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아…….”
김하윤이 백무경을 버렸다.
아직 조명탄이 떠 있는 중임에도 무경은 눈앞이 캄캄했다. 겨우 들고 있던 고개조차 가눌 수 없었다. 어느 순간엔 자신만을 밀어내는 [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귀가 먹먹해 주변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무경은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김하윤이 백무경을 버렸다.
“씨발…….”
기어올라 가는 속도가 너무나 느렸다. 갑갑한 나머지 숨이 자꾸만 거칠어졌다.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백무경은 이렇게나 쓸모가 없는 건가. 무경은 스스로를 욕하며 이를 악물었다. 자꾸만 울음이 끓었고 더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몇 번이고 거꾸러지면서도 계속해서 위로 올라간 그는, 더는 문이 가로막지 않는 정상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윤을 삼킨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무경은 홀로 발발 떨다가 하늘을 향해 총을 발포했으나, 별 소용 없는 짓이었다.
김하윤이 백무경을 버렸다.
총을 겨누고 있던 무경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의 손에서 빠져나온 총이 그가 딛고 있는 [문] 아래로 떨어졌다. 지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느릿하게 들려왔다. 그제야 아래를 본 무경은 자신이 올라온 높이를 확인했다. 온몸의 힘을 다 쥐어짜서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칠팔 층짜리 건물 높이밖에 되지 않았다.
무경은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며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장치에서 경고음이 들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장치가 발동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무경은 뒤를 더듬어 알림을 끈 뒤 다시 하늘을 노려보았다.
김하윤이 백무경을 버렸다.
지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래, 김하윤은 백무경을 버렸다. 그러나 그게 어쨌단 말인가. 무경은 하윤의 조각이었고 하윤은 무경의 조각이었다. 살아만 있다면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운명으로 엮인 사이니까.
그래야 운명일 테니까.
무경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여태 손을 벌벌 떨면서도 속으로 악다구니를 썼다.
[무경아, 넌 운명을 믿어?]
그래, 믿는다. 이제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니까.
“……다시 물으러 와.”
고개를 숙인 탓일까. 속눈썹에 달려 있던 물방울이 아래로 후두두 떨어졌다.
“네가 다 맞았어.”
김하윤은 이제는 우리가 열일곱 어린애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의 무서움은 자라난 우리에겐 별것이 아니라고 했다. 맞다. 김하윤의 말이 맞았다. 김하윤이 떠나는 것은 예전만큼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더는 두려워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무경은 그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애썼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악물었으나 자꾸만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그 순간, 하늘에 있던 [문]이 바뀌었다. 김하윤의 팔목에서 나온 고리가 퍼져 나갔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더니 광풍과 함께 비구름이 밀려났다. 덩달아 날려가면서 무경은 그를 지탱하고 있는 [문]을 짚었다. 그러나 이전까지와 달리 그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문]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무경은 눈을 부릅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멍청하게 입만 벙긋거린 채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어야 했다.
아니어야 했는데…….
“…….”
무경은 제게 밀려드는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늘어트렸다. 이대로 땅에 곤두박질치기를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를 받치고 있던 문이 사라진 뒤, 그 밑에 [문]이 떨어지는 무경을 경사면으로 받아 옆 건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소 거칠게 굴러 건물 안에 밀어 넣어진 무경은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을 들썩였다.
“끅, 그극, ……크으으.”
자신의 꼴이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다가, 숨을 꺽꺽거렸다. 지금 자신이 알아차린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말도 울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무경은 갑갑함에 몸부림쳤다.
“끄……으윽, 으…… 아, 아아……!”
쿵! 쿵! 쿵! 머릿속이 진탕 쳐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못하도록 바닥에 머리를 찧어 댔다. 그의 상태를 감지한 기기에서 다시금 시끄러운 알람을 울렸다. 무경의 주변에 있던 유리 조각을 비롯한 비교적 가벼운 사물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새어 나온 염동력 때문이었다. 이내 부유한 사물은 무경의 몸 주변을 맴도는 염동력을 따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침 건물에 숨어 있던 괴수가 소란을 좇아 다가왔다. 그러나 괴수는 무경에게 닿기도 전에 그가 만든 염동력의 폭풍에 의해 찢겨 나갔다.
무경의 상태를 측정하는 기기에서 경고를 넘어 제어 기기 가동 직전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렸다. 무경의 몸에서 나온 염동력의 폭풍은 각종 물건을 잡아먹고 덩치를 키우다가, 이제는 건물 안을 부수기 시작했다. 기둥을 부수는 것은 예사고 막혀 있던 벽과 층을 텄다. 건물 전체가 무경의 능력에 휘말려 부서졌고, 무경은 그가 바란 대로 땅에 곤두박질쳤으나 추가 부상은 없었다. 그를 짓이겨야 할 땅이 오히려 깊게 패고 말았다.
대신 빠르게 울리던 제어기기의 알림음이 단음으로 길게 이어지더니, 전기 충격파가 발생했다. 무경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자, 그의 몸 주변을 맴돌던 염동력의 폭풍은 일대로 퍼져 나갔다. 저지선에서 에스퍼들과 전투를 벌이던 괴수들이 이 폭풍에 휘말렸다.
굉음과 괴수의 포효가 이어지는 가운데 무경은 가물거리는 눈을 억지로 뜨며 몸을 일으켰다. 하윤의 힘이 걷히자 다시 힘을 쓸 수 있었다. 무경은 염동력으로 부러진 뼈를 맞추고 압박했다.
“크으읏…….”
착용한 제어 장치에서는 약물이 주입되다 말고 몸 밖으로 새어 나왔다. 전기 충격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 본능이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약효가 돌 만큼은 들어갔는지 감각이 둔하게 느껴졌다. 무경은 시험하듯 스스로 여러 대 뺨을 내리치다가, 눈을 깜빡였다.
“아…….”
세상이 까매졌다가, 밝아졌다가. 다시 까매졌다가 밝아졌다가.
그러다가 까매졌다가 밝아졌던가, 아니었던가.
그때부터는 기억이 드문드문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어느 순간엔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네발로 걷고 있었고 괴수를 찢고 핵을 찾아 정신없이 부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 나자빠져 있었고 또 어느 순간엔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또 세상이 까맣게 물들었다가 밝아졌을 땐 피거품을 문 채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대고 있었다. 그러나 본능이 앞선 상태라 스스로에게 쏜 총알은 죄다 납작해져 쓸모를 다하지 못했다.
“이 미친 새끼야! 정신 차려! 눈 감지 마! 야 인마! 조금만 더 버티라니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턴 눈을 뜨지 못한 채 오래 잊고 있던,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랐다. 누군가가 자신의 뺨을 때리며 다그쳤으나 듣고 싶지 않았다. 더는 남의 기억으로 분류할 수 없는 백무경의 기억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내렸다.
시작은 열일곱의 여름, 하윤이 악몽 꿔서 깨고 만 뒤, 문태강의 손녀가 장대비를 뚫고 집에 찾아왔을 때부터였다.
당시 무경은 하윤과 지하 통로로 탈출하려 했었다. 그러나 탈출로에 문제가 생겼고 문지기인 하윤은 [문]을 이용해 멀리 달아날 수 있으나, 그의 능력이 통하지 않은 무경은 탈출이 여의치 못했다. 결국 둘은 지상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거기서 김득철을 만났다.
김득철은 인형으로 만들어 버린 무경의 부친을 그들과 싸우게 했었는데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계에 내몰려야 했다. 그러던 중에 난데없이 나타난 괴수를 김하윤이 [문]으로 피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떨어지고 말았다.
‘맞아, 그랬었다.’
그 뒤에 진짜 김득철이 나타났다.
그들과 처음 마주했던 김득철은 진짜 김득철이 아니고 본체가 만든 인형이었다. 무경은 김득철 무리에 의해 열세로 밀렸었고 최후의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폭주를 유도했다. 본래 타고난 힘이 많았던 만큼 잠시 잠깐 제어를 푸는 것만으로도 힘이 터져 나와 일대를 휩쓸었다. 김득철의 부하를 얼추 휩쓸어 낸 뒤, 제압당한 척 했다. 흩어져 있던 김득철의 부하들이 그를 함께 짓눌렀고, 김득철은 그에게 잠시간의 분풀이를 한 뒤 머릿속을 헤집었다.
자신을 산 채로 잡아서 모친을 협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선 전처리가 필요했는데, 보통은 세뇌하거나 기억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시전자의 존재를 덧씌우곤 했다. 그가 자신의 기억을 헤집으며 닿으려는 것이 누군지 명확했기 때문에 무경은 그때부터 하윤의 기억을 숨기려 애썼다.
그러면서 김득철의 숨통을 끊으려 했지만, 무경은 성공하진 못했다. 김득철의 부하가 자신을 내던졌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엔 가까스로 잡고 있던 이성을 놓아 버리는 바람에 무경은 ‘진짜’ 폭주에 휘말렸다.
그리고 그 무렵쯤에 미궁이 열렸을 것이다. 폭주한 뒤라 주변 상황에 대한 기억은 없고 미궁의 존재를 감지한 것과 그곳에서 튀어나온 괴수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기억났다.
이계의 존재이자 정신계 괴수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괴수에게 정신이 잠식되었다는 뜻이었다. 다만 당시에는 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네가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
그저 대답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들킨다면 분명 저 탐욕스러운 것이 빼앗아 갈 테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자면 앞서 김득철이 자신의 기억을 제멋대로 만지려 했던 탓이 컸다. 게다가 목소리가 물은 두려움은 하윤과 관련이 있었다.
탐욕스러운 목소리가 무슨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없으나 하윤과 관련된 것이나 자신의 두려움에 관한 것을 들키면 안 된다고 여겼다. 함부로 가져가지 못하도록, 함부로 이루지 못하도록.
그리하여 백무경은
괴물에게로부터,
괴물에게 정신이 오염당한 자신으로부터
김하윤을 감추고, 실재하는 김하윤과 분리했다.
그날부터 무경에게 있어 김하윤은 김하윤이 아니었다. 절대 김하윤이어서는 안 됐다. 어려운 일이었으나 할 수 있었다. 하윤을 위해서라면 그는 정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으니까.
‘분명히 그랬는데.’
김하윤을 위한 일이었다. 스스로를 속이고 채찍질하고, 김하윤을 망가트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야 괴물의 힘이 김하윤에게 닿지 못할 것이니까.
비록 자신이 모래를 움켜쥔 손과 처지가 다를 게 없다 해도 손안에 가장 소중한 몇 톨의 모래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느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자신이야 어떻든 더 오랫동안 해낼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
그러나 지금 그의 손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대체……. 뭘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