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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0)화 (80/102)
  • #080

    상의하에 도현이 비품실로 꽃병을 든 채 홀연히 떠났다.

    그때 관리소장과 이야기를 마친 배상우가 이겸의 어깨를 두드려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소장실에도 하나 놔뒀어.”

    “아까 확인했어요.”

    오직 자신만 볼 수 있는 CCTV가 잘 설치되고 있나 확인하던 도중 관리소장실에도 하나 있길래 배상우가 했겠거니 짐작했었다. 그가 혀를 차며 투덜댔다.

    “에이, 놀래 주는 맛도 없는 녀석.”

    모든 CCTV 설치를 마친 뒤에 이겸은 이련의 주차장에 있는 배상우의 밴에서 대기했다. 숙소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곳과는 거리가 먼 탓에 애써 설치한 꽃병들과 신호가 끊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서도현이 차에 올라탔다.

    “저녁은?”

    “별로.”

    이겸은 뒤로 최대한 눕혀 침대처럼 만든 시트를 원상 복귀하며 대답했다. 행동거지가 수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수상하다’라는 기준도 모호했고, 다들 자연스레 각자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아니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건가.

    “곧 영업 끝나. 근처에 먹으러 가자.”

    “그래. 끝나면.”

    이련은 일찍 영업을 마감한다. 오후 6시면 셔터를 내린다. 일반 백화점과 다른, 오직 헌터들만 이용하는 백화점이기도 해서 그런 방식으로 영업한다.

    이겸이 창밖으로 백화점 입구 너머를 살폈다.

    “좀 쉬어.”

    도현이 이제는 거의 습관처럼 이겸의 눈 위로 손을 올렸다.

    “한 시간에 10분은 무조건 쉬기로 했잖아.”

    그 10분 사이에 누가 왔다 가면 어떡하지 싶어 막무가내로 능력을 사용하긴 했다.

    어제 피를 쏟아 냈던 눈이다. 도현이 하루 만에 낫는다고 말은 했지만 오늘도 쉬지 않고 사용하느라 나아지긴커녕 악화만 될 지경이었다.

    이제 영업도 끝나 가니 이만 쉴까 생각하며 능력 사용을 해제했다.

    곧이어 셔터가 내려가고 이련 안에서 대기를 타던 배상우와 도아도 차에 올라탔다. 그날은 아무 소득도 없이 숙소에 들러서 재우를 태워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겸은 바람을 쐴 겸 잠시 밖에 나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그간 미뤘던 친구들의 연락에 답을 보냈다. 여전히 강태하에게서 온 문자나 전화는 없었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먼저 전화를 걸어도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음성만 들려오니 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해?”

    기척도 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급히 뒤를 돌자 서도현이 서 있었다.

    “네가 보이길래.”

    “그냥. 바람 좀 쐴 겸.”

    “잠이 안 와?”

    도현이 눈동자를 맞춰 왔다. 필시 제 눈 상태를 살피기 위한 행동이리라.

    “어제보단 나아.”

    “평소와 같다고는 말 안 하네.”

    “평소 같진 않으니까.”

    “잠깐 걸을래?”

    그의 말에 이겸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앞서 걸었다. 그 뒤를 도현이 따랐다. 늘 그랬듯 둘 사이에 일 얘기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제는 이 침묵이 더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이겸도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라 오히려 이런 고요한 정적이 훨씬 편했다.

    요즘은 날도 풀리고 해서 그다지 춥지도 않았고,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이련에 도착해 있었다. 숙소와 이련은 차로 고작 3분 거리라 걸어서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 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

    이겸은 이련의 근처 야외 나무 벤치에 털썩 앉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 시간에 누가 있을까 싶지만 이왕 온 김에 능력을 사용해 보았다.

    제 옆에 따라 앉는 인기척을 느끼며 샅샅이 이련 내부를 뒤졌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찰나 부스럭거리는 한 인영이 잡혔다.

    “소장님?”

    관리소장실에 불이 켜진 채 아직 그 주인이 남아 있었다. 업무가 덜 끝났나?

    이겸은 우선 그의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은 양심이 아려 왔다. 때문에 얼른 능력을 해제하려는 순간, 누군가 나타났다. 어제 오늘 이련을 탐방하며 직원들의 얼굴은 외워 두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구지?’

    소장과 한 남성은 입씨름을 벌이는 것 같았다. 아니, 입씨름이라기엔…. 소장이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겸은 가만히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을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차라리 입 모양이라도 보인다면 유추라도 할 텐데 이도 저도 아닌 위치에 서 있어 보이지가 않았다.

    “왜 그래?”

    “소장님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어.”

    그 말에 도현은 물끄러미 관리소장실이 있는 부근을 올려다봤다. 창이 나 있지 않은 터라 불이 켜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도현은 잠자코 이겸이 상황을 파악하고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렸다.

    이내 이겸이 눈을 뜨고.

    “갔어. 처음 보는 사람.”

    “소장은?”

    “아직 소장실.”

    도현은 셔터가 내려간 이련 입구를 빤히 쳐다봤다. 저기로 나오려나. 그도 아니면 배치도에서 봤던 뒷문으로 나올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일단 움직여 보기로 했다.

    “여기 있어.”

    굳이 셔터를 열고 나올 가능성은 적으니 이겸에게 앞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말한 뒤, 뒷문으로 걸어갔다.

    때마침 누군가 뒷문을 통해 급히 뛰쳐나왔다. 곧장 이능을 가동하며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의 얼굴을 확인하곤 동작을 멈췄다.

    “아저씨?”

    “뭐야, 네가 왜 여깄냐?”

    배상우였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서도현에게 물었다.

    “그보다 방금 나온 사람 못 봤냐?”

    “방금 나온 사람은 아저씨밖에 없어요.”

    도현은 주머니 속 나이프를 문지르며 고민했다. 이겸이 언급한 수상한 자가 앞문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다른 탈출구는 이곳뿐인데, 자신이 한발 늦은 걸까 아니면 그 수상한 자가 배상우란 걸까.

    이내 이겸이 ‘처음 보는 사람’이라 언급한 것과 배상우의 이능을 따져 보곤 나이프에서 손을 뗐다.

    “못 봤어요. 아저씨도 쫓고 있었어요?”

    “어. 너도?”

    배상우는 어기적어기적 도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보다 너. 방금 나 의심했지?”

    “조금은요.”

    도현은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이 짜식이! 날 몇 년을 보고도 몰라? 내가 그럴 사람이냐?”

    속상하다고 꾸중하면서도 어깨동무를 해 오는 배상우를 뿌리치지 않는 게 서도현 최대한의 믿음에 대한 표시였다.

    그렇게 이겸이 있는 앞문에 다다랐다.

    “상우 아저씨? 아저씨가 왜 여기….”

    이겸이 벤치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내가 할 말이다, 이놈들아. 방에서 쉬고 있는 줄만 알았더니 여긴 언제 왔대.”

    저녁을 먹고 좀 더 조사하기 위해 이련에 잠입해 있었건만 이 녀석들은 굳이 왜 온 건지, 원. 배상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거렸다.

    “아저씨도 저 안에 계셨어요? 못 봤는데….”

    이련 내부에 있었다면 이겸이 못 볼 리가 없다.

    “그게 내 능력이니까.”

    “능력이요?”

    배상우가 제 능력을 말해 주었다. 변신. 원하는 물건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잠입이란 본디, 낚시와도 같이 끝없는 기다림 끝에 물고기를 얻는 것이다. 배상우는 래터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이련에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 잠입과 은신에 특화된 능력을 이용해서 소장실 옆에 진득하니 죽을 치고 있었다. 어떠한 물건으로 변신해 동태를 살피길 한참, 마침내 단서를 잡아낸 것이다.

    “아, 소장실 문 밖 기둥 옆에 소화기가 하나 생겼더라니.”

    저녁을 먹고 온 사이 소장이 챙겨 둔 줄 알았는데 그게 배상우가 변신했던 건가. 이겸이 낮게 중얼거리자 그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무머머 뭐야? 어떻게 알아봤지? 감쪽같이 변신했는데. 소장조차 눈치채지 못했는데?”

    보통 사람들은 제 공간이 아니라 생각하는 곳은 인지가 희미하다. 이게 언제 생겼지, 싶다가도 이내 누군가 놓았겠거니 여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배상우는 건물 조사를 할 때 주로 제일 위화감이 없을 만한 소화기로 변신하곤 했다.

    “아뇨, 저도 누가 놓았겠거니 생각했어요. 아저씨 이능을 알기 전까진.”

    “아, 역시 그렇지? 하하. 내가 이 수법으로 들킨 적이 없었거든.”

    배상우가 머쓱하게 코를 긁으며 웃었다.

    “아저씨. 소장이 방금 누구와 대화했다는데 들었나요?”

    도현의 질문에 그가 진지한 낯으로 대답했다.

    “어. 들었지.”

    이내 씨익 웃으며 바지 주머니에 녹음기를 꺼내 흔들었다.

    “그리고 이 짓도 했지.”

    ***

    우선 이련에서 떠나, 안전한 곳에 자리를 틀고 녹음기를 틀었다. 안전한 곳이라 해 봤자 배상우의 밴 안이 전부였지만.

    “너 때문에 자경단이 찾아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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