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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39)화 (40/145)

039화

그 후로 다시 4년이 흘렀다.

이른 아침부터 창밖을 바라보던 청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객잔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곧 객잔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예정이었다. 스무 살이 된 제하와 스승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던 중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으로 발전한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그날이 며칠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 일만 끝나면 정말로 객잔을 정리하고 사천에서 떠 버릴 작정으로 날짜까지 정해 두었다. 좀 더 일찍 떠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자리에 다른 객잔이 들어선다거나 아예 업종이 변경될 경우에 원작 스토리가 틀어져 두 사람이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청연은 후원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미 정이 들 대로 들어 버린 객잔 식구들과도 곧 작별 인사를 해야겠구나. 어쩌면 이게 아쉬워서 그동안 떠남을 미뤄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가야 한다. 1년이 더 지나 무호가 마교주가 되면 그때는 정말 도망칠 구멍이 없을지도 모른다.

객잔을 처분하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가 고민이었는데, 도경의 도움으로 당분간은 남궁세가의 손님방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무얼 하며 어떻게 살지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돈은 이미 모을 만큼 모았으니까.

헤어짐을 아쉬워할 제하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청연에겐 목숨이 달린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살아 있기만 하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먼 훗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살아 있기만 하다면 말이지.’

정마대전이 일어나지 않기를, 무호가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건 제 능력 밖의 일이었다.

청연은 무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내려가니 여느 때와 같이 해령의 인사가 들려왔다.

“오셨어요?”

그동안 청연이 급료를 잘 챙겨 준 덕분에 해령과 해우는 어느새 돈을 모아 거처를 마련했다. 후원의 직원 거처에서 머물던 어린아이들이 벌써 독립했다니 기특한 일이었다.

“해령아, 나 할 말이 있는데….”

“저번에 말씀하신 그거요? 객잔 정리하신다던 거?”

“어떻게 알았어?”

“객주님 그 얘기 꺼내실 때마다 그렇게 울상이시잖아요. 곧 떠나시게요?”

그렇게 티가 났나 싶어 청연은 쓰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라버니랑 저는 오라는 데도 많으니까. 객주님께선 퇴직금이나 두둑하게 챙겨 주시면 돼요.”

“퇴직금….”

이 시대에도 그런 게 있었냐. 물론 챙겨 줄 생각이긴 했지만.

청연은 미묘하게 올라간 해령의 입꼬리를 노려보았다.

“아무튼 다른 애들한테는 내가 오늘 말할게.”

“네. 그런데 어디로 가실지는 정하셨어요?”

“…아니.”

“아직도요? 저번에도 고민 중이라고 하시더니.”

“그렇게 됐다.”

현대에 살다가 중원에 떨어져 9년 동안 객잔 주인으로만 지냈는데 그걸 결정하는 게 쉬울 리가. 돈을 모아 선택지가 넓어진 바람에 더욱 고민되었다. 장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사업을 해 볼까 싶기도 했고.

“맞다. 어제저녁에 표국에서 또 사람이 왔었어요. 객주님 방에 계셨을 때요.”

“이번엔 뭐래?”

“배달 비용을 합한 음식 가격의 5할을 달라던데요.”

“5할? 이것들이 돌았나. 2할 이상은 절대 안 된다고 해.”

“안 그래도 그렇게 전했어요.”

4년 전 시작한 객잔 음식 배달 사업은 날이 갈수록 인기가 높아졌다. 결국엔 근방의 표국까지 동업 제안을 해 왔다. 배달 업무를 전적으로 맡을 테니 수수료를 떼어 달라나 뭐라나.

그런데 이 양아치들이 5할씩이나 가져가겠다고? 절대 안 될 일이지. 곧 떠날 사람이라도 그런 건 용납 못 한다.

청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손님 오셨네요.”

“내가 갈게.”

청연은 해령과 점소이에게 손짓하고는 손님이 앉은 탁자로 향했다. 세 명의 중년 남자들은 역시나 죽엽청과 소면을 주문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긴 하구나. 청연이 웃으며 주방으로 향하려던 그때였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얼마 전에 마교에서 난리가 났었다는구먼.”

순간 청연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뭐라고?’

“웬 젊은 놈으로 교주가 바뀌었다던데?”

“교주가?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전대 교주가 아랫놈들한테 당한 거지! 아무튼 내가 듣기로는 며칠간 신강 땅이 흔들리고 하늘까지 시뻘겋게 물들었다더군. 무림맹도 이 일로 떠들썩하다는데 자네는 어찌 그리 소식이 늦어? 으잉? 주인장?”

청연은 창백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 왔다.

“객주님? 왜 그러세요?”

“왜… 왜 벌써….”

점소이가 달려와 초점을 잃은 청연의 눈앞에 손을 휘휘 흔들었다.

“왜 벌써라뇨? 뭐가요?”

“왜 벌써… 왜… 어쩌다가….”

9년밖에 안 지났잖아. 아직 1년 남았잖아. 설마 시간 계산을 잘못했나?

“아니야….”

시간 계산을 잘못한 게 아니다. 제 목숨이 달린 일이니 다른 무엇보다도 철저히 계산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1년 뒤에 일어났어야 할 일이 앞당겨진 것이다. 그 말은 곧….

“난 뒤졌다.”

“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청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무호가 천마가 된 게 사실이라면 그가 사람을 보내오기 전에 당장 도망가야 했다.

‘짐, 짐을 쌀 시간은 있을까?’

청연은 방으로 달려가 마구잡이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는 건 모조리 보따리에 쑤셔 넣었다.

‘돈은 얼마나 가져가야 하지?’

지금은 그걸 다 챙길 여력이 없는데.

청연은 대충 무겁지 않을 정도의 은자를 집어 전낭에 넣었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테니 도망 다니다가 기회를 봐서 돌아오자.

그는 직원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도 못한 채 객잔에서 달려 나갔다. 일단은 마차를 구해 성도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어디로든 떠나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또 날이 밝으면 더 먼 곳으로 갈 것이다. 이름을 숨기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마교에서 추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차를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더라?’

일단은 번화가로 가야 하나. 청연은 짐 보따리를 안은 채 길을 따라 달렸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전에도 전개가 틀어진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사건이, 그것도 최종 보스와 관련된 일이 1년이나 앞당겨질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대체 왜? 빙의자인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무호와의 인연이 끊겨 버린 지 오래였다.

“미치겠네.”

진짜 미쳐 버리겠네. 정신 줄을 놓고 달리던 청연은 발이 돌부리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다시 뛰려는데 마침 앞에 서 있던 누군가와 부딪쳐 시선을 들었다.

“아, 죄송합… 히익.”

왜. 왜 하필 검은 옷이야. 검은 옷이라고 다 마교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왜 지금 이 시점에!

그 사람을 보고 불안해진 청연은 방향을 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마차는 됐고 일단 숨을 곳이라도 찾아 보자 싶었다. 달리다 보니 어느새 다시 객잔에 가까워졌고 그 앞에는….

청연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이럴 수가.”

객잔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쫙 깔린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이제 정말 죽은 목숨이다.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나던 청연은 오른쪽 골목길로 몸을 휙 틀어 달렸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할 때가 와 버렸다. 이대로 천마신교에 잡혀가 차디찬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될 경우.

거기서 무호를 만나게 되면… 일단 해명해 볼까? 내가 그런 게 정말 아니라고. 내가 너한테 왜 그런 짓을 했겠냐고. 함께한 정이 있으니 잘하면 믿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지금의 무호는 과거의 무호와 다르다. 원작에서 그려진 그의 모습에 자비라는 건 없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고 그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자는 바로바로 썰려 나갔다.

말 그대로 썰렸다. 목이 되었건 다른 부위가 되었건. 그런 성격에 해명 같은 걸 들어 줄 리가 없었다. 이미 쌓이고 쌓인 원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인내심 같은 건 집어삼켜 버렸을 것이다.

그럼 처음부터 빌어 볼까.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다. 제발 살려 달라 외치며.

‘…그게 되겠냐.’

어쩌면 그를 마주칠 일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저를 배신한 자에 대한 복수이긴 하지만 청연의 존재가 그에게는 이미 별거 아닌 게 되어 버렸을지도. 그렇다면 해명할 기회도, 무릎 꿇고 빌 기회도 없어진다.

‘진짜 어떡하지.’

한참을 뛰던 청연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객잔 앞에 깔려 있던 검은 옷의 마교도들은 분명 저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저를 보았으니 따라왔어야 마땅하고, 그럼 이미 한참 전에 잡혔어야 하는 건데.

그런데 왜 아무도 안 따라오지?

청연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살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조용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길을 비워 놓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도 없었다.

‘설마 마교에서 온 게 아닌데 내가 착각한 건가?’

혼란스러웠지만 이대로 객잔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오늘은 우선 객잔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생각한 청연은 다시 뒤를 돌았다.

그리고….

뒤로 돌자마자 단단한 무언가에 머리를 쿵 하고 부딪친 청연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어버렸다.

분명 앞에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 제 눈앞에 있는 건 누군가의 넓은 가슴팍이었다. 그것도 검은 옷을 입은.

“헉….”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진 것만 같았다. 숨을 쉬는 법마저 잊은 청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

너무 놀라면 비명조차 안 나온다고 하던가. 청연은 입조차 벌리지 못했다. 그저 눈만 휘둥그레하게 뜬 채 제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흑립을 쓴 그는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컸다. 머리칼과 눈동자는 새카맸고 눈가의 흉터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무호가 찾아왔다. 그것도 제 발로 직접.

말없이 청연을 내려다보던 그의 날 선 시선이 손에 들린 짐 보따리로 향했다. 그는 한순간에 손을 뻗어 보따리를 빼앗아 갔다. 저항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얼어붙어 있던 청연은 무력하게 짐을 빼앗기고 말았다.

동시에 커다란 손바닥 위에서 보따리가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청연은 순식간에 활활 불타 재가 되어 사라진 짐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이윽고 재를 털어 낸 그의 손이 청연의 목을 향했다. 그는 한 손으로 청연의 목을 쥔 채 허공 위로 가뿐히 들어 올렸다. 덕분에 숨이 막힌 청연은 캑캑거리며 발버둥 쳤다. 마치 처음 만났던 그날 밤처럼.

“어딜 도망가?”

까마득히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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