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신강 천산, 천마신교 본거지.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하 감옥.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홀로 앉아 있는 소년이 있었다.
감옥 안을 맴도는 음산한 피비린내와 시취에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이곳에서 혼자 살아남을 때까지 버텨 냈으니 당연한 일일까.
다섯 살에 잡혀 왔으니 벌써 십 년이다. 잡혀 온 건 저뿐만이 아니었다. 이 감옥은 원래 또래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아이들은 잡혀 오자마자 마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살인적인 일정과 학대 아래에서 마공을 익히던 중,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갔다.
혹독한 수련을 버텨 낸 아이들은 곧이어 대련장에 던져졌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죽이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생지옥의 문이 열린 건.
소년은 그 지옥에서 십 년을 버텼다. 겁에 질려 몸을 사리던 다섯 살 아이는 어느새 살육을 벌이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괴물….’
이보다 더 적당한 단어가 있을까 싶다. 일생을 죽이기 위해 살았고 살기 위해 죽였다. 본능만 남은 괴물의 삶.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이면 새로운 아이들이 잡혀 올 것이다. 그들과 맞서 싸우고, 또다시 홀로 살아남는 것이 제 운명일 테지만, 이번만큼은 운명에 순응하지 않겠다.
오늘은 반드시 이곳을 나갈 거니까.
텅 빈 복도를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깊게 심호흡했다.
소리는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멈췄다. 이내 자물쇠가 철컹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강철로 된 거대한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흑의의 남자는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소년에게 말했다.
“십칠. 대련 시간이다.”
십칠이라 불린 소년은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남자가 들어와 십칠의 눈에 검은 천을 둘렀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채 남자의 손에 이끌려 대련장으로 향하는 길. 십칠은 온몸의 감각을 기민하게 세웠다. 지하 감옥의 복도에는 온갖 종류의 기관진식1)이 설치되어 있어 그것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었다.
십칠은 이미 기관진식을 파하고 탈출한 적이 있었다. 순찰 중이던 마교도들에게 다시 잡혀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대대적인 진법의 수정이 있었고, 이렇게 눈까지 가리고 이동하는 신세가 되었다.
대련장에 도착하자 남자는 십칠을 그곳에 거칠게 밀어 넣고 떠났다. 그제야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풀어낼 수 있었다. 어둠에 익숙했던 눈이 갑작스레 밝은 빛을 보게 되자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그의 앞에는 한 청년이 삐딱하게 서 있었다.
“너도 참 징하다. 벌써 십 년짼가?”
십칠을 보며 이죽거리는 이 남자는 천마신교의 소교주, 사마한이었다.
현 교주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차기 교주 후계자인 그는 해마다 잡혀 들어오는 아이들의 주인이나 다름없었다. 피 튀기는 대련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가 하면, 직접 대련에 참여해 생명을 앗아 가기도 했으니.
“혼자 남은 건 처음이네.”
“…….”
“사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난 첫눈에 네 재능을 알아봤거든. 어린애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얼마나 강렬하던지.”
어느새 빛에 적응한 십칠의 눈은 그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피처럼 붉은 옷. 광기가 서린 눈빛. 지난 십 년간 지겹게도 보아 온 모습이 오늘따라 더 징그러웠다.
십칠의 몸에 힘이 들어가자 사마한은 입꼬리를 끌어당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긴장하지 마. 오늘은 대련하려고 부른 거 아니니까.”
대련하려고 부른 게 아니라고?
“차분하게 얘기나 좀 하자고. 너랑 나랑. 우리 둘이서.”
“…무슨 얘기.”
“음… 천마신교의 미래 이야기?”
사마한은 뚜벅뚜벅 걸어와 십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십칠은 그를 거세게 밀어 내려 했지만 이내 제압당하고 말았다.
“흥분하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
“…….”
“십칠. 너도 우리가 애들을 납치해 오는 이유가 뭔지 알지?”
사마한의 비틀린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내가 고귀한 혈통을 타고나 지금 이렇게 소교주 자리에 앉아 있긴 하지만, 너도 알잖아. 천마신교의 후계는 혈족 중심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
“우리는 강함을 숭상해. 언젠가 저 오만한 정파 놈들을 몰아내고 중원을 지배할 만한 힘. 그러니 어디에 있을지 모를 천마의 씨앗을 찾고 있는 거고.”
천마의 씨앗. 그 말에 십칠은 비웃음을 흘렸다.
하늘이 내린 마두. 만마의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 천마. 천마신교는 그런 존재를 숭배하는 종교 집단이었다. 그러나 십칠의 눈에 그들은 그저 겁먹은 인간일 뿐이었다. 어떻게든 강한 쪽에 붙어서 살아남으려는 비루한 인간.
모든 게 하나의 인형극 같았다. 개중에 가장 강한 자를 교주로 떠받들며 천마라 호칭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사람들은 내가 훗날 교주의 자리에 오를 거라고 말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야. 나보다 더 강한 자가 나타난다면 아버지도 망설임 없이 나를 내치실걸?”
“…….”
“그러니까 애들을 데려다 놓고 마공을 훈련시키고,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시지. 특히 어린애들은 세뇌하기도 쉬우니까 살아남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쓸모가 있지 않겠어?”
살아남기만 한다면? 한 명이라도 살려 둘 생각은 있었던가.
“아, 물론 너한테는 세뇌도 통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나는 누구에게도 소교주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어. 언젠가 교주가 돼서 천마신교의 힘을 키우고 전쟁을 일으킬 거야.”
“전쟁…?”
“그래. 정마 대전.”
정파와 마교의 전쟁을 의미하는 정마 대전. 수십 년 전 벌어진 정마 대전에서 천마신교는 장렬하게 패배했고, 그 이후로 신강에 처박혀 조용히 힘을 키워 왔다. 그런데 다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말인가.
“아버지는 너무 걱정이 많으셔. 지금 당장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가 패배할 거라 생각하시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
“우리는 중원 땅을 되찾을 거야. 피를 좀 보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사마한은 눈을 붉게 빛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너도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평생을 이렇게 대련이나 하면서 살다가 죽을지. 아니면 내 편에 붙어 세상의 지배자가 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오른팔이 되라고. 내가 네 재능을 높게 사서 죽이지 않고 살려 줄 테니까. 평생 나한테 충성을 맹세하라고.”
충성? 개같은 소리 하네. 십칠은 욕지거리를 삼켜 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 줄 알아? 내 말 한마디면 너 그 지하 감옥에서 나올 수 있어. 좋은 옷에 좋은 음식 먹으면서 호의호식할 거라니까?”
“…….”
“그러니까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맹세해. 두 번째 기회는 없어.”
사마한은 십칠의 대답을 기다리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돌아온 십칠의 말에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버렸다.
“틀렸어.”
“…뭐?”
“틀렸다고. 네가 교주가 된다느니 하는 거.”
“하. 지금 네깟 놈이 날 이기고 내 자리를 빼앗겠다는 건가.”
“아니.”
십칠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널 죽이고 여기서 나간다.”
동시에 한 손에 마기를 응집시켜 사마한의 급소에 장을 날렸다. 불시에 습격당한 그는 일 장 밖으로 밀려나 명치를 부여잡았다.
“이, 이 개새끼가.”
십칠이 날린 것은 명백한 살초2)였다. 수련의 경지가 낮았다면 즉사했을지도 모른다. 사마한은 이를 빠득 갈고는 전투 자세를 취해 보였다.
“두 번째 기회는 없다고 말했을 텐데.”
대놓고 살기를 드러내는 두 사람의 주변으로 검붉은 빛깔의 마기가 솟구쳤다.
선공을 펼치며 달려든 것은 사마한이었다. 그는 십칠의 목을 노렸다. 검처럼 날카롭게 다가오는 손날을 십칠은 간발의 격차로 막아 냈다.
단지 방어를 했을 뿐인데 몸에 거대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십칠은 다시 그의 급소를 노려 주먹을 내질렀으나 그가 재빠르게 피한 탓에 엇나갔다.
십칠은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마교의 소교주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놈이 쓰는 초식을 십 년 동안 지겹게 보았기에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로 몇 번의 살초가 오갔다. 십칠이 다시 한번 장을 날리려던 그 순간, 빠르게 다가온 사마한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 사마한은 십칠의 팔을 틀어잡고 그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쿵. 십칠의 몸이 바닥에 처박히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얼굴부터 떨어진 탓에 입 속으로 흙이 들어왔다.
사마한은 십칠의 목덜미를 발로 잘근잘근 밟으며 말했다.
“네가 잠시 잊었나 본데.”
그는 십칠의 옆에 쪼그려 앉아 그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흙을 잔뜩 묻힌 얼굴이 사마한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나 소교주야. 현 교주의 적통이라고. 네놈이 해치운 그 어린놈들이랑 내가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는 십칠의 머리채를 잡고 힘을 실어 바닥으로 찍어 내렸다. 그대로 뭉개진 코와 입술에서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컥… 커흑….”
“그러게 기회를 줬을 때 잡았어야지. 이 멍청한 새끼야.”
사마한은 신이 난 듯 십칠의 머리통을 가지고 놀았다. 그가 손을 놀릴 때마다 얼굴이 바닥에 처박히며 피가 흘러나와 흥건하게 고였다. 십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 속에 가득 고인 피를 뱉어 냈다.
“뭐? 날 죽여? 하. 정신 나간 놈.”
“허억….”
“다시 한번 말해 봐. 응? 날 죽이겠다고.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주… 죽….”
“뭐? 안 들려. 더 크게 말해. 아, 이가 다 망가져서 말도 안 나오나?”
사마한은 십칠의 머리를 다시 뒤로 젖혔다. 온통 피투성이에 부어올라 엉망이 된 얼굴이 힘겨운 숨을 내쉬었다.
“은혜도 모르는 새끼.”
그대로 목을 뒤로 꺾어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순간, 초점 없던 십칠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죽어 버려.”
동시에 온몸에서 폭발하듯이 끓어 넘치는 마기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