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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1)화 (12/145)

011화

십칠은 몇 날 며칠 쉬지도 않고 경공을 펼치며 달렸다. 뒤를 바짝 쫓아오는 마교도들을 겨우 따돌리고 조그마한 바위 동굴 아래 몸을 숨겼다.

평생 죽음을 가까이 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죽은 듯이 기척을 숨기기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오감이 예민한 고수라고 해도 그의 기척을 잡아내지는 못할 것이었다.

십칠은 멀어지는 흑의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하나둘 수를 세 보았다.

‘그냥 다 죽여 버릴까.’

이미 지칠 대로 지치기는 했다만. 그래도 열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저쪽이 정확히 몇 명인지도 모르면서 나서는 건 무모하다. 지금은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다.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 잡히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전에는 몇 번 얻어맞고 끝났지만, 이번에 벌인 짓을 생각하면 참수를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소교주를 상대로 이겼다 한들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원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놈 말은 전부 믿어서는 안 되는 개소리였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몸속에서 무언가가 폭주하는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제 밑에서 피 칠갑을 한 채로 쓰러져 있는 소교주의 모습이 보였다. 그간 수없이 많은 전투를 겪었음에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온몸이 으스러진 채로 경련하던 그는 십칠을 향해 더듬더듬 말했다.

‘내가… 내가, 재밌는, 거, 하나, 알려 줄까?’

이어진 그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숨이 간당간당하게 붙은 채, 그는 저를 올려다보며 비틀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기랄.’

십칠은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생각을 떨쳐 냈다. 그딴 놈이 지껄인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 동굴 아래 고여 있던 물 위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얼굴은 이미 완전히 치유된 후였다. 부러졌던 코뼈도 벌써 제자리를 찾았다.

어느 정도 내공을 쌓은 후에는 아무리 다쳐도 금세 상처가 아물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왼쪽 눈가에 세로로 그어진 흉터만 빼면 그의 얼굴은 언제 다쳤냐는 듯 말끔해 보였다.

이 흉터는 십칠이 무공을 익히기 전인 다섯 살에 얻게 되었다. 마교에 납치당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어느 미치광이가 그의 눈을 파내겠다며 달려들어 남긴 상처였다.

날카로운 칼날은 정확히 눈 위를 그었고, 다행히 시력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평생 남을 흉터를 갖게 되었다. 간신히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오지 못했다면 영영 앞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십칠은 습관적으로 왼쪽 눈가를 매만지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마 청해를 지나 사천에 들어섰을 것이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경공을 썼으니 사흘이면 도착했을 거리이지만 저들을 따돌리느라 생각보다 늦어졌다.

목적지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저 신강으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

늦은 밤, 십칠은 한 객잔 안으로 숨어들었다.

오늘 밤은 아무래도 여기서 보내야 할 성싶었다. 며칠간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니 더 이상 체력을 소모하기에는 위험했다.

‘딱 하룻밤만 쉬어 가자.’

마침 일층은 불도 꺼져 있고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텅 비었으므로 숨어 있기 제격이었다. 운이 좋으면 주방에 남은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참이나 탁자 아래에 숨어 주위를 경계한 끝에, 십칠은 음식을 찾기 위해 주방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그때였다.

한 남자가 귀신같은 몰골을 한 채로 비척비척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십칠은 즉시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발을 질질 끄는 듯한 소리가 주방까지 이어졌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지켜보니 남자는 주방 찬장을 마구 뒤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술병을 하나 꺼내 들고 입 안에 콸콸 들이붓기 시작했다.

‘미친놈인가?’

침의를 입은 채 막 자다 깬 모습으로 저렇게 술을 들이붓다니. 저건 미친놈 아니면 술주정뱅이일 것이다.

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주방 안을 돌아다녔다. 보는 사람이 다 정신없어지는 그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다. 십칠의 허기짐을 모르는 그는 주방에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으아아아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자서 비명을 지르기까지. 어떻게 봐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십칠은 한숨을 삼키며 가만히 기다렸다. 저런 광인 하나 처리하는 데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야, 이 미친놈아….”

제가 미친 걸 알기는 아나 보다. 어느새 한 자리에 멈춰 선 남자는 이제 벽에 머리까지 쿵쿵 박아 대고 있었다.

이 밤중에 뭐 하자는 건지.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걸까.

‘내가 그리 참을성 있는 사람은 아닌데. 저 조그만 머리통을 확 터뜨려 버리면….’

그때, 십칠의 예민한 감각이 객잔 창밖으로 스치는 익숙한 그림자를 잡아냈다. 마교도들이었다.

‘젠장.’

저 광인 때문이다. 그가 머리를 박아 대는 수상한 소리에 이끌려 온 것이 분명했다.

이제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십칠은 빠르게 주방으로 향했다. 고양이처럼 가벼운 발걸음은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남기지 않았다.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남자의 등 뒤로 바짝 다가서기까지, 그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의 머리가 다시 한번 벽을 치려는 순간, 십칠은 그의 이마를 손으로 감싸 벽에 닿기 전에 막아 냈다.

“어?”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손에 화들짝 놀란 남자가 뒤로 돌아섰다. 십칠은 이마를 막았던 손을 내려 그의 입을 틀어막고는 몸을 벽으로 짓눌렀다.

“흡…!”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란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가슴이 들썩거렸다. 그는 팔을 버둥거리며 십칠의 몸을 밀어 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쉿.”

십칠은 그를 조용히 시키고 바깥의 기척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교도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에 잠긴 객잔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십칠은 그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눈앞의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하 감옥에서 십 년을 살아왔기에 누구보다도 밤눈이 밝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눈으로 남자의 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커다란 손이 얼굴의 절반을 뒤덮은 탓에 겁에 질린 한 쌍의 눈만이 드러나 있었다. 그의 눈빛은 두려움을 듬뿍 담고 있음에도 저를 곧게 응시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팔랑거리는 긴 속눈썹이 손등을 간지럽혔다.

두 사람의 키가 엇비슷해서인지, 시선이 딱 들어맞았다. 십칠은 이상하게도 그 시선에 옭아매어져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분명 인내심을 바닥내던 광인일 뿐인데, 왜 이렇게 바라보게 되는 걸까.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좋은 냄새….’

냄새 때문인가? 이름 모를 꽃향기가 싱그럽게 번져 와 코끝을 맴돌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람에 살랑이는 머리칼도, 손바닥에 닿아 오는 부드러운 피부 결도 십칠의 넋을 빼놓기에는 충분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남자가 다시 발버둥 치기 시작하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교도들은 이미 기척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뒤였다.

십칠은 남자의 입을 막았던 손을 떼어 냈다. 몸이 벽 쪽으로 짓눌려 있던 그는 상체를 숙여 무릎을 짚고는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줄곧 눌려 있던 코와 입술이 붉었다.

‘아무래도… 죽여야겠지?’

그가 누구든, 미치광이든 술주정뱅이든, 제 얼굴을 본 이상 살려 둘 생각은 없었다.

십칠은 그대로 남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가느다란 목이 손안에 들어왔다.

“헉….”

단단한 손아귀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이런 가냘픈 목쯤이야 한 손으로도 쉽게 부러뜨릴 수 있다.

정말로 남자를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의 입에서 잊고 있던 그 이름이 흘러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천… 천무호?”

십칠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을 떼어 낼 수밖에 없었다.

천무호. 십칠이라 불리기 전에 가졌던 진짜 이름. 스스로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처음 보는 남자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심장이 달음박질했다.

“그 이름을 어떻게….”

마교에서도 모르는 그 이름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

당신 누구야.

***

사실 그를 마주하고 있는 남자, 청연의 머릿속은 현재 경보음이 삐삐 울리는 비상사태였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어떻게 알아보지 못할 수 있을까. 소설 속 묘사처럼 칠흑 같은 흑발, 붉은 안광을 내비치는 흑안, 거기에다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까지.

‘심지어 잘생겼잖아! 누가 봐도 미래의 최종 보스잖아!’

무려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마교 교주가 되어 중원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린 원작 소설의 악역, 천무호였다.

청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천마님께서 이런 식으로 등장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하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왜 꼭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서 놀라게 하는 걸까.

한밤중에 찾아온 불청객 덕분에, 그를 한참이나 괴롭히던 꿈 내용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진짜 무서워….’

아니, 열다섯 살이라면서요…. 이게 어떻게 열다섯입니까. 이 동네 애들은 다 영약 먹고 큰답니까?

성인 남성 청연은 중2 청소년에게 잔뜩 쫄아 버리고 만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원작 스토리를 충실히 따라간다면 저는 그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할 운명이었으니.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도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끊임없이 합리화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제 어떡하지?’

청연은 이 세계에 빙의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다짐했던 내용을 상기해 보았다.

‘십 대 어린애를 돈 몇 푼에 팔아먹는 어른이 되지 않아야지. 어느 날 그 애가 객잔에 찾아오게 되면 꽁꽁 숨겨 주는 걸로는 모자라 품 안에서 부둥부둥해 줘야지!’

부둥부둥? 부둥부둥은 무슨.

이건 부들부들이잖아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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