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하윤은 이상일이 그랜드 파라디스에 있는 능력자가 자신인지 물었을 땐 뜬금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하면 연결 지을 수 있었는데. 심지어 김희원이라는 이름을 언뜻 들었지 않은가.
“네가 무슨 짓을 한 건 줄 알아?”
“…….”
“네가 감히!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느냐고!”
하윤은 김희원을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스스로가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로 격앙되고 고압적인 말투가 튀어나왔다. 김희원은 하윤의 고함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윤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기만 했다. 그렇게 몇 번 흔들었을까. 김희원의 양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놀란 하윤이 잠시 멈추자, 그동안 듣지 못했던 숨죽인 울음이 들렸다.
그사이 이번엔 양다리가 끊어졌다. 하윤은 김희원의 눈 속에서 봤던 광경이 떠올렸다. 그가 수를 헤아릴 때마다 김희원에게 붙어 있던 타인의 부분이 떨어져 나갔었다.
그때 헤아린 수가 열셋. 열셋을 세었을 때 김희원에게 남은 것은 머리와 척추, 그리고 그 사이를 위태롭게 자리한 심장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모든 걸 봤던 게 아니었구나.’
더 남아 있었구나.
하윤이 탄식한 순간, 김희원은 저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발음이 뭉개져 태반이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래도 간혹 들리는 게 있었다.
“나, 나는 김희원이야. 나, 나는, 나는 이대로 아, 아무것도 하지 모, 모, 못한 채 죽고, 죽고 싶지 않아.”
김희원의 목소리는 점차 변하더니 나중에는 사람 목소리 같지 않은 괴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언가가 많이 뒤엉킨 목소리였다.
“가, 가짜는 진짜를…… 뛰어넘으, 을, 을 수 없어. 오, 오로지 지, 진짜…… 하하나만이.”
“…….”
“오, 오로지 나만이이…….”
김희원의 옷이 완전히 붉게 물들고, 그의 머리에서도 피가 새어 나와 얼굴을 뒤덮었다. 김희원은 눈을 가물거리다가, 이내 하윤을 불렀다. 그의 애절한 부름을 듣는 순간 내내 멈춰 있던 하윤의 사고 회로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지.’
윤일호의 손상된 기억, 김희원의 손상된 기억. 둘의 공통점을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것이 그들의 제작 과정에서 흐려진 게 아니라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문]에게 빼앗긴 거야. 손발 따위는 그들에게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일반적으로, [문]은 하윤을 제외한 다른 문지기에게는 자격을 따졌다. 자격이 없는 자들에겐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팔다리를 잘라 냈다. 앞서 훔쳐본 기억에서 윤일호를 만든 김팔호는 김희원을 통해 최적의 균형을 찾아냈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문]이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남의 손발을 끊어 와 붙이고 다니는 이들에게서 중요한 것,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하여 그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빼앗은 것이다. 진짜를 결정지을 ‘기억’ 말이다.
김희원은 겁에 잔뜩 질린 눈동자로 하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윤아. 나, 나 너너너, 무, 무서워.”
“뭐가?”
“너무 무, 무서워…….”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워?”
그렇게 무서워할 거면 일을 저지르지나 말지. 결국에 네가 저지른 짓인데 무서울 게 무엇이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차마 뱉지 못한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김희원을 보는 것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워낙 껄끄러운 상대인 데다 그의 앞에서 우쭐댔던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희원 앞에서 문지기는 문을 열어야 한다는 둥 하는 소릴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민망하고 뒤통수가 얼얼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럴 게 아니야.’
하윤은 의식적으로나마 숨을 쉬려 애썼다. 자꾸만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아직은 그래선 안 됐다.
‘정신 차려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김희원에게 할애할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당장 문이 더 열리기 전에 무경을 어찌해야 했다.
‘도망이라도 칠까?’
어디로? 도대체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막상 닥치자 모든 것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윤일호를 막기만 하면 어찌어찌할 방법이 떠오를 것 같았는데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 무경이부터 찾자.’
몸을 돌리려는 순간 김희원이 잔뜩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하윤아……. 나, 나는.”
“…….”
“누, 누, 누구야?”
김희원은 기껏 묻더니 금세 입을 다문 채 허밍을 했다. 음도 제대로 알 수 없는 흥얼거림을 들으며 하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작금의 참사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 몸에 김희원과 김득철이 서로 몸을 차지하려는 공방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의 두려움을 직면했을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생각하면 이계의 괴물의 영향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그날 괴물의 영향권에 있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내가 가엾은 것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삶의 끝을 지척에 둔 순간에 깨달음이라도 왔는지 문지기 선배가 남겨 둔 글이 생각났다.
청컨대 지기여, 혹 이미 여럿의 힘을 홀로 갖게 되거든 가여운 것을 가엾이 여기시오. 당신은 삶을 사는 동안이나 스스로든 타의로든 삶을 저버린 뒤에도 가여워지기 어려운 존재이나, 당신이 어여뻐하는 자들은 가여워질 수 있기 때문이오. 하나 당신이 생전에 가여운 자를 가여워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가여운 자를 그 누구도 가여워하지 않을 것이기에. 하여 거듭 말하건대 가여운 것들을 가엾이 여기시오.
나는 생전 가여운 것을 가엾다고 여기지 않고 그저 내 일신의 가여움만을 쫓았으므로 이러한 끝을 맺어야 하였으나, 지기여 부디 성찰하여 내 길을 따르지 마시오.
하윤은 꺽꺽 웃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어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흐트러진 숨에 발끝에서부터 끌어모은 짜증과 분노가 터져 나왔다.
“……왜. 왜 나만! 왜 나만 그래야 하는데!”
세상을 멋대로 사는 새끼가 얼마나 많은데. 왜 나만. 왜 다른 사람들은 놔두고 저만 그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왜.
“……씨발.”
[너. 걔랑 내 기억 섞였어. 김희원. 걔랑 나랑 착각하고 있다고.]
절박함이 방패가 되어 주지 못 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거짓말이 자신을 갉아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쑥 튀어나왔던 거짓말.
자신은 십 년 동안 김희원의 존재를 훔쳤다. 그가 자신의 존재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에도 그저 자신의 괴로움과 사정만을 생각하면서.
미안한 일이었다. 김하윤은 김희원에게 죄스러워야 했다. 자신이 그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으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절망과 후회와 함께.
“……김희원.”
“…….”
“너는 김희원이잖아. 문을 열었으니까 문지기 김희원이지. 왜냐하면 김득철은, 그 새끼는 진짜가 아니거든. 그 자식 또한 진짜를 뛰어넘지 못하거든.”
하윤의 대답에 희원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숨이 붙어 있는 게 용한 상태였다. 하윤은 그를 보며 내내 미루던 사과를 꺼냈다.
“그리고 희원아, 진작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희원은 하윤의 사과에 놀란 듯 감았던 눈을 뜨려 했으나, 이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감고 말았다.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한 뭉개진 소리를 남기고서 그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투둑투둑 쏟아지던 비는 이내 주변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세차게 내렸다. 하윤은 얼굴을 훑어 내리며 뒷걸음질 쳤다. 마음이 울렁거려 가만 서 있기 힘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켜며 하윤은 무경의 위치를 확인했다.
무경은 근처다 못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윤은 잠시 비를 피해 건물 잔해 밑으로 가서 총의 탄창을 확인했다. 제법 무장을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세 발이 남았다.
‘세 발.’
새기듯 중얼거리며 하윤은 지척에 다가온 무경에게 총을 겨눴다. 무경은 하윤이 나타날 것은 알았지만 총을 겨눌 줄 몰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익숙한 무경이었다. 하윤의 속눈썹에 고여 있던 물방울이 깜빡임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물러나.”
“그거 그렇게 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거 알잖아.”
일대에 무경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일반 총알로는 그를 위협할 수조차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윤아, 여긴 위험하니까 얼른 도망가자.”
“…….”
“얼른. 시간 없어.”
그걸 자신이 모르겠는가. 하윤은 웃으려다가 울음이 끓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작금의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쪽지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마냥 미뤄지다가 없는 일이 되었으면 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만 특별하게.
“무경아.”
“어?”
“무경아.”
유일한 제 편을 마주한 것처럼 응석이 튀어나왔다.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당장에 달려가서 그를 끌어안고 싶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무엇이 어떻게 되든 간에. 그러고는 이미 반성했던 일 또한 마냥 억울한 일로 포장해 일러바치고 싶었다.
이 모든 게 내가 가여운 것을 가엾게 여기지 않은 탓이래. 그게 말이나 되냐, 세상에 나쁜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새끼들은 놔두고 왜 나만 그러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김희원의 실종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아니,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실종에도 신경을 썼다면.
일이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게 어떻게 네 탓이냐 하겠지마는, 자신도 그게 어떻게 오로지 내 탓이냐 하지마는.
이미 가 버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문]에 남아서 제 죽음을 저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번에야말로 할 일을 하라고.
저희를 문에 박아 넣었던 것처럼 너 또한 존재의 의미를 다하라고. 응보를 받으라고.
“김하윤, 안 되겠다.”
순식간에 하윤의 품을 파고든 무경은 하윤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멀리 던진 뒤, 그를 안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 달아나. 너라면 할 수 있잖아? 어?”
“…….”
“이제부터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모르는 척해. 뭔가 알았어도 그냥 모르는 척하란 말이야. 나랑 약속했잖아!”
무경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게다가 요즘 세상은 잇몸으로 씹지도 않는다. 당장 임플란트를 꽂아서 앓던 이보다 훨씬 잘 씹어 삼킬 수 있다고. 그러니까 주먹구구로 혼자 해결할 생각하지 말고 첨단화기로 무장한 전문 직업인한테 맡기라고 말했다.
“……나랑 약속했잖아.”
“무경아, 나 내려 줘. 어지러워.”
무경은 대꾸하지 않고 하윤을 안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하윤은 이대로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김희원이 연 [문]의 틈으로 괴물이 몸을 부딪쳤다. 문은 곧 열릴 듯이 불룩해지다 못해 깨지고 있었다.
이미 한번 와 봤던 전적이 있던 놈이라 그런지 문의 틈이 벌어지자 [문]을 여는 게 아니라 깨려는 것이다. 그럼 다시 여닫은들 소용없으니까. 문들이 깨지는 소리와 비는 그 충격의 여파였다.
하윤은 무경이 던져 버린 총을 [문]으로 찾아 다시금 손에 쥐었다. 이를 알았던지 무경이 소용없다고 말하려는 찰나 하윤은 총을 자기 머리에 겨눴다.
“무경아, 내려 줘.”
마침내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될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