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코와 입을 다 덮는 산소호흡기를 한 아빠에겐 영양 공급을 위한 링거줄과 심박수 체크를 하기 위한 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활짝 웃으며 힘차게 걸어 들어갔다.
“하하, 이렇게라도 운동하는 거죠. 아주머니 얼른 점심 드시고 오세요.”
“아유, 여기 물이라도 좀 마셔요. 오늘도 한 50분쯤 오면 되죠?”
“네. 식사 맛있게 하고 오세요.”
짐을 챙겨 나가시는 아주머니를 향해 인사를 하고 보조 의자에 앉았다. 주섬주섬 어제저녁에 먹다 남긴 배달 음식 용기를 열며 아빠를 향해 오늘은 좀 일어나 계시지, 하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말하고 나서 혹시나 해서 힐긋 봤지만, 눈은 감겨있었다. 그게 못내 슬퍼서 고개를 숙이고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이틀. 이번에야말로 정말 잠깐 잠만 자고 일어날 것처럼 인사했던 아빠는 이틀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다시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통보했다. 당연히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최태혁도 그에 대해 별말 하지 않았다. 다만 나 때문에 퇴근 시간이 애매해진 경호팀장님에게 교대 근무를 지시했을 뿐이었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쪼개면서 삐, 삐 규칙적으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아빠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이 기계음과 온기가 전부였다. 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괜히 더 밝게 한 인사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하나도 배고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어나셨을 때 살이 빠져 있으면 속상해하실 거라고 되뇌며 밥을 한 숟가락 가득 펐다. 그걸로도 모자라 입이 가득 차도록 반찬도 욱여넣었다. 그리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아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늘 드디어 발표 자료를 완성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야 했다. 아빠의 눈이 떠져 있었다.
“눈. 아빠. 아빠 일어났어요? 일어나신 거예요?”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모르며 아빠에게 허리를 숙이려다가 말하기 불편할 정도로 입에 꽉 들어찬 음식을 그릇에 얼른 뱉어냈다. 그리고 다시 아빠를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아주 천천히 깜박이는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아빠, 저 여깄어요. 들려요? 안 들려요? 잘 안 보이나?”
나는 크게 외치며 더듬더듬 아빠의 손을 찾았다. 곧이어 잡히는 손엔 여전히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아주 미약하게 마주 잡아 오는 것이 느껴졌다. 흔들리던 눈동자가 멈췄다. 산소호흡기 안에서 입이 움직였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입에선 쇳소리밖에 나지 않았지만, 모양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진호야.’
아빠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네, 아빠. 저 여깄어요. 아빠 바로 앞에 있어요.”
이상했다. 아빠가 일어나서 기뻐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아냐. 아니야. 뭔지 모르지만 계속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초점이 흐린 눈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며 더 크게 소리쳤다.
“아빠, 들려요? 저 여깄어요. 보여요?”
그 절박한 외침 뒤에 흔들리던 동공이 드디어 나를 잡아냈다. 흐렸던 초점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아빠가 웃었다. 눈이 휠 만큼 아주 활짝 웃더니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동시에 내 손을 쥐고 있던 손에서 완전히 힘이 빠졌다.
곧이어 믿기지 않는 소리가 들렸다.
삐-
“아빠...?”
이게 뭐야. 이게 뭐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추운 것도 아닌데 몸이 덜덜 떨렸다.
어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사고가 마비되었다. 나는 스러지듯 뒤로 주저앉아 버린 몸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나 병실을 뛰쳐나갔다.
“간호사 선생님! 여기 좀, 여기 좀 와주세요! 선생님!”
내 절규가 병실 복도를 울렸다.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 몇 분이 놀라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몸을 돌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곧이어 간호사 선생님들이 따라 들어오다가 아빠를 보자마자 한 분은 다시 나갔다. 남은 것은 평소 나를 많이 챙겨주셨던 연륜 있는 간호사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넋을 놓고 발만 동동거리는 내 어깨를 잡고 아빠 곁으로 데려가며 말했다.
“진호 씨, 얼른 손잡아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사람은 귀가 제일 마지막에 닫힌대요. 그러니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 있으면 지금이라도 얼른 하세요. 꼭 해드려야 하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얼른 하세요.”
아아. 간호사 선생님이 내 손과 아빠의 손을 겹쳐주었다. 아직 따뜻한 손. 숨이 가쁘고,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더듬더듬 말을 시작했다.
“아빠,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 제가. 제가 너무 늦게,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늦게 알아서 죄송해요. 어, 그리고. 그리고 어.... 저번 생에선 아예 찾아오지 않아서 죄송해요. 아무것도 모르고 미워해서, 그래서 죄송해요. 감사해요. 다, 다 너무 감사했어요. ”
횡설수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 채 되는 대로 떠들고 있는 틈에 소란을 전해 들은 간병인 아주머니가 오셨다. 화들짝 놀란 아주머니는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회장님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할아버지 쪽에 연락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 나가셨던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공허한 눈빛으로 본인을 보는 내게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신 의사 선생님께선 아빠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셨다.
나의 사랑한다는 중얼거림 위로, 아빠의 사망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의 온기가 가실 때까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온기가 사라져가는 감각이 끔찍했으나 그래도 온기가 남아있는 곳을 찾아 집요하게 손을 가져다 대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기다려 주시다가, 내가 말없이 몇 발짝 떨어져 나와 자리에 주저앉자마자 침대로 다가가 아빠의 자세를 바르게 정리해주셨다.
그 뒤는 폭풍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폭풍의 눈이었다. 할아버지의 비서분이 오고,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오늘 아침에 처음 인사했던 경호원분이 와서 뭐라고 말했지만 그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나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간병인 아주머니셨다. 아주머니는 뭐라 뭐라 말하는 대신 조용히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걷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 걸어서 도착한 곳은 병원 지하의 장례식장이었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복도가 생경했다.
몇 걸음 더 걸어 마주한 모니터에 떠 있는 이름이 믿기지 않았다. 이민영. 참 얄궂게도 아주 잠깐이라도 부정할 수 없도록 이 순간 떠 있는 이름은 아빠의 본명이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장례식장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안에서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와 할아버지의 비서분이 책자를 보며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시 자리를 비우셨는지 옆에 있어 주시던 간병인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추웠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예령이었다. 그러나 예령이에게 전화할 수는 없었다. 예령이는 내 인생을 망친 내 가족, 특히나 아빠를 싫어했다. 결국엔 와서 내 곁을 지킬 것을 알지만, 그와 동반된 비난을 견딜 자신이 지금은 없었다. 설득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주 잠시 다른 친구들을 떠올렸으나 그것 또한 안될 일이었다. 관련된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을 갑작스레 부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고, 처음부터 설명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다가 이름 하나를 입력했다. 나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와줄 수 있냐고 물을 만큼 가까운 사람. 최태혁의 이름을 터치하고 통화를 눌렀다. 수화음이 울리고, 숨을 멈출 만큼 긴장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두 번의 시도에도 그는 끝내 받지 않았다.
절망하려는 스스로를 붙들고 다른 이름을 찾았다. 그래, 이번엔 내가 가장 친해졌다고 느꼈던 사람에게 걸기로 했다. 물리적으로도 가까이 있을 테니 잠깐이라도 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차례대로 남궁 호와 후의 이름을 입력하고 각자 두 번씩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일이 바빠서였을까, 그들도 끝내 받지 않았다.
이미 바닥인 것 같았던 기분이 더 밑으로 가라앉았다. 밖에서 서로를 부르며 챙기는 다른 가족들의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래, 셋 다 바쁜 사람들이잖아. 지금은 일하는 시간이잖아. 그래서 이번엔 지금 이 시간에도 전화를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의 이름을 입력했다. 가장 편했던 사람이니 와달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이번엔 짧은 수화음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응.
“어... 어디예요?”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들리는 바깥 소음이 심상치 않아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수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정새빈은 그것만으로도 뭔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건지 아까와 달리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 김진호. 너 무슨 일이야.
그러나 나는 그냥 괜찮다고 말했다. 별일 아니라고. 보이진 않겠지만 고개까지 저어가며 부정하고 재밌게 놀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오는 전화는 일부러 받지 않았다. 혹시라도 또 오면 받으려고 했으나 두 번 울리지는 않았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남자와 할 말을 다 마쳤는지 비서님이 나에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간단한 장례식 절차에 대한 설명 뒤로 상복을 입겠느냐는 질문이 들렸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분이 한 벌만 준비하면 되겠냐고 되물었다. 나는 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였다.
아버지가 오면 아버지는 상복을 입어야 하나. 엄마가 온다면 엄마는 입어야 하는 건가. 아니, 그 두 사람은 오지 않을 테니 생각할 필요가 없나. 아니, 아무리 할아버지와 아빠가 약속했다지만 두 사람을 불러야 하는 거 아닐까. 공허했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싫어. 생각하기 싫어. 나는 지금 너무 힘들단 말이야. 슬퍼서 죽어버릴 것 같단 말이야. 누가 대신 좀 해줘. 나를 좀 내버려 둬. 그런 무책임한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잊었던 사람이 떠올랐다. 항상 명확한 답이 있는 사람. 내게 애정이 있다고 했던,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받기만 해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
홀린 듯 민선우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얼마간 수화음이 울리고, 아 이번에도 틀린 건가 싶었을 때 아주 다정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 여보세요.
“혀, 형. 저 진호인데요. 저, 저 진호인데.”
- ...진호야?
가쁜 숨을 누르며 낸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놀라 되묻는 민선우를 향해 아까부터 계속 얘기하고 싶었던, 너무나 하고 싶었던 부탁을 꺼내 들었다.
“지금, 지금 좀 와주실 수 있어요? 제가요. 제가, 지금 혼자 있는 게 너무 버거워서. 그래서요.”
그에 대한 민선우의 대답은 아주 짧고 명확했다.
- 바로 갈게, 진호야. 지금 어디야?
그리고 내가 간절히 원했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