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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78)화 (78/154)
  • #78

    산기슭 아래. 새로 파진 구덩이가 보였다. 수색대원 셋이 구덩이를 에워싸고 손을 뻗었다.

    어른거리는 옅은 기운이 그들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맹추위에도 땀방울이 맺혀 흐를 정도로 집중해서 추적계 이능을 끌어 올렸으나 바라던 결과를 얻어 내진 못했다. 이 잔흔은 그들의 목표물이 남긴 자취가 아니었다.

    “후, 이것도 크리처의 흔적입니다.”

    “하필이면 인근 지역에서 게이트가 열렸던 탓에 무엇을 살피든 마물의 기운만 느껴집니다.”

    수색대원들이 앞다투어 좋지 못한 보고를 올렸다. 이들의 지휘관이자 S급 돌연변이 가이드를 찾아내라 명령받은 마태오 소령이 담담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렇군. 다음 포인트로 이동한다.”

    “예, 소령님.”

    “지금처럼 3인 1조로 행동하되, 앞서 수색 중인 대원들과 겹치지 않는 동선을 이용해라. A등급 에스퍼는 지형 전반을 아울러 살피고, B등급 에스퍼는 근경과 땅, C등급 에스퍼는 원경과 하늘, 나무 위를 위주로 수색한다. 나는 준장님께 중간 상황 보고 올리고 뒤따르겠다.”

    “예.”

    지시에 따라 수색 대원들이 움직였다. 마태오 소령은 자리에 남아 고글을 콧등 위에 눌러 쓰고 전원을 켰다.

    본래였다면 제7 특임부대 소속 부지휘관인 그가 보고 올릴 상대는 직속상관이자 제7 특임부대 총지휘관인 신 중령일 터였다. 그러나 지금 마태오 소령이 이끄는 부대는 특임부대가 아닌 수색부대였다.

    S급 돌연변이 가이드의 행방을 쫓고자 긴급 편성된 수색부대.

    그러므로 마태오 소령이 보고 올릴 직속상관은 신 중령이 아닌, 육군 작전사령관 오 준장이 된다.

    -어어, 그래.

    통신을 시도한 지 한참이 지나 오 준장과 연결되었다.

    “긴급 수색부대 지휘관 마태오 소령입니다.”

    -이것 보게, 젊은 친구가 목소리에 맥아리가 없구먼. 그래서 거, 성과는 좀 있나?

    “난항입니다. 현재까지 아무런 특이 사항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왜.

    “사건 지역 부근에 발생한 게이트 때문입니다. 본래라면 핵의 파장을 금세 잡아낼 수 있었겠습니다만…… 숱한 크리처의 흔적으로 뒤덮여 여의찮은 상황입니다.”

    오 준장이 보란 듯이 마 소령을 타박했다.

    -쓰으읍, 나 참 어이가 없군. 그걸 누가 모르나? 게이트가 발생했던 건 나도 보고를 들어 알지. 크리처가 근처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돌아다닌 것도 알지. 그런데, 고작 이따위 아쉬운 소리나 듣자고 내가 자네에게 일을 맡긴 게 아니잖나.

    “…….”

    -마 소령 일 이렇게 할 건가? 이게 최선이야? 이러니 육군의 위상이 나날이 떨어지는 걸세.

    “……시정하겠습니다. 준장님.”

    마 소령은 냉정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타박에 응했다. 그는 이런 말 몇 마디에 흔들리는 사내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기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기도 했다.

    “우선은 게이트에서 쏟아진 크리처를 모두 제거한 후에 수색을 재개해야 할 듯싶습니다. 더군다나 대원들이 지쳐 갑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쪽 크리처 토벌 건으로 이미 배정된 특임부대가 있다네. 그들로 부족하다는 건가?

    “예, 빠른 사후 처리를 위해 추가 인원을 할당해 주십시오.”

    -그래. 그건 고려해 보지.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 고드름이 맺혀 있었다.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거리다 중간이 부러져 마 소령의 정수리 위로 뚝 떨어졌다. 마 소령이 아무렇지 않게 이능을 사용했다. 생성한 보호막으로 뾰족한 고드름을 막아 내며 추가 사항을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인해 두고 싶은 사항이 있어 말씀드립니다. 이곳 토지가 국유지인지, 사유지인지. 사유지라면 소유주를 통해 수색에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쯧, 쓸데없는 소릴 하는군. 추적계 에스퍼들을 잔뜩 데리고 고작 탐문이나 하겠다는 생각인가?

    “…….”

    -그런 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닐세. 자네는 명령받은 일만 제대로 하면 돼. 추적 이능을 활용해!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어 돌연변이의 행방을 확실하게 잡아내란 말이야. 알겠나?

    “……알겠습니다, 준장님.”

    -윗선에서도 다 생각이 있어. 머리 쓰는 건 우리가 한다네. 마 소령, 자네는 엉뚱한 짓 말고 수색에만 매진하게나.

    “예. 지시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 그럼.

    뚝. 통신이 끊어졌다.

    마 소령이 고글을 머리 위로 올리고자 손을 뻗었다. 각진 테를 잡는데, 고글 화면 위에 간명한 연락 사항이 떠올랐다.

    [크리처 토벌에 제1 특임부대를 추가 배정하도록 하지. 금세 정리될 걸세.]

    제1 특임부대.

    베테랑 장태산 중령이 이끄는 최정예 전투부대다. 각성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만을 뽑아 모아 두었고, 그 유명한 최초의 S급 에스퍼 서의우 대위까지 소속해 있다.

    본래라면 이런 크리처 잔당 처리 같은 사소한 임무와는 거리가 먼 자들이다. 게이트 최심부에 진입하여 게이트 코어를 부수거나 크리처 서식지와 인접한 개척 지구 전선을 넓히는 등, 가장 위험한 임무만을 도맡아 수행하는 최고의 부대다.

    그런 자들이 이 임무에 가담하다니.

    윗선이 S급 돌연변이 가이드의 행방을 뒤쫓는 일에 어지간히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필히 찾아내야겠군.’

    마 소령이 고글을 벗었다. 까만 눈동자가 으슥한 주변을 조용히 훑어 내다가 산기슭 협곡 위쪽, 뭉툭하게 깎여 나간 지대에 머물렀다. 폭발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크게 뭉개진 산세를 올려다보며 스쳐 지나간 그자를 떠올렸다.

    권재진.

    S급 돌연변이 가이드, 권재진.

    각진 주먹을 움킨 손아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자의 목을 거머쥐었던 순간이 잊히지 않았다. 피부에 접촉하고, 더 나아가 입 안 점막에 손가락을 비집어 넣던 행위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과연 그 행위를 가이딩이라 일컬어도 좋았던 것일까.

    권재진과 접촉한 후, 마태오 소령의 이능은 큰 폭으로 향상되었다.

    그가 만들어 내는 보호막의 강도, 반경, 유지 시간까지도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가이딩으로 에스퍼의 이능이 향상되다니.

    그럴 리 없다.

    가이딩은 이능의 사용의 부작용, 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이능 자체의 위력에는 관여할 순 없었다. 이능의 활용은 전적으로 에스퍼의 역량에 달린 일이며, 에스퍼만이 자기 자신의 이능을 다루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그 S급 돌연변이 가이드는 고작 몇 분간 접촉한 것만으로도 마태오 소령의 이능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 올려 준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내 본래의 힘을 발휘하도록 도와준 듯하다만…….’

    그런 믿기지 않는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착각은 아닌가?

    확실하게 증명해 볼 방법이 있다면 좋을 테지만, 권재진의 행방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불가능할 터다.

    애초에 그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은 마태오 소령이 유일했다. 마 소령만이 권재진과 닿았고, 가이딩을 제공받았다. S급 가이딩이 어떤 것인지, 그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제로 체감한 사람이 오직 그 혼자뿐이란 뜻이다.

    ‘고작 그 정도의 짧은 접촉만으로 이런 대단한 효과인데, 정식 가이딩을 받는다면 어떤 결과를 보일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군…….’

    마태오 소령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오 준장과 통신할 때만 해도 미동 없던 표정이 지금은 한껏 구겨져 동요하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나. 만에 하나 생포가 여의찮다면 그 즉시 사살해라.>

    <확실한 생포가 불가하다면 확실한 제거가 차선이다. 알아듣겠나?>

    뜨거운 머릿속에 오 준장의 목소리가 불쾌하게 울려 퍼졌다. 끈질긴 목소리를 뒤로하고 불쑥불쑥 저열한 반발심이 솟구쳤다. 에스퍼로서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권재진을 붙잡아 가이딩 하라고.

    오 준장에게 신병을 넘기지도 말고, 사살해 죽이지도 말고, 가이딩. 가이딩을 해야 한다고.

    ‘하…….’

    마 소령이 차게 식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쩌면 권재진은 이미 지난 폭발에 휘말려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타 버렸다면 수색해도 무의미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그 폭발은 대체 무엇이었지? 태양 같은 빛이 발발했고, 그 사이에서 무언가…… 위압적인 무언가가…….’

    이미 일그러진 표정이 더욱 흐트러졌다. 기억 속에 남은 그날의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 되새겨 보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저 크고 대단한 빛이, 거대한 초월적인 그 무언가가, 권재진을 앗아 가는 듯한 느낌만 받았을 따름이었다.

    ‘내가 이능을 사용했어야 했다. 보호막을 제때 펼쳤더라면…… 그랬다면 S급 가이드를 놓칠 일 따위 없었을 텐데도.’

    만일 권재진이 폭발에 휘말려 죽은 것이라면 그토록 허망하게 권재진을 놓쳐 버린 마태오의 책임이었다.

    최초의 S급 가이드인데.

    아무리 돌연변이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초의 S급 가이드인데……!

    ‘아니. 찾아내면 된다. 제법 근성 있는 자였어. 아직 죽지는 않았을 거다. 찾아내야 해.’

    후회는 아무리 해 봐야 늦다. 이제는 필사의 각오로 수색하고 추적해서, 권재진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밖에는 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찾아내고, 그런 후에는…….

    찾아낸 후에는…….

    ‘그래…….’

    생포.

    사살.

    가이딩…….

    마 소령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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