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다들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무렵, 김이성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능력을 너무 믿고 깝죽댔다. 반사와 회복만 있으면 서도현 하나쯤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가 세운 계획에 실패의 원인이 있다면 서도현이 미친개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었다.
광견, 광견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제 한 몸 불살라 남의 몸에 기어코 화상을 입히고 마는 사람이란 걸.
차라리 능력 말고 단순 격투로 갔으면 판도가 달라졌을까? 김이성은 그것의 결과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서도현이 격투에 있어 전문가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개운한 표정으로 스트레칭하듯 어깨를 돌렸다. 이내 피에 젖은 셔츠 끝 부분을 물 쥐어짜듯 짜내며 말했다.
“그쪽이 먼저 주먹을 썼으니 정당방위라고 해도 되겠죠?”
“…….”
“애초에 제가 더 많이 다치기도 했고요.”
상처로 따지자면 서도현이 훨씬 많았다. 그야 김이성은 회복 능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싸움의 승패 주도권은 서도현에게 있었다.
현장의 모두가 그의 난폭함에 눈을 뗄 수 없었고, 어마무시한 광기에 할 말을 잃었다. 정적으로 잠긴 방 안에는 그에게서 흘러나온 살기가 가득했다.
이내 살기를 두른 이가 이곳저곳 피가 흐르는 제 몸을 보며 담담히 말한다.
“또 도아한테 잔소리 듣겠네.”
저벅저벅, 김이성에게 다가갔다. 그는 질린 눈으로 제 앞의 상대를 쳐다봤다.
아픔 따위 느끼지 못하는 그윽하고, 몹시도 평온한 얼굴. 입꼬리는 늘 그랬듯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날렵한 눈매가 때에 맞지 않게 예쁘게 접히고는.
“피차 어디 가서 소문내진 맙시다.”
“으으, 으아아악!”
김이성의 칼집 난 붉은 피부 속을 이리저리 헤집어 긁는 손가락. 벌레가 상처를 갉아먹는 듯하다.
“그쪽도 저한테 졌다고 소문나긴 싫잖아요?”
김이성의 잘게 떠는 눈동자를 본 도현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입고 있던 하얀 셔츠는 붉게 물들어 초기의 원단 색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모든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는 분명 날렵한 선을 가지고 있는 미남자였다. 0.1mm 정도의 아주 가느다란 볼펜으로 신이 공들여 그린 것 같은 얼굴.
가로로 길게 늘어진 눈매와 옅은 쌍꺼풀 아래 무정함이 깃든 눈동자, 높은 콧대와 날카로운 콧날, 버릇처럼 웃음기를 걸친 입가.
훤칠한 키와 모델이라도 될 법한 비율.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존재감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두가 서도현을 쳐다보는 건 그의 잘난 얼굴 때문이 아니었다.
‘미친놈, 또 뭔 짓을 한 거야.’
‘VIP 방이 소란스럽던데. 쟤 때문인가?’
‘눈 마주치지 마. 마주치지 마. 마주치면 물린다.’
‘제발, 예고 좀 하고 사고 치면 안 되나? 심신 미약한 사람 기절하겠다.’
‘저거 바닥 청소는 누가 다 하냐.’
비도 오지 않은 맑은 날씨. 그는 협회 바닥에 손수 피 발자국으로 도장을 찍고 다니고 있었다. 흐르는 건 모두 제 피.
하지만 협회의 누구도 서도현이 누군가에게 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야 피가 뚝뚝 흐르는 제 몸은 무시한 채 기분 좋다며 간간이 흘러나오는 콧노래와 입가에 걸친 미소가 그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괘… 괜찮으세요? 힐러를 불러 드릴까요?”
그때 뭣도 모르는 신입이 서도현에게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그는 제 앞길을 막은 이를 빤히 쳐다보다 붉은 입술을 열었다.
“저 아세요?”
“네? 아니, 그게. 다치신 거면 힐러를….”
“다쳐? 아, 이거요?”
도현은 대수롭지 않게 상처를 흘겼다.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아파서 짜증 난다기보단 이로 인해 주목을 받는 게 짜증 났다. 개나 소나 다 쳐다보네.
“네. 제 친구 중에 힐러 있는데 지금 바로 불러 드….”
“저기요.”
“네?”
“좀 꺼지실래요?”
“…네?”
선의를 베풀었다가 돌아오는 매정한 답변에 멍청히 되물었다. 도현은 그에 짧게 혀를 찼다. 쯧, 기분 좋았는데 잡쳐 버렸다.
하등 쓸모도 없는 선의, 호의.
도현이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유유히 갈 길을 떠났다. 주머니 속 손에 꼬깃꼬깃한 용지가 잡혔다.
‘윤이겸.’
그자의 지원 서류였다.
예호의 길드 마스터 김이성은 반사와 회복, 또 어떤 이는 치유, 어떤 이는 염력. 다양한 능력들이 있고, 그 능력들은 사용자들의 지문과도 같은 거였다.
능력은 곧 전투력이고, 숨기면 숨길수록 적과 싸울 때 유리했다. 하지만 헌터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알음알음 서로의 능력을 알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서도현의 능력은 들킬래야 들킬 수가 없는 신비한 이능이었다. 알고 있는 이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시뮬레이션. 그것이 바로 서도현의 능력이었다. 시뮬레이션은 최대 5분 동안 실행 가능하며, 체력적인 한계로 하루에 10번까지만 돌릴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50분 동안 도현은 혼자만 기억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었다.
실행 방법은 지금으로부터 원하는 지점을 세이브 포인트로 설정하면 됐다. 지정 후 한정된 5분 안에서는 자유롭게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그 이전으로 이동할 수는 없었다. 세이브 포인트를 지정하고 3분이 지난 후에 5분 전으로는 가지 못하는 것이다. 무조건 세이브 포인트 그 시점으로 이동. 그렇게 세이브 포인트에서 5분이 지나면 다시 능력 발동 가능.
그 특별한 세상에 윤이겸이 끼어들었다.
자신이 직접 능력을 밝히지 않았는데 제 능력을 알아챈 유일무이한 자. 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흥미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최근 윤이겸이란 자를 마주치고 나서 시뮬레이션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경에 거슬리고, 껄끄러웠다.
혹시 그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능력을 써도 적용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잊힌 50분이란 시간을 기억하는 이가 두 명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세상인데.’
순전히 저만 기억할 수 있는 세상에 이물질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능력을 사용 안 하기도 어렵고.
이걸 어찌한담.
도현은 이겸의 지원서를 피 묻은 손으로 활짝 펴 신상 정보를 확인했다. 휴대폰 번호도 적혀 있었다. 자신의 길드, 래터로 오라고 했고 명함까지 주었다. 연락이 없는 걸로 봐선 앞으로도 안 올 것 같은데, 먼저 해 봐?
이내 종이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연락이 안 온다면 오게 하면 그만이다.
이참에 실험도 해 볼 수 있고. 문득 기막히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어제의 일이 있고 난 후, 이겸은 일반인과 다름없는 삶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가다 권상혁의 생각으로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크리처는? 헌터는? 테스트는?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전부 무시하기로 했다.’라고 시원하게 대답해 줄 것이다.
크리처를 잡고 돈을 버는 직업이 헌터라고 들었다. 돈은 알바든, 다른 직장이든 무수히 많은 경로로 벌 수 있었고, 가끔가다 마주치는 크리처는 헌터들이 미리 대기를 타다 사냥한다고 하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럼 물고기 크리처는 왜 자신 혼자서 잡은 건데. CA 지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터 없어? 그 해답 역시 권상혁이 명쾌히 말해 주었다. 음…. 이걸 명쾌하다 해야 할까.
‘그거요? 음, 래터 구역이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래터요?’
‘전 걔네가 무슨 짓을 하든 안 놀랄 것 같아요. 조만간 거기 길드 마스터는 사람도 칼로 찌를 기세던데. 혹시 몰라요, 뒤에서 이미 몇 명 죽였을지도.’
칼로 찌르는 건 모르겠지만 이미 몇 명 죽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안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거고.
여전히 그에 대한 답은 찝찝하기 그지없었지만 다시는 그 살인마 자식을 마주칠 일도 없고 넘어가기로 했다.
제일 문제인 건 블러드 헌터라는 족속들인데. 사실 이겸은 이것도 딱히 문제 될 건 없다고 여겼다. 그야 권상혁이 말했지 않은가. 블러드 헌터는 워낙 비밀리에 은밀하게 활동해서 마주칠 확률은 로또 당첨될 확률에 가깝다고.
지난번 한 번 만났으니 더 이상은 만날 일 없겠지.
생각을 해 봐라. 그 누가 인생에 두 번이나 로또에 당첨되겠는가.
이 모든 답변은 권상혁이란 작자가 해 주었단 게 제일 미심쩍고 못 미덥지만, 이겸은 안일한 마음과 함께 제 눈에 보이는 크리처들을 무시하고 살기로 다짐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아니? 전혀.”
때문에 대학 과제를 뒤로 하고 제게 추궁하듯 물어 오는 친구 강태하의 말에도 개운하게 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태하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 요즘 이상해.”
“내가 그랬나? 뭐… 고민은 있었는데, 해결됐어. 이제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럼 다행이지만.”
그 후로 둘은 다시 과제에 집중했다. 몇 분 흘렀을까, 카페에서 노트북 타자를 치던 이겸의 손에 바들 떨렸다.
‘방금 전 조사한 자료가 다 날아갔어.’
“요즘 무슨 일 있어?”
그 와중에 강태하가 아까 했던 질문을 재차 물어 왔다.
“해결돼서 괜찮다니까.”
“뭐가?”
“응?”
“뭐가 해결됐는데?”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질문에 답해 주던 이겸은 눈동자를 또륵 굴려 강태하를 쳐다봤다.
“뭘 자꾸 캐물어. 괜찮다니까.”
“한 번 물었는데.”
의기소침해진 강태하가 시선을 아래로 축 내렸다. 이겸은 그런 그를 대충 넘기며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렇게 몇 분을.
의아함을 느낀 건 그때였다.
“요즘 무슨 일 있어?”
더는 그 질문을 무시할 수 없었다. 방금 전 조사했던 자료는 당연하단 듯 날아갔고, 강태하는 똑같은 질문을 또 물어 왔다.
이겸은 불시에 시간을 살폈다.
“…아무 일도 없어.”
“아무 일도 없으면 다행이지만, 너 요즘 좀 이상해.”
가만히 팔짱을 끼고 노트북 화면 속 시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째깍째깍. 시간이 흐른다.
“윤이겸, 뭐 해?”
“…….”
침묵하는 이겸에 태하가 그의 앞 테이블을 노크하듯 두드렸다. 그에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아, 괜찮아. 신경 쓸 것 없어.”
그러면서 시선은 시간을 살폈다. 5분이 흐르자 약속된 결말처럼.
“요즘 무슨 일 있어?”
“…역시.”
“응?”
반복되는 5분. 이겸은 이 짓을 할 수 있는 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서도현.
“윤이겸. 무슨 일 있냐니까?”
“일단 과제부터 하자.”
이겸은 강태하를 무시하고 자판에 손을 올렸다. 그러다 멈칫했다. 또 반복된다면 어차피 조사한 자료가 사라질 텐데. 해 봤자 아닌가?
우선 5분 동안은 휴식이라 여길까.
그렇게 휴대폰을 만지고 있을 무렵. 반복되고, 놀고, 반복되고, 놀고.
“요즘 무슨 일 있어?”
“…하아.”
대체 몇 번째야 진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강태하는 억울할 것이다. 고작 한 번 물었으니까. 하지만 이겸은 아니었다. 같은 말을 두세 번만 듣고 말해도 화를 낸다는데 이겸은 무려 다섯 번이나 넘게 같은 질문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또 5분이 흐르고.
“요즘 무슨 일 있어?”
이겸은 서도현을 향해 마음속으로 항의했다.
언제까지 할 건데, 미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