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무경은 자신이 버텨 온 십여 년의 세월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 또한 달리 보면 의미가 없던 일은 아니었다. 십여 년 동안 괴수의 파편을 자신에게 가둬 피해를 축소했으니까. 당시 괴수의 일부가 그대로 지상에 풀려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지 몰랐다.
물론 무경에겐 하윤 외의 사람들의 목숨은 별 의미가 없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면 십여 년 동안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하윤을 괴롭힌 것뿐일지도 몰랐다. 이런 무경을 안다면 누군가는 그를 비난할지도 몰랐다.
하나 뭐 어쨌단 말인가? 생명에 경중은 없다고 하지만 소중의 여부는 있을 것 아닌가. 남의 죽음은 혀 한 번 차고 넘어가지만, 친지의 죽음은 몇 년 혹은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사무치는 것처럼.
자신은 그 폭이 매우 좁을 뿐이었다.
김하윤 하나에 국한되어 있을 뿐인.
김하윤은 그것이 우리의 죄가 되었다고 했으나, 무경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도리어 하윤을 비난했다. 그렇게 목숨을 버려 봤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희생으로 살아났는지도 모를 것이며, 이 일을 일주일만 지나도 지겨워할 것이다.
아주 잠시 잠깐 네가 잘했다고 칭찬해도 몇 년 뒤에는 얼굴 하나 기억 못 할 것이고, 더 위험한 일이 생기면 너더러 해결하라고 등 떠밀고 비난할 것이다.
‘아닐 것 같지.’
자신이 이쪽에서 몇 년을 일했는데. 자신의 말이 틀리겠는가?
김하윤은 당장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서 대답해야 했다.
그래야…….
그래야…….
◇◇◇
무경은 그랜드 파라디스 참사 이후 꽤 오랫동안 눈뜨지 못했다. 부상이 심각했기도 한 데다, 제어 약물 부작용도 문제였다. 군에서는 무경을 에스퍼 전용 시설에 격리하여 혹시 모를 순간을 대비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주는 가스가 나오는 곳 말이다.
다만 무경은 행복해지는 가스를 맡기 전에 눈을 떴다. 현실인지 꿈인지를 구분하지 못해서 헤매는 바람에 다른 종류의 가스를 맡긴 했지만. 그러나 무경에겐 썩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무경은 깨어 있는 것보다 잠들어 있는 게, 까맣게 잠든 것보다 꿈을 꾸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꿈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되찾았다. 울면서 깰 때도 있었고 웃으면서 깰 때도 있었다. 사실 대체로 울면서 깼다. 웃으면서 깨다가 김하윤을 떠올리는 순간 왈칵 눈물을 쏟는 것이다.
부러졌던 뼈가 붙고 뚫리고 찢겼던 곳에 살이 차오르고. 손상되었던 근육이 회복되며 잊었던 기억도 돌아왔으나 무경은 어째 자신이 사람이 아닌 얇은 유리잔 같다고 생각했다.
작은 충격에도, 혹은 춥거나 더워도, 물방울을 후두두 떨어트렸다. 누군가 하윤으로 말을 시작하려 하면 잔 입구를 손가락으로 돌리듯이 온몸을 쥐어짜며 울음을, 악을 써 댔다.
김하윤의 부재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경은 제게 가스가 살포되길 몇 번이고 빌었다. 이를 유도하는 행동을 몇 번 하기도 했으나, 어찌나 관대하시던지 자신을 폐기해 주지 않았다.
그게 비윤리적이라나.
다만 그 덕에 전역은 확정되었다.
군인이 아니게 된 무경은 에스퍼 전용 시설 이용에 제한이 생기므로, 무경은 결국 행복해지는 가스를 맡지 못한 채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분명 들어가기 전 계절은 여름이었는데, 나왔을 땐 봄이었다. 가지마다 파랗던 가로수들은 잎사귀 하나 없이 꽃눈만 틔울락 말락 하고 있었다.
“…….”
민간인 주거시설로 옮기는 만큼 시설에서 나올 때 항우울제를 비롯하여 수백에 달하는 비보험 약물을 주사받았는데,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무경은 길바닥에서 눈물을 쏟았다. 왜 우는지 스스로 이유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이유를 떠올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소리도 없이 그저 눈물만 줄줄 흘리다가, 그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요원들이 직접 그를 데리고 요양 시설로 데려갔다.
그리하여 진짜 민간인 신분으로 바깥에 나왔을 땐 다시 여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울지 않고 집에 도착했을 때, 무경의 우편함엔 온갖 서류가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밭에서 무 뽑듯 우편물을 뽑아 들고 호기롭게 올라갔으나, 집 비밀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무경은 거기서 태연히 우편물을 뜯었다. 종이봉투가 어딘가의 누수 때문에 방울방울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편물 중 몇 개는 같은 곳에서 왔다. 차량 미수령에 대한 벌금 통지서였는데, 괴수로 인해 급하게 타지역으로 이동하느라 차량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제공되는 차량 보관 및 이동 서비스가 있었다. 국가와 보험사가 제휴하여 군 소속 에스퍼들에겐 무료로 제공되는 차량보험 옵션이었는데, 무경이 중간에 전역하면서 비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경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차량을 인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금이 꽤 나왔다. 무경은 절사 단위를 보며 젖은 눈을 비볐다.
그 외에는 국민연금을 다시 가입하라는 권고문이나 세금에 관한 것, 카드와 보험 회사에서 온 우편물이었다.
‘해야 할 게 적진 않네.’
고지서 덕분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무경은 눈을 감은 채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부재한 중에도 도와주시는 분이 있어 집 안엔 묵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 쉰 뒤, 들어가려는 찰나 하필 그가 신발을 벗는 자리 옆에 운동화가 발끝에 걸렸다.
“…….”
무경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무경은 서둘러 집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한 움큼 들고 있던 우편물은 바닥에 나부꼈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무경은 서둘러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부르지 않은 이름을 불렀다.
“하윤아!”
도무지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소파 밑에서부터, 주방 팬트리 룸, 그리고 안방과 옷방, 베란다까지 샅샅이 뒤지다가 마침내 하윤의 방에 들어갔다.
“하윤아.”
이미 집에 올라오기 전부터 능력으로 집 안을 샅샅이 훑어봤으면서. 바락 불렀을 때 대답이 없었는데도.
“하윤아…….”
왜 그렇게 기대했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을 텐데.
무경은 하윤의 침대에 엎드려 어린애같이 울음을 터트렸다.
요 일여 년이 그랬듯 별 소용 없는 일이었다.
◇◇◇
무경이 세상이 사라져도, 세상에서 무경이 모습을 감춰도 그래도 세상은 돌아갔다. 무슨 말이냐면 무경은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가산세를 위해 체납된 세금을 해결해야 했다는 소리였다. 차를 갖고 가라고 독촉하는 보험사에서 차량을 인도받고, 점검 및 수리한 다음 국세청에도 갔다가, 회계사를 만났다.
다행히 그들은 하윤과 아무 상관이 없었기에 그 앞에서 꼴사납게 울진 않았다.
다만 집에 돌아오던 길에 흘러나온 라디오 때문에 그는 갓길에서 다시 눈물을 흠뻑 쏟았다.
작년에 있었던 그랜드 파라디스 참사에서 시신이 없어 사망 처리가 불가했던 이들의 사망 수리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태 사망 처리가 수리되지 않던 피해자의 보호자들이 마음을 맞춰 합동 분향소를 차린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
그래, 그럴 때쯤 되었다. 자신도 모친의 사망 신고를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할 수 있었으니까. 간소화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지금 처리되는 것이면 이전과 비교하여 별로 축소된 건 아닌 듯했다. 그러다가 모친의 흔적을 찾아 하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때가 떠올랐다.
금세 코가 따갑고 어찌할 새도 없이 솟구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백무경 꼴 좀 봐라. 무경은 하윤을 불렀다. 내내 네게 재수 없게 굴던 백무경 꼴 좀 보러 오라고. 계속 되뇌다가 스스로 키워 버린 슬픔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조금 진정한 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한 무경은 주차장에서 바로 집에 올라가는 대신 우편함이 있는 일 층으로 향했다. 세금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고 온 뒤라 혹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우편함을 아예 열고 안을 들여다보자 작은 편지 하나가 지방세 고지서와 함께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우표가 붙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직접 우편함에 넣은 모양이었다.
혹 날붙이가 든 건 아닐까 편지를 만져 보다가 앞면을 보자 낯익은 이름이 쓰여 있었다.
김지하 올림. 백무경 귀하.
‘김지하?’
무경은 자신이 아는 김지하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누가 있더라. 그러다가 김하윤의 쌍둥이 동생 중 여자가 김지하라는 이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편지를 열자 무경이 자신을 모르리라 여겼는지 짧으나마 자기소개가 적혀 있었다. 김하윤의 동생. 그간 날이 어떻게 지나는지 몰랐다는 말과 함께 무경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아마도 본론인 듯한 가족끼리 결정된 사항이 있어 알려 드리려 한다는 글이 있었다. 무경은 본론이 적혀 있을 뒷장을 보지 않은 채 편지를 찢으려다, 주방으로 가 하루치 약을 입안에 쏟아 넣은 뒷장을 확인했다.
“…….”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처럼 그랜드 파라디스 참사에서 시신이 없어 사망 처리되지 못했던 이들의 사망 신고가 수리되고 있으므로 하윤 또한 절차를 밟고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밑에 알릴지 말지 고민했다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걱정했던지 일정에 관해서는 쓰지 않았다. 깽판이라도 놓을까 생각했나 보지. 무경은 씩씩거리며 뾰족하게 쏘아붙이다가 눈을 깜빡였다. 눈을 뜨고 있는데 눈앞이 컴컴하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씨발…….”
약을 한 번에 삼키느라 목에 걸린 것인지 가슴이 답답했다. 가슴을 쿵쿵 쳐 봤으나 딱히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야.’
산 사람을 장례 치르는 곳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경은 몇 번이고 자리에 주저앉으면서도 계속해서 일어났다. 나중에는 네발로 기고 있는 것이 사람 꼴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이끌고 인터넷에 나온 합동 분향소를 찾는 데 성공 했다.
합동 분향소를 차리는 가장 큰 이유는 시신이 없는 장례인데다 일여 년 후에 치러지는 만큼 조문객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인 만큼 서로를 보듬을 수 있고 장례 비용도 축소시키며, 보험 처리 시 제출할 서류도 작성할 수 있었다.
무경은 분향소 내에 들어서서 영정 사진을 훑었다. 자신을 알아보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통 누락을 염려하여 이름순으로 정리해 놓기 때문에 윗줄만 훑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가 찾는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하윤을 찾지 못할 리가 없는데.
“…….”
혹 잘못 찾았는가 싶어 둘러보았으나 그랜드 파라디스 참사의 합동 분향소는 여기가 맞았다.
‘그래, 아닌 걸 알고 차리지 않은 거겠지. 그렇게까지 경우가 없진 않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는데, 내내 장례식장 광고를 띄우던 작은 모니터에서 합동 분향소 옆 작은 빈소의 상주들 이름을 띄웠다. 합동 분향소 안내를 위해 기존 모니터를 할애했기 때문이었다. 무경은 그곳에서 보이는 이름을 보며 나지막이 탄식했다.
그곳에 김하윤의 이름이 있었다.
하윤의 이름을 쫓아 빈소에 들어간 무경은 자신을 보고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키는 기준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