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화
‘다른 거라니? 뭐를?’
청연은 살며시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송곳니를 문지르던 손가락은 어느새 자리를 옮겨 가 혀를 아래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덕분에 입이 크게 벌어져 턱이 뻐근하게 아팠다.
“아아… 아….”
혀가 눌린 탓에 말을 하지 못하는 청연은 그의 손을 붙들고 놓아 달라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아도 단단히 잡힌 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파! 아프다고 이놈아!’
청연이 그의 팔을 퍽퍽 때리고 밀어 내기 시작하자, 그제야 입 속의 손가락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무호는 청연에게 맞은 팔을 문지르며 비웃듯이 말했다.
“손이 맵네.”
거짓말하지 마.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진데. 그 정도로는 간지럽지도 않잖아, 너.
청연은 아린 턱을 문지르며 무호를 쏘아보았다. 그는 휘장을 걷어 내며 허리를 숙여 청연과 시선을 맞추어 왔다.
그가 점차 침상 위로 올라오며 가까워지자 청연은 마른침을 삼켰다. 가까이에서 본 그의 얼굴은 어렸을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보다 성숙해져 색다른 분위를 풍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눈가의 흉터는 흐려졌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더욱 진해져 붉은빛을 띠었다.
“청연.”
그의 입에서 나온 제 이름이 낯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긴장한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청연은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을 외면하려 고개를 돌렸다.
“왜, 왜….”
더듬거리며 대답하던 그때였다. 마침 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님.”
그 목소리를 들은 무호의 눈빛이 순식간에 살기를 띠었다. 일반인도 알아챌 만큼 강렬한 살기였다. 그는 살벌한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돌려 문간을 바라보았다.
“저….”
문밖의 남자는 티가 날 정도로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알고 있으니 꺼지라고 해라.”
무호의 목소리에는 성가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에게서 풍겨 오는 분위기만으로도 질식할 수 있을 것 같아 청연은 입술을 잘게 떨었다.
“교주님을 뵙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
“뵙지 못한다면 자….”
“그만.”
무호는 남자의 말을 끊고 다시 시선을 돌려 청연을 바라보았다. 그 찰나의 눈길에도 숨이 막혀 1초가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그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자 청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려는 건가?’
무호를 찾아온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시간을 벌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살아남아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꼭 감사 인사를 전하겠다고 청연은 다짐했다.
“적당한 변명을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야.”
무호는 청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본명을 어떻게 알았는지. 과거에 대해서도.”
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적당한 변명을 대지 못한다면 머리통을 터뜨려 버린다든가, 다리를 뜯어서 팔에다 붙여버린다든가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겠지. 물론 변명을 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청연은 그가 걸음을 돌려 사라질 때까지 침상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지옥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
“와 씨…. 어떡하지?”
자리에 드러누운 청연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걸리적거리는 머리 끈은 이미 풀어 헤친 지 오래였다.
저는 이제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잡아먹을 듯하던 무호의 눈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직도 문 앞에서 그림자가 어슬렁거리며 지키고 있는데 여기서 대체 어떻게 도망가야 하냐고. 어찌어찌 도망에 성공한다고 해도 금방 잡힐 것이 뻔했다.
“미치겠네. 객잔은 또 어쩌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마음이 괴로우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갑자기 잡혀 온 탓에 객잔 일은 제대로 정리도 못 했다. 객잔을 팔아넘길 길일까지 정해 놨는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객잔 주인이 갑자기 증발해 버렸으니 직원들도 놀랐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려나?
게다가 며칠 뒤에 제하와 소명이 객잔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이 연인 관계로 발전할 중요한 날을 목전에 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평소 친분이 두텁던 객잔 주인이 마교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의 심경에 변화라도 생기면….
“민아야, 난 이제 어쩌면 좋냐.”
청연은 실로 오랜만에 민아를 찾았다. 소리 내어 부르자 그동안 잊고 있던 민아의 얼굴이 허공에 두둥 떠올랐다. 허상이라 그런지 나이도 먹지 않은 앳된 모습이었다.
‘야, 너 때문이야. 무협에서 사제 관계면 무조건 되는 주식인데 너 때문에 내 작품 다 망했다고. 이제 어쩔 거야?’
카랑카랑한 민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듯해 청연은 기운 없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니까 좀 봐주라…. 나 고생 많이 했잖아. 그리고 애초에 네가 이런 거 보여 주지만 않았어도 빙의 같은 거 안 했어.”
‘네 사정 같은 거 모르겠고 물어내! 내 데뷔작 될 뻔한 거 망했으니까 물어내애애액!’
날카로운 외침에 아찔해진 청연은 손을 휘휘 흔들어 민아의 허상을 흩어 버렸다. 때마침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 정신이 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헝클어진 긴 머리가 쏟아져 내려 얼굴을 덮었다.
급히 머리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문이 스르륵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
그는 공손한 자세로 청연에게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저는 교주님의 직속 호위대, 천영대의 대주를 맡은 지홍이라 합니다. 오래전부터 교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셔 온 오른팔 같은 존재입니다.”
조금 전 문밖에서 무호를 주군이라 칭했던 자의 목소리였다.
‘예에,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청연은 엉킨 머리끝을 손으로 빗으며 열심히 눈을 굴렸다. 과하게 깍듯해 보이는 그의 태도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저녁 식사를 내왔습니다.”
“저녁 식사… 저한테요?”
“예. 주군께서 명하셨습니다.”
그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찬합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청연은 의심이 들어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침상 위에 앉은 자세 그대로 굳어졌다.
‘밥을 챙겨 준다고? 나한테? 왜?’
식사는 기대도 안 했다. 갑작스레 잡혀 온 탓에 배가 고플 리도 만무했다. 심지어 식사 배달 같은 사소한 일을 저렇게 높은 사람에게 시키다니.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복잡한 청연의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홍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오며 말했다.
“식기 전에 어서 드십시오.”
“저 배가 안 고파서…. 거기 두고 가시면 나중에 먹을게요.”
“주군께서 찬합을 비우는 모습을 확인하고 오라 당부하셨습니다.”
“예…?”
그렇게까지 한다고? 설마 음식에 뭐가 들었나.
식사 같은 건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지홍의 감시 아래에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청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로 다가갔다. 칸칸이 쌓여 있는 찬합을 보고 있으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찌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찬합을 열어 보았다. 예상외로 멀쩡해 보이는 음식이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향도 나쁘지 않았다.
‘독이라도 들었나.’
청연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음식을 훑어보았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든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 가리는 음식이 있으십니까?”
“여기 있는 거 전부 다 가려요.”
“…농담도 잘하십니다.”
“꼭 지금 먹어야 하나요?”
“드셔야 합니다.”
“유서 먼저 쓰고 먹어도 될까요?”
“예?”
“아닙니다.”
청연은 의자 위에 털썩 앉아 크게 심호흡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어차피 먹어야 할 거라면 빨리 먹어 치우자.
생각해 보니 무호가 당장 자신을 죽이려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죽이더라도 서서히 고통받으며 죽도록 만들겠지. 그러니까 여기에 독이 들었다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청연은 젓가락을 들었다. 이걸 먹고 아프면… 몰라. 기합으로 이겨 내지 뭐.
그렇게 찬합 속에 들어 있는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려는데, 저를 빤히 바라보는 지홍의 시선이 느껴져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그… 꼭 보고 계셔야 하나요?”
“아, 부담스러우십니까? 그렇다면 뒤돌아 있겠습니다.”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아직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드실래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시군요.
청연은 한 번 더 심호흡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들고 있던 고기 한 점을 입 속에 넣었다.
질감과 향은 그동안 먹어 온 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연은 조심스레 턱을 움직여 고기를 씹기 시작했다.
“맛이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괜찮… 욱.”
순간 고기를 뱉어 낼 뻔한 청연은 손을 들어 제 입을 막았다. 분명 첫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씹다 보니 배어 나온 육즙에서 상상도 못 한 이상한 맛이 느껴진 탓이다. 씁쓸하고, 시고, 짜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몰라 제 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이, 이게 대체….”
“주군께서 특별히 준비하라 명하신 식사입니다.”
지홍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띤 채로 답했다. 그에게 마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면 착각이겠지.
“어서 마저 드십시오.”
온화한 마귀의 독촉 아래, 청연은 입 속의 고기를 대충 씹어 꿀꺽 삼켰다. 이렇게 맛없는 음식은 처음이라 눈물까지 날 것 같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앞으로 겪게 될 수모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랐다.
남은 음식을 하나하나 집어 억지로 삼킬 때마다 청연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 천마는 손속에 자비가 없고 극악무도했다. 이건 겨우 독 따위가 든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이건 식고문이다. 지옥에서 올라온 끔찍한 음식으로 인간의 정신을 허물어트리려는 잔인한 속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