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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42)화 (42/102)
  • #042

    다음 날, 이겸은 사무실에 오지 않았다.

    몸이 아파 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누가 보아도 핑계인 게 뻔했다.

    “겸이 형, 우릴 피하는 거 아니야?”

    “다음 주엔 나오겠지. 아니면… 병문안을 갈까? 어차피 집 주소는 알고 있잖아.”

    서도아의 제안에 재우가 눈을 반짝이며 양손에 꽃을 피워 냈다.

    “헉, 좋다. 그럼 선물로 뭐 챙겨 가지? 아, 우선 꽃. 야, 서도아! 이 꽃이 예뻐, 이 꽃이 예뻐? 얘 꽃말은 행복이고, 얘 꽃말은 불사!”

    “옆에 그건 꽃이 아니라 나무인데?”

    “응. 노송나무! 불사라는 꽃말이 좋잖아. 병문안에 어울리지 않아?”

    꽃이 화려하고 예뻐서 거기에 시선이 가는 것뿐이지 사실 재우의 능력은 꽃 피우기가 아닌 식물을 마음대로 길러 내고 다루는 능력이다. 여러 식물을 다루는 능력은 이런저런 상황에서 꽤나 유용하게 사용되곤 했다.

    “아무 꽃이나 해. 겸이 오빠 아프다는 거 핑계일 게 뻔하잖아.”

    “알아. 그래도 구색은 맞추자는 거지.”

    “저기….”

    남궁산하가 할 말이 있는지 도아와 재우의 대화를 끊고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꼭 다 같이 가야 할까?”

    “…….”

    “…….”

    모두의 시선이 소파 끄트머리에 발을 걸치고 누워 있는 서도현에게 쏠렸다. 그의 부어오른 뺨이 어제 이야기가 잘 안 됐다는 걸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마스터는… 사무실에 남는 걸로.”

    “그래, 오빠. 우리끼리 가서 겸이 오빠랑 얘기 잘 마치고 올게.”

    도현이 피로한 눈을 감았다 떴다.

    ‘특별 대우라도 해 달란 거야?’

    주먹은 쌀쌀맞았다. 제 뺨을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지만 굳이 피하지 않았다. 입 안에 피 맛이 돌았다. 도현은 혀로 상처 난 잇몸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그 말에 화가 난 건가? 하지만 맞는 말이지 않나?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제 할 일을 한다. 그땐 이겸이 나서는 게 제일 적절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사람이 아침에 스스로 눈을 떴다고 칭찬을 받나? 식사 후 양치를 했다고? 외출 후 손을 씻었다고? 삼시 세끼 밥을 꼬박 챙겨 먹었다고 칭찬을 받나?

    그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윤이겸의 일이었을 뿐.

    서도현은 아직도 윤이겸이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 말이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그나마 좀 가까워졌는데 이런 식으로 또 멀어지네. 도무지 이겸과는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었다.

    ‘성격 차이인가?’

    “난 여기 있을게. 형이 애들 데리고 갔다 와.”

    “그것도 좋은데, 그것보다는 한 명 한 명 따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산하가 의견을 제시하자, 재우가 물었다.

    “왜요?”

    “다 같이 갔다가 함께 문전 박대 당하면?”

    “어… 겸이 형이 병문안으로 선물까지 싸 들고 온 사람을 문전 박대 할 인품은 아닐 텐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뭐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남궁산하의 작전은 이러했다.

    “오늘은 재우가 가 보고, 안 되면 다음 날은 도아가, 그다음 날은 내가 찾아가 볼게.”

    “굳이 그렇게까지요? 오늘 다 같이 가요! 아, 마스터는 빼고.”

    재우가 정성 들여 키워 낸 노송나무를 화분에 심으며 반박했다. 하지만 남궁산하는 기각했다.

    천하의 제갈공명도 유비의 삼고초려에 넘어갔다. 본디 귀한 사람을 제 편으로 만들려면 그만한 시간과 노력, 정성을 들여야 하는 법.

    “전 찬성이요. 한 명 한 명 따로 찾아가서 각자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둘만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말도 있으니까.”

    “으음, 그렇다면야….”

    도아가 남궁산하의 작전에 힘을 실어 주자 재우는 입을 씰룩이며 끄덕였다.

    “그럼 가 볼까? 내가 태워 줄게!”

    차 키를 챙기며 남궁산하가 벌떡 일어섰다.

    “부탁 좀 할게. 형.”

    그리고 도현에게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응! 내가 군 휴가 끝나기 전까진 겸이랑 많이 대화해 볼게!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도 물어보고!”

    “이제 산하 형도 이겸이라 안 부르고 겸이라고 부르네요!”

    “헛…! 나도 모르게. 허락도 못 받았는데 함부로 호칭 줄여 부르면 화내겠지? 조심해야겠다.”

    “괜찮아요. 저희도 허락 안 맡고 막 부르는데요. 그런 걸로 뭐라 안 해요.”

    “그런 걸로 뭐라 안 한다고! 호의가 권리인 것처럼 굴면 안 돼! 분명 겸이, 아니 이겸이도 사실 호칭이 껄끄러운데 내색하지 않은 걸 수도 있어.”

    콧바람을 내뿜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남궁산하에게 재우는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까지? 너무 갔는데요?”

    “아무튼! 늦기 전에 어서 출발하자 재우야.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지금 시간대가 딱 좋아.”

    “네. 이제 다 심었어요! 죽지 않게 영양분만 더 챙기고요.”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 재우가 다급하게 심던 화분을 마무리했다. 피워 내는 건 자신의 능력이지만 거기서 끝, 죽인 걸 다시 살리는 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재우는 취미의 일환으로 늘 창고에 구비해 두던 흙과 비료를 화분에 담아 노송나무 뿌리를 덮고 톡톡 아기 달래듯 토닥여 주며 영양제를 챙겨 준비를 끝냈다. 양손으로 고이 화분을 들고 일어난 재우가 비장하게 말했다.

    “가요!”

    ***

    “앉아 있어. 내가 치울게.”

    “그래.”

    “눕지 말고 앉아 있으라니까.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화 안 되잖아.”

    “네, 아빠.”

    슬금슬금 침대에 올라가 누우려던 이겸은 강태하의 잔소리에 정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다 시선을 틀어 다 먹은 배달 음식을 치우는 강태하를 바라봤다. 어려서부터 친했기에 그의 성격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 챙겨 주기를 좋아하고, 다정하고, 배려심도 깊다.

    부모님들이 친구 사이라 꼬꼬마 시절부터 어울려 다니곤 했는데, 그때만 해도 이겸이 강태하를 졸졸 따라다녔었다.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답지 않은 어른 같은 눈빛에, 조막만 한 손으로 이겸의 흐르는 콧물을 닦아 주는, 또한 자신이 가진 장난감을 아낌없이 양보하는 그의 모습을 동경이라도 했던 것 같다.

    특히나 강태하가 제 자동차 장난감을 바닥에 내려놓고 조종해 보라며 어린 이겸의 손에 리모컨을 쥐여 줬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를 졸라 강태하네 집으로 향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때와 비교해서 현재 둘의 관계는 하등 달라진 게 없었다.

    강태하는 어릴 때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자라 여전히 이겸을 챙겨 주기 바빴고, 밖에서는 똑 부러지게 행동하는 이겸도 강태하에겐 제가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보란 듯 모두 맡겼다.

    함께 형제처럼 자랐으니 가족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강태하는 이겸에게 형이자 제2의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요즘 승태가 너 뭐 하고 다니는지 묻더라.”

    “주승태?”

    “응.”

    포장 용기를 비닐에 꽁꽁 싸 묶던 태하가 친구의 안부를 전했다.

    둘은 언제나 붙어 다니는 게 일상이었고, 다른 친구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둘의 친구들은 윤이겸에게서 연락이 없으면 강태하에게, 강태하에게서 연락이 없으면 윤이겸에게 언질을 넣었다.

    “걔는 왜 나한테 연락 안 하고.”

    이겸이 툴툴거리며 주승태에게 연락할 심산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저번에 만나자고 문자 보냈는데 네가 씹었다던데?”

    “응, 지금 확인했어. 요즘 좀 바빠서.”

    “뭐 하고 다니는데 바빠?”

    “그냥 뭐…. 이것저것.”

    강태하가 고심하다 물었다.

    “나한테도 말 못 해?”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괴물 잡고 다닌다고 말할 성싶으냐. 믿지도 않을 게 뻔할뿐더러 오히려 정신 병원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물론 강태하가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안다. 오히려 위험하다며 어떻게든 이 일에 연관되어 자신을 지켜 주려 애쓰겠지. 그렇기에 그를 더욱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응. 미안.”

    “의외네. 윤이겸이 나한테 숨기는 것도 다 있고. 이제 다 컸다고 비밀도 만드네.”

    “…그런 거 아니야.”

    서도현이 이런 말을 했다면 무슨 망언이냐며 욕부터 했을 이겸이지만 강태하에겐 언제나 물러졌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잘 챙겨 주던 강태하에게 의지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그를 찾고, 잘못한 게 있으면 부모의 눈치보다 동갑인 그의 눈치를 보는 게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뭔데?”

    “나중에 설명해 줄게.”

    나중에 너도 크리처 세계로 넘어오게 되면.

    이겸은 속으로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괜스레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애초에 강태하도 말없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일들이 간간이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고 아무리 물어봐도 알려 주지 않았으면서 이겸이 비밀 하나 만들었다고 캐묻기나 하고. 그렇게 따져 보자면 강태하의 태도는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겸은 불쑥 래터를 떠올렸다. 아프다는 핑계로 사무실을 가지 않았다. 오늘 발생하는 CA 지역도 있던데… 알아서 하겠지. 이내 머리에서 래터의 일을 떨쳐 냈다. 저 없이도 잘 먹고 잘 살 놈들이다. 특히나 서도현은 더.

    협회 습격 사건이 있고 나서 조금은 가까워졌다 생각했다. 래터에 들어온 처음부터 서도현은 계속 이겸에게 다가왔었고 거절한 건 그였다. 이겸만 태도를 바꾸면 쉽게 친해질 수 있었겠지만, 도현을 향한 마음의 문이 살며시 열리려는 찰나 다시 또 굳게 봉인되어 버렸다.

    싸운 이유는 사소했다. 그저 그가 제 성질을 돋우는 말을 했고, 그에 화가 났을 뿐이다.

    ‘특별 대우라도 해 달란 거야?’

    뭐? 특별 대우? 퍽이나. 미친놈. 어떻게 하면 생각이 그쪽으로 흐르냐.

    예호와의 대련에서 편법을 쓴 일은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필 자신이 그 상대를 맡아야 됐고, 상처 입든 피를 토하든 5분이 흐르면 다 나으니까 상관없다? 짜증 나긴 하지만 백번, 천 번 양보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치자.

    문제는 그놈의 태도였다.

    ‘다들 걱정하고 있잖아. 축하해야 할 좋은 날인데 자꾸 분위기 망칠래? 애들도 네 눈치 보잖아.’

    언제는 같은 래터라며. 운명 공동체라며. 가족이라며.

    이제는 깨달았다. 단지 허울 좋은 소리일 뿐. 서도현은 제 좋을 대로 생각하는 종족이다.

    뭐? 좋은 날이니까 분위기 망치지 말라고? 애들도 내 눈치를 본다고? 웃기는 소리. 그럼 내 기분은? 다수결의 법칙에 따라 기분이 좋든 싫든 참아야 한다는 뜻인가?

    서도현이 정말 윤이겸을 래터라고 여긴다면, 이겸의 기분도 생각해야 옳았다.

    제 사람에겐 한없이 인정을 베푸는 서도현이다. 단기간 지켜본 이겸도 그가 래터를 대하는 태도와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확연히 알아챘다.

    그리고 서도현이 이겸을 대하는 건 그 중간 즈음 어딘가.

    그래놓고 특별 대우를 운운하는 꼴이 참으로 가소로웠다. 차라리 진짜로 특별하게 대해 줬으면 말을 안 해.

    ‘생각하니까 더 빡치네.’

    강태하와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코미디 영화를 시청해 어느 정도 풀린 화가 다시금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잉.

    그때 진동이 울렸다. 재우에게서 온 문자였다.

    [겸이 형! 집에 있죠? 아프니까 당연히 집에 있겠죠? 병문안 왔어요! 문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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