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소용없다는 거 알잖아.”
무경은 지금 당장 총부리를 휘거나 탄창 안의 총알을 분해해 버릴 수도 있었다. 자신감이 엿보이는 말에 하윤은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하윤아,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재차 당부한 무경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는 거친 말이라도 내뱉을 듯이 입가를 들썩이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고집스레 걸음을 움직였다. 그들을 따라오는지 헬기 소리가 들렸다. 하윤은 무경의 고개가 그리로 돌아가려는 것을 막고 작은 [문]을 열었다.
“그럼 이건 어때?”
총을 든 손을 [문] 안에 넣었다.
“…….”
무경의 걸음이 그제야 멈췄다. 진작에 총을 망가뜨렸어야 한다는 말에 하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무경이 그렇게 한들 자신은 어디에선가 총을 주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이 있는 곳에 문이 열리도록 하면 되니까. 그때엔 총을 보여 주지도 않을 것이다.
“머리가 터지면 그때엔 총을 쏜 거겠지.”
사실 쏘진 않을 것이다. 머리를 쏘는 건 별 소용 없는 짓이라는 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
“하윤아, 제발!”
왜 이러는 거야. 무경은 여전히 다급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윤도 마찬가지였다.
‘윤일호를 날려서 좋은 건……. 그래, 적어도 내가 바라던 순서로 돌아왔네.’
다행이긴 한데 다행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무경이 하윤의 오른손을 잡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문 안으로 들어간 하윤의 손을 바깥으로 빼내 총기를 망가트리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총성이 울려 퍼지며 하윤의 왼쪽 귓불이 날아갔다. 진짜 쏠 줄 몰랐던지 경악한 무경의 얼굴이 보였다. 몸싸움이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또 한 번의 총성이 허공을 갈랐으나 무경은 하윤을 제압했다.
그러나 하윤의 팔을 [문]에서 완전히 빼내는 데는 실패했다.
‘남은 건 한 발.’
“김하윤!”
“이거 놔. 이번엔 진짜 머리통 날려 버릴 테니까.”
무경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윤이 더는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몸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황했는지 평소와 달리 힘 조절할 생각도 없었다. 하윤이 움직이자 아예 몸을 써 짓눌렀다.
“제발…….”
무경은 재차 애원했다. 제발 자기 말 좀 들어 달라 윽박지르다가, 분을 이기지 못해 제발을 씨발같이 외치기도 했다. 평소라면 이럴 땐 몸에 힘을 뺀 채 무경의 성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겠으나, 오늘은 하윤도 물러날 수 없었다.
그 고집을 읽었는지 무경은 아예 하윤의 어깨를 탈골시키려 했다. 그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하윤도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무경을 한정으로 이에 대응하는 법 또한 알고 있었다.
덩치 차 때문에 벌어지는 공간에 다리를 넣을 준비를 했다. 그러고는 무경의 손이 자신의 어깨를 뽑으려는 순간 어깨 관절부를 움직여 무경이 뭔가를 잘못한 것처럼 느끼게 했다.
“아아아아아악!”
“……!”
하윤이 온몸을 쥐어짜듯 비명을 지르자 무경이 숨을 헉 들이켜며 손을 떼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하윤은 준비하고 있던 틈을 완전히 파고들어 몸을 돌렸다. 무경의 품을 벗어나는 공간에 문을 열어 두고 피하자 순식간에 무경과 꽤 떨어진 곳으로 굴러 나왔다.
“하하……!”
또 속았지.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비기가 통했다. 이 기분이 어떤지 무경은 모를 것이다. 하윤은 숨을 헐떡이며 아주 작게 웃었다. 이상하게도 웃는데 우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숨이 떨려서겠지.
하윤은 아직도 무경이 다시금 거리를 좁히며 자신의 총을 빼앗으려 기회를 엿보는 것을 봤다.
‘안 되지. 안 돼.’
하윤은 즉시 두 개의 [문]을 열었다. 하나는 무경과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는 [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발밑에서 열리는 [문]이었다. 이를 눈치챈 무경이 곧장 손을 뻗었지만 [문]에 가로막혔고, 그사이 하윤은 발밑에서 열린 [문]으로 움직여 그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쉽진 않았다. 무경은 이미 자기 능력으로 빌딩과 일대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일찍 들켰다.
잠시 방심한 사이 무경이 쏜 총알이 하윤의 왼발 옆을 스쳤다. 자신이 문으로 총알의 궤적을 수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무경 또한 자신이 쏜 총알의 위치 정도는 손쉽게 바꿀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무경 또한 하윤을 겨눌 수 있었다. 암만 경고 사격을 가깝게 당겨도 하윤을 맞추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리 와.”
제발, 제발, 제발. 무경은 쉴 새 없이 하윤에게 사정했다. 하윤은 반복되는 그의 입 모양을 바라보다가 문을 올려다보았다. 불룩해진 문 옆으로 하늘 색이 바뀌고 비가 쏟아졌으며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다.
천둥이 울릴 때마다 이대로 하늘이 내려앉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났다.
“무경아.”
“…….”
“화났구나.”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하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나 지금의 무경에게는 이런 말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때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얼추 비슷해 보였으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시간이 없기는 한데, 지금 아니면 대답 못 해 줄 것 같아서.”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문]을 닫아야지. 내가 문지긴데 뭘 하겠어? 다음.”
“…….”
“어어?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데.”
“…….”
“진짜 안 물을 거야?”
무경은 고집스레 입을 다물었다. 묻기도 싫었을 것이고 뭘 물어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저 또한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세상엔 자기를 물에 민 사람보다 짐 빼고 몸만 건져 준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
“맞아, 그게 내 얘기야.”
하윤은 지척까지 다가온 무경을 피해 공중으로 올라갔다. 주변의 작은 [문]들이 깨지면서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게 건물일 때도 있었고 작은 괴수일 때도 있었으며, 각종 오물이 섞인 하수일 때도 있었다.
“딱 그때 같다. 그렇지? 혹시 거기까지 기억나?”
“…….”
“아니면 말고.”
하윤은 부서진 문의 문턱을 밟으며 몸을 까딱였다. 남들이 보기엔 자신이 공중에 몸의 반절만 떠 있는 것처럼 보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진짜 바쁘게 움직였다고.”
“김하윤!”
몇 번이고 하윤을 놓친 무경은 악에 차 하윤을 불렀다. 이렇게까지 무경이 화가 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하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젠가 오늘 새벽에 말한 것 같은데, 나 또 김희원 만났다? 만나려고 만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또 마주쳤어. 윤일호를 막아서 시간을 좀 버나 싶었는데 걔가 문을 여는 바람에. 뭐, 제대로 연 건 아니고 틈만 벌려 놓은 건데, 문 바깥에 있는 새끼가 이미 한 번 온 적이 있던 놈이라 좀 집요하네.”
아는 존재들이 이렇게나 모이는데 동창회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윤은 농담을 건넸으나 애석하게도 무경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이번만 잘 넘겼음 끽해야 저 문은 게이트나 되겠다 싶었는데. 기어코 미궁이 될 모양인가 봐. 문밖에 있는 새끼가 이곳에 오는 길을 아는 바람에 다른 곳의 문을 뚫고 또 뚫고 와 버려서, 이제 그쪽에는 문이 안 남은 것 같더라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 그냥, 그런 게 있어. 문지기만 알고 느껴지는 그런 게.”
과학적으로 증명하라고 하면 입도 뻥긋할 수 없으리라. 하윤은 입꼬리를 한껏 끌어 올렸다.
“어쨌든 김희원이 문을 여는 바람에 머리꼭지가 도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걔를 보니까 화를 낼 수가 없더라. 난 걔를 볼 때마다 불편했어. 왜냐면 내가 걔를 엄청나게 이용해 먹었거든. 김희원이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아, 그게 더 나쁜가?”
원래 자신은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양심이랄 게 있어도 아주 작아서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사람.
“아무튼 일을 키우는데 나도 일조했다는 걸 깨달았지 뭐야. 그래서 시원하게 욕 한마디도 못 했어. 왜냐면 나도 억울하고 걔도 억울했을 테니까. 누가 더 억울하냐를 따지기엔 원래 자기 억울함이 더 큰 법이잖아? 그래서 어차피 내가 할 일이었다 치고 더 일찍 해야 했었을 사과나 겨우 하고 헤어졌어. 이것도 못 알아듣겠지?”
[문]에 관한 것을 자신이 이미 계획하고 마음먹은 바가 있었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미친 새끼라고 욕하며 김희원이 분리되어 죽기 전에 들고 있던 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나는 무서운 게 많았어. 김득철도, 그의 뒤를 봐주는 힘 있는 사람들도 무서웠고. 그리고 또 특별함을 잃는 것도 무서웠고, 또 김희원도 무서웠지. 내가 한 일을 들킬까 봐서. 그런데 말이야 오늘쯤 되니까 그것들이 그리 무서운 게 아니었더라고. 그래, 이걸 말하고 싶었어. 내가 실은 말이야, 많이 컸더라고. 더는 열일곱이 아니었더란 말이야. 기억 속에서, 상상 속에서 마냥 무섭던 것들이 실제 마주하니 그렇게 무섭지 않더라고.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는, 원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더라고. 나쁜 놈들이 제풀에 무너지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