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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44)화 (44/102)
  • #044

    딩동- 딩동-.

    이겸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인터폰 화면에 비친 얼굴을 확인했다.

    오늘은 서도아냐. 무슨 일일 퀘스트 깨는 것도 아니고 멤버별로 돌아가면서 오고 있어.

    그는 투덜거리며 현관문을 열어 줬다.

    “오빠! 이거! 빨리 받아요! 저 무거워요!”

    도아가 대뜸 소리쳤다. 제 키만 한 큼지막한 대형 쿠션을 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이거 들고 여기까지 왔어?”

    “오빠가 여기까지 태워 줬어요.”

    “서도현이?”

    “네. 그러고 출근했어요.”

    “…일단 들어와.”

    대형 쿠션을 건네받고 도아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가 눈을 살살 접고 물었다.

    “왜요? 저희 오빠 안 와서 섭섭해요?”

    “해도 해도 무슨 그런 망언을….”

    이겸이 기겁하며 쿠션을 제 침대에 내려놓았다.

    “근데 웬 쿠션?”

    “선물이요. 오빠 침대에 누워 있는 거 좋아하잖아요. 아프면 침대랑 더 한 몸처럼 붙어 있을 텐데 생각나서 사 와 봤어요.”

    “아픈 거 변명인 거 알잖아.”

    “구색은 맞춰 주는 거죠.”

    이거 참, 고맙다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왜 왔는데?”

    “오빠.”

    도아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갈 기세로 진중하게 이겸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어제 재우를 보내기도 했고, 자기들끼리 무슨 회의라도 한 모양인데. 서도현한테 왜 화가 났냐, 어떻게 하면 풀 거냐, 그런 것들을 물어볼 게 안 봐도 뻔했다.

    이윽고 도아가 입술을 열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예요?”

    “…저쪽.”

    많이 급했는지 도아는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겸은 일부러 TV 볼륨 소리를 최대로 올려 주었다.

    얼마 안 돼 도아가 후련한 얼굴로 나왔다.

    “죄송해요. 첫 집들이에 못난 모습 보였네요.”

    “급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신경 쓰지 마.”

    “그럼 오빠 질문 하나 할게요.”

    아, 이제 묻는 건가. 이겸은 사실대로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특히나 그의 동생인 도아에겐 더욱더.

    서도현에게 화난 점을 설명하라면 백날 말해도 모자랐다. 우선은 그와 만났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운을 떼야 하는데 적어도 서도아에게 서도현이 자신을 몇 번 죽였다는 말은 절대 말할 것이 못 됐다.

    서도현에게 역린이 있다면 그건 서도아라 생각했다. 넓은 범위로 래터도 포함하고. 제 동생에게만은 자신이 기억도 못 하는 사람을 죽이고 다녔단 걸 숨기고 싶겠지.

    이겸도 그가 짜증 나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도아가 뭔 죄인가 싶기도 하고 괜히 떠들었다가 오빠가 저지른 일로 연대 책임감을 느끼게 된 도아가 자신을 죄책감 어린 눈으로 보는 것도 싫었다.

    그 일로 아무나에게 동정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차피 답해 줄 생각도 없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도아에게 답했다.

    “그래. 뭐가 궁금한데.”

    도아가 손톱을 잘근 뜯으며 엄중하게 물었다.

    “여기 근처에 카페 있어요?”

    “…너 진짜 뭐 하러 온 거야.”

    이겸은 결국 도아를 데리고 집 근처 카페로 나가 그녀가 즐겨 먹는 흑당버블티를 사 건네주었다.

    “어제는 떡볶이, 오늘은 음료. 학생 둘이서 내 지갑 털기로 작정했어?”

    도아가 버블을 한 모금 머금고 우물거렸다.

    “에이, 그냥 오빠 보고 싶어서 온 거죠. 그리고 떡볶이보다 이게 훨씬 싼걸요? 걔 거기에 치즈도 추가했죠?”

    귀신인가. 어떻게 알았지.

    “차재우야 뻔하죠. 먹을 거에 사족을 못 쓰니까. 주먹밥 안 시킨 게 용하네. 좀 걸을래요?”

    “추운데. 어디 들어가면 안 돼?”

    “생각이 많을 땐 산책하면서 기분 전환해야죠!”

    카페도 들어가서 먹자니까 굳이 굳이 테이크아웃을 고집한 이유가 있었다.

    이거 어디서 겪어 본 상황인데…. 이겸은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꼭 서도현과 함께 고깃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음료를 테이크아웃한 뒤, 무작정 걸었던 때와 같았다.

    식사만 안 했을 뿐이지 남매가 하는 꼴이 똑 닮아 있었다. 그리고 말없이 앞만 보고 걷는 것도.

    불쑥 도아가 뒤돌아 물었다.

    “좀 힐링 돼요?”

    “서도현이 없는데 뭔들 힐링이 안 될까.”

    저도 모르게 말하다 아차 싶어 넌지시 도아를 살폈다. 그래도 제 친오빠인데 너무 앞에서 욕을 했나 염려됐다. 하나 도아의 반응은 태평했다.

    “그건 그렇죠. 저희 오빠가 없으면 지나가던 잡초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요.”

    거기다 한 술 더 떠 하는 말은 친동생치곤 냉담한 반응이었다.

    “아, 물론 이건 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 생각을 말한 거예요. 저도 이해해요. 오빠가 좀 싸가지가 없어야죠.”

    일이 있어 서도아가 서도현과 함께 협회에 가게 되면 사람들은 둘을 흘끗거리며 뭔가를 수군거리고는 했다.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면 반 이상이 서도현의 욕을 하고 있다.

    “저희 오빠는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아마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예요.”

    때문에 이겸이 했던 욕들은 도아에게 욕 취급도 받지 못했다. 이겸이 안심한 눈초리로 중얼거렸다.

    “넌 성격은 걔 안 닮아서 다행이다.”

    외모도, 하는 말도, 평소 습관들도 모두 비슷하지만 서도현에 비해 서도아가 융통성도 인내심도 배려도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없었으면… 이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야 당연하죠.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있는데. 저렇게 행동하면 나도 욕먹겠구나 싶었죠.”

    “…….”

    “오빠가 한 행동을 전부 반대로 하면 욕먹을 일도 없어요.”

    “그거 참… 다행이다?”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지 몰라 말끝을 물음표로 매듭지었다. 그때 도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으, 춥다. 추운데 차가운 음식 먹으니까 더 추워요.”

    “그러게 안에서 얘기했으면 좋았잖아.”

    이겸은 추운 겨울 외출을 할 때 필수적으로 챙기는 핫 팩을 내밀었다.

    “헐, 주머니에 계속 손 넣고 있더니만 이런 귀한 게 들어 있었구나. 치사하게 혼자만 쓰고 있었어요?”

    “달란 말 안 했잖아.”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도아는 잠깐 손을 녹이다 핫 팩을 제 목 언저리에 가져다 댔다.

    “아으, 따뜻해.”

    “찜질하냐. 얼른 쓰고 넘겨.”

    “동생을 위해 이것도 못 줘요?”

    “응. 갖고 싶으면 서도현한테 사 달라 해. 그리고 너보다 내가 더 추위 많이 타.”

    도아가 입을 비죽이며 다시 핫 팩을 넘겨주었다. 이겸은 혹여나 뺏길까 잽싸게 제 주머니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와, 진짜 가져가네.”

    “내 거 내가 가져가겠다는데 왜. 겨울 핫 팩은 안 되지만 여름에 미니 선풍기 정도는 양보해 줄게.”

    “더위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나 봐요? 저희 오빠랑 똑같네.”

    이겸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무슨 그런 욕을….”

    도아는 괘념치 않고 웃어넘겼다.

    “겸이 오빠. 근데요.”

    “또 왜.”

    “저희 오빠한테 왜 화났어요?”

    “…….”

    또 화장실이 가고 싶다거나, 카페가 어디냐는 둥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나 요구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물어 왔다.

    “말해 주기 싫어.”

    “얘기는 대충 들었어요. 특별 대우를 원했다던데?”

    “그 새끼가 진짜 그래?”

    이겸의 눈에 핏대가 섰다. 도아가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물론 저흰 다 안 믿어요. 당연히 저희 오빠가 지레짐작한 거겠죠.”

    “…….”

    “그거 때문에 화난 거라면 저희 오빠도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사실 그 쿠션도 제가 아니라 오빠가 고른 거예요.”

    “갖다 버려야겠네.”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이겸이 아는 서도현은 그런 일로 반성할 사람이 아니다. 서도아가 제 앞에서 그를 예쁘게 포장하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에헤이! 또 그런다. 사람 성의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걔한테 성의라는 게 있나?”

    “보기완 다르게 저희 오빠 은근 여려요.”

    “…서도현 말하는 거 맞지? 혹시 삼 남매거나?”

    도아가 너무하다며 이겸을 툭 쳤다.

    “저희 둘뿐이거든요.”

    “어. 미안.”

    이겸은 그녀의 정수리에 핫 팩과 함께 손바닥을 올려 쓰다듬어 주었다.

    “정전기 생겨요!”

    “따뜻하고 좋지 않아?”

    “전 추위 많이 안 타서 괜찮아요.”

    그에 이겸은 다시 핫 팩을 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말했다.

    “아무튼 어제 오늘 너희가 서도현을 위해 찾아온 건 좋은데, 내일부턴….”

    “무슨 소리예요! 저희 오빠 때문이 아니라 둘이 화해하길 바라서 찾아온 거예요.”

    도아가 수줍게 투덜거렸다.

    “겸이 오빠도 좋으니까 둘이 화해하길 바라는 거죠.”

    아, 그런 거였나.

    “음, 고맙다. 근데 오늘은 이만 돌아가. 추우니까 택시비 줄게. 택시 타고….”

    “오빠는!”

    지갑을 뒤적이는 이겸의 말을 싹둑 자르고 소리쳤다.

    “오빠는 저희 싫어요? 막 귀찮아요? 너무 철이 없나 우리가?”

    이겸은 도아의 이마에 가벼운 딱밤을 날렸다.

    “싫고 귀찮으면 만나 주지도 않았어. 떡볶이나 음료도 안 사 줬고.”

    “철들었단 말은 안 해 주네.”

    “결석하는 학생한테 그 말은 사치지.”

    “요즘은 꼬박꼬박 나가요. …크흠! 아무튼 둘이 잘 화해했으면 좋겠어요.”

    비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만약 화해한다 해도 내가 먼저 굽히고 화해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난 잘못한 거 없으니까. 서도현 쪽에서 사과하지 않는 이상 먼저 연락하거나 할 일은 절대 없을 거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서도현이 절대 먼저 굽히고 들어올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걔 성격이라면 제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겠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여기는 부류는 뻔했다.

    타인과 싸워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타인이 잘못했고, 자신은 언제나 옳았다. 그렇기에 사과보다는 타인을 설득하려 한다. 굉장히 이성적으로 굴고 이해하는 척하지만 상대를 전혀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부류였다.

    “그건 괜찮아요. 제가 잘 말해 볼 테니까요. 전 오빠들이 이전처럼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이전처럼?”

    이겸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한국어인데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아가 해맑게 웃었다.

    “네. 이전처럼.”

    “…우리가? 친하게? 이전처럼? 무슨 말이 그래.”

    “왜요. 둘이 친하게 지냈잖아요. 볼 때마다 붙어 다니고, 속닥거리고, 크리처 사냥도 같이 나가고, 저녁도 둘이서만 먹을 때도 있고, 오빠 대학 강의 끝나면 저희 오빠 차 타고 같이 사무실로 온 적도 많잖아요.”

    그게 친한 거지 뭐가 친한 거람. 도아가 툴툴거리며 설명했다.

    이겸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친한 거라고?

    협회 사건 이후 조금 가까워졌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항상 붙어 다닌 건 서도현이 저를 쫓아온 거였고, 속닥거린 건 서도현의 이능인 시뮬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어 그런 거고, 크리처 사냥은 어쩔 수 없이 어울려 준 거고, 식사는 사냥이 끝나고 사무실에 들르기 귀찮아 바로 저녁만 먹고 헤어진 거였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고 찾아온 그를 무시할 수 없어 함께 차를 탄 것뿐이다.

    이게… 친한 거라고? 그보다 재우와 산하 형도 이런 시선으로 우리를 본 건가? 단순히 친구끼리 다툰 거라고?

    이겸은 지금까지 도현과 있었던 일을 곰곰이 회상했다. 최근 자주 붙어 있긴 했지. 미간을 좁혔다.

    ‘그렇네.’

    남들 시선으론 그렇게도 보이는구나.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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