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5)화 (5/102)

#005

서도현은 편의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아, 이겸과 대화를 나누는 권상혁을 보고 어이없단 듯 고개를 까딱였다.

“쟤 뭐냐?”

“글쎄요, 인재 뺏기?”

차재우의 발랄한 말에도 도현의 구겨진 얼굴은 감출 길이 없었다. 그는 편의점 속의 두 사람을 한참 동안 눈여겨보다 재우를 불렀다.

“인재? 쟤도 헌터야?”

도현이 낯을 찌푸렸다. 재우는 권상혁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분 본 적 있어요. 아마 협회 소속일걸요?”

“협회?”

“네. 협회에서 자주 마주쳤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굳이 기억해야 해?”

재우가 그럼 기억하는 자신은 뭐가 되냐며 잔뜩 울상을 짓자마자, 이야기를 끝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겸과 상혁이 보였다.

“어어, 형! 대화 끝났나 본데요? 시뮬(simul) 다시 시작해요?”

서도현은 협회라는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다 몸을 움직여 이겸의 뒤를 따라갔다.

“넌 여기서 기다려.”

‘…네? 방금 뭐라고….’

‘도, 안 믿습니다.’

‘아, 제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군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말하죠.’

이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의 상황을 회상하며 낮게 혀를 찼다.

그가 갑자기 다가와 이상한 질문을 할 때, 사실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있었다.

방금 전 싸웠던 물고기 괴물.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왠지 분명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대놓고 묻기엔 너무 내 정보만 까놓는 것 같고, 혹 말했다가 어디 이상한 단체로 끌고 가면 어떡하지? 끌려가서 실험당하나? 괴상한 생각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너무 갔다 여기겠지만, 이겸은 늘 조심성이 많았다. 그럴 가능성도 언제나 염두에 둔 채 신중히 행동해야 했다.

섣부른 행동을 하는 것도 싫어했고, 필요 없는 정보를 아무에게나 남발하는 것도 싫어했다. 언제나 상식적인 선에서 효율을 찾아 움직였다.

대학생이고 공부에 전념해야 하기에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연애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고백은 몇 번 받은 적이 있다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그에겐 고백 연락보다 선배가 주는 시험 족보 연락이 더 설레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이 사람이 누군지 정체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괜히 엮여 봤자 좋을 것 없다는 결론을 단호히 내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남자는 그 후에 다른 말도 했었다.

‘흠… 아직 각성 전인가.’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제 명함이니 언제든 연락 주세요.’

‘…명함은 버리지 말 걸 그랬나.’

이겸은 자신을 권상혁이라 소개한 남자의 눈앞에서 명함을 고이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 걸 후회했다.

하지만 명함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는 머릿속에 기억해 뒀으니 상관없었다. 아주 잠깐 본 게 다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기억력 하나는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고 자부했기에 틀림없었다.

이겸은 어느새 도착한 제집 앞을 올려다봤다.

편의점에서 밤을 새우려 했는데 웬 이상한 놈 때문에 도망치듯 나와 다시 들어가기도 민망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우습게도 아까의 떨림도, 공포도 전부 멎은 지 오래였다.

‘그래…. 괜히 밖에서 밤새운다고 고집 피우지 말고 얌전히 집에나 들어가자.’

결심을 마친 후 계단을 올랐다.

결심이 무색하게.

흠칫! 뒤를 돌아봤다. 전등이 꺼진 비상계단은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후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괜히 과민 반응을 하게 되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자 움직임을 인지한 전등의 센서 불이 켜지고 3층에 도달했다.

순간 무언가를 살피듯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이겸의 이상한 행동은 다시금 터져 나왔다.

순간 3층 복도를 미친 사람처럼 뛰어가다가 앞으로 미끄러지듯 슬라이딩했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린가, 본능적으로 움직인 일이라 자신도 스스로의 돌발적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바로 서니 304호의 팻말이 보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도착했다, 라는 기쁨이 이성을 지배했다.

“어떻게 피했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이겸의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섰다.

“아, 오늘따라 되는 게 없네.”

그는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단지 섬뜩하다, 라는 한 단어가 전신을 무자비하게 감쌌다.

위험하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당장에라도 자신을 찔러 죽일 것 같았다. …찔러? 뭐로? 칼도 안 보이고, 하다못해 과도를 숨길 주머니도 보이지 않는 차림인데?

“누구…세요. 여기 사는 주민은 아닌 것 같은데,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이겸이 뒤로 물러섰지만 도현이 그가 물러선 거리만큼 다시 다가왔다.

“아까도 생각했는데, 너 감이 진짜 좋아. 아직 꿈꾸는 중인데 그 정도면 꽤 우수한 인재가 되겠어.”

도현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스산하게 웃었다.

“뭐, 됐어. 몇 번 더 죽어 보면 완전히 깰 거야.”

“…죽어? 내가?”

“응, 언제 깰지도 모를 꿈에서 사는 건 너도 답답하잖아? 걱정 마. 내가 금방 깨워 줄게. 5분 넘어가겠다. 바로 시작할게.”

“무슨 개소….”

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다.

***

3층에 도달한 윤이겸은 불현듯 아무 이상도 없는 제 명치 부근을 더듬어 봤다.

“윽!”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누군가 둔기로 수차례 내리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귓가에선 요란스러운 이명도 들렸다. 숨이 턱 하고 목 끝까지 차올랐다.

전신에 근육통이 찾아온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가 불에 타 짓이겨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잇따랐다.

“이봐.”

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 있던 자리 그대로 주저앉다 못해 쓰러진 이겸은 제 어깨를 툭툭 건드는 낯선 손길에 어렵사리 고개를 들었다.

날 티가 팍팍 풍기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마스크를 쓴 검은 머리의 남자였다.

“…구급…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언제는 경찰을 부른다지 않나, 이번엔 구급차를 불러 달라질 않나. 어느 장단에 맞춰 줄까?”

이겸은 난감하단 기색이 가득한 남자를 절박한 심정으로 붙잡았다. 손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둘 중 아무, 아무거나….”

남자는 손을 들어 눈매를 늘어뜨리며 곤란하단 듯 대답했다.

“너 아픈 거 아니야.”

“무슨 개, 소….”

지금 죽을 거 같다고. 그게 아파서 쓰러진 사람한테 할 말이냐.

신체를 이루는 뼈와 장기들이 일일이 분해되고 재배치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폐에 물이 가득 차는 것처럼 기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뼈마디가 저려 왔다.

아, 이거 독인가…. 그 물고기는 사실 독을 품고 있었고 걔를 죽일 때 나는 독에 중독돼 버린 건가. 그게 아니면 권상혁이란 사람이 나를, 그것도 아니면….

그러던 중, 서서히 고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뭐지?’

차츰 진정되기 시작하는 신체에 당혹스러움을 품었지만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건 여전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겸은 부르라는 구급차는 안 부르고 제 손목시계만 빤히 응시하는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누가 봐도 수상했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한가하게, 여유롭게 시간을 살피는 게.

‘마치 내가 언제 죽을지 초라도 세는 것처럼.’

이겸이 허공에 입을 벙긋했다.

“…너냐.”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이 원인이 너 때문이냐. 그리 말하고 싶은데 가래가 끓고 목 안쪽이 비릿한 게 피가 고이기라도 한 건지 소리가 쉽게 나오질 않았다.

“응? 무슨 말 했어?”

연신 손목시계만 살피던 남자가 이겸을 쳐다봤다.

이겸이 쿨럭, 기침을 하자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문득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나 진짜 죽는 건가.’

아직 이룬 것도 뭣도 없는데…, 창창한 나이인데…. 처음부터 괴물에게 붙잡혀 간 남자를 구해 주러 뛰어드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괴물을 마주친 게 아니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라던데. 남자를 괴물에게서 구했다는 기쁨과는 별개로 나는 왜 죽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과 억울함,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무슨 말 했냐니까?”

이겸은 제 볼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하는 남자에게 무거운 입술을 뗐다.

“네가… 날 죽였어?”

남자의 행동이 뚝 멎었다.

생각을 말로 내뱉고 나니 머릿속 무언가가 정리되는 듯 명쾌해졌다. 순간 어지러움을 호소하던 머리가 쥐 죽은 듯 차분해지며 시선이 천천히 그의 손으로 향했다. 종일 엉키기만 반복하던 실마리가 드디어 풀린 것 같았다.

뼈대가 튀어나온 손등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나는 저 손을 본 적이 있다.

아무 이상도 없는데 저도 모르게 고통을 호소했던 명치 부근, 저 사람의 손,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언제나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 언제나.

귀의 피어싱, 내리우는 달빛, 짙게 번져 가는 피, 감기는 눈, 돌고 도는 딜레마, 얽히고설킨 기억의 파편들.

“개새끼야….”

벽을 지지대 삼아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셈으로 따지면 다섯 번, 여섯 번을 지나 일곱 번째인 지금. 길고 긴 시간 속. 범인은 두 명.

모든 걸 깨달은 이겸이 비릿하게 웃었다.

“한 놈은 어디 버리고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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