해서 서로를 지켜보았다.

    ***

    번쩍이는 하얀빛이 퍼졌다.

    주변 풍경이 단숨에 뒤바뀌었고, 서의우는 센터 중앙관 7층에 도착했다. 고글 전원을 켜서 눈가에 쓰자마자 장태산 중령에게서 통신이 걸려 왔다.

    -서 대위. 늦었군. 다른 부대원들은 이미 수송 헬기를 타고 출발했다.

    서의우는 장 중령의 질타에 의연하게 대응하며 뒤집힌 속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아닙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장 중령님.”

    냉정을 유지하기 힘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장태산 중령은 감이 좋다. 각별히 주의해야 할 상대다. 한시라도 빈틈을 내비칠 수 없었다.

    서의우가 고글 화면 안쪽에 푸른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 임무 내용과 목적지 좌표가 일목요연하게 떠올랐다.

    “좌표 이동으로 앞질러 가겠습니다. 대원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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