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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12)화 (12/102)
  • #012

    “…언제 와.”

    이겸은 대낮 길목에서 한 사람을 기다리며 뻑뻑한 눈을 문질렀다. 서도현을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니 그때의 일도 떠오르고, 악몽 비슷한 걸 꾼 탓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딱히 그 점이 아니라도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었고.

    그때 누군가 이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화들짝 놀라며 제 옷을 잡아끈 대상을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형!”

    “…너는.”

    “저는 래터의 차재우라고 해요!”

    키가 작은 남자아이였다. 이겸은 차재우라 소개한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날, 이겸이 죽던 그 날, 분명 서도현의 옆에서 시간을 재는 걸 도와주던 이였다.

    서도현이 데리고 다니던 남자아이. 가까이서 보니 훨씬 어려 보였다. 어림잡아 중학생 정도일까.

    “도현이 형은 사정이 있어서 제가 대신 왔어요. 오후에는 오실 거예요. 편하게 재우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

    약속을 해 놓고 오지도 않다니, 능력 사용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 했는데, 본인이 아닌 아이를 소개시켜 줘? 불쑥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도현이 안 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재우는 이겸을 안내하면서 재잘재잘 쉴 틈 없이 말을 걸었다.

    이겸은 재우에게서 세 발짝 멀어진 거리를 유지하며 주의 깊게 그를 따라갔다. 그날 재우도 서도현과 함께 있었다. 그걸 잊을 리가 없었다. 네가 내 죽음에 대해 방관한 걸 잊지 않는다, 라는 암묵적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굳이 이겸의 느린 보폭에 맞춰 걸어 주는 재우의 필요 없는 배려에 세 발짝 떨어져 걷는 건 너무나도 쉽게 무산되었다.

    “저는 18살이에요. 요 근처 고등학교 다니고 있어요.”

    “학생?”

    “네, 근데 마스터 따라 크리처 사냥하러 가느라 결석을 좀 자주 해요. 새벽까지 일하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차재우가 작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키가 이렇게 작나? 성인도 아닌 애가 크리처를 잡다니…. 지난번 권상혁을 따라가 사냥 과정을 한 번 지켜봤던 이겸은 그 잔인한 광경을 재차 떠올렸다. 크리처의 신체 일부가 잘리고 피가 사방으로 자욱하게 튀었었다.

    그걸 이 어린애가. 제가 죽는 걸 방관했단 건 별개로 갑자기 동정심이 마구 차올랐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아직 자아 성장이 끝나지 않은 시기에 가혹한 환경에서 자라니 이리 변한 건가.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짓이야.”

    “……? 네, 그렇죠.”

    이겸의 조언을 곰곰이 생각하던 차재우는 손뼉을 마주쳤다.

    “아, 그땐 죄송해요. 마스터한테 형에 대한 설명은 대충 들었어요. 마스터가 형 각성하는 꼴은 봐야겠다고 해서…. 저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각성이 대체 뭐길래….”

    이겸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차재우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권상혁이 말해 줬듯이 1차 각성 때는 신체의 변화, 2차 각성은 능력의 개화. 헌터의 등급을 상, 중, 하로 나누는데 1차 각성 등급이 높을수록 2차 각성도 높은 확률로 등급이 높아진다.

    재우는 그 외에도 서도현의 능력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주었다. 그걸 들은 이겸은 얼굴을 굳히고 한마디 소감을 발표했다.

    “사기잖아.”

    “네, 사기죠.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커요.”

    하루에 10번밖에 못 쓰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데에 체력적, 정신적 한계가 있어 5분 이내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이겸도 최근 주기적으로 그 일을 겪었기에 차재우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그의 능력에 대해 대충 감은 잡고 있었다. 근데 하루에 10번도 사기인 거 아닌가? 따지자면 실질적으론 50분이잖아?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 그게 마스터의 생각이에요.”

    이겸이 헛웃음을 찼다.

    “그래서 그날, 날 죽인 거라고? 위기의 순간이라도 만들려고?”

    “…네. 죄송하지만 그게 1차 각성을 유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거든요. 그리고 설사 가상 세계에서 죽는다 해도 진짜 죽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의문이 있다. 1차 각성을 유도해서 어쩔 건데? 가상 세계가 끝나면 1차 각성 전으로 다시 돌아올 텐데.

    이겸의 의문을 눈치라도 채듯 재우가 재빨리 말했다.

    “시뮬레이션 돌려서 1차 각성을 확인한 후, 래터로 스카웃해 빠르게 키우거나 별로다 싶으면 놓아줘요. 어차피 상대는 자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하니까. 근데 이겸이 형은….”

    조금 특이 케이스라.

    이어서 우물거렸다.

    능력도 따지자면 ‘상’에 해당될 것 같고, 서도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기억하지 말아야 할 가상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부 기억해 냈으며 1차 각성마저 성공적으로 마쳤다.

    “근데 그걸 나한테 술술 말해도 돼? 리스크라면 걔 약점 같은 거 아닌가?”

    “네. 사실 마스터 능력은 헌터 중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어요. 근데 마스터가 이겸이 형한테는 숨기지 말고 뭐든 말해도 좋다고 허락받았어요. 아! 그 대신 함부로 발설하는 건 자제해 주세요.”

    이겸은 눈썹을 찡그렸다. 자제 안 하면 지가 뭘 어쩔 건데. 그날처럼 또 죽이려나? 아니지. 이번엔 진짜로 죽일 수도.

    저를 죽인 건 절대 용서하지 못했다. 이건 아무리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재우는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주었다.

    2차 각성의 능력이 개화하면 능력에 따라 몇 가지 분류로 나뉘는데 대표적인 게 공격계, 치유계, 방어계라고 했다. 게임으로 치면 쉽게 말해 딜러, 힐러, 탱커였다. 그 외 분류하기 어려운 건 두루뭉술하게 기타계라고 불린다.

    재우가 뒤이어 뿌듯해했다.

    “참고로 전 기타계로 등급은 ‘상’이에요.”

    “‘상’이면 뭐가 달라?”

    “네. 중, 하는 많이 있는 반면 상은 특별하거든요. 소수 중의 극소수.”

    “…근데 상, 중, 하는 누가 정하는데?”

    이겸의 질문에 재우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협회요. 곧 있으면 S, A, B, C, D… 이렇게 더 세분화해서 바뀐대요. 끄응, 전 S겠죠? S면 좋겠어요! 하다못해 A라도!”

    등급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겸은 제발 S 뜨라며 허공에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는 재우를 이상한 눈길로 흘겨봤다.

    “근데 이겸이 형은 어느 길드세요? 아직 고민 중? 래터는 어때요?”

    “난 헌터 안 할 거야.”

    만약에, 정말 만약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헌터를 해야 한다면 그때는 크리처 사냥도 안 나가고, 목숨의 위협도 없는 권상혁과 같은 신입 관리 직책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협회 소속인가.

    “네? 헌터 안 해요? 그럼 길드 안 들어가요? 왜요?”

    “난 헌터 같은 거 안 해. 평범하게 잘 먹고 잘 살 거야.”

    지금껏 그랬듯. 길을 걷다 크리처가 보여도 무시하고, 헌터가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그렇게 평생을 못 본 척하며 지낼 거다. 자신이 있었다. 서도현의 능력에 얽히지만 않았으면.

    그리고 지금 그 능력에 대해 협의를 하러 만난 거고. 정작 능력의 주체가 되는 당사자는 안 나왔지만.

    “으음. 아쉽네요. 그때 ‘피레’도 능숙하게 잘 잡으셨고, 래터로 들어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피레?”

    “네. 이겸이 형이 잡았던 물고기형 크리처요!”

    “…그때 보고 있었구나.”

    그 둘은 그때부터 자신을 보고 있었던 거다. 그래 놓고 구하기는커녕 구경하다 뒤따라가서 살인이나 하고. 혹시 그때도 시뮬을 돌리고 있었나? 내 1차 각성을 확인하려고? 하아. 이겸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재우에겐 꼭 그게 타박처럼 들려왔다.

    “으어… 죄송해요. 그러면 안 됐는데.”

    “그러면 안 됐으면 하질 말았어야지.”

    “…주의할게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그래, 짧아도 무척이나 짧았지.

    주의를 한다고 귀 기울여 들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의기소침해 보이는 재우의 행동에 내려던 짜증도 들어가고 말았다. 차라리 서도현처럼 뻔뻔하게 굴면 속 시원히 화라도 낼 텐데.

    뭔가 더 답답해진 기분이다.

    “카페! 저희 카페 가서 시원한 음료라도 마셔요! 제가 사 드릴게요.”

    이겸은 미안함에 식은땀을 흘리며 지갑을 꺼내 든 재우를 쳐다봤다. 고등학생의 등골을 빼먹는 것 같아 그다지 내키진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재우는 헌터라는 그럴듯한 직장이 있었고, 자신 또한 대학생에 불과했다.

    미안함을 금전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은 마음 아주 잘 알겠다.

    “그러든가.”

    역 앞 사거리에 위치한 카페로 걸음을 옮기자 재우가 뒤따라왔다.

    “근데 래터는 길드 사무실? 그런 건 없어?”

    만약 있다면 멀쩡한 사무실 놔두고 밖에서 보자 한 것에 의문을 표했다.

    “크흠! 그으게…. 저희 사무실은 지금 보수 공사 중이어서…. 많이 번잡할 거예요. 카페가 만나기 깔끔하고 좋잖아요? 하하.”

    재우는 은근슬쩍 사무실로 안내하는 걸 거리끼는 기색을 비쳤다. 이겸 또한 래터투성이인 곳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카페가 편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음료를 시킨 뒤, 재우는 빨대로 얼음을 뒤적거렸다.

    “맞다. 이겸이 형. 헌터 테스트는 봤어요? 마스터가 거기서 형 봤다는데.”

    “안 봤어.”

    “네? 진짜요?”

    “응. 짜증 나서 그냥 뛰쳐나왔어.”

    재우는 미안하다며 어색하게 빨대만 뭉그적댔다.

    “저희 마스터 때문에 그렇죠?”

    마스터라면 서도현일 텐데. 테스트 때 서도현이 자신을 보고 있었나? 어디서?

    “아니. 다른 사람 때문에.”

    권상혁을 떠올리자 이가 아득 갈렸다.

    “헌터가 될 것도 아닌데 안 봐도 상관없잖아.”

    “그렇긴 하죠.”

    마지못해 긍정한 재우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꺼냈다.

    “형이 래터로 들어오면 참 좋았을걸.”

    “너 같으면 살인자 집단에 들어가고 싶겠어? 아, 이미 들어갔구나.”

    “사, 살인자 집단이라뇨! 래터는 그런 거 아니에요.”

    “왜. 맞잖아. 마스터부터가 그 꼴인데.”

    재우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코 소리가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끝내 한다는 말이 쭈굴거리는 “죄송해요.”가 전부였다.

    제 나름의 이유조차 이겸에겐 구차한 변명으로 들린다는 걸 알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서도현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기도 했고.

    그날의 일은 오직 서도현을 빼고, 죽임을 당한 상대도, 그의 옆에서 방관하는 재우도 모든 걸 잊기 마련이었다.

    사실 재우도 도현의 능력 설명을 본인에게서 말로만 전해 들었지, 직접 겪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겪는다 해도 잊으니까.

    다시 말해 도현을 따라나서서 시간만 재 주면 자신이 기억도 못 하는 사이 얼레벌레 대부분의 일이 끝나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무책임하고 가볍게 굴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진정 피해자가 나오고서야 자신도 한 사람의 가해자였다는 걸 깨달았다. 도현의 세계를 기억할 수 있는 이겸이란 존재가 없었으면 아마도 평생 잘못을 몰랐을 수도 있었을 거다.

    재우는 우물쭈물 애꿎은 제 손만 주물럭거리며 만져 댔다. 시간이 갈수록 이겸의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죄책감에 고개만 푹 숙이길 한참.

    “늦어서 미안. 일이 생겨서.”

    흠칫. 순간 이겸은 제 어깨 위로 닿는 무언가가 느껴져서 몸을 작게 떨었다.

    뒤를 돌아보니 서도현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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