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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22)화 (22/102)
  • #022

    도현은 당당히 이겸을 끌고 협회에 등장했다.

    수군거리는 협회 사람들과,

    “어? 이겸 씨!? 윤이겸 씨 아닌가요?”

    웩. 이겸은 입술을 비죽이며 일부러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와! 반가워요!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요? 연락도 안 받으시고.”

    차단했으니까.

    눈앞의 권상혁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테스트실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권상혁은 지치지도 않는지 이겸의 뒤를 졸졸 따라붙었다.

    “래터에 들어갔어요? 제가 거기는, 합…!”

    순간 도현과 눈이 마주친 상혁이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아, 아니…, 하하. 전 이만 가 볼게요. 이겸 씨, 나중에 연락 줘요!”

    손을 흔들며 멀리 사라지는 권상혁에 이겸은 의외로운 눈길로 도현을 올려다봤다. 바퀴벌레 퇴치엔 소질이 있네.

    도현이 뒤를 돌아 이겸에게 물었다.

    “나 잘했지?”

    “뭐가?”

    “물리쳐 줬잖아.”

    “너 어디 아파?”

    그는 이겸의 손을 쥐고 제 이마에 가져다 올렸다.

    “왜? 아프면 걱정해 주게?”

    “미쳤나. 평생 아파서 골골대면 좋겠는데.”

    이겸은 더러운 게 묻었다며 손을 탁탁 털었다. 아침부터 재수 옴 붙었네.

    도현은 자신이 역겨워 몸서리를 치는 모습을 웃어넘기며 말했다.

    “골골대면 내 약점 평생 간직해 줄 거야?”

    “뭐?”

    “도아는 아무것도 몰라.”

    이겸은 물끄러미 그를 쳐다봤다.

    그날 차재우와 단둘이서 온 것도 그 때문인가.

    “혹시 너 저번에 차재우랑 나갔을 때도 사람 죽이고 왔냐.”

    서도아와 단둘이 크리처 사냥을 나갔을 때 차재우와 볼일이 있다며 나간 것도 그런 이유인가?

    미심쩍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이겸에게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능력 썼으면 너도 알아챘겠지. 그날은 재우 일 때문에 잠깐 어디 간 거야.”

    “그렇다면야….”

    “이제 비밀로 해 줄 거야?”

    도현이 싱긋 웃었다.

    “원래도 말 안 하고 있었잖아. 꼴에 동생한테는 좋은 오빠 노릇 하고 싶나 보지.”

    “래터는 가족이니까. 래터한테 다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데?”

    너도 포함해서. 딸려 오는 서도현의 말에 이겸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놓고 차재우 데리고 사람을 죽이러 다녀? 그럴 생각 전혀 없으면서 가장해 말하기는.

    “네가 나한테 협박만 안 하면 비밀로 해 줄게.”

    “협박?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능력 사용해서 어쩔 수 없이 래터 들어온 거잖아.”

    도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겸은 더 이상 말을 말기로 했다. 그 속내를 알아챈 건지, 도현이 덧붙였다.

    “그래도 요즘은 사용 안 하잖아. 할 때는 항상 같이 있었고.”

    도현이 반지가 끼워져 있는 이겸의 손가락을 툭 건들며 말했다.

    “이것도 계속 끼고 있네.”

    “그냥 디자인이 예뻐서 낀 것뿐이야.”

    이겸이 아차 싶어 래터 반지를 빼려 했지만 인제 와서 그러는 것도 무척 어색해 보일 터였다. 그래서 그냥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기로 했다.

    “래터는 마음에 들어?”

    “너만 없으면 딱 좋아.”

    “내가 마스턴데 없으면 큰일 나지.”

    “그러니까. 마음에 들 수가 없네.”

    최근 서도현이 능력을 쓸 때는 이겸과 크리처 사냥을 나갈 때가 전부였다.

    “혹시 나 없을 때 능력 쓸 거면 미리 전화나 문자 줘.”

    “그럼. 지금 예고할게.”

    도현은 마치 비밀을 알려 주는 사람처럼 이겸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테스트 때 시뮬을 시작할 거야.”

    ***

    래터는 원체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그것의 대부분은 래터의 길드 마스터인 서도현의 영향이 컸다. 어딜 가나, 누구에게나, 사람, 장소, 시간 가리지 않고 싸가지 없는 태도를 상록수처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제일 사이가 좋지 못한 길드가 있는데 다름 아닌 예호였다.

    몇 년 전 만들어져 빠르게 상위 길드 랭킹으로 치고 올라오는 래터와 상위 랭크 끄트머리에 있어 래터를 견제하는 예호.

    그렇지 않아도 끄트머리에 위치해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제 발밑에 있는 신생 길드에게까지 우위를 내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예호는 래터가 걸어가는 행적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붙이며 물고 늘어졌다.

    협회의 CA 리스트 중 래터가 택한 게 있다면 어떻게든 뺏기 위해 노력도 했다. 래터가 공을 세우게 놔두지 않았다. 아마 래터의 이미지가 나쁘게 굳은 건 서도현의 몫도 있지만 예호의 언론 플레이도 있었을 거라 짐작된다.

    무서운 속도로 예호의 위치까지 치고 올라오려는 래터. 자신을 견제하는 예호가 귀찮은 래터. 그렇게 길드 간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그리고 서도현은 이번이야말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예호를 짓밟을 기회라 여겼다. 사실상 VIP 룸에 들어온 다른 이들의 생각도 매한가지일 테다. 다른 지원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예호가 몇 주 전부터 자랑하고 다닌 예비 신참과 그런 그에게 대적할 래터의 예비 신참, 그 둘의 전투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당연히 전투력이 높은 사람이 더 좋은 성적을 받게 되고, 그것은 예호와 래터의 기 싸움 연장전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겸을 테스트실로 보낸 도현은 VIP 룸에 들어서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부에는 여느 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 오지 않던 상위 길드의 마스터들도 발걸음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이성은 예호의 굳셈을 보여 주기 위해 이곳저곳 소문을 내고 다녔고, 인맥을 이용해 각종 유명 인사들도 초대했다. 얼핏 스쳐 지나갔던 상위 헌터들도 보였다.

    예호 신참의 화려한 데뷔를 위해 김이성이 마련한 발판들.

    그 발판들을 이겸이 대신 밟고 올라서는 거다.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

    도현의 안내로 그때와 같이 간단히 지원 서류를 작성한 이겸은 홀로 대기실로 들어섰다.

    다섯 명.

    지난달에는 자신을 포함해 네 명이었는데, 한 명 늘었다. 다들 크리처와 싸운다는 긴장감에 바짝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도 저랬었지.’

    지금은 도현과 크리처를 잡으러 다니며 많이 익숙해진 상태였다. 태연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많이 떨리시죠?”

    그때 어떤 사람이 방글방글 웃으며 이겸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 뭐….”

    “너무 걱정 마세요. 크리처 등급은 ‘하’이고, 위험해지면 바로 대처해 줄 헌터들도 있는걸요. 안전하게 진행될 거예요.”

    어쩌라고.

    오지랖도 참 넓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문득 다시 남자를 쳐다봤다.

    “혹시 예호의…?”

    “앗! 어떻게 아셨어요? 저는 예호 예비 신입 노정규라고 합니다.”

    그는 탑 5에 드는 이름난 길드에 소속된 걸 자랑스레 여겼다.

    “윤이겸이요.”

    “아직 소속 길드는 없으시군요.”

    래터와 인연이 있긴 한데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겸 씨 테스트 성적이 우수하게 나오면 제가 마스터께 한번 말씀드려 볼까요?”

    “뭘요?”

    “예호에 들어오는 거요.”

    노정규는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이겸에게 귓속말했다.

    “다들 벌벌 떠는데 이겸 씨는 되게 겁이 없으신 거 같아서. 저희 마스터가 담력 센 사람들을 좋아하거든요. 분명 마음에 들 거예요.”

    “…….”

    “아, 물론 1등 못 한다고 실망하실 건 없어요. 2등만 돼도 잘하신 거니까.”

    이겸은 입매를 우그러트렸다.

    그러니까, 1등은 네가 할 거니까 2등만 해도 잘한 거다?

    크리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 어째 하나같이 짜증 나는 인간 군상들만 만나는 기분이네.

    “노정규 지원자님. 들어오세요.”

    “네에.”

    노정규는 자신만만하게 자리에 일어섰다. 그리고 이겸의 어깨를 토닥였다.

    “전 이만 가 볼게요. 그리고 하 등급이니까 침착하게만 하면 무찌를 수 있을 거예요. 아셨죠?”

    …이게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야?

    노정규가 대기실을 떠나 테스트실로 들어가자, 이겸은 내부를 보여 주는 유리창에 가까이 섰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비꼬는 심정이 가득 담겼다.

    직원이 CA 지역에서 잡아 온 ‘하’ 등급의 크리처를 테스트실에 풀었다. 노정규는 테이블에 마련된 무기들을 살피고 가장 손에 익은 무기를 집어 들었다. 망치였다.

    명칭은 펜리르. 늑대와 비슷하게 생긴 크리처였다. 세 마리씩 무리 지어 소환되기에 비록 ‘하’ 등급일지라도 ‘중’에 가까운 ‘하’라고 볼 수 있었다.

    노정규의 능력을 더욱 확고히 보여 주기 위해 어젯밤 CA 지역에서 김이성이 손수 사냥해 온 크리처였다. 직원에게 뇌물을 먹여 노정규의 차례에 펜리르를 보내도록 협조를 부탁했다. 아직까지 이변은 없었다. 이제 펜리르를 노정규가 잘 요리해 제 능력을 어김없이 발휘하면 될 뿐이다.

    이윽고 펜리르가 망치를 쥔 노정규에게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퍽.

    휘두른 망치에 한 마리가 머리를 맞고 깨갱했다. 남은 두 마리가 노정규를 찢어발길 듯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제일 먼저 처리한 한 마리가 그들의 대장이었는지 그들은 쉽사리 덤비지 않았다.

    노정규는 빠르게 뛰어나가 한 마리씩 차근차근 제압해 나갔다.

    이미 대장은 처치했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앞발, 뒷발, 등, 허리, 여러 곳을 망치로 가격하며 크리처를 쥐잡듯 잡았다.

    “허억, 헉.”

    세 마리 모두 쓰러트리고 노정규는 가쁜 숨을 내쉬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맨 처음 대장을 구분해 다소 과격할 정도로 한 방에 처치한 용기, 그 후 대장이 없어 오합지졸이 된 펜리르를 차근차근 격파해 내는 침착함. VIP 방의 인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정규를 체크했다.

    김이성은 게슴츠레 그들을 지켜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도현은 무심한 눈으로 테스트실을 지켜봤다.

    “다음, 윤이겸 지원자입니다.”

    검은 눈동자에 생기가 살며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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