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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20)화 (20/102)
  • #020

    이겸의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사마귀.

    꼭 사마귀와 흡사한 형태의 크리처였다. 흡사하달까… 그냥 사마귀가 커진 것뿐인데?

    곤충, 파충류, 벌레 이런 유를 혐오와 가까울 정도로 싫어하는 이겸은 눈앞의 현상이 달갑지가 않았다.

    도아는 크리처를 앞에 두고 제 팔뚝을 칼로 주욱 그었다.

    “뭐 해!?”

    이겸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자해에 깜짝 놀라 피가 퐁퐁 나오는 팔뚝을 꾹 눌러 지혈했다. 도아는 태평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게 제 능력이에요.”

    “능력이 무슨….”

    도아는 이겸을 뒤로 물리고 크리처의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며 허공에서 고체 형태로 굳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도끼의 형태를 가졌다.

    이내 사마귀의 바짝 선 날이 도아에게 휘둘러지고 그녀는 팔을 뻗어 공격을 막았다. 막았다기보다는 날에 찧였는데 그 날이 도아의 팔에 고정되어 빠지질 않았다. 제 혈관에 흐르는 피로 단단히 고정한 것이다.

    서걱. 그 틈에 반대편 팔에 난 도끼를 움직여 사마귀를 단숨에 절단한다.

    서걱. 서걱.

    단단한 날을 지닌 팔을 가장 먼저 처리한 후, 머리, 가슴, 배 세 단위로 사마귀를 잘게 쪼갠다. 같이 싸우자는 말이 무색하게 이겸이 나설 틈도 없이 처리가 끝났다. 정말로 응원만 한 꼴이다.

    도아가 휘청이며 이겸에게 걸어왔다. 얼른 달려가 부축했다.

    “괜찮아? 병원 갈까?”

    “괜찮아요. 피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잠깐 어지러운 거지 치료받을 정도는 아니에요.”

    피를 조종하는 능력. 타인의 피가 아닌 오직 자신의 피만 조종할 수 있다.

    위력은 강력하다.

    원하는 형태로 피를 다룰 수 있어 창이든 방패든 뭐든 가능했다.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공격도 가능했고, 방금처럼 제 팔에 꽂힌 사마귀의 날이 더 이상 깊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피를 굳혀 고정하거나 독이 주입될 경우 피를 빼내는 등 방어에도 능했다.

    한 가지 약점이 있다면 순전히 제 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장시간 전투에서는 취약함을 보였다. 조금만 피를 써도 눈앞이 어지러운 빈혈이나 심하게는 과다 출혈까지 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단시간으로 전투를 끝내는 걸 선호했다.

    “너 혈액형 뭐야?”

    “왜요? 피라도 나눠 주게요?”

    “때에 따라선 그래야지.”

    도아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다. 꼴 보기 싫은 서도현의 동생이라지만 서도아는 잘못이 없었다. 제 오빠의 잘못을 동생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적어도 이겸은 그러지 않았다.

    “와-, 좀 기쁜데요. 저 A형이에요.”

    “나랑 같네.”

    “흔해서 다행이죠? 보통 만화나 소설 보면 꼭 피가 필요한 인물은 하필 다 Rh-잖아요.”

    “자랑이다.”

    도아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날렸다.

    “힘들면 먼저 택시 타고 가 있어.”

    “괜찮다니까요. 그리고 오빠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서도현이 하는 거 어깨너머로 자주 봤어. 그냥 검토받고 영수증 끊으면 되는 거 아니야?”

    “걔들이 오빠 잘 모른다고 사기 치면 어떡해요.”

    “그럴 리가.”

    그들이 크리처 사냥을 끝내고도 CA 지역에서 떠나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곧 있으면 올 순례 트럭을 기다리고 있었다. 협회에서 운영하는 트럭이다.

    사체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수집해야 하는데, 덩치가 큰 크리처 사체를 옮기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1. 길드에서 부산물을 수집한 후, 협회에 크리처 사체 처리를 맡기기.

    2. 부산물 수집과 사체 처리 모두 협회에게 맡기기.

    3. 부산물 수집과 사체 처리 모두 길드가 직접 처리하기.

    여기서 래터의 방식은 2번에 해당한다.

    협회에 맡기는 일이 늘수록 수수료를 많이 떼이지만 그 외에도 할 일이 많은 래터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소수로 운영하면서 상위 길드에 든 래터의 단점이었다. 내부에서도 할 일이 많은 덕에 맡길 수 있는 일들은 웬만해선 외부에 맡기려 들었다.

    도아와 재우가 다른 길드처럼 사람을 뽑자고 해도 도현은 제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이면 죽어도 뽑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변 길드와 인맥도 좋은 편이 아니라 협회 외에는 상부상조할 길드도 없고.

    그러니 새로 들어온 이겸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일 처리해 줄 사람이 는 것이다. 어디 도망가지 않게 이것도 해 주고, 저것도 해 주며 극진히 잘 대접해 줘야 했다.

    오늘도 같이 크리처를 사냥하자면서 도아 혼자 처리한 이유도 거기 있었다. 물론 래터에 들어온 직후부터 서도현과 같이 다닌 이겸은 안타깝게도 그런 사실을 느끼지 못했지만 말이다.

    몇 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자 협회에서 보낸 트럭이 도착했다. 모자를 눌러쓴 이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사체 운반을 전담으로 하는 헌터. 헌터에는 다양한 종류의 직업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리는 완료했나요?”

    “네, 사체도 손상 없이 깔끔히 처리했으니 괜히 물고 늘어지지 마세요.”

    도아는 그가 괜한 걸 트집 잡아 사체의 값을 작게 매길까 단단히 일러 두었다.

    “…겉보기엔 괜찮은데 알게 모르게 손상이 심할 수도 있어요.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정밀 탐지 기계를 들고 크리처의 사체에 가져다 댔다. 도아의 말대로 크리처는 관절로 이루어진 곳만 깔끔하게 끊어졌지 다른 곳에 입은 손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절 형태로 나눠 끊는 건 부산물을 수집할 때 필요한 과정이었다.

    사체의 상태는 최상.

    어떻게든 트집 잡아 값을 깎으려 했던 남자는 눈매를 구겼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래터의 크리처 사체 손상률은 0%에 가까웠다. 아무리 높은 상위 길드라도 사체 손상률이 0에 수렴하긴 어려웠다. 대부분 손상률이 20~30%, 많게는 50%도 간다.

    무슨 이능력인지는 몰라도 실력 하나는 출중한 길드 마스터 서도현부터, 공격, 또는 방어에 치중되는 능력이 아닌 둘 모두 호각을 이루는 서도현의 동생 서도아.

    무기 제조 회사 ‘이련’에 버금가는 진귀한 무기들을 만들어 내는 남궁산하. 그가 군대를 가기 전만 해도 크리처 부산물 채집은 그의 몫이었다.

    부산물을 채집하고, 직접 물품을 만드는 자급자족 길드.

    그때는 다른 누구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었으니 새는 돈도 없었다. 신생 길드였을 터인 래터가 상위 길드로 빠르게 발돋움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그 후에 들어온 차재우.

    그런 그가 군더더기 없는 상승세를 그리던 래터의 유일한 약점이 되어 버렸다.

    재우는 크리처 사냥을 서도현이나 서도아만큼 자주 나가지도 않았고, 다른 길드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줄 기회는 현저히 적었다. 때문에 대충 꽃을 피우는 능력이라더라, 라는 말이 알음알음 퍼져 나가 사람들이 래터를 얕잡아 보곤 했다.

    자신이 들어와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우울해했지만 도현과 도아는 개의치 않아 했고, 군대에 가서 소식을 접하지 못한 남궁산하나 이제 막 크리처 세계에 눈 뜬 이겸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때는 그로 인한 자책감도 심한 적이 있었다. 그 상태를 래터는 가족이니 뭐니 말하고 다니는 서도현이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었다.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서야 이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일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차재우가 래터에 뼈를 묻겠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닌 게.

    그리고 새로운 신참이 들어온 지금. 크리처 값을 매기던 남자는 힐끔 이겸을 곁눈질했다.

    ‘이 사람은 무슨 능력이려나.’

    “오빠, 지금 저 하는 거 똑바로 보셨죠? 이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 적게 주려고 티도 안 나는 미세한 흠집도 과장되게 반응하는 족속들이에요.”

    “저분 듣고 계시는데.”

    “그러니까 눈 부릅뜨고 기선 제압! 기선 제압이 중요해요. 오빠는 얼굴이 날카롭게 생겨서 그냥 닥치고 노려만 보면 될 거예요.”

    …협회 직원은 할 말을 잃고 크리처의 가죽을 손으로 훑었다.

    “저거! 저러면서 자기가 슬쩍 흠집 낸다니까요! 거기! 눈으로만 보세요, 눈으로만!”

    “이미 값은 매겼습니다.”

    직원은 억울함에 모자를 꾹 눌러쓰고 측정이 끝나 작성한 영수증을 주었다.

    이걸 들고 협회에 가서 수수료를 제외한 돈을 청구받으면 된다. 도아는 건네받은 영수증을 알뜰살뜰 주머니에 고이 접어 챙기고는 회수해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처 사체가 트럭에 실렸다. 이겸이 슬그머니 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혹여나 제게 불순한 의도로 다가왔을까 봐 지레 겁을 먹던 직원은 정중해 보이는 이겸에 마음을 고쳐먹고 손을 맞잡았다. 이겸은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리다 질문했다.

    “값은 제대로 측정하셨죠?”

    그래도 ‘중’ 등급인데.

    크리처의 손상률도 따지지만 등급에 따라 매기는 값이 달라지기도 했다. 중 정도면 적어도 몇백 이상. 소중한 돈이 눈앞에서 떼이는 걸 지켜볼 이겸이 아니었다. 도아의 말도 있고 하니 재차 확인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이겸과 맞잡은 손을 홱 뿌리친 직원이 참다 참다 격분해 소리쳤다.

    “아까부터 다들 절 뭐로 보시고!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애초에 값을 낮게 측정해서 제게 돌아오는 이득이 뭔데요!”

    “…협회의 보너스?”

    이겸의 뒤에서 뿌듯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던 도아가 중얼거렸다. 울화통이 터졌다. 물론 보너스를 주긴 하지만…!

    울화통이 터지려는 직원을 이겸이 다정히 달랬다.

    “네, 알긴 알죠. 당연히 알죠. 그럴 거 아니란 걸 아는데 저희도 혹시 모르니까 재차 확인을….”

    “알긴 뭘 알아요! 저희 오늘 초면이지 않습니까!?”

    “…초면이니까 확실히 하자는 거죠.”

    그러다 결국 헛기침을 하며 직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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