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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74)화 (75/145)

074화

그 사람은 지하 감옥에 갇혀있던 장 씨였다.

장 씨는 입구에 서서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그의 모습은 이전에 지하 감옥에서 보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척한 얼굴과 반쯤 풀린 동공, 손가락이 몇 개 남지 않은 손까지. 누가 보아도 폐인이라고 부를 만한 외양이었다.

“아니, 저 사람 장 씨 아닌가?”

오래된 단골손님 몇몇이 그를 알아본 듯 웅성거렸다.

“도박하다 죽은 거 아니었어?”

“그러게. 도박장에서 그렇게 끌려간 뒤로 아무도 못 봤잖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청연은 무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객잔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도 없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지하 감옥에서 자기 힘으로 빠져나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일부러 풀어 주었을 텐데. 풀려난 뒤에 도박장이 아닌 객잔부터 찾아왔다고? 왜?

청연은 조금 전 방 안에서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무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호가 일부러 데려온 건가.’

장 씨는 이가 부딪혀 딱딱 소리가 나도록 떨며 객잔 안을 훑어보았다. 이어서 발을 질질 끌고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아들아.”

그의 입에서 쉬어버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들아.”

청연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제하가 말을 걸어왔다.

“저 사람이 누군데 그러세요? 아는 사람입니까?”

“어…. 잠시만.”

먼저 무슨 일인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할 때였다.

“아들아!”

장 씨는 쉰 목소리로 외치며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어서 주방 안에서 접시가 쨍그랑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연이 급히 일어서 주방으로 향하자 제하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 안에는 무릎을 꿇은 채 해우의 옷자락을 붙들고 사정사정하는 장 씨가 있었다.

“하,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도와다오. 은자 오십 냥이면 나, 나를 풀어 주겠다는구나. 이 아비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다오, 응?”

해우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장 씨를 내려다보며 입술만 달달 떨었다. 평소의 무심하던 표정과는 달리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 그 안은 너, 너무 끔찍하고 추워. 햇볕 한 줄기 없이 비명만 들려오고. 정말 사람 살 곳이 아니야. 그러니 한 번만 더 도와주면 안 되겠니?”

그의 말을 들은 청연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해우와 장 씨가 부자 관계라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장 씨가 사라지기 전, 도박을 통해 딴 돈으로 객잔에서 술판을 벌일 때 해우와 해령도 분명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가 돈을 빌린 일로 한창 얻어맞을 때도 해우는 주방에서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청연의 머릿속에 문득 해령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저는 사실 부모님 얼굴도 기억 안 나거든요.’

그렇다면 해우는…?

“딱 은자 오십 냥이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마. 아비가 약속한다. 이 못난 아비를 한 번만 더 살려다오. 우리 착한 아들….”

넋이 나간 듯 그를 바라보던 해우는 드디어 입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제가… 제가 언제까지, 언제까지 아버지한테….”

해우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라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그의 바짓자락까지 잡고 애원하던 장 씨는 초점 없는 눈으로 말했다.

“살 집도 구했다며. 집만 팔아도 그게 다 얼마야. 은자 오십 냥 정도는 거뜬히….”

“아버지!”

울분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청연이 고개를 돌려 무호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해우였구나.’

그때 너를 마교에 팔아넘긴 사람이, 내가 그토록 아끼던 직원이었구나.

“제발 그만 좀 하세요. 그놈의 도박 빚 갚는다고 몇 번이나 돈 드렸잖아요. 그때, 구 년 전에도 제가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고생해가면서, 죽을 위기까지 넘기면서….”

원망 어린 눈길로 장 씨를 바라보던 해우는 뒤에 서 있던 청연을 발견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된 채였다.

“설명해봐.”

“…….”

“어서.”

그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청연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네가 방금 뱉은 말. 구 년 전에 죽을 위기를 넘겼다는 거. 그거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일 맞아?”

“…….”

“아버지 도박 빚 때문에?”

“…….”

“말 좀 해봐.”

해우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귓바퀴와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어렵사리 입을 연 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청연은 가슴속에서 치미는 화를 꾹꾹 눌렀다.

“처음부터 똑바로 말해.”

“그, 그 애가 처음 나타난 시기에…. 마교도들이 도망친 애를 찾는다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잖아요.”

“그때부터 쭉 알고 있었어?”

“네…. 그래도 객주님이 거두신 애니까 모르는 척하려고 했어요.”

무호가 객잔에 도착했을 때부터 출신을 알고 있었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계속해봐.”

“그러다가 아버지가 도박장에 큰 빚을 지셔서 정말 죽을 위기에 처하셨어요. 그,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돈을 마련해 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금액이 너무 커서….”

“그래서 정보를 팔았어? 어디에?”

“저쪽 큰길가 포목점에서 이 층으로 올라가면 정보를 사고파는 사람이 있어요. 거기서 돈을 받았어요.”

이야기를 듣던 청연은 착잡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었다.

“저는, 저는 그냥 정보의 출처를 비밀에 부쳐달라고만 했지 그걸 객주님 짓이라고 소문낼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럼 그날 너 칼 맞은 건? 어떻게 된 거야? 설마 그것도 꾸며 낸 거야?”

“아, 아니에요. 저는 그냥 그 사람들이 온 것만 확인하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싸움에 휘말리는 바람에….”

“…….”

“저도 후회했어요. 객주님께 피해가 갈 줄도 몰랐고, 그때 한 번만 더 빚을 갚아드리면 아버지도 도박에서 손을 떼실 줄 알았어요.”

그게 됐겠냐고.

청연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제하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차라리 나한테 말을 하지….”

“객주님께서 저희 남매 거둬주시고 별채까지 내어 주셨는데 어떻게 더 부탁을 드려요.”

“그 일 벌어진 후에라도 솔직히 말했어야지. 네가 그랬다고.”

“그때는… 여기서 쫓겨나면 정말 갈 곳이 없었으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해우는 결국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부터 객잔 나오지 말라고 하시면 안 나올게요. 그때 피해 보신 금액도 다 갚을게요.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네가 사과해야 할 상대가 내가 아니잖아.”

이제야 모든 걸 알게 되어 마음이 쓰렸다. 은자 오십 냥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호가 장 씨를 잡아 두었던 까닭은 이런 식으로 제게 진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여태 해우를 잡아가 고문하고 죽이지 않은 건 제하를 살려 주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널 정말 어떡하면 좋을까.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등 뒤에서 들려온 해령의 목소리가 아득해졌던 정신을 깨웠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지? 이 사람이 우리 아버지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해령아….”

“오라버니가 거짓말한 거지?”

해령이 넋이 나간 얼굴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자리에서 한발 물러선 청연은 뒤로 돌아섰다. 지금 이렇게 가만히 이야기만 듣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과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무호에게 다가가려던 청연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가 앉았던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턱을 괴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그 공자님 찾으세요? 진짜 어디 가셨지?”

“제하야, 넌 잠깐 앉아 있을래? 식사하고 있어.”

청연은 제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객잔 밖으로 나섰다. 바쁘게 좌우를 둘러보던 그의 눈에 담벼락 아래 서 있는 무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종이쪽지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전서구가 전해 주고 간 것인지 저 멀리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이 보였다. 쪽지를 내려다보는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건가?’

청연은 걱정되는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마침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이 제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무호…!”

그의 이름을 소리 내 부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 걸음을 떼자마자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뭐야?’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저 지붕 위를 올려다보아도 그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았다. 청연은 거리 위에 혼자 남겨진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갔어? 간 거야?’

밥 먹고 나서 이야기하기로 해놓고 그렇게 가면 어떡해? 무슨 급한 일이 있었길래. 너한테 물어볼 것도, 하고 싶은 말도 엄청나게 많은데. 그리고….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오늘따라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이 마치 족쇄를 찬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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