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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40)화 (41/145)

040화

손끝에 스치는 이불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향로를 켜 둔 것인지 어디선가 묘한 향기가 풍겨 와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청연은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 포근한 이불 속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꿈인가….’

한동안 꿈을 안 꿔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려던 참이었는데. 혹시나 잊을까 봐 다시 보여 주기로 한 건가.

어…? 그런데 꿈속에서 이렇게 좋은 이불을 썼던가?

이상한 건 이불뿐만이 아니었다. 청연은 눈을 감은 채 팔다리를 길게 뻗어 보았다. 아무리 더듬어도 침상 끝 모서리가 만져지지 않았다.

‘뭐야? 뭐가 이렇게 넓어?’

정신이 번쩍 든 청연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침상 위에 드리워진 붉은 휘장이었다. 객잔에서도, 꿈속에서도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미친.”

청연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았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정신을 잃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딜 도망가?’

비웃는 듯했던 낮은 음성. 번뜩이던 사나운 눈매. 목을 조여 오던 무시무시한 손아귀의 감각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순간 육성으로 비명을 지를 뻔한 청연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손이 벌벌 떨려 와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무호가 직접 객잔을 찾아왔다. 그것도 1년이나 일찍 마교주가 되어서.

원작에서는 분명 사람을 보내지 않았던가. 물론 원작의 청연은 엑스트라에 불과했기 때문에 일련의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지만, 천마가 겨우 그 정도 일로 직접 움직일 리는 없었다. 사람을 보내 청연을 잡아들이고 지하 감옥에 가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맞다. 지하 감옥.’

제가 방금 일어난 침상은 감옥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넓고 편안했다. 이불도 솜이 들어 두툼하고 고급스러웠다.

어리둥절해진 청연은 휘장 너머로 비치는 방의 모습을 빠르게 살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넓고 호화로운 방 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꼴이었다.

방 안은 온갖 고풍스러운 가구와 장식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객잔의 모든 살림살이를 합해도 이보다 화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연은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하고서는 조심스레 휘장을 걷었다. 침상 밖으로 두 발을 내려놓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기에는 겁이 났다.

‘그래서 여긴 어디야?’

정신을 잃은 사이 벌써 신강으로 옮겨진 걸까. 그렇다면 여긴 천마신교의 본거지일 텐데. 이 사치스러운 방이 지하 감옥인 건 아닐 것이고. 여기서 잠시 머물다가 감옥으로 보내지게 될까. 거긴 정말 끔찍할 텐데.

원작에서 청연이 당했던 고문을 떠올리다 보니 머리까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차가운 돌바닥에 강처럼 고인 핏물과 찢어진 사지. 정말이지 그런 결말은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청연은 결심했다. 틈새를 봐서 반드시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그렇게 청연은 간신히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한 발짝을 떼었다. 저 멀리 건너편 벽에는 밖으로 향하는 커다란 문이 달려 있었고, 오른쪽 벽에는 창문 몇 개가 자리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창문에 손을 얹어 아주 조금 열어 보았다. 누가 볼까 조심스러운 움직임에 끼익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열린 창틈 새로 햇빛이 들어올 거라는 기대와 달리, 창문 밖은 누군가 철판을 덧대어 놓은 것처럼 단단히 막혀 있었다.

옆에 있는 다른 창문들을 모두 확인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남은 탈출구라고는 저기 있는 거대한 문뿐이었다.

‘창문도 다 막아 놨는데 문이 열려 있겠어?’

그렇게 의심하면서도 가만히 포기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청연은 발소리를 죽이고 문을 향해 다가갔다.

예상과 달리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문을 조금씩 밀어 보았다. 꼼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문이 열리며 드디어 바깥 공기를 맛볼 수 있게 된 그때였다.

사람의 손 하나가 틈새로 잽싸게 들어와 문을 잡았다. 화들짝 놀란 청연은 문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두려운 마음에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려 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은 못 나오십니다.”

문밖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손의 주인은 문을 도로 닫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주군께서 오실 테니 기다리십시오.”

주군이라면 분명 무호를 칭하는 말일 테다. 그가 온다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청연은 진정하려 애쓰며 떨리는 목소리로 문밖의 남자를 불렀다.

“저, 저기….”

“하명하십시오.”

그는 청연의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즉답했다.

‘그런데 왜 저렇게 공손하지. 난 지금 죄인으로 끌려온 거나 마찬가진데.’

청연은 그의 공손한 태도에 아주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어 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모든 걸 내려놓았다. 지금 상황에 희망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뭔가 다른 속셈을 가진 거라면 모를까.

“무, 아니, 그쪽 주군께서는… 언제 오십니까?”

“곧 오실 겁니다.”

“곧이라면 얼마나….”

답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침묵에 미칠 듯이 불안해진 청연은 방 한가운데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배에 구멍부터 뚫리고 시작하는 거 아닐까. 아니지, 그러면 얼마 살지 못할 텐데. 원작에서 청연은 족히 한 달을 고통받았다.

그렇게 방 안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조금 전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만 이번엔 청연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주군.”

주군? 주구우운?

청연은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았다. 그러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조금 전에 자신이 일어난 침상 말고는.

그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달려갔다. 침상 위로 올라가 다시 휘장을 치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웠다. 일단 아직 깨어나지 않은 척하는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등지고 누운 청연은 딱딱 부딪치려 하는 이를 꽉 물고 눈까지 질끈 감았다.

자는 척하자. 자는 척. 자는 척. 자는….

“일어나.”

“넵.”

낮게 울려 퍼지는 무호의 목소리에 청연은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그에게서 등을 돌린 채, 벽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어떡하지. 일단 말이라도 걸어 볼까.

“저기, 무호, 아니, 교주님, 아니, 주군. 아, 이게 아닌데.”

“…….”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청연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휘장 너머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덩치는 또 왜 저렇게 커?’

어려서도 그랬지만 성인이 된 그는 정말 무시무시하게 컸다. 저 널따란 어깨만 봐도 기가 확 죽는 느낌이었다.

청연은 용기를 내 슬금슬금 돌아앉으며 휘장을 약간 걷어 냈다. 무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무호의 눈빛을 보자마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뚜렷하고 짙은 이목구비는 분명 엄청난 미남의 것이었으나, 그를 압도하는 분위기에 숨이 막혀 느긋하게 얼굴 구경이나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의 손에는 대도가 들려 있었다. 오랜 시간 객잔 안에 잠들어 있던, 이제는 호연도가 되어 버린 현월도였다. 드디어 제 주인을 찾은 칼날이 기세등등하게 빛났다.

이 숨 막히는 분위기라도 풀어 보자 결심한 청연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지냈어?”

“…….”

“나, 나는 네 걱정 많이 했어. 그날 그렇게 떠나보내고 한동안 괴로워서… 아니다. 이 얘기는 하지 말자.”

내가 아무리 괴로워도 너보다 괴로웠을까.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다시금 차올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진심으로 맹세하는데, 그때 너 밀고한 거 나 아니야. 내가 너한테 왜 그런 짓을 했겠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아니라고.”

청연은 주절주절 생각나는 대로 말을 읊으며 무호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무표정을 한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청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말이 진짜라는데 내 모든 걸 걸게. 절대 거짓말 아니… 히익.”

청연은 숨을 들이쉬며 침상 깊숙이 몸을 물렸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무호의 모습에 정신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검은색 옷자락이 사신을 연상시켜, 마치 죽음이 저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침상 바로 앞에 멈춰 선 그는 살짝 열린 휘장 사이로 청연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빛났고, 굳게 닫혀있던 입매가 벌어졌다.

“거짓말이라.”

“…….”

“거짓말을 잘도 했더군.”

“어…?”

“약방 아들은 이미 병에 걸려 죽었다던데.”

미친. 난 이제 끝이다.

9년 전, 그를 처음 만난 날. 어떻게든 상황에서 빠져나가려고 늘어놓았던 거짓말이었다. 그 약방 아들이 이미 죽었다니. 남의 은공을 훔친 것마저 들통나고 말았으니 이제 저는 정말 죽은 목숨이었다.

청연은 끔찍한 고문만 피할 수 있다면 그의 앞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빌기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런다고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무, 무호야…. 난 정말….”

금방이라도 울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와 애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호는 한쪽 손을 들어 올려 휘장 사이로 뻗어 왔다. 커다란 손이 청연의 턱을 움켜쥐었다.

“거짓말한 거 미안해. 내가 잘못했… 흡!”

갑작스레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엄지손가락에 놀라, 청연은 말을 멈추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깊숙하게 들어와 이를 쓸고 지나갔다.

이윽고 그는 청연의 뾰족한 송곳니 윗부분을 슬슬 문지르며 읊조렸다.

“날카롭군.”

이를 다 뽑아 버리겠다는 건가.

다가올 고문에 벌벌 떨던 청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호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디 거짓말 말고 다른 것도 잘하는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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