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68)화 (68/154)
  • #68

    “네, 말해요. 나 뭐든 다 해 줄게요. 정말 뭐든.”

    이삿짐을 다 챙긴 서의우가 권재진을 허공에서 내렸다. 두 팔을 벌려 자신의 품 속에 쏙 들어오도록 이능을 조절했다.

    웃으며 권재진을 품에 안은 서의우가 그의 입술에 당연하다는 듯 입 맞췄다. 권재진은 짧게 입술을 대어 주고는 침착하고 강직하게 읊조렸다.

    “총 쏘는 법 가르쳐 주십시오.”

    고된 위기에서 헤어 나온 검고 단단한 눈은 벌써 이다음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격 연습 좀 해야겠습니다. 유사시에 대비해서.”

    서의우와 권재진은 별장 저택을 떠나며, 혹시 모를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집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지반을 쪼개어 산사태를 일으켰고 건축물이 있던 흔적 일체가 남지 않도록 흙과 바위 더미에 매장해 버렸다.

    ***

    센터 중앙관, 최상층에 자리한 군사전략총책임본부.

    소위 말하는 장성, 별을 단 장성급 장교가 아니고서야 출입이 제한되는 극비 공간이다. 이곳 본부실에서는 매주 장성 이상만 참석할 수 있는 기밀 전략 회의가 열린다.

    장성이 어느 정도 까마득한 자리인지 실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사, 중사, 상사, 원사는 정규 교육을 수료 중인 훈련 교육생에 해당하는 부사관급 계급이다.

    소위, 중위, 대위는 특임부대 부대원 직위에 해당하는 위관급 계급이다. 서의우 대위가 이에 속한다.

    소령, 중령, 대령은 특임부대 지휘관 직위에 해당하는 영관급 계급이다. 마태오 소령과 장태산 중령이 이에 속한다.

    그 위에 장성이 있다. 준장, 소장, 중장, 대장은 육군, 해군, 공군 사령관 직위에 해당하는 장성급 계급이다.

    장성급 계급부터는 각성자뿐 아니라 민간인 출신 비각성자가 섞여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온갖 수라장을 거쳐 국가 수뇌부란 드높은 위치에 올라선 권력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권력을 손에 쥔 소수 사령관.

    그들의 결정과 지시에 실질적인 국가의 존속과 안배가 달린 것이다.

    그렇기에, 괴물 같은 장성들이 우글대는 군사전략총책임본부 본부실로 소환당한 마태오 소령은 빳빳하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S급 돌연변이 가이드.

    그 존재를 보고한 것만으로 군사전략총책임본부까지 소환당하다니.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한 마태오 소령은 전투복이 아닌 전투제복을 각 맞춰 차려입고 센터 중앙관 최상층으로 향했다.

    이곳은 구획이 달라 특수 격리 된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야 진입할 수 있고, 그 전에 각성자 인식표 증명에 이어 본인 확인과 보안 검색용 전신검색기 통과까지 마쳐야 했다.

    삼엄한 경비를 지나 본부실 앞에 선 마태오 소령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선 안으로 들어섰다.

    일순 흠칫거리고 말 정도로 웅대하고 광활한 회의실이다.

    정면에 신정부의 국기가 크게 붙어 있고, 천장과 벽에 육군, 해군, 공군에 해당하는 각 관할군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또한 벽에는 실제 창문 대신 인공 통유리창을 달아 내부 조도를 조절하는데, 이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기 위함인 듯 보였다.

    회의실 중앙에는 ㄷ자 형태로 거대한 테이블이 놓여 있고, 상석부터 하석까지 자리가 빼곡하게 메워져 있었다.

    마태오 소령이 정식 각성자 특임부대원으로서 평생을 군 생활에 바쳐 왔으나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치지 못한 장성들까지 그곳에 모여 있었다.

    하석부터 시작해서 준장 계급에 해당하는 작전사령관, 방위사령관, 특수사령관, 항공사령관, 군수사령관, 교육사령관, 함대사령관이 줄줄이 앉아 있고, 그 위에 소장 계급에 해당하는 육군사령관, 해군사령관, 공군사령관이 상석을 차지했다, 최상석에는 중장 계급인 중앙군사령관과 중앙군부사령관 두 사람이 참석해 있었다.

    가장 높은 계급인 대장, 즉 중앙군사총장은 자리가 비워진 상태였지만 이미 그런 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시퍼렇게 눈을 뜬 백전노장들의 앞에 선 마태오 소령이 위압당하지 않고 절차에 맞춰 제대로 경례를 올린 것만도 장한 일이었다.

    “제7 특임부대 부지휘관 마태오 소령입니다.”

    “음. 거, 올라온 보고는 들었다만. 돌연변이가 있었다지? 북서부에?”

    “예, 그렇습니다. 준장님.”

    “S등급 가이드인 건 확실하고?”

    “예, 틀린 사실 없습니다. 접촉 직후 이상을 알아챌 정도로 여타 가이드와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허허이, 쯔. 골 아프게 됐구만.”

    육군 작전사령관인 오 준장이 가볍게 혀를 찼다. 손에 든 펜대를 휘휘 돌리며 간단한 설명을 뱉어 주었다.

    “들어 보게나. 해당 지역에 수색대를 파견해도 그 돌연변이의 시신이나 신체 일부, 하물며 머리카락 한 올조차 발견되지 않았어. 뭐라도 하나 나왔으면 추적계 에스퍼의 이능을 통해 찾아냈을 텐데 말이지.”

    다른 장성들은 잠자코 뒷짐 지고 물러나 있는 것을 보니 이미 윗선인 이들끼리 기밀 회의를 통해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오 준장이 도맡아 마태오 소령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보였다.

    “현장 인근 지대 반경 약 1km가량이 싹 날아갔어. 마 소령은 이 현상이 자연스럽다고 보나?”

    “부정적입니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파악할 수 있겠나?”

    “그 또한 부정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내야 하지 않겠나. 특수 거주지구에 숨어든 돌연변이의 생사와 행방. 비정상적 폭발의 원인. 범법 행위를 저지른 각성자의 신원. 그밖에 위험 요인까지도 전부 색출해 내야 한다는 뜻일세. 그게 이 자리에 앉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예, 지시를 내리십시오. 준장님.”

    마 소령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을 한 올도 빠트리지 않고 전부 쓸어 넘겨 이마를 드러낸 이 군견 같은 남자는 본디 규율과 규범을 중시하고 상명하복에 따르는 원리원칙주의자였다.

    다만, S급 가이드의 가이딩에 적잖이 충격받고 에스퍼로서 거부할 수 없는 욕구와 갈망을 느꼈을 뿐.

    “좋아. S급 돌연변이 가이드 권재진, 이자를 우선 생포한다.”

    “…….”

    “생포 후, 배후에 있는 범법자를 알아내 체포하고 권재진은 연구개발관으로 이송해 생체 실험 및 해부 관찰을 지시할 요량이다. 성과가 좋으면 훗날 S등급 가이드를 인위적으로 양성하고 훈련할 수도 있겠지.”

    “…….”

    “하나. 만에 하나 생포가 여의찮다면 그 즉시 사살해라.”

    “…….”

    “지난번과 같은 이상 사태, 폭발 따위가 발생할 기미가 보이면 주저 말고 죽이란 뜻이다. 확실한 생포가 불가하다면 확실한 제거가 차선이다. 알아듣겠나?”

    묵직하게 울리는 상관의 지시에 마태오 소령이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노련한 준장은 찰나에 지나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 구태여 자네 같은 말단을 이 자리까지 불러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이 의아하겠지. 또한, 아무리 돌연변이라지만 최초의 S급 가이드를 꼭 죽여야 하나, 그 가이딩이 참 대단했는데, 뭐 그런 의문이 들 테야. 그렇지?”

    “……예, 준장님. 뜻을 말씀해 주신다면 새겨듣겠습니다.”

    “마태오 소령. 자네는 우리가 왜 돌연변이를 발견 즉시 사살한다고 생각하나. 그 이유가 뭐라고 알고 있지?”

    “돌연변이가 통제 불가능한 위험 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한데 도대체 왜? 돌연변이의 핵이 불완전하고 미성숙하기에 그럴까? 아니,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지. 다른 핵과 공명을 느끼진 못해도 이능을 사용하고 가이딩하는 데 큰 장애 요소는 아닐세. 굳이 꼽자면 핵이 쉽게 깨져서 다른 각성자에 비해 쉽게 죽을 우려가 있다 뿐.”

    “그럼, 정규 교육을 수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다른 폐기된 미수료자 후보생들처럼.”

    “그 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일세. 쉽게 말하자면, 결론은 비용 때문이야.”

    “……비용 말씀입니까.”

    “그래. 비용. 황폐해진 땅에서, 사방에 터지는 게이트와 크리처란 적을 두고, 이만큼 인류가 번성할 수 있던 건 우리가 가장 단순하고 명징한, 검증된 원시적 이분법을 철저히 답습했기 때문일세.”

    오 준장이 펜대로 테이블을 탁탁 내리쳤다. 다리를 꼬아 발목을 무릎에 얹고 회전의자에서 삐딱하게 허리를 돌렸다.

    실무자 시절의 태를 벗고, 높은 자리에 앉아 오만함을 갖춘 군 권력가 실세의 모습이었다.

    “사냥하는 남성의 역. 출산 육아 하는 여성의 역. 각성자는 전투하고 일반인은 후손을 낳아 기른다. 명쾌하지, 아주? 현 인류는 지극히 원시적이야. 문화, 사회, 기술, 자원, 어느 것도 발전 수준 미달이지. 그렇기에 구태여 역을 나누어 구분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만 생존하니까. 체제가 무르익고 후세로 넘어가 번영하기 전까진 이게 최선이라고.”

    “…….”

    “일반인은, 전투 따위 아무것도 몰라. 각성자들이 짊어진 막중한 소임을 모르지. 이제 와 모든 리스크를 끌어안고 하나부터 새로 가르치기엔 비용이 너무 든다네.”

    “……그 S급 돌연변이 가이드는 제법 소질 있어 보였습니다. 판단이 빨라 위기 상황에서도 권총을 쏘려 했고, 크리처를 다섯이나 상대하면서도 공포심에 얼어붙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훈련시키면 아마…….”

    “허허, 역시나 착각하는군. 그런 말이 아닐세.”

    “그러시면…….”

    “돌연변이는 말이야, 가이딩할 수 없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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