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21)화 (21/102)
  • #021

    “푸하하핫! 아하하하!”

    래터 사무실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였다. 웃음이 들려오는 건 참으로 드문 일 중 하나였다. 그만큼이나 도아가 들려주는 말이 웃겼고, 재우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만 웃어.”

    이겸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경고해 봤자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서도현조차 입가에 평소와 다른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협회 직원은 뭐래?”

    “어떻게 되긴 뭘. 그냥 잔뜩 화내고 돌아갔지.”

    “아하하핫!”

    배까지 부여잡고 크게 웃는 재우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럴수록 이겸의 얼굴은 암담해져만 갔다.

    내가 너무 심하게 굴었나? 그래도 돈 문제인데.

    돈 문제는 친구 사이에도 확실히 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초면인 사람일수록 더더욱 확실하게, 신중하게.

    “어디 가서 사기당하지는 않겠다.”

    도현이 읽고 있던 책 페이지를 넘기며 조소했다.

    “너한테 사기당해서 여기 온 거거든?”

    “또 그런다. 약속대로 부사장도 해 줬는데 왜 그럴까.”

    “약속대로? 부사장?”

    그의 말을 비꼬듯 따라 한 이겸은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 허울뿐인 것. 무용하고 또 무용했다.

    “그보다 겸이 형은 언제 각성해요?”

    “각성?”

    “네. 2차 각성이요.”

    이겸의 낯이 찌푸려졌다. 그거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아무리 노력해도 2차 각성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떻게 각성한 거지? 전조 증상이라도 있나?

    “보통 1차 각성한 지 3개월 지나면 2차 각성도 슬슬 시작될걸요? 더 빠른 사람도 있고.”

    재우의 설명에 이겸은 자신의 1차 각성 당일을 상기했다. 서도현이 자신을 죽였을 때가…. 그때로부터 3개월이 빠듯하게 다가왔다.

    “3개월 다 되어 가는데, 그거 자연스레 되는 거야?”

    “방법은 다양해요. 자연스레 되기도 하고, 이미 2차 각성을 마쳤는데도 이능력이 뭔지도 모르다가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도 있어요.”

    “…….”

    이겸은 최근 제 일상들을 뒤돌아봤다. 크리처 사냥하고, 학교에 나가 강의를 듣고, 가끔은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평범한 일상이었다. 어느새 크리처를 사냥하는 게 저도 모르게 일상 축이 되어 버렸다.

    일상들 사이 우연히 2차 각성이 발견된다고?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오빠는 어떤 능력 갖고 싶어요?”

    “갖고 싶다고 되는 거야?”

    “랜덤이죠. 그냥 궁금해서요.”

    이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태 래터랑만 어울려 다닌 탓에 헌터 세계에 식견이 짧았다. 그동안 본 이능력이라고는 몇 가지 없었다. 그래도 상상해 보자면,

    순간이동? 전투에 도움은 안 되겠지만 학교 갈 땐 편리하겠네. 시뮬레이션? 절로 토악질이 나왔다. 꽃 피우기? 뭐, 향기도 좋으니 코와 눈은 즐겁겠지.

    어제 본 서도아의 능력은? 화려하고 멋있었다. 심지어 공격과 방어도 능했다. 만약 전투를 해야 한다면 그런 능력이 가장 좋지 않을까?

    “형은 물에 관련된 능력이었으면 좋겠어요. 제 꽃에 물 주기!”

    재우는 자신이 매일 손수 관리하는 식물들을 가리키며 활기차게 말했다. 식물과 꽃은 좋지만 물 주기는 다른 문제였다. 꾸준히라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꽃을 피우는 건 할 수 있지만 죽은 꽃을 살리는 건 별개의 문제라 불가능했다.

    “그건 너한테 좋은 능력인 거고.”

    “저한테 좋은 능력이 래터한테 좋은 능력이죠! 그리고 당연히 겸이 형한테도!”

    “난 좀 강한 능력이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쉽게 안 죽지.

    “아직도 죽는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어?”

    도현이 물어 왔다. 그날 이후 트라우마가 거하게 박혀 거의 강박적으로 생과 죽음에 매달리고 있긴 했다. 하필 기억력도 좋은 터라 잊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악몽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혹시 모르잖아. 네가 눈이 회까닥 돌아서 또 죽이려 들지.”

    도현은 가만히 입매를 가다듬었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트렸을 그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사이로 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죽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

    도아의 질문에 이겸이 의문을 띤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야 당연히 서도현 이 개새끼가….”

    “혀, 형! 겸이 형! 그, 그 뭐냐…. 저랑 산책 가실래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킨 재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참으로 어색한 타이밍이었다. 그에 이겸은 깨달았다. 서도현은 단 한 번도 도아의 앞에서 그날의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건 물론 이겸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으니까.

    그렇다면….

    이겸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가 도현에게 옮겨졌다. 그는 이 상황이 못마땅한지 눈매를 가늘게 늘어트리고 있었다.

    피식, 비릿한 냉소를 머금었다.

    꼴에 가족이라고 숨기는 건 있나 보지.

    ***

    이겸은 인정을 발휘해 그 비밀을 지켜 주기로 다짐했다.

    인정이라기보단 사실 약점에 가까웠다. 내가 언제든 이 사실을 서도아에게 밝힐 수 있을 거란 약점.

    정말 우연히도 손에 거머쥐게 된 서도현의 약점이었다.

    하지만 약점을 쥐고 있다 해서 서도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야 당연하게도 원래부터 그를 혐오했고, 날이 선 욕들을 대놓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약점을 쥐었으니 이제 헌터 세계에서 발을 떼도 되는가. 아직은 참기로 했다. 그간 차재우와 서도아에게 정이 들기도 했고, 여기서 실력을 키워 나쁠 건 없으니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을 뿐이다.

    서도현 역시 달라지는 건 없었다. 평소대로 저를 향해 쏟아지는 욕설을 가볍게 듣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게 자신의 약점이란 사실을 들키기 싫은 건지, 아니면 정말 약점이 아닌 건지.

    이겸은 전자의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테스트 당일이 다가왔다.

    도아와 재우는 학교를 간 탓에 이겸과 도현만 협회에 가기로 했다.

    테스트 전에 든든하게 점심을 먹자며, 도현이 이겸의 집 앞에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서도현과 밥은 무슨…. 체하는 건 아닌가 몰라. 불편한 심기를 잔뜩 드러내며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된 시간에서 10분이나 오버 됐을 즈음,

    이겸의 앞에 비싸기로 악명 높은 브랜드의 차가 멈춰 섰다. 창문이 스륵 열리고 말간 얼굴의 서도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차가 좀 막혀서.”

    거짓말인 것 같은데. 이겸이 차에 올라타지 않고 창문 너머로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자 도현은 난감하단 듯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아침에 좀 약해.”

    그제야 조수석에 올라탄 이겸은 안전벨트를 맸다.

    “점심은 네가 골라.”

    “돈가스 좋아해? 이 근처에 돈가스 맛집 있는데 거기로 가자.”

    “나쁘진 않네.”

    이겸은 식당에 도착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도현에게 질문했다.

    “그 테스트라는 거, 무슨 크리처가 나올지는 몰라?”

    “하 등급 중에 나오긴 하는데, CA 지역에서 잡아 올 수 있는 크리처는 랜덤이라 매번 바뀌어.”

    이겸은 권상혁이 제게 준 하 등급 도감을 되새겼다. 그가 준 것 중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도감에 나온 하 등급 크리처는 모두 외우고 있으니 뭐가 나오든 자신은 있었다.

    래터와 다니며 중, 상 등급 크리처를 사냥하고 다녔던 덕에 등급이 ‘하’인 것들은 절로 얕잡아 보게 되었다. 도현도 이겸과 다를 바 없는 생각이었다.

    “테스트는 무난하게 통과할 거야. 넌 그중에 제일 눈에 띄면 돼.”

    “눈에 띄어? 왜?”

    “오늘 예호의 신입도 테스트 보거든.”

    “근데.”

    “네가 더 눈에 띄어야 돼.”

    김이성. 그 늙은이의 자존심을 납작 눌러 줘야지.

    이겸의 눈꼬리가 뾰족하게 올라갔다.

    “내가? 굳이? 왜?”

    “다른 길드들 꼴 보기 싫으니까.”

    예호의 신참에게 쏟아지는 주목? 래터의 신참인 윤이겸이 야금야금 소화할 예정이다.

    그럴 예정인 윤이겸은 멀뚱히 음식을 삼키며 물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왜? 그게 테스트랑 무슨 상관인데.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네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 너 그런 거 잘하잖아. 시비 털기.”

    “아무튼 열심히만 해.”

    이겸은 태연하게 마지막 돈가스 조각을 먹고 티슈로 입을 닦았다.

    “계산은 네가 할 거지?”

    “하하. 너도 시비 잘 터네. 남 말할 처지가 아닌데?”

    “일 때문에 만난 거잖아. 사장이 당연히 계산해야지. 우리는 법인 카드 같은 거 없냐?”

    겉옷을 챙겨 입고 진작에 나갈 준비를 끝마친 이겸이 목도리를 두르며 물었다.

    “산하 형은 군대에, 남은 애들은 다 미성년자고 카드 주면 자제를 못 할 것 같아서 안 만들었어.”

    “직원 복지도 없네.”

    서도현은 소리 없이 입매를 늘였다.

    “그러게. 워낙 인원이 적은 길드라. 혹시 모르지. 이번 테스트 때 네가 잘해 주면 카드 하나 만들지도.”

    이게 뭐라는 거야. 카드는 당연히 만들어야지. 회사가 뭐 이래? 투덜거리던 이겸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질문했다.

    “그보다 군대 가셨다던 남궁산하 형? 그분은 무슨 이능력이야?”

    “산하 형은 전투보다 무기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이야.”

    “무기? 네가 들고 다니는 단검이나 그런 거?”

    “응. 손재주가 좋다고 했잖아.”

    그게 그런 쪽인지는 몰랐지. 잠깐. 불현듯 어떠한 것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그분은 크리처 사냥 안 하겠네? 뒤에서 무기 만드시고?”

    “그렇지?”

    이겸은 눈을 깜빡였다. 크리처 부산물 값이 비싼 만큼 그걸로 제조하는 무기도 비쌀 텐데, 그걸 만드는 일을 한다고? 그럼 수익은? 무조건 보장된다.

    가만히 앉아서 반지 100개씩 만들면서 목숨의 위협 또한 없는….

    이겸의 눈이 반짝였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남궁산하가 미칠 정도로 부러웠다.

    누가 보아도 남궁산하와 비슷한 이능력을 원하는 표정인 그를 본 서도현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침음을 삼켰다. 이내 뭔가 떠올랐는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산하 형과 같은 계열로 각성하면 너 부산 가야 돼.”

    이능력은 대표적인 예로 공격계, 치유계, 방어계, 기타계 외에도 남궁산하와 같은 기술계가 있다. 기술계는 워낙 소수의 사람들밖에 없어 신입에게 자주 빠트리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전에 재우에게 설명을 듣지 못한 것 또한 그 까닭이었다.

    “부산?”

    이겸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제작 회사가 그쪽에 있다고 했잖아. ‘이련’이라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곳인데 기술계는 흔하지도 않고, 2차 각성했다고 머릿속에 자동으로 지식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손재주가 필요해서 공부도 해야 돼. 그래서 부산으로 연수받으러 가거든.”

    …그건 좀 싫은데.

    “얼마나?”

    “최소 6개월? 연수 기간에는 헌터들의 보호를 받아야 돼. 때문에 무조건 기숙사제. 외출 시에도 헌터 동행 필수.”

    이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좋아 보이기만 했던 기술계가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거의 군대 아니야? 이쯤 되면 남궁산하 형은 군대랑 무슨 연이라도 있나?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도현의 차 조수석에 올라타며 이겸이 물었다.

    “그거 무조건 가야 되는 거야?”

    운전석에 올라탄 도현이 답했다.

    “국가 명령. 기술계는 귀한 인력이거든.”

    전투에 필요한 장비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길드 내에 기술계가 있다면 크리처의 사체에서 나온 부자재로 자급자족하여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기술계를 탐내는 길드는 몹시도 많았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한 경우였다.

    “운이 좋았지. 산하 형이 래터에 들어온 건.”

    서도현은 이겸을 지그시 바라봤다.

    “뭐, 왜.”

    떨떠름히 묻는 이겸에게 그는 상체를 비틀어 조수석 가까이로 움직였다.

    “겸이 너도.”

    “……?”

    이겸은 제게 다가오는 그에 절로 몸이 굳었다. 도현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순간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깊이 떠올라 그 어떤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다. 숨을 들이 내쉬는 것도 잊어버렸다.

    서도현은 돌처럼 잔뜩 굳은 이겸을 향해 간지러운 미소를 지었다.

    “래터에 잘 들어왔다고.”

    그는 안전벨트를 매 주고 돌아가 운전석 시트에 몸을 기댔다.

    “벨트를 매야 출발하지.”

    “…씹.”

    이겸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단 사실이 못내 짜증 나 머리칼을 헤집었다. 시동을 켜고 주차된 차를 빼내려던 서도현이 이겸을 힐끗 흘겨보고는 건조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안 죽여.”

    말했잖아. 래터는 가족이라고.

    운전대를 잡은 도현의 오른손 검지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이며 존재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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