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65)화 (65/154)
  • #65

    “이름이, 마태오 소령이라고 들었습니다. 제7 특임부대 소속. 이능은 방어계. 보호막을 생성하는 종류 같았고, 저더러 돌연변이 가이드이며, 등급이…… S급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아, 하하, 그 새끼예요? 나 누군지 알아. 재진 씨 등급이야 당연히 S급이지.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예. 그리고, 음.”

    재진이 잠시 뜸을 들였다.

    이것까지…… 말해도 되려나.

    “가이딩을, 좀, 한 것 같습니다.”

    “뭐?”

    “제 입술하고 혀를 만졌습니다.”

    “…….”

    기어이 서의우가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좌표 이동 직후 복도에서 권재진을 껴안고 스무 살답게 안절부절못하던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사나운 맹수의 모습으로 돌변했다.

    그의 눈빛이, 얼음으로 빚은 칼날 같았다. 날카롭고 싸늘하다.

    화를, 아니…… 살기를 권재진에게 분출하지 않으려고, 참아 내려고, 일단은 자제하는 것 같기는 하다만, 오히려 억제된 그 모습이 더욱 섬찟하게 보였다.

    욕실 사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도 서의우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깔린 것 같았다.

    “……하하.”

    서의우가 입술 끝을 천천히 비틀었다.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사방으로 격렬하게 치솟는 감정을 삼켜 내며 느른하게 뇌까렸다.

    “가이딩, 했다고요?”

    권재진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를 지은 듯한 착각을 느꼈다.

    “……예. 조금.”

    “어땠어요?”

    “예?”

    “자세히, 정확하게 설명해 봐요. 내가 다 알아야 할 것 같으니까.”

    재진의 표정이 설핏 흐려졌다.

    “아니, 설명을 해 보라고 해도……. 그게 전부입니다. 입술하고 혀를 만졌습니다.”

    “……그래, 설명으론 안 되겠다.”

    서의우가 더욱 목소리를 낮춰 분을 억누르고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해 봐요. 나한테.”

    “예?”

    “그 새끼가 재진 씨 입술하고 혀. 어떻게 만졌는지, 얼마나 만졌는지. 나한테 똑같이 재현해 보라고. 이건 할 수 있겠죠?”

    “…….”

    “어서요. 해 줘요. 응?”

    서의우가 물에 젖은 권재진의 손목을 천천히 붙들어 당겼다. 얼굴께까지 쭉 당겨 놓고 손바닥에 입술을 댔다.

    “이렇게…… 이렇게 만졌어?”

    유리 세공처럼 반짝이는 길고 얇은 속눈썹 안쪽에 사납게 번들거리는 회색 눈동자가 권재진을 소리 없이 몰아세웠다.

    “손바닥으로, 아님, 손가락으로?”

    “아니, 좀…….”

    “왜요. 재진 씨 나한테 숨기는 거 없잖아요. 우린 그런 사이 아니잖아요.”

    권재진의 손바닥에 입술을 붙인 채, 서의우가 살기를 한껏 갈무리하곤 으르렁댔다.

    그는 권재진이 한마디씩 꺼낼 때마다 자그맣게 벌어지는 입술과 속에 숨은 혀를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직시하고 있었다.

    재진의 저 입과 혀를 마태오 소령이 어떻게 만졌다는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알아내지 않으면 속이 뒤집혀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나한테 다 보여 줘요. 자.”

    “그게…… 그러니까……. 하아.”

    오랜만이다. 이렇게까지 말문이 턱 막힌 건.

    권재진은 공연히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서의우에게 붙들린 손끝을 아주 조금 떨었다.

    당혹스러웠다.

    마태오 소령이 했던 대로 똑같이 만져 보라니……. 재진이 까만 눈알을 힐긋 내려 서의우의 목을 바라보았다. 정말 똑같이 재현하려면, 시작은 목을 조르는 것부터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처음은 목을 이렇게…….”

    권재진은 서의우에게 붙들린 쪽 손이 아닌, 반대쪽 손을 들어 머뭇머뭇 그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마 소령이 한 것처럼 서의우의 곧고 아름다운 목을 쥐어 보았다.

    “제 목을, 조르면서, 누가 저를 특수 거주지구에 숨겨 둔 건지 실토하라고 위협했습니다.”

    “와, 그 새끼가 재진 씨 목까지 졸랐어?”

    “많이는 아니고, 잠깐 정도였습니다.”

    “잠깐이어도요. 재진 씨는 목 조르는 거 싫어하는데……. 그래서 나도 못 하고 조심하는 건데, 이거.”

    권재진이 두 눈을 깜빡이면서 손아귀에 힘을 주어 보았다. 조금 힘껏 서의우의 목을 조르며 마 소령이 했던 협박을 똑같이 재현해 보려 했다.

    “그리고, 목을 조른 뒤에 손을 여기로 올려서……. 지금 가이딩 한 거냐, 어떻게 가이딩이 이러냐고 물었습니다.”

    권재진이 서의우의 목을 누르던 손을 떼어 내고 천천히 목선을 따라 훑어 올라갔다. 다섯 손가락을 펼쳐 그의 아래턱을 덮어 누른 뒤, 손바닥에 입술이 닿아 비벼지도록 했다.

    “입을 이렇게 덮어서 만졌고, 제가 고개를 돌려서 피하니까. 이렇게…… 입 안에 손가락을 쑤셔서…….”

    권재진이 서의우의 입술을 비집고 손가락 두 개를 입 안에 집어넣었다. 가지런한 치열 뒤로 서의우의 말캉한 혀가 만져졌다.

    뜨겁고, 촉촉하고, 부드럽고…….

    서의우의 혓바닥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보자 깜짝 놀랄 정도로 감촉이 좋았다. 흥분될 정도다.

    “쑤혀허?”

    권재진의 손가락을 입에 문 그대로 서의우가 웅얼거렸다.

    발음은 다 새지만 번뜩이며 작열하는 살기 어린 눈빛은 그대로라 어울리지 않게 무서웠다.

    “쑤혀허, 어떠케?”

    서의우가 연신 재촉했다. 권재진은 서의우의 혓바닥을 문지르던 손끝 움직임을 멈추고 그다음을 떠올렸다.

    “제가, 마 소령 손가락을 깨물었습니다.”

    “웅?”

    “그러니까, 마 소령이 그 후에는…….”

    권재진이 서의우의 혀를 잡았다. 엄지와 검지로. 혓바닥을 잡고 입 밖으로 내밀도록 주욱 끌어당겼다.

    “제 혀를 입에서 내밀게끔, 이렇게…… 끄집어냈습니다.”

    서의우의 붉은 혓바닥이 권재진의 손가락에 붙들린 모습으로 벌어진 입술 밖까지 끌려 나왔다.

    마태오 소령이 했던 가이딩을 재현하는 것뿐이지만, 권재진이 하는 대로 순순히 혀를 빼 내밀고 있는 서의우를 보자니 가슴 안쪽이 시끄럽게 울렸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혀를 내민 그의 성난 얼굴이 배덕해 보였고, 선홍빛 혓바닥 자체는 보드랍고 미끌미끌했다.

    도저히 그 광경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서의우의 혀를, 이 단정한 혀를, 권재진이 마음대로 잡고 있는 이 상황이…… 생각보다 짜릿하고 기분이 좋아 어처구니없었다.

    마 소령에게 당할 때는 그저 불쾌하고 역겨울 따름이었다만, 같은 짓을 서의우에게 하고 있으니 너무…… 좀, 이해할 수 없도록 혹했다. 흥분되는 것 같았다.

    무슨…… 이상성욕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감미롭, 음.”

    “……”

    “감미롭다고, 말했습니다…….”

    재진이 홀린 듯 서의우의 혀를 만졌다. 조금 지분거렸더니 손가락에 타액이 진득하게 묻어 나왔다. 얼마간 그렇게 더 비비적거리다가 못내 아쉽게 손을 떼었다.

    “그 후에는 제가 마 소령을 걷어찼습니다. 그게 끝입니다.”

    “아, 그래요……. 알았어.”

    서의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숙였다.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줬으니 이제 진정되겠거니 싶었는데, 오히려 더욱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눈가를 부르르 떤 서의우가 거칠게 들숨을 몰아쉬며 미소 지었다. 이를 세게 짓씹으며 부드럽게 웃는 표정을 꾸며 냈지만, 냉랭하게 빛나는 두 눈은 그저 섬뜩할 따름이었다.

    “아까, 다 죽여 놓을 걸 그랬어요. 정말…….”

    “뭐?”

    “내 실수예요. 재진 씨에게만 정신 쏟느라, 거기에 누가 있는 줄도 몰라서……. 신중했다면 알아채고 죽일 작정으로 이능을 흩뿌렸을 텐데. 아니, 애초에 내가 퇴근만 좀 일찍 했더라도……. 집 안 보안 시스템 고장 난 거 하루만 일찍 알았어도…….”

    “아닙니다, 서의우 씨. 진정하십시오. 이미 벌어진 일이고, 지금은 다 지난 일일 뿐입니다.”

    “나 지금 최대한 진정하려고 노력해서 이 정도인 거예요.”

    서의우가 기다란 눈을 접어 사르르 눈웃음 지었다. 분명 웃고는 있는데, 서의우는 아까부터 계속 웃고 있는데, 저 얼굴을 보고 있자면 목이 바짝바짝 타는 것 같았다.

    “당장 가서 마태오 그 새끼 찢어발기고 오고 싶은데, 시스템 고장 난 집에 재진 씨 혼자만 두고 갈 수 없어서 참는 거라고요.”

    “……죽이는 건 안 됩니다. 마 소령은 죽임당할 만한 짓을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운 나쁘게 발각당했을 뿐, 그자는 무고한 사람입니다.”

    “그걸 모를까요, 내가? 알지만 난, 그 새끼가 재진 씨 만졌던 손 불로 지지고 갈기갈기 찢어서 짐승 먹이로 줘 버려도 분이 안 풀릴 것 같은데…….”

    그가 성마른 손길로 흐트러진 흑발을 이마 뒤까지 쓸어 넘겼다. 커다란 한숨을 거칠게 한차례 토해 낸 뒤, 젖은 손으로 권재진의 얼굴을 붙들어 갈급하게 매만졌다.

    뺨을 쓸어내리고, 더 내려가 어깨를 만지고, 가슴을 쥐었다가 놓고, 팔, 허리, 다리까지, 온몸을 강박적으로 쓸어 만졌다. 그러곤 권재진의 몸뚱이를 들어 제 무릎 위에 올라앉도록 바짝 하체를 붙였다.

    “재진 씨랑 하는 가이딩, 재진 씨의 입술하고 혀, 목 조르는 거, 그거 전 인류 통틀어 나만, 나 혼자서만 아는 거였는데. 내 재진 씨를 이제 다른 누군가 침범했다는 게, 아…… 하하.”

    “서의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