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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79)화 (79/102)
  • #079

    “래터 들어와서 처음 만났다고?”

    이겸이 재차 질문하자 도아는 뭘 했던 말을 또 하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왜요?”

    “…….”

    그럼 차재우는 언제 서도아를 봤던 거지? 이겸은 속으로 생각하지 않고 곧장 꺼내 물었다.

    “재우는 너 어릴 때 봤었다는데. 나름 귀여웠대.”

    “저 어릴 때요?”

    도아가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끔뻑이다 이내 알아챘다며 수긍했다.

    “아아, 저희 오빠가 제 옛날 사진이라도 보여 줬나 보죠.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저 어릴 때 사진 가끔 보면 제가 봐도 진짜 귀엽더라고요.”

    “아, 그래서인가.”

    재우가 지난날 했던 말의 뜻을 납득하려는 순간, 그럼 서도현도? 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둘이 아주 붕어빵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똑 닮았으니 어릴 때도 아마 마찬가지일 텐데 걔가 귀여웠다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응? 왜 웃어요? 아, 내 말 안 믿는 거죠? 저 어릴 때 진짜 귀여웠는데? 안 되겠다. 사진이라도 찾아 보여 줘요?”

    “아냐, 됐어. 믿을게.”

    서도아의 어릴 적 얼굴로 서도현의 모습을 겹쳐 보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떠들고 있다 보니 서도현이 로비로 걸어왔다.

    “오빠. 차재우는?”

    “재우는 좀 쉬겠대.”

    “…차재우가? 밥을 안 먹는다고?”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도아는 어이를 잃고 중얼거렸다. 어지간히도 어제 일이 고됐나 보다.

    “오빠. 걔 막 피 토하거나 그러진 않았지?”

    “응.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재우 몫은 따로 포장해 오자.”

    피의 유무까지 묻는 걸로 보아선 어제 이겸의 눈에서 흘린 피가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듯싶다. 그리고 이겸도 그가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어디 보약이라도 지어 먹여야 되나.

    이후 근처 식당에 도착해 음식을 먹길 한참, 도현이 불쑥 말했다.

    “재우는 이번 일에서 빠지기로 했어.”

    “…웅?”

    햄스터처럼 양 볼에 음식을 가득 넣고 우물거리던 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많이 아프대?”

    “아프면 쉬어야지. 그래, 재우는 쉬라고 해.”

    이겸이 빠르게 대답했다. 그만한 꽃을 거의 한 트럭이나 만들었는데 당연히 힘들지 않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어젯밤 도아가 활기차게 자신도 증거 찾는 일에 끼워 달라고 할 때 재우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휘말려 긍정한 걸 수도 있다.

    아무리 증거만 찾으면 되는 일이라 해도 따지고 보면 블러드 헌터의 뒤꽁무니를 쫓는 일이다. 거기다 크리처 사육장. 잠깐 본 것만 해도 열 마리가 넘는 수였다.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당연히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이겸은 그의 심정을 백번 이해했다.

    ‘살려 주세요.’

    반면 자신은…. 하고 싶진 않지만 꼭 그 말이 제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 같아서, 이미 봐 버린 이상 어떡하겠는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지.

    설령 그 사람이 죽었다 하더라도 이미 시작한 이상 이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 어쩌면 도현의 이능으로 몇 번 죽고도 살아남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조금은 옅어진 게 아닐까, 목숨이 달린 일에서도 이리 담대하게 구는 걸 보면 말이다.

    보통은 재우처럼 행동하며 몸을 사리는 게 대다수겠지. 서도아는 서도현의 동생이니 어찌저찌 예외라 치자.

    “도아 너도 빠질래? 재우 간호하는 게 어때?”

    은밀히 물어오는 도현의 제안에 도아가 멈칫하다 거절했다. 재우의 걱정에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자신조차 빠지면 또 이겸과 도현, 둘이서 사건을 해결할 텐데 그렇겐 못 두었다.

    “…내가 걔 간호를 왜 해? 하루 자고 나면 낫겠지. 난 괜찮아.”

    “그래.”

    딱히 도아를 말리진 않았지만 도현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귓바퀴의 피어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겸이 중얼거렸다.

    “도아도 곧 성인인데 알아서 하게 놔둬.”

    7년 전, 도아의 납치 사건 때문에 이런 안 좋은 일, 더더욱 블러드 헌터와 관련된 일을 꺼리는 건 이해하지만 그녀도 몇 년 뒤면 곧 성인이었다. 언제나 서도현의 그림자 아래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챙길게.”

    이겸의 말에 서서남매가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봤다. 그의 입에서 그런 문장이 나올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는 듯 말이다.

    “뭐. 왜. 밥이나 먹어.”

    “오빠 옛날에 그 뭐더라. 같이 사마귀 닮은 크리처 사냥할 때 제 뒤에 숨어 있던 사람 맞죠? 네? 그 윤이겸 맞죠?”

    “지금도 그렇게 굴어 줘? 못할 것도 없는데.”

    원하면 말만 하라는 이겸의 대꾸에 도아는 김이 팍 식었다.

    “뭐야, 재미없어. 이럴 땐 차재우가 있어야 재밌는데.”

    겸이 형이 변했다며 호들갑을 떨 차재우를 떠올리자 이겸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 사이로 도현이 나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겸아. 그럼 믿고 맡길게.”

    “…그러든가.”

    이겸은 퉁명스레 대답하며 음식 위로 고개를 숙였다.

    식사를 끝내고선 대량의 유리병을 찾기 위해 인근 공장들을 뒤졌다. 다행히도 재고가 있는 곳을 발견해 유리병의 값을 지불한 뒤, 트렁크에 잔뜩 실었다.

    “그냥 꽃집에서 얻을 걸 그랬나.”

    도아는 여전히 아프다고 식사를 거르기까지 한 차재우가 걱정되는지 중얼거렸다.

    방금 유리병을 구하기 위해 몇 개의 공장을 찾아 들른 것처럼, 재우가 없었다면 아마 꽃집들도 여기저기 찾아 돌아다니는 탓에 시간이 배는 소요됐을 테다.

    이겸이 그녀의 머리를 대충 토닥여 주었다.

    “예약 주문도 아니고, 꽃집에서도 그만큼의 꽃은 하루 만에 못 구해. 재우가 힘써 줘서 다행이지. 가서 고맙다고 말하자.”

    “네.”

    도아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아이였다.

    그리고 유리병을 한가득 품에 안고 도착한 숙소,

    재우는 도현이 포장해 온 음식들을 풀어 늦은 식사를 하며 밥풀이 튀어라 소리쳤다.

    “거기 가지는 손질해야 돼요! 아, 서도아! 거긴 노란색 꽃을 넣어야 어울리지. 도현이 형, 이거 어디서 포장해 온 거예요? 되게 맛있다. 배가 고파서 다 맛있게 느껴지는 건가.”

    “근처 식당.”

    ‘…얘 아픈 거 맞아?’

    유리병에 물을 담아 꽃을 꽂던 이겸은 문득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겸이 형. 거기에 파란색은 좀 아니죠. 분홍색 넣는 게 더 조화로울 거예요.”

    꽃에 진심인 재우 탓에 꽃꽂이 속도는 더더욱 느려지고 있었다. 도아는 언제 재우를 걱정했냐며 꽃을 팽개치고 투덜거렸다.

    “아, 계속 잔소리할 거면 네가 하든가!”

    “뭐? 그 많은 양의 꽃을 누가 만든지는 알아? 아이고, 삭신이야.”

    그 말에 도아가 또 입을 꾹 다물고 열심히 꽃꽂이에 매진하는 모습이 퍽이나 웃겼다. 그리고 서도현은….

    “야, 넌 왜 안 하냐? 빨리 와서 거들어.”

    “재우 약 사 오려고. 가는 김에 안약도 사 올게.”

    “…….”

    그 핑계인지 진심으로 걱정해서인지 일단은 탈출에 성공한 서도현과, 밥을 먹는 재우를 제외하고 이겸과 도아는 손이 부르트도록 꽃을 다듬었다.

    식사를 마친 재우가 합류하자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재우는 평소에도 꽃꽂이를 즐겨 했기에 손이 빨랐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진도가 끝나 갈 무렵, 이른 아침 볼일이 있다며 외출했던 배상우가 돌아오고 약국에 갔다 온 서도현도 돌아왔다.

    각자 필요한 약을 챙겨 먹은 후, 재우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련으로 향했다.

    ***

    “아유, 선생님. 이게 다 무슨….”

    “아하하! 이 사람아, 분위기 전환 분위기 전환! 내가 어제 둘러봤는데 영 인테리어가 별로라서 말이야. 꽃 같은 거 두면 화사하니 좋잖아? 아하하하하! 그렇지?”

    “아… 아, 네. 그렇긴 하죠.”

    배상우는 호탕하게 웃으며 관리소장의 등을 힘껏 두드렸다. 재우를 제외한 래터는 CCTV라도 설치하듯 구석 곳곳까지 빠진 곳이 없도록 이련 내부에 꽃병을 놓고 다녔다.

    “그런데 선생님, 이건 너무 갑자기….”

    “씁! 이 꽃들을 사는 데 내가 얼마나 돈을 들였는지 알아? 내 성의를 무시할 셈이야?”

    “아유, 당연히 아니죠. 여…여기도 꽃병을 하나 둘까요?”

    “…음, 두면 예쁠 것 같네.”

    사실상 차재우의 능력으로 꽃을 만든 뒤, 화병만 공수해서 꽂은 게 전부였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관리소장은 땀을 삐질 흘리며 쩔쩔맸다.

    이련의 관리소장이라는 직책이 제 아무리 높은 위치라 해도 배상우 또한 자경단에서 입지가 있다 보니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막 대하는 건 좀 껄끄러웠지만 원체 사람이 거리감 없게 구니 어쩌겠는가.

    배상우가 관리소장을 붙잡아 두고 있을 때, 2층에 화병 배치를 끝낸 그들은 1층에 내려와 일을 하고 있었다.

    “도아야, 장면이 끊겨. 여기도 하나 놔.”

    “여기요?”

    “좀 더 왼쪽. 응, 거기.”

    재우는 숙소에서 쉬고 있고, 도현과 도아가 이련 내부에 꽃병을 옮겼다. 그럴 때마다 유리병에 든 물이 출렁였다.

    사실상 재우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대놓고 만든 CCTV였다.

    이제 이곳에 발걸음 할 수상한 자를 찾으면 된다. 찾았다고 끝인 것도 아니고, 그의 뒤를 밟고 증거를 잡아야 하지만 이겸은 뭐가 됐든 7일 이내에 이 일이 마무리되길 빌었다.

    그 이상 결석하다간 학점이 내려가다 못해 F를 찍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도현이 이겸에게 다가왔다.

    “이제 됐어?”

    “혹시 모르니까 비품실에도 놓고 싶은데.”

    이겸은 배상우에게 건네받은 이련의 건물 안내도 곳곳을 확인하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지 능력으로 살폈다. 아주 잠깐이라도 능력을 사용하고 나선 도현이 사 온 인공 눈물을 꼭 넣었다.

    “비품실은 내가 놓을게.”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그곳은 직원 전용일 텐데?

    “관리소장 명령이라 하면 되지.”

    “거짓말을.”

    사기를 친단 말을 참으로 당당히도 하네. 게다가 아무리 소장 명령이라도 개인 공간일 텐데.

    “그래서 싫어?”

    하지만 도현은 어떤 짓을 해서라도 꽃병을 비품실에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게라도 놔.”

    지금은 물불 가릴 처지가 못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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