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19)화 (19/102)
  • #019

    “겸이 오빠 너무 굴리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제 막 발 들이기 시작한 신입인데.”

    도현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중, 도아가 조심스레 물어 왔다. 도현은 담담한 어조로 의뭉스러운 답변을 보냈다.

    “글쎄.”

    제대로 된 과정도 알지 못한 채, 도현을 따라 바로 크리처 사냥을 시작하게 된 이겸은 절대 모를 것이다. 본래 길드에 신입이 들어오면 사냥보다는 크리처 부속 채집 위주로 먼저 일을 시작한다는 걸.

    그러면서 크리처에 대해 익숙해지고, 그들의 능력이나 약점을 몸소 익히게 되어 후에 있을 전투에도 큰 무리가 없도록 훈련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을 족히 1년은 넘게 수행한다. 이때 자연스레 2차 각성을 하기 때문에 훈련에도 신경을 기울인다.

    반면 도현은 이런 과정들을 죄다 무시하고 이겸을 하루가 멀다 하고 굴려 대기 바빴다. 한마디로 이겸은 일반 신입들과 달리 다소 험난한 루트로 크리처 세계에 적응하고 있단 뜻이었다.

    크리처 세계에 발을 들인 후, 도현에게 죽어나고, 이후 권상혁을 만나 설명도 없이 대뜸 테스트를 받게 되고, 그걸 거부한 후 들어온 게 래터. 남다르다면 여러모로 남다른 발자취였다.

    도아는 당연히 그런 이겸이 걱정되었다. 굳이 앞에서 티를 내 혼란을 가져오진 않았지만 이겸은 아직 2차 각성조차 하지 않은 새내기 중의 새내기였다. 이능력 없이 오직 신체의 힘만으로 싸워야 된다는 소리였다. 물론 1차 각성으로 인해 향상된 신체 능력을 얻었다지만 그건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 걱정이 안 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도아와 달리 도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시뮬레이션, 조금 독특한 이능력이다.

    불, 얼음, 어둠, 염력, 반사, 회복 등 다양하고 화려한 능력들이 있지만 도현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 직접 겪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 가야 한다.

    그리고 도현의 능력 반경에 들어온 이겸도 마찬가지다. 도현은 이겸이 자신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2차 능력 각성? 그런 건 필요 없었다.

    도현과 같은 세계를 경험하고, 잊지 않는다면 이겸은 도현만큼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에 나중에는 이능력까지 얻는다?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렇기에 도현은 호기심이 생겼고, 제 세계를 공유한 이겸을 키워 보고 싶었다. 지금까진 무난하게 잘 따라와 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크리처 사냥을 나가는 데는 이겸을 굴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목적 또한 있었다.

    외부에 적이 있으면 내부의 결속이 단단해지기 마련. 함께 크리처를 사냥하며 자신을 혐오하는 이겸의 태도를 누그러트리려 했지만 아직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싫다, 짜증 난다, 저리 가라, 소름 끼친다, 살인마 새끼, 두드러기 생긴다, 나가 죽어라,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여러 거친 말들을 출석 체크라도 하듯 매일같이 듣고 있었다. 생각보다 혐오심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걸로 상처받을 서도현이 아니지만, 이겸이 래터에 있을 거라면 태도는 좀 고치는 게 좋을 듯싶었다.

    도현은 그날의 일에 대해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이겸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으음, 얼마 후에 테스트 있어서 그래? 겸이 오빠라면 지금 실력으로도 무난하게 할 것 같은데.”

    이겸이 아직 래터에 정식으로 합류한 건 아니었다. 무릇 헌터가 되어 길드에 소속되려면 협회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지난번, 테스트를 뛰쳐나온 이겸이었기에 아직 등록을 마치지 못했다.

    앞으로 일주일 후인가.

    테스트가 시작된다.

    ***

    “…빠, 겸이 오빠!”

    다음 날 아침, 잠결에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든 이겸은 게슴츠레 흐린 시야를 정돈했다. 제일 일찍 사무실에 도착해 아무도 없길래 침대에 잠깐 눕는다는 게 잠들어 버린 것이다.

    “왔어?”

    “네.”

    이겸은 도아가 왔다면 분명 같이 왔을 터인 사람이 보이지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 오빠라면 차재우랑 일이 있다고 저만 여기 내려 주고 어디 갔어요.”

    “아, 그래?”

    이겸의 얼굴에 희망이 떠올랐다.

    그럼 오늘은 크리처 안 잡아도 되는 건가? 서도현이 윤이겸을 교육시킨다는 목적 아래 래터 관리 구역이 아닌 협회에서 알려 준 다른 CA 구역도 찾아가 크리처를 잡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지속되었고, 그 와중에 불굴의 의지로 학교도 꾸준히 출석하는 터라 최근 눈가가 침침해질 정도로 수면이 부족했다.

    그럼 오늘은 무난히 지나가는 건가.

    “그러니까 오늘은 저랑 크리처 잡으러 가요.”

    “…….”

    무난히 지나가긴 개뿔.

    “왜. 오늘은 서도현도 없는데 좀 쉬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가기 싫다는 감정을 온몸으로 어필했다.

    “오늘은 래터 관리 구역 CA라 가기 싫어도 꼭 가야 해요.”

    협회의 CA 구역이라면 래터가 아니더라도 다른 길드나 혹은 협회 소속 헌터들이 처리하겠지만, 래터 지정 관리 구역인 만큼 래터가 무조건적으로 처리해야 했다.

    다른 길드들은 서로의 CA 구역을 나누어 가며 친목을 다지곤 했는데 래터는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왜 불가능한데.”

    도아의 설명을 들은 이겸은 짜증이 가득 실린 어조로 물었다.

    “래터는 친목하는 길드가 없거든요.”

    “그럼 좀 만들어.”

    “만들 수 있으면 진작에 만들었죠!”

    도아가 끙차하며 이겸의 양팔을 잡아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왜 못 만들어? 친목 뭐 어렵나? 서로 덕담 한마디씩 주고받고, 뇌물 바치면 그게 친목 아니야?”

    “…무슨 친목이 그래요. 하여튼 제 침대에서 일어나세요! 지금부터 택시 타고 가도 빠듯하다고요.”

    도아는 이겸이 사무실에 도착해 벗어 놓았던 겉옷들을 얼른 입으라고 던져 주었다. 이겸은 꾸물꾸물 팔 구멍에 팔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크리처 등급은?”

    “‘중’이에요.”

    협회의 CA 관리 본부에서 길드에게 각 구역의 CA 리스트를 보낸다. 대략적으로 등급도 나오는데, 그걸 확인한 도아가 말했다.

    “이제 이거 확인하는 건 겸이 오빠 몫이에요.”

    “내 몫?”

    “네. 원래 이런 건 부마스터가 하는 거예요. 아직 오빠는 2차 각성도 안 해 우선은 저랑 재우가 담당하는 거고요.”

    “…부마스터 너 할래?”

    이제는 하등 쓸모도 없는 직급, 버릴 수만 있다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전 학업으로도 바빠요. 학생은 학업에 신경 쓰라던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구시더라?”

    도아는 통쾌하단 얼굴로 이겸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갔네.

    겉옷을 여민 이겸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너 강해?”

    항상 서도현과 크리처 사냥을 나갔지, 재우, 그리고 도아와는 한 번도 사냥을 해 보지 않았다. 재우는 눈이 즐거운 꽃 피우는 능력이고, 도아는? 정보가 없었다.

    “‘중’ 정도는 혼자 상대할 수 있어요.”

    “좋네. 그럼 난 뒤에 있어도 되는 거지?”

    “…네?”

    “너 혼자 상대할 수 있다며. 난 뒤에서 응원할게.”

    도아가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잠깐…. 잠깐만요. 새파랗게 어린 학생한테 크리처를 맡기고 오빠는 놀겠다고요? 뒤에서 구경이나 하며?”

    “말을 섭섭하게 하네. 뒤에서 응원한다니까. 열심히 할게.”

    “그게 그거죠!”

    이겸은 왜 도아가 화를 내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문제야. 중은 너 혼자 상대 가능하고, 난 뒤에서 응원하겠다는데.”

    “바로 그게 문제죠! 같이 갔으면 같이 힘을 합쳐서 사냥해야죠!”

    이겸이 미간을 찌푸렸다.

    “인력 낭비 아닌가?”

    서도현과는 훈련, 또는 교육 차원에서 크리처를 잡았다. 심지어 시간이 반복되면 크리처에게 입은 상처들도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서도아는 달랐다. 무슨 능력일지 모르겠지만 우선 한번 상처 입으면 끝이었다. 되돌릴 수 없다.

    거기서 오는 간극이 이겸을 껄끄럽게 했다. 이겸은 저도 모르는 사이 서도현과 함께 하는 전투에 익숙해진 것이다.

    “인력 낭비라니요. 래터에 들어왔으면서 평생 저희 오빠랑만 사냥 나갈 거예요? 저랑도 나가고! 재우랑도 나가고 해야죠!”

    “…재우랑은 안 나갈래.”

    대뜸 크리처 앞에서 꽃 피우는 거 아니야? 크리처도 놀라 눈을 깜빡이겠다. 잡아 놓은 택시에 올라탄 이겸이 불퉁하게 말했다. 도아의 얼굴에 웃음기가 고였다.

    “하긴. 걔 능력이 웃기긴 하죠. 그래도 가끔은 도움 돼요.”

    그 ‘가끔’이란 언제?

    차마 물어보지 못한 채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번 크리처는 어떤 크리처야?”

    “글쎄요. 나와 봐야 알죠.”

    협회의 CA 탐지기로 등급은 알 수 있지만 정확한 종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상, 중, 하로 나누어진 크리처 도감을 보고 상시 그것의 약점과 습성을 익히는 수밖에 없는데, 이겸에겐 권상혁이 준 ‘하’ 도감만 있을뿐더러 하필 중, 상은 도현이 갖다 버렸기에 그조차 불가능했다.

    이겸은 슬금슬금 도아를 앞세우며 뒤로 빠졌다.

    “나이도 저보다 많으면서 비겁하게 숨는 거예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경력, 실력 앞에서는 나이고 뭐고 없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가 형이고 누나이자 선배였다.

    이윽고 둘의 앞에 크리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