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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11)화 (11/102)
  • #011

    “이건 미쳤어. 미친 짓이야.”

    알람이 울리는 휴대폰도 무시한 채 이겸이 홀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허공에 둔 시선은 초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신체는 의자에 눕듯이 기대 넋이 나가 있었다.

    자그마치 하루에 10번, 5분씩.

    오전일 때도 있고, 수업 중일 때도 있고, 혹은 점심을 먹을 때, 저녁을 먹을 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혼자 있을 때.

    시작되는 시간은 다양하다.

    이 반복되는 일이 언제 시작될지도, 끝날지도 모르니 긴장을 풀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친구들의 대화 속 똑같은 말을 하기도 지치고, 최근 이겸은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머리가 아프고, 장이 쓰릴 지경이다.

    그럼에도 서도현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연유냐고 따지지 않는 건 단 하나.

    그 미친놈한테 어떻게 연락해.

    자신을 죽인 사람이다. 살인마.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서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죽였을지도 모르는 놈이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냐.

    회까닥 미쳐 돌아 또 저를 죽인다고 달려들면 어떡하나, 이겸은 겁이 난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반복되는 일상 속,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기분이었다. 이겸의 정신은 나날이 피폐해지고, 멍해 있는 시간이 늘었다. 피 말려 죽는다는 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거였다.

    앞으로도 평생 불시에 반복되는 5분을 겪으며 사느니 눈 딱 감고 연락이라도 해 봐? 그런 생각이 뭉근히 차올랐지만 아직은 이른 판단이다.

    이겸은 신중에, 신중을 가하는 성격이었다. 그것도 제 목숨이 달린 일이라면 누구든 더욱 그럴 것이다.

    아직까진 버틸 만하니까, 참아 보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연락하기로 했다.

    띠링.

    고민을 끝낸 이겸이 재차 울리는 휴대폰 알람에 시간을 확인했다.

    “시발.”

    참지 못한 욕설이 불쑥 튀어나왔다.

    시간이 ‘또’ 반복을 맞이한다.

    “우우우우~! 난 오직 너 하나뿐이야!”

    “너 하나뿐이야!”

    이겸은 귀를 틀어막았다.

    “뿐이야!”

    “뿐이야!”

    하지만 제 양쪽에서 마이크를 들고 코러스를 넣는 친구들에 결국 참지 못하고 노래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야, 노래 누가 껐냐. 아, 김 다 빠졌네.”

    “내가.”

    이겸이 손을 들고 말했다.

    평소라면 친구들의 음정 무시, 박자 무시의 만행에도 너희가 즐거우면 됐지, 라며 웃어넘겨 줬지만 오늘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시간이 반복되며 같은 노래를 몇 번이나 듣고 있자니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하필 타이밍도 노래방에 있을 때….

    주승태가 이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굳이 굳이 마이크를 입에 대고 말했다. 가까이서 듣는 이겸은 정말이지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왜, 너도 부르고 싶어서? 얘들아, 윤이겸도 노래 부른대!”

    아니거든.

    “오오, 무슨 노래 부르게? 빨리 예약해. 시간 간다.”

    “안 불러.”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중간에 종료 버튼을 눌러 흐름 끊기, 노래 안 부른다고 거절하기 등 이겸의 각고한 노력에도 친구들의 흥을 죽일 수는 없었다.

    “얘들아, 다음 곡 시작해!”

    “딴따라단단 딴단딴! 파도 같은 너~!”

    꼭 비행기가 출항할 때 귀가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시작되는 노랫소리에 이겸은 귀를 틀어막았다.

    하아, 너희는 지치지도 않냐. 물론 기억이 없으니 지칠 일도 없겠지만.

    “제발, 제바알 5분만 쉬자!”

    망할, 나가 죽어 서도현.

    며칠 후.

    한계를 맞이한 이겸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11자리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기억력이 원체 좋은 그라 한번 본 건 웬만해서 잊지 않았다.

    뚜르르,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기다렸단 듯 통화가 연결되었다.

    - 이제야 전화 주네.

    조금의 웃음기가 넘실거리는 그의 자기소개에 이겸은 보란 듯 말했다.

    “미친놈아, 그만 좀 해.”

    전화를 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겸은 깨달았다.

    ‘이 새끼 일부러 그런 거야?’

    능력을 쓰면 자신이 연락할 것을 알기에 며칠이고 반복되는 상황을 만들었나?

    - 연락이 없길래 긴가민가해서 하루만 더 하고 그만둘 심산이었거든.

    “…….”

    이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혹시…. 아, 이제 알겠다.

    서도현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거다. 자신이 그날을 기점으로 여전히 능력 사용에 대한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래서 이자는 요 며칠간 실험을 한 것이다.

    하루 10번, 5분씩. 50분이란 시간을 통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능력을 남발하면서 이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반복됨을 알고 있냐고.

    하루만 더 하고 그만둘 심산이었다고? 그 말은 즉, 이겸이 하루만 더 버티면 이 지독한 반복도 끝날 거였다고?

    ‘하루만 더 기다릴걸.’

    급히 후회가 몰려왔다.

    “뭔지 몰라도 확인했으면 이제 그만해.”

    - 우리 만날래?

    대화가 왜 그쪽으로 흐르지.

    잊힌 시간을 기억함에 있어 상호 확인을 마쳤으니 더 이상 볼 필요는 없지 않나. 서도현이 왜 이런 짓을 벌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인이 끝났으면 그만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길 열렬히 바랄 뿐이었다. 근데 뭐, 만나자고?

    “이게 돌았나.”

    머릿속에 꿍쳐 둔 생각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만나자 한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서도현은 익숙하게 들은 욕이라며 태연하게 반응했다.

    -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잠깐 만나자.

    “전화로 해.”

    -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럼 내가 너희 집 앞에 찾아갈까? 잠깐 나올래?

    자신이 생각해도 좋은 계획이라며 기쁨에 차오른 목소리에 이겸은 진절머리가 나다 못해 섬뜩함이 들었다.

    만나자고? 내가? 너를? 가해자가 피해자를? 자기가 뭘 잘못한지도 모르는 건가? 사람을 죽여 놓고? 상식이 없나? 아, 사람을 죽인 거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었다.

    - 나 보기 싫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대신 보낼까?

    이겸이 대답이 없자 그는 보채듯 물었다. 이겸은 그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난 그냥 이 반복이라는 망할 게 사라지면 돼. 그게 내 볼일이야.”

    - 난감하네.

    “뭐?”

    - 그 말은 즉, 내 능력을 봉인하겠다는 소리 아닌가? 평생 안 쓸 수도 없고, 나도 너 때문에 곤란한데.

    …이겸은 할 말을 잃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독이 되었다. 이 원인은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했다. 기억하는 게 내 탓이야? 내 능력 내가 사용하겠다는데 잘못된 거야?

    서로 합의점은 없었다.

    - 그러니 만나서 대화하자고.

    “…능력 쓸 땐 나한테 연락하고 써. 나도 언제, 몇 번 반복될지 대비를 해야 하니까.”

    - 굳이?

    귀찮은데. 스피커 너머로 번거롭다는 말투가 엿보였다.

    “그럼 어쩔 건데. 네 능력에 피해자가 생긴다고.”

    - 내가 잘못한 건가? 기억하는 네가 이상하다곤 생각 안 해 봤어?

    “어. 안 해 봤는데. 네가 잘못한 거야. 그날 네가 날 죽이지만 않았으면 이딴 거지 같은 반복 기억 같은 거 안 했을 거야.”

    - …….

    서도현은 잠시간 침묵을 택했다. 그래도 찔리는 게 있나 보지? 라고 여긴 이겸이 무색하게 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좋아. 서로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각자 알아서 잘 지내 보자.

    “뭐? 능력 사용할 거면 나한테 언질이라도…!”

    - 그럼 잘 지내.

    뚜-뚜-.

    통화가 끊긴 음이 울려 퍼졌다. 이겸은 휴대폰을 붙잡고 큰 한숨을 쉬었다.

    “나보고 대체 뭘 어쩌라는 건데.”

    망할 세상은 한시도 저를 쉬게 놔두질 않았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흘렀다.

    서도현은 이겸의 기억 여부를 실험하기 위해 매일같이 남발했던 능력을 자제했다. 자제한다고 해 봐야 일상생활에서지, 크리처 사냥을 나설 때는 어김없이 이겸의 시간도 반복되곤 했다.

    이전보다 나아졌다지만 이겸은 나날이 피폐해져만 갔다.

    더군다나 요즘은 안 하던 실수마저 하고 만다.

    “너 이거 했어?”

    “…….”

    “야, 윤이겸, 너 이거 했냐니까?”

    “…….”

    어차피 서너 번은 더 반복될 상황, 과제를 끝냈냐는 주승태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고 묵묵히 휴대폰을 만지며 시간을 때웠다. 어차피 5분이 지나면 주승태는 자신의 말이 씹혔단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물어 올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어?”

    앞으로 몇 번은 더 반복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시간은 깔끔하게 한 번으로 끝났다.

    “사람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 요즘 넋이 나갔다?”

    “아, 미안해.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진짜 미안.”

    승태는 물끄러미 윤이겸을 직시했다. 최근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정신을 집에 두고 다니는 것 같았다. 정말로 미안해 보이는 윤이겸의 얼굴에 어쩔 수 없이 봐주기로 했다.

    “뭔 일 있으면 말이라도 하고.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응? 술 마시고! 회포 풀고! 엉!? 술은 내가 살 테니까!”

    “…고맙다.”

    이겸이 느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겸의 하루는 남들보다 조금 길게 흘렀다. 어쩔 때는 24시 10분, 혹은 24시 20분, 30분…50분. 다양했다.

    시간은 상대적이라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0분의 시간. 이겸은 그것이 마치 하루 24시간처럼 느리게 흘렀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겪고 나면 정신적 피로도가 높아지고, 진이 다 빠졌다.

    언제가 되면 이 짓이 멈출까 싶지만 서도현이 크리처 사냥에 나서거나 제 목숨이 위험하면 언제든 능력을 발동하겠지. 자신은 그 폭풍에 휘말린 선량한 시민일 뿐이고.

    그리고 시작된 또 한 번의 반복.

    이겸은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 시간을 벗어날 수 없다면 적어도 공간이라도 벗어나 보자.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했고, 5분이 지나자 이겸은 아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이겸은 가만히 휴대폰을 들어 서도현의 번호를 꾹, 꾹 눌렀다. 분노가 담긴 손길이었다.

    그 후 몇 번의 신호음이 울렸다. 하지만 전화는 끝내 이어지지 않고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된다는 기계음만 들렸다. 결국 의자 뒤로 머리를 젖히고 기댔다. 손등으로 피로한 눈가를 쓸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이 지옥 같은 5분을 감내해야 할 시간이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를 얌전히 듣던 이겸은 불현듯 시계를 올려다봤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을까. 5분은 무슨 10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아.”

    언제 끝난 거지. 시간을 보는 것도 괴로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인데 반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이잉.

    이겸의 휴대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눈에 익은 11자리의 번호.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안녕. 전화했었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스피커 너머로 소란스러움이 가득 느껴졌다. 귀가 시끄러웠다.

    “…….”

    결국은 이겸이 먼저 말을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지옥 같은 5분을 종결짓기 위해서.

    “좀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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