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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73)화 (74/145)

073화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눈 깜짝할 새 방 안으로 끌려 들어온 청연은 놀라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제 손목을 붙잡고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아…. 깜짝이야.”

간만에 객잔을 찾아온 무호였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청연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간 떨어질 뻔했네. 언제 왔어?”

“방금.”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로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왔을까 궁금한 것도 잠시, 청연은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음을 기억해 냈다.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 반지를 왜 네가 가지고 있었는지, 너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내게는 왜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 건지.

물어보면 답을 해 줄까. 여태 한 번도 시원한 대답을 들은 적 없는데.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망설이던 청연은 무호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그의 안색이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너 무슨 일 있어?”

“없어.”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야?”

“…….”

입을 꾹 다물고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하는 그의 행동에 다시 한번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동안 그와 시선을 마주하던 청연은 결국 주제를 돌렸다.

“아침은?”

“아직.”

“그럼 먹고 가. 먹고 나랑 얘기 좀….”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허리를 끌어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잠깐만! 아니, 깨물, 깨물지 말고! 내가 네 아침밥은 아니잖아.”

청연은 귓바퀴를 잘근잘근 깨무는 그의 행동에 흠칫 놀랐다. 그와 한참이나 입을 맞춰야 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혹시 그때와 비슷한 상태인 걸까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번에는 제정신인 건지, 아프지 않게 귀를 깨물던 그가 청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난처해진 청연은 그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자꾸 이렇게 무작정 끌어안지 말고 차라리 말로 해. 응?”

이럴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리고… 잠깐 얼굴 좀 들어봐. 나 너한테 중요하게 물어볼 거 있으니까.”

무호는 여전히 청연의 허리를 안은 채로 고개만 약간 들어 올렸다.

“뭔데.”

청연이 손을 들어 보이자 손가락에 끼워진 은반지가 반짝였다. 시선을 옮겨 반지를 발견한 무호의 얼굴에 순간 동요가 일었다. 그를 지켜보던 청연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 반지….”

“기억이 돌아왔어?”

“…뭐?”

대뜸 물어오는 그의 질문에 청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너 방금 뭐라고….”

그때, 문밖에서 청연을 찾는 해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객주님! 어디 계세요! 방에도 안 계시고…. 이 시간에 어딜 가셨나?”

이윽고 해령이 손님 없는 빈방의 문을 열어 보는 듯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반복해서 났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청연이 무호의 몸을 밀어내려 시도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해령이 오잖아!”

다급하게 외치며 무호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이미 완전히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 남자였다. 선이 얇고 단정한, 미남보다는 미인에 가까운 곱상한 얼굴이었다. 그의 순발력에 감탄한 청연은 저도 모르게 입을 헤벌렸다.

그러기 무섭게 방문이 덜컥 열렸다. 방 한가운데서 끌어안은 채 서 있는 두 남자와 해령의 눈이 마주쳤다.

“오… 와….”

해령은 할 말을 잃은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이제 헛걸 보나….”

“조, 좋은 아침….”

청연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한 손은 등 뒤로 돌려서 무호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리고 있었다.

“…뭐 하세요?”

“손님이 뭐 좀 도와 달라고 하셔서.”

“여기 빈방이었는데.”

“방금… 오셨어…. 손님이….”

“뭘 도와주시길래 그렇게 껴안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시선을 한군데 두지 못하고 방황하던 해령은 머리를 긁적이며 슬쩍 뒷걸음질 쳤다.

“제가 방해했나 보네요. 그럼 이만.”

“해령아, 잠깐만!”

“네?”

“나 왜 찾았는데?”

“제하가 일 층에서 기다려요. 객주님이랑 식사하겠다고요. 그러니까 얼른 하던 거 마무리하시고 내려오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하고 무호에게도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해령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방을 떠났다.

“객주님이 단수였다니….”

청연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본의 아니게 객잔의 총관 앞에서 단수가 되어 버렸다. 반면에 무호는 그러든지 말든지 그를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였다.

“이러면 내가 손님이랑 정분난 것 같잖아.”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니. 객잔 주인으로서 내 사회적 체면은 뭐가 되는데.”

“그런 게 있었던가.”

“…아무튼 놔. 내려가서 아침부터 먹어. 반지 얘기는 이따가 마저 해.”

좀 전에 무호가 분명 그랬지. 기억이 돌아왔냐고.

‘진짜 얘는 뭘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기억이 없었다는 것마저 그가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제법 길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연은 가까스로 그의 팔을 풀고 벗어나 일 층으로 향했다.

***

“…이분은 누구십니까?”

졸지에 두 남자를 같은 자리에 앉혀놓게 된 청연은 좌불안석이었다. 오른쪽에서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제하와 왼쪽에서 딴청을 피우는 무호 사이에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내 친우야.”

“존함이…?”

무호는 그의 질문을 무시한 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곱상한 미인의 형태를 하고 있어 언뜻 보면 명문 세가의 공자 같기도 했다.

“천가… 양양이야.”

청연이 대신 답하자 제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습니다.”

“흔한 이름이니까.”

“그럼 공자께서는 객주님과 어떻게 아는 사이십니까?”

이번 질문에도 청연이 대신해서 답해야 했다.

“객잔 손님으로 오셨다가 친해지게 됐어.”

“말수가 적으신 편인가….”

청연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어제와 달리 제하가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상한 짓만 골라서 해대던 어제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의원을 불러 오고 싶었다.

“스승님께선 다시 감숙으로 가신 거야?”

“예. 저도 사천에 오기 전에 잠시 들러 살폈는데 이전보다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약이 완성되어 병자들도 회복 중이고요.”

역병은 원작보다 일 년 일찍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명의 대처 또한 그만큼 빨랐던 덕인지 병이 중원 전역으로 번져나가기 전에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역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니까.

‘내가 미리 언질이라도 드렸어야 했나.’

하지만 이런 일까지 일 년씩 앞당겨질 줄은 몰랐는걸. 그걸 알았으면 무호한테 납치도 안 당했겠지.

청연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제하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품속에서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조그마한 단환이 들어있었다.

“이게 뭐야?”

“스승님께서 만드신 약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역병이 다시 퍼지게 될까 하여 챙겨왔습니다.”

“이걸 나한테 준다고?”

“예. 객주님의 건강은 제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니까요. 어?”

그 순간 제하의 찻잔이 휙 엎어져 찻물이 쏟아졌다. 흘러내린 물에 옷을 적신 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툭툭 털었다.

“이게 갑자기 왜 넘어졌지?”

“…손수건 줄까?”

청연은 손수건을 꺼내 제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가 물기를 닦는 동안 고개를 살짝 돌려 무호에게 시선을 보냈다.

무호는 대충 어깨를 으쓱한 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무튼 걱정하지 마세요, 객주님.”

“응…. 괜찮겠지. 약 챙겨줘서 고마워.”

괜찮을 거라 말하면서도 생각할수록 찝찝했다. 여기저기서 강시를 만들려다 실패한 시신이 발견되는 것도,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역병이 돈 것도.

혹시 이 모든 게 누군가 의도한 일이라면….

“제하야.”

“예?”

“발병 원인은 알아? 스승님께서 말씀해 주셨어?”

제하는 고개를 저었다.

“가축으로부터 사람에게 옮겨져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나, 정확한 원인은 아직 확실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작게 낮추더니 속삭였다.

“병든 가축을 처음 풀어놓은 것이 마교의 소행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할 말을 잃은 청연은 곁눈질로 무호를 살폈다. 찻잔을 잡은 그의 손가락이 조금 꿈틀한 것 같기도 했다.

“아, 아닐걸?”

“그걸 어찌 아십니까? 마교라면 그런 짓을 하고도 남….”

“아닐 거야. 거기서 그런 거 아니야.”

“그렇지만 마교는….”

“아니야.”

청연은 제하가 입을 다물기만을 바라며 열심히 부정했다.

‘제발 마교 소리 좀 그만해라….’

교주 앞에서 대놓고 마교라고 지칭하지 말아 달라고. 청연은 제하의 모가지가 날아갈까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애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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