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69)화 (69/154)
  • #69

    “마 소령, 자네가 보기에 그 S급 돌연변이는 가이딩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나? 이미 자신의 등급이 S급임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했지. 그 말은 다른 에스퍼와 한 번 이상은 접촉했고, 가이딩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등급을 알았다는 뜻일 텐데……. 어떤가. 권재진 그자가 자네 가이딩에 순순히 응하던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돌연변이와의 가이딩은 범죄 사항이기에…….”

    “으하하하. 아니야, 자네는 영원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걸세. 물론, 돌연변이도 각성자를 이해할 수 없고. 돌연변이 출신은, 에스퍼건 가이드건 누구 하나 쉽게 가이딩 하려 들지 않는다네. 가장 효율 좋은 점막 접촉, 그것도 불순물 없는, 전시 상황에 특화된 쉽고 빠른 가이딩. 그건…… 그걸 따르게 하는 건, 쉽지 않아.”

    “…….”

    “그들은 가르쳐도 소용없는 종자일세. 괜한 비용만 들고, 위험성만 높은. 도리어 다른 순수 전투원으로 양성된 정식 각성자들까지 오염시켜 버릴 위험이 있는…….”

    “오염…… 말입니까.”

    “자네 말이야, 마태오 소령. 바로 자네를 말하는 걸세. 자네는 지금 그 S급 돌연변이 가이드와 가이딩 하길 원하나? 아마 그렇겠지? 에스퍼로 태어난 이상 본능이 갈구할 수밖에 없을 테야.”

    “…….”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네. 자네가 돌연변이 가이드와 필요 이상 가까워진다면, 그래서 돌연변이 가이드가 살아온 일반 사회의 배경과 사상에 감화된다면…… 우린 자네까지 처분해야 해.”

    각성자는 태생부터 일반인과 다른 성교육을 받고 특수한 정조 관념을 가진다.

    부모도, 형제도, 연인도 없이 단일 개체이자 전투원으로 생을 마감하는 각성자들이,

    상급자, 하급자, 동료만으로 구성된 삭막한 관계 속에 배양된 이들이,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통의 정서적 유대 관계와, 가이딩이 아닌 애정에서 뻗어진 보통의 성적 접촉과 쾌락을 알게 된다면 어찌 될까.

    현 체제는 붕괴하고, 인류는 1세기에 거쳐 갈고닦아 온 가장 효율적인 무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돌연변이는 발견 즉시 살처분이다.

    그들은 가장 위험한 존재이다.

    애써 세뇌하고 통제해 온 각성자를 뒤흔들고,

    공들여 쌓아 올린 현 체제를 근원부터 좀먹어 무너뜨릴,

    가장 무력하면서도 치명적인 변종.

    “마 소령. 추적 이능에 특화한 대원들을 뽑아 긴급 수색대를 꾸려 줄 테니, 자네가 직접 그 S급 돌연변이 가이드를 찾아내어 증명하게. 우리가 자네를 처분할 필요가 없다는 증명. 자네는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명.”

    “…….”

    “즉시 수색을 시작하게나. 특수 거주지구에서 필히 축출해 내야 할 것이야.”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오 준장님.”

    ***

    그 후. 권재진과 서의우는 본래 지냈던 3천 평짜리 해변 저택으로 잠시 되돌아갔다.

    비록 거실은 까맣게 타 버렸다만 보안 시스템은 무사히 살아 있으니 임시 거처로 사용하기엔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불탄 건 1층 거실뿐이다. 2층은 무사했기에 위층에서 생활하는 거라면 큰 어려움 없었다.

    게다가 실로 다행스럽게도, 일전에 미리 권재진이 게이트를 회피할 목적으로 서의우에게 신축 주택을 원한다고 말해 둔 적 있기에 지금 토대부터 재진의 취향에 맞춰 새로 건축 중인 최첨단 초호화 대저택이 있었다.

    조만간 그곳이 완공되면 제대로 이사해서 그 집을 본가로 삼고 지낼 예정이었다.

    설계부터 아낌없이 재산을 쏟아 짓는 저택이라 완공되면 요새를 방불케 할 안전 가옥이 탄생할 터였다.

    그나저나, 그 건축 과정에서 서의우의 총자산이 권재진이 알고 있던 850억을 훨씬 상회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는 바로 연금 통장의 존재 덕분이었다.

    알고 보니, α크리처를 죽이고 마물의 핵을 추출해온 전투원에게는 연금 및 포상금이 따로 나왔고, 이것을 매달 지급 방식이 아닌 일시불 지급 방식을 택해 수령하면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이 연금과 포상금은 중복 수령이 가능하여, α크리처를 몇 마리나 사냥한 공적이 있는 서의우는 그냥…… 그냥 미친 듯이 돈이 많았다.

    어차피 각성자는 대개 단명하고 그들이 죽고 나면 유산을 남길 상속자가 없어 재산은 바로 국고로 환수된다. 그렇기에 각성자 개인이 이렇게 많은 부를 축적한다고 해서 국가 입장에서 문제 될 건 없는 셈이었다.

    [재진 씨 지금 뭐 해요?]

    까만 태블릿 화면에 간결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안 시스템 알림창 통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 보겠다더니, 서의우는 정말 연락 수단을 고안해 냈고 그 후론 수시로 문자를 보내곤 했다.

    본래 저 메시지창의 용도는 ‘1층 침실 a-3 창문이 수동 개방 되었습니다.’라거나, ‘거실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비상로를 통해 신속히 대피해 주십시오.’ 등의 알림을 전하는 것이지만 수동으로 조작하여 실시간 메시지를 입력할 수 있도록 설정을 변경했다.

    [양치 중입니다.]

    재진은 넓고 깨끗한 건식 욕실에서 양치하며 왼손으로 태블릿에 툭툭 답장을 입력했다.

    권재진이 태블릿으로 텍스트를 입력하면 서의우의 고글 화면에 연동된다.

    마찬가지로 서의우가 고글 화면으로 텍스트를 입력하면 권재진의 태블릿으로 연동된다.

    서의우의 고글은 단순한 고글이 아닌 첨단 기술을 적용한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의 일종으로, 시선을 추적하여 핸즈프리로 손쉽게 문자를 입력할 수 있었다.

    실제 전투 상황에서 송수신기로 음성 무전을 보냈다가는 크리처에게 발각당하는 등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으니, 불필요한 소리 내지 않고 부대원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자주 쓰이는 방법이라고 한다. 양손으로는 무기를 들어야 하기에 눈으로 문자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론상으론 이해가 가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선만으로 텍스트를 입력할 수 있다니. 그런 기술이 상용화되어 있다니. 터치식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용에만 익숙한 권재진에겐 참 생소한 방식이었다.

    아무튼, HMD 첨단 기술 덕에 다행히도 서의우와 권재진이 서로 문자를 주고받더라도 누군가에게 들킬 위험은 없어졌다.

    겉보기에는 서의우가 그냥 까만 고글을 쓰고 있을 뿐, 행동이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리가 나거나 몸동작으로 티 나는 것도 아니고, 고글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시선만 움직여 연락을 취하는 것이니 안전했다.

    [부럽다. 나도 재진 씨 양치질해주고 싶은데.]

    곧바로 서의우에게서 회신이 도착했다. 권재진은 너무 빠른 답장 속도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의우는 지금 긴급 호출을 받고서 임무에 나선 상태였다.

    그 말은 그가 현재 한창 전투 중이란 뜻이다.

    아무리 서의우가 대단한 S급 에스퍼라지만 크리처와 싸우는 중에 이렇게 문자질에 정신이 팔려 있어도 되는 것일까?

    위험하진 않나?

    하물며 권재진은 이미 크리처가 어떤 마물인지 직접 상대해 본 경험도 생긴 상태였다. 그런 끔찍한 것과 싸우며 양치질이 어쩌느니 잡담할 여유 따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됐다.

    칫솔을 입에 문 권재진이 못마땅하게 태블릿에 답장을 투두둑 입력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전투에 집중하십시오.]

    애초에 연락 수단은 비상시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지, 이렇게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받으려던 게 아니었다.

    크리처와 총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서의우의 정신을 분산시키려던 게 아니었다고.

    [재진 씨가 보고 싶어요.]

    [퇴근하고 실컷 보면 됩니다.]

    [지금 당장 걱정되니까 그러죠. 나 없는 새 또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닌가 해서.]

    [아무 일 없습니다. 양치 중이라고.]

    [무섭단 말이에요.]

    권재진이 입 안에 든 양칫물을 뱉느라 답장 입력하는 시간이 좀 늦어졌다. 입을 깨끗이 하고 양치를 끝낸 뒤 태블릿을 확인해 보니 서의우에게서 문자 알림이 수없이 도착해 있었다.

    [재진 씨 혼자 두고 있는 거 싫어요.]

    [무서워서 진짜 못 하겠어.]

    [또 재진 씨 사라지면 어떡해요? 나 없을 때 무슨 일 생기면?]

    [지금 괜찮은 거죠?]

    [집에 잘 있는 거죠?]

    [재진 씨?]

    [괜찮은 거 맞아요?]

    [왜 답이 없어]

    [왜답없냐고]

    [지금바로집으로갈게요]

    아니 씨!

    서의우!

    권재진이 물기 젖은 손으로 빠르게 답장을 입력했다. 서의우가 좌표 이동 해 오기 전에 빨리.

    [오지ㅁ]

    [오지마]

    [이딲느라못봐써]

    아슬아슬 세이프 했나 보다. 사방에 빛이 번뜩이지도 않았고 빛 방울이 퍼지지도 않았다. 하.

    [답장좀 바로좀 해요]

    서의우가 화내듯이 문자를 연이어 보내 왔다.

    [내가무섭다고 했잖아. 걱정된다고요. 재진 씨 왜 나 몰라줘요?]

    [문장 쓰기 힘들면 그냥 점 하나만 찍어 보내요.]

    [.]

    [이렇게]

    [이런거 보내도되니까 나한테재깍답장하라고]

    [알ㅇㅆ어요?]

    잠시 기가 막힌다. 말문도 막히고.

    재진은 뻣뻣하게 굳은 손을 움직여 태블릿에 답장을 입력했다.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간 서의우가 진짜로 좌표 이동 해 올 것 같았다.

    [.]

    바란 대로 점 하나만 찍어 보내곤 욕실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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