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서도현의 검고도 텅 빈 눈 속에 일순 당황감이 스쳐 지나갔다.
‘깨어났나?’
아니, 그렇다 해도 능력 발동 중에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는 없을 텐데. 예상치 못한 변수에 도현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띠띠띠- 띠띠띠-.
도현이 주저하던 사이 손목시계의 알람이 울렸다.
“그거…. 5분 지나면 울리는 거야? 설정해 둔 5분 동안은 네 세상이고?”
연신 초점을 맞추지 못한 이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기억도 못 하는 사람 죽여 대니까 좋냐.”
개새끼, 시발 새끼. 온갖 비속어를 다 처박아도 모자랄 놈이었다. 기억도 못 하는 시간 속, 애꿎은 사람을 몇 번이고 죽여 대는 미친변태사이코살인마.
“나는…,”
“입 다물어.”
한 가지 분명한 건, 판타지적인 기상천외한 일들이 제게 벌어지고 있단 거였다. 그리고 저놈은 기묘한 능력을 사용해 자신을 죽이는 미친놈. 뭔가 기억 조작 같은 건가?
‘하아…. 그 정도면 사기잖아.’
다섯 번 죽고 나자 이제는 죽음의 공포보다 남자에 대한 분노가 더 거세졌다. 이겸은 삿된 숨을 내쉬며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5분 지났으면 네 세상도 끝이겠네?”
“…….”
“어금니 꽉 깨물어라.”
퍽.
퉤. 서도현은 피가 고인 침을 뱉어 냈다. 터진 볼을 소맷자락으로 훔치곤 고통의 정도를 확인했다. 이 정도 힘이면 중 혹은 상까지는 갈 게 분명했다. 그는 희미한 웃음기가 서린 얼굴로 말했다.
“역시 너 래터로 올래?”
이겸이 차갑게 굳었다. 눈앞에 사람이 아닌, 사물을 보는 무감정한 눈이었다.
“너 같으면 가겠냐.”
살인자 새끼. 래터가 뭔지는 몰라도 ‘와라.’라고 한 걸 보면 자기도 그쪽에 있다는 뜻이겠지. 살인자랑 한곳에 있다니 온몸의 세포가 절로 떨려 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다섯 번, 아니 실수로 여섯 번. 몰라 그 이상.
죽인다. 죽을 때까지 죽여 대갚음한다.
세간에서는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하지만…. 알 게 뭐야.
현재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단 한 가지 일념.
살인마 자식을 죽인다.
이겸의 주먹이 공기를 가르고 그의 얼굴로 향했다.
텁. 하지만 서도현의 얼굴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주먹이 잡혀 버렸다.
“두 번은 안 맞아.”
억울하게도 그와 이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힘의 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도현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처음 맞아 준 건 이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였고, 확인은 끝냈다. 그는 손등으로 상처 난 제 뺨을 문질렀다.
“아프긴 하네.”
음, 다섯 번 죽인 값이라 칠까. 아니, 미안하니까 몇 번 더 맞아 줘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보다….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기억하지?”
이겸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기억력 하난 좋거든.”
“응, 역시 래터로 오자.”
도현은 권상혁이 한 것처럼 제 명함을 꺼내 이겸에게 내밀었다. 단순히 팔을 뻗는 동작이었지만 이겸은 재빨리 몸을 벽에 붙여서 도현과 멀어지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걸 본 남자가 허탈한 듯 김빠진 소리를 내었다.
언젠 무서울 것 하나 없다며 달려들다가도 겁 많은 살쾡이처럼 털을 바짝 세운다.
“하하. 이제 안 죽여. 정 무서우면 여기 놔두고 갈 테니 나중에 연락 줘. 언제든 좋으니까.”
남자는 명함을 바닥 위에 고이 올려 두었다.
왜 네게 기묘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 줄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등을 돌려 사라졌다.
이겸은 사라지는 그의 등에 대고 무어라 소리를 지를 수도, 공격을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힘의 차이였다.
찬찬히 숨을 몰아쉰 후에야 땅에 놓인 명함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