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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7)화 (7/102)
  • #007

    이겸은 강태하와의 약속도 취소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다름 아닌 며칠 전 편의점에서 마주했던 권상혁이었다.

    이겸이 못 본 척, 안 보이는 척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해가 없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했다. 아까 전 그 섬뜩했던 시선을 떠올리자니 절로 오금이 저렸다.

    로브를 쓴 자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 사람들을 죽인 거라면 이겸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운이 좋았다. 강태하가 타이밍 좋게 나타나 저를 살린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쯤 아마…. 상상도 하기 싫었다.

    괴물만 피하면 되니, 무섭긴 하지만 저와는 상관없을 거라 여겼던 일들.

    하나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 있다면 또 달랐다.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걸 깨달은 이겸은 더는 이 사태를 방관할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 기묘한 일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선택이 있는데, 제게 들어온 두 개의 명함. 편의점에서 만났던 권상혁과 현관문 앞에서 자신을 몇 번이고 죽였던 서도현.

    권상혁이란 자가 정말 이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도를 믿으세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전제는 아예 배제하기로 했다.

    그야 소매치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제 바지 주머니에 아무런 흔적도 없이 명함을 쏙 넣을 순 없었다. 그리고 물고기 괴물을 죽이고 난 후 권상혁이 바로 나타났다는 점도 있었다.

    서도현과 권상혁 중 누구에게 전화를 해 보느냐.

    답은 뻔하지 않은가.

    다행히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어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권상혁입니다, 전화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편의점에서 마주쳤던 사람인데요….”

    - 아아!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큼, 이겸은 작게 헛기침을 한 후 진중히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 그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요.”

    ***

    “잘 오셨습니다! 명함에도 적혀 있었듯, 저는 권상혁이라고 합니다.”

    “아… 네.”

    이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권상혁이 안내하는 사내를 둘러봤다.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가 데려온 이곳은 지난번 어떤 사람이 지도를 그려 주었던 장소와 같은 위치였다.

    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겉으로 봤을 때는 낡고 초라해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내부로 들어오니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인테리어도 하나같이 고급스러웠다. 대기업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음, 뻔한 질문이겠지만 무엇이 궁금해서 연락을 주셨죠? 괴물?”

    안경 틈으로 권상혁의 눈이 반짝였다.

    ‘맞게 찾아 왔나 보군.’

    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다요. 제게 일어나는 일 전부 다.”

    “좋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그것들은 언제, 어디서, 왜 나타났는지 불분명하다. 원인을 찾지도 못했고, 기록된 바도 없었다. 그만큼 은밀하고 조용하게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괴이, 괴물, 몬스터. 현대에 이르러서는 ‘크리처’로 불린다.

    소수의 사람들에겐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마치 크리처를 잡아 죽이라는 듯.

    그런 사람들을 ‘헌터’라고 부른다.

    흔히들 1차 각성과 2차 각성으로 나누곤 하는데, 그 이전에 기가 트이는 것처럼 눈이 트인다. 자연스레 크리처를 볼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좋든 싫든 영향을 받는다.

    그 이후 1차 각성. 1차 각성은 크리처를 볼 수 있는 개안과 신체의 비약적인 증진. 2차 각성은 이능력을 얻게 되는 능력의 개화였다.

    따지자면 이겸은 서도현과 만난 그날 밤, 1차 각성을 마쳤다. 신체가 재정립되듯, 세포 하나하나가 재조립되듯, 온몸이 불타 지져지는 고통스러운 느낌. 이윽고 얻게 되는 신체의 비약적인 향상. 그게 1차 각성이었다.

    “몇몇 헌터들은 비범한 능력을 지닌 채 크리처를 사냥하며 민간인을 보호했고, 또 몇몇 이들은 그 힘을 악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길드’입니다. 헌터를 관리하고 보호하기 위해서죠. 저희 협회는 그런 길드들을 관리하고 각성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일을 하고요.”

    권상혁의 설명을 전부 들은 이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분명히 한국말인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겸은 잠시 고민하다가 제일 궁금한 점을 콕 집어 말했다.

    “그러니까… 그, 혹시 그 힘을 악용한다는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까?”

    권상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가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났다.

    “혹시 만났습니까!?”

    “아뇨,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우물쭈물하는 이겸의 답변에 권상혁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라며 지도를 들고 와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서 만났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여기요.”

    그에 이겸은 한 곳을 짚었다.

    “흐음, 최근에 이 근처에서 세 명의 헌터가 실종되었습니다. 이거 큰일이네요! 목격자가 있었다니, 빨리 상사에게 연락을…!”

    이겸은 해 달라는 설명은 안 해 주고 연신 안경을 고쳐 쓰는 권상혁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뭡니까?”

    “아! 죄송해요. 지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블러드 헌터. 일반 헌터가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크리처를 사냥해 죽인다면, 블러드 헌터는 그 반대로 크리처를 숭상한다.

    한마디로 사이비 집단이었다.

    각성을 하면 크리처가 보이고, 크리처에게 공격을 받는다. 크리처는 본래 포악한 성정으로 대화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언제나 헌터들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든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마주치는 순간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

    그 이론에서 유일하게 벗어나는 방법은, 크리처의 피를 섭취해 동족이 되는 것이다.

    신체 일부분을 크리처처럼 변형시킬 수 있게 되며, 그들은 피를 마신 대가로 크리처와 동족 취급을 받아 먼저 공격을 가하지 않는 이상은 웬만해선 공격받지 않는다.

    그 기준이 모호하다지만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크리처에게 목숨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럼 좋냐고? 좋지. 부작용만 없다면.

    각성을 하지 않은 사람은 크리처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크리처의 공격도 맞지 않고, 크리처의 피를 마셔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헌터가 되어 크리처의 피를 마시면 마실수록 그것에 중독된다. 또한 크리처를 숭배하며 받들어 모신다. 크리처가 마치 제 피를 주고 헌터들에게 강인한 능력을 주는 대신, 세뇌라도 거는 것 같았다.

    나를 우상시하라고.

    당연히 블러드 헌터의 입장에선 제 신을 죽이는 일반 헌터들이 해악이고 적이다. 친해질 수 없는 관계. 같은 인간끼리 죽고 죽여야 하는 관계. 블러드 헌터는 다른 헌터들을 크리처에게 바칠 제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 때문에 블러드 헌터는 협회에서 금하기 마련인데도 워낙 비밀리에 활동하는 집단인 탓에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해 크리처를 신처럼 모시고, 인간을 잡아다 크리처에게 제물로 바치는, 그게 블러드 헌터였다.

    이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자신은 엄청난 이들과 마주한 모양이다.

    “…혹시 헌터가 되면 그들과 자주 대립하나요?”

    권상혁은 걱정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블러드 헌터를 잡는 헌터들은 또 따로 있고, 일반 헌터들은 크리처 사냥에만 힘쓰면 됩니다! 일반 헌터가 블러드 헌터를 마주칠 확률은 음…, 거의 없어요! 로또 당첨될 확률? 이겸 씨는 정말 운이 좋네요!”

    아니 이 사람이? 로또 당첨될 희박한 확률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 집단을 만났는데 운이 좋다고? 더럽게 나쁜 거지. 강태하가 와 주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송장 치울 뻔했다. 지금 상황 파악 안 돼?

    이겸이 눈을 부릅뜨고 권상혁을 노려볼 때 그는 천진난만하게 준비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다른 길드를 찾아봐도 좋습니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다면 협회 소속 헌터도 괜찮습니다. 월급도 괜찮게 나와요. 여기 사인만 하시면….”

    양손을 비비며 마치 사기꾼처럼 자신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말하는 권상혁에 이겸의 의심은 부풀어만 갔다.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앗, 신중한 것도 좋죠. 좋죠! 환영입니다.”

    그는 냉큼 대답하고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이겸의 시선이 그를 향해 올라갔다.

    ‘뭐지, 거절당했으면 이제 볼일 없다 이건가?’

    다행히 그건 아닌지 권상혁이 이겸에게 제안했다.

    “며칠간, 혼자서 열심히 알아보셨겠지만 역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는 법이죠. 자, 얼른 일어나시죠!”

    “…네?”

    “같이 보러 가요!”

    “뭘요?”

    “달라진 세상을요.”

    ***

    “몇몇 상위 길드는 자신들의 지정 관리 구역이 있습니다. 그 구역에서 크리처가 나타날 시, 다른 길드의 헌터는 크리처 사냥을 하지 못하고요. 그리고 지금 가는 곳은 협회 소속 구역이에요.”

    “구역이요?”

    “네. CA(Creatrue Appear) 지역이라고 크리처가 추후에 출몰할 곳을 그렇게 불러요. CA를 탐지하는 관리 시설은 따로 있고요.”

    “…….”

    일반 헌터가 크리처를 사냥해야 하는 이유는 잘 알았다.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블러드 헌터와 크리처가 편을 먹으면 더욱 곤란해지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누가 목숨을 걸고 크리처를 사냥하는가? 심지어 네 구역, 내 구역까지 일일이 나눠 가며.

    “관리 구역이 많으면 크리처를 마주칠 확률도 높을 텐데 왜? 위험한 건 피하는 게 낫지 않나요?”

    “대부분 팀을 이뤄 크리처를 안전하게 사냥하기도 하고, 크리처를 물리쳤을 때 얻는 부산물이 값어치가 높거든요. 그렇기에 다들 큰 구역을 맡으려고 하죠. 그게 아니라면 크리처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도 선호하는 편입니다. 아, 도착했습니다!”

    권상혁을 따라 도착한 곳은 어느 외진 숲속이었다. 그곳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쪽에 계신 분을 견학시켜 주려 하는데 잠시 괜찮을까요? 윤이겸 씨라고 합니다.”

    “그럼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겸 씨! 전 협회 소속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예, 안녕하세요.”

    윤이겸은 저를 끌고 와 인사를 시키는 권상혁에게 낯선 기분이 들었다.

    “저기… 견학이요? 혹시 이분들이 지금… 크리처 잡는 거?”

    “네. 모르셨어요? 지금까지 오면서 계속 CA 지역 이야기를 했는데. 아! 물론 당연히 이겸 씨에게 피해가 가게 하진 않겠습니다. 이제 슬슬 나오겠네요.”

    아니…. 얘기를 제대로 안 해 줬잖아, 이 양반아. 이겸이 허무한 표정으로 권상혁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그럼 견학 잘 마치고 오세요! 저는 아래에서 기다릴게요!”

    “잠깐! 어디 가요?”

    “저… 전, 크리처 사냥이 무서워서 아래에서 기다리려고요. 견학도 필요 없고. 하하.”

    이게 장난하나.

    “저는 안 무서운 줄 아세요? 데려왔으면 옆에 있기라도 해야죠.”

    이겸은 저를 지옥 불구덩이에 처넣듯 던져 놓고 홀라당 도망가려는 권상혁을 아득바득 붙잡았다.

    “으아아악! 싫어요! 잔인하고 징그럽고 무섭습니다! 제가 협회에서 월급도 쥐꼬리만 한 신입 관리 직책을 맡은 것도 이것 때문인데! 안 돼요, 안 돼요. 전 겁쟁이라 아래에서 기다릴게요!!”

    …뭐 하자는 거야.

    이겸은 아이처럼 떼쓰는 그에 어처구니가 없어 손아귀에 힘이 빠졌다. 쥐고 있던 상혁의 옷자락을 놓자 상혁은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으아아악! 갑… 갑자기 놓으면! 히이이익!”

    그는 이겸의 뒤쪽 무언가를 보고 놀라 손으로 바닥을 짚고 뒷걸음질 쳤다.

    “…….”

    이겸이 뒤를 돌아봤을 땐, 거대한 크리처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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