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감사해요. 진짜 감사해요, 형.”
- 아니야. 금방 갈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자마자 눈을 감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저 말 한마디, 내가 있는 곳으로 바로 오겠다는 그 말 한마디에 서서히 정신이 일깨워졌다.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던 끔찍한 느낌 또한 옅어졌다.
그래, 내 발밑에 있는 것은 어둡고 질척한 늪이 아니라 단단한 바닥이었다. 아직도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끌어당기는 우울의 그림자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거웠지만 이를 악물었다.
아빠는 이제 없다. 우선 그걸 인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내 손으로 느꼈으므로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인정하자. 받아들여야 한다. 몇 번이고 되뇌다 겨우 눈을 떴다. 그제야 보고도 흘려보내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텅 비어있는 장례식장에 자리한 사람은 나와 비서님, 비서님과 이야기하던 남자와 간병인 아주머니가 다였다. 왔다 갔다 하며 텅 빈 제단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물건을 내려놓으면 바로 사라졌다.
나는 제단 가운데 놓인 사진을 마주하고 섰다. 옆에 자리한 장례식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때 제단을 얼추 다 채우고 한숨을 돌리던 남자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어… 아까 답을 정확히 못 들어서요. 상복 몇 벌이나 필요하신지.... 아, 그리고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장소와 날짜가 적힌 부고 문자 보내드리겠습니다. 지인분들께는 그걸 복사해서 보내시면 됩니다.”
나는 남자가 내민 핸드폰을 내려보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내 번호를 꾹꾹 눌러 입력한 뒤 건네주면서 누군가와. 아니, 아마 할아버지와 전화하느라 저만치 가 있는 비서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세 벌이요. 한 분은 여자이십니다.”
내 눈길을 느꼈는지 비서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눈을 마주하며 설정해놓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단축키를 눌렀다.
- 여보세요.
“...아버지. 저 진호예요.”
처음엔 아버지였다. 많이 지쳐 보이던 목소리는 내가 소식을 전하자 볼품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한참을 침묵하더니 어디냐고 물어왔다. 나는 병원 이름을 말해주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전화가 끊겼다.
- 응~ 웬일로 여러 번 전화했어?
두 번째는 엄마였다. 바쁘셨는지 세 번째로 걸었을 때야 전화를 받은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 밝은 어조는 내가 입을 열자마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럴 리가 없다며 중얼거리던 엄마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어디냐 물었다. 이번에도 나는 다른 말 없이 병원 이름만 말해주었다. 그리고 얼마간 울음소리가 계속되더니 예고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끊긴 건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 액정을 보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힐긋 확인하니 비서님이 무언가를 따지고 싶은 눈으로 나를 주시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덤덤히 그 눈빛을 받아냈다. 내가 할아버지와 한 약속 중에는 아버지와 엄마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조항은 없었다. 그건 아빠에게 해당하는 조건이었으므로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한동안 복잡한 표정으로 날 보던 비서님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지나가듯 할아버지도 오실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별말 없이 지나간 비서님의 반응을 보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세 번째로 전화를 한 대상은 회사 팀장님이었다.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돌아갈 수 없었기에 양해를 구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사실 가장 먼저 해야 했을 전화였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 나는 팀장님의 어떻게 된 일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야 문제를 자각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지. 다소 격양된 팀장님께 변명하듯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려다가 도로 입을 닫았다. 나의 아빠는 진짜 아빠가 아니었다. 호적상의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있는 채로 여기를 향해 미친 듯이 오고 있을 터였다. 나는 머뭇거리다 팀장님의 질책 어린 재촉을 듣고서 겨우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진호 씨와 매우 가까운 분이 많이 아프셔서 점심시간에 병문안을 갔는데 음… 돌아… 가셨다는 말이죠? 그래서 지금 장례식장이라는 거고요.
“...네, 팀장님.”
아니었다. 아니다. 단순하게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나에겐 가족인 사람이었는데 어떤 걸로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래서 지인이라고 해야만 했던 것이 비참했다.
- 후.... 일단 알겠어요. 안 그래도 좀 많이 당황하긴 했는데 평소에 진호 씨 열심히 하는 거 봐왔으니까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사정이 사정인만큼 오늘 일은 무단결근으로 처리하지는 않을게요. 내일은 출근하는 거죠?
“아… 저. 그게.... 그게 제가 여기 있, 어야 할 것 같아서요. 정말 죄송한데요, 팀장님. 혹시 3일 만이라도 휴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 .... 진호 씨, 이런 말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는 있는데 보통 가족이 상을 당한 게 아닌 이상 따로 휴가를 드리거나 할 수는 없어요.
안타까움이 배인 말을 들으며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주먹을 말아쥐었다. 결국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동정에 호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제가, 팀장님. 그, 제가 자란 가정환경이 조금 특별해서요. 부모님 두 분보다는 지금 돌아가신 분께서 저에겐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인데, 이분께 따로 가족이 없으셔서요. 제가, 제가 상주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말을 이을수록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이유 모를 절망감이 자꾸 나를 무릎 꿇렸다.
묵묵히 듣던 팀장님은 서류상 가족이 아니기에 상에 관련한 휴일을 받을 수는 없을 거라 말하면서도 회사에 양해를 구해 3일 동안 쉴 수 있도록 처리해주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몇 번이고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어느새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힘들었다. 뭘 했다고 벌써 지쳤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기분이었다. 아빠와 나는 이런 구차한 변명 없인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였다. 나의 유일한 가족과의 유대는 정말 내 추억 속에만,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에겐 이제 아무도 없었다. 가까스로 붙잡았던 정신이 다시 아득해지려고 했다.
그러나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호야.”
“김진호 씨.”
힘없이 돌아본 곳에는 상복을 들고 선 남자와 단정한 차림의 민선우가 서 있었다. 민선우는 나를 향해 잔잔히 웃고 있었고, 남자는 본인과 같은 타이밍에 나를 부른 민선우를 힐긋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보며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무너질 것 같은 와중에도 한 방울 이상 흐르지 않던 눈물이었는데 이상하게 민선우를 보자마자 왈칵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코끝이 아려오는 것을 무시하며 이를 악문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넨 사람은 남자였다. 서둘러 신발을 벗고 내게 온 남자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내밀며 말했다.
“상주님, 옷은 저 안쪽 방에서 갈아입으시면 되십니다.”
반사적으로 옷가지를 받아들고 남자가 가리킨 쪽을 확인했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일어나다가 팔을 부축하는 손길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가자. 옷 갈아입는 거 도와줄게.”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나는 침을 삼켰다. 울렁이는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왜 민선우만 보면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까. 여기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내가 부른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내 전화 한 통에 바로 달려와 준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나는 내 손에 들린 옷가지를 가져가 들어주는 녀석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한 자세로 주춤주춤 방을 향해 걸었다. 금세 가까워진 문을 열고 스위치를 찾아 어두운 방을 밝힌 후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민선우가 품에 안고 있던 나를 조금 떨어트리더니, 들고 있던 옷들을 살피다 그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게 진호 너한테 맞을 것 같다. 잠깐 들고 있을래? 나머지 저기 걸어두고 올게.”
그저 그뿐이었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었다. 괜찮냐는 위로도, 힘들겠다는 공감도, 하다못해 무슨 일이냐는 질문도 아니었다. 그냥 남은 옷을 걸어놓을 동안 내가 입을 옷을 들고 있으라는 지극히 아무것도 아닌 말이었다.
근데 나는 그 말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누가 보면 민선우가 천하의 몹쓸 말이라도 한 것인 양 바닥에 엎어져 엉엉 울었다. 그리고 민선우는 말없이 다가와 옆에 앉아 있다가 내 울음이 그칠 때쯤 휴지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