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하윤은 두서없이 말을 쏟아 내던 중에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내 억울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다는 것도.
왜냐하면 자신 또한 무경 못지않게 세상이 좁은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오로지 무경과 단둘이 사는 것처럼 굴었다. 그리하여 가엾은 것을 가엾이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고통에 심취하여 그 존재조차 알려 하지 않았으므로.
피노키오의 뒤를 잠시 잠깐 밟긴 했지만, 그것은 무경의 곁에 있기 위해 제대로 거짓말하기 위해서였다. 아, 이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무경을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기에 성찰이 필요하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만 해도 성찰 비스름한 것을 하는 중에도 죄의 근원을 찾지 않는가. 게다가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도 둔하게 느껴졌다. 공포를 집어먹은 괴수가 근처 꼬마 빌딩만큼 몸을 키워 사람이고 차고 닥치는 대로 입에 밀어 넣는 것도, 미처 대피소로 향하지 못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사람들도.
그저 눈앞에 무경을 마주한 것만이 중요했다. 그러니 자신은 벌을 받아도 쌌다. 그래도 쌌다. 태어난 이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뀐 적이 없었거든.
“무경아, 우리 많이 컸다. 그렇지?”
헬리콥터에서 쏘아 보내는 조명에 하윤은 눈을 찡그렸다. 어느새 헬리콥터로 도약한 무경이 자신을 잡기 위해 손을 휘둘렀다. 하윤은 급히 [문] 안으로 피한 뒤, 그가 달려든 반동으로 밀려나게 된 자리로 가서 마저 말했다.
“네 무서움도 사실은 그렇게 무섭지 않을 거야. 그건 고작해야 열일곱 어린애가 무서워하던 거거든. 사실 헤어지면 다시 만나면 그만이잖아?”
“하윤아, 하윤아. 나 버리지 마. 제발, 나 버리지 마!”
지금의 무경이라면 쓰지 않을 말이었기 때문일까. 하윤은 열일곱의 무경을 눈앞에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늘 거의 모든 일이 과거와의 조우였다.
“나 혼자 두지 마. 제발, 그렇게 하지 마. 어?”
“…….”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는 것은 자신에게 다가온 마지막 행운이었다. 무경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무경이 예전에 그랬고 하윤이 이미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문제가 거기서 온 거야. 이 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을 단둘인 것처럼만 살아서. 세상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의 일을 하는데 우리가, 아니지. 너는 잘 해 왔니까 내가. 그래, 내가 해야 할 일을 안 해서.”
무경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제 단념할 만한데도 계속 하윤을 좇았다. 타율이 높아 자신이 피하는 곳을 속속들이 찾아냈다. 그러나 하윤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그가 닿았을 땐 이미 하윤은 그곳에 없었으니까.
한편 하윤은 무경을 피해 달아나면서 일대를 확인했다. 문득 지금 생각하는 것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필요 없는 생각이었다.
‘해야지, 무슨 할 수 있을까 말까를 생각하고 있어.’
[문] 틈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버티고 있는 [문]에서 나는 소리가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같이 들렸다. 이것은 이제 하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 십 년 동안 내내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지?”
사는 동안 입이 비틀어져도 그때가 좋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윤은 동의는커녕 고함만 지르는 무경을 내려다보았다.
“무경아, 넌 운명을 믿어? 내 앞인데 그렇다고 대답해야지.”
“……!”
하윤은 마지막 남은 총알로 무경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무경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릴 때, 하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무경아, 뒤를 부탁할게.”
하윤의 인사에 무경은 눈을 부릅떴다. 하윤이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를 챈 탓일 것이다. 그의 절규를 뒤로한 채 하윤이 몸을 돌리는 순간, 그의 몸에서 두 개의 고리가 떠올랐다. 고리는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면서 각기 다른 궤도를 그리며 회전했다. 하윤의 몸이 황금빛으로 변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눈에서부터 황금빛이 번지더니, 이윽고 황금을 들이부은 듯이 머리끝과 발끝까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상하리만치 힘이 넘쳤다. 힘을 견디지 못해 온몸의 세포가 한껏 부푼 느낌도 들었다.
크기를 키우며 파동치던 고리는 일순간 주름을 펴더니 일대로 퍼져 나갔다. 커진 고리가 감싼 일대의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것이 하윤의 감각 아래 들어왔다.
하윤은 자신의 감각 아래 있는 초능력자들을 일대 밖으로 내보냈다. 할 수 있느니 없느니 했던 것과 달리 꽤 쉬웠다. 자신의 통제하는 범위 안에서 그들을 허락하지 않자 [문]들이 그들을 삼켜서 내쫓았다. 그래, 문지기란 본디 이런 것 아니겠는가.
하윤이 초능력자들과 함께 근처에 있던 헬기도 함께 내보내자 무경 또한 쉽게 밀려났다. 염동력으로 떠 있긴 했으나 지지할 곳이 없는 탓이었다. 게다가 무경의 힘은 하윤의 힘에 가로막혀 그가 원하는 곳에 닿지 못했다.
여태 제어하고 있었던지 무경이 멀어지자 그랜드 파라디스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을 신호 삼아 하윤은 하늘의 거대한 [문]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 너머에서 탐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계의 존재와 마주했다.
“드디어 이날이 왔구나.”
하윤은 자신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안 날부터 여러 방법을 강구 했다. 미궁이 열릴 만한 곳을 찾는다든가, 이계의 존재를 막는 방법을 찾는다든가.
각고의 노력 끝에 전자는 얼추 맞췄으나 후자는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알았다면 진작 했겠지. 스승 서이주는 미궁의 문은 열지 않으면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이계의 존재에 의해 문이 열리게 되면 [문]이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괴물에 의해 열린 문은 문이 열렸다기보단 깨지거나 터졌다는 말이 더 어울릴 테니까.
그랬기에 문이 고장 나기 전에 일단 열어 형태를 건진 뒤 다시 닫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문]을 한번 닫아 봤는데, 눈치 없는 새끼가 또 찾아오더라고. 그래서 다시 생각해 봤지. 다시 열고 닫아도 너를 어쩌지 않는 이상 안 되겠더라고.”
괴수는 하윤이 그를 쫓아낸 이후 무경에게 봉인된 자신의 조각을 찾아 쫓아왔다. 이 세상과 닿는 곳에서 또 다른 세계로 옮기고 또 옮기며 수없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는데, 그게 이번 한 번으로 끝날 리 있겠는가.
그때는 하윤이 없어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하윤의 사후에 새로운 문지기가 태어날 순 있겠으나, 큰 조각인 하윤이 깨어진 이후일 것이므로 문지기 중에 힘 있는 자가 나오려면 비극이 되풀이되어야 했다.
게다가 꼭 괴수의 일부분을 봉인한 무경이 아니더라도 이번 사태처럼 괴수의 기운이 스몄던 초능력자들에게서도 일이 터질 수 있었다. 겨우 이걸로? 싶은 시시한 일이나 하윤이나 기타 관계자들이 예상치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든 말이다.
그래서 하윤이 생각한 것이 이대로 문 밖에 있는 새끼와 담판을 내고 부서진 [문]을 수복하자는 것이었다. 먼저 세상을 떠나 버린 문지들과 달리 하윤은 이미 경험이 있었고, 마침 [문]을 수복하는 데 드는 곡옥이 마침 제게도 하나 있었다. 그렇게 힘을 배분하면 어떻게든 해내지 않겠는가.
‘남은 건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고.’
그래, 이제 각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하윤은 괴물은 나오지 못할 정도로 작으나, 저 하나는 삼킬 수 있는 틈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찾아 틈을 엿보고 있는 괴물의 커다란 눈을 마주했다. 어찌나 큰지 눈 하나만으로 하윤의 수백 배는 될 법했다.
[!]
괴물은 문을 열라는 듯이 괴상한 소리와 파장을 뿜었고, 그로 인해 공간은 연약하게 흔들렸으나 하윤을 흔들지는 못했다.
하윤은 십 년 전 그날, 스승이 남긴 유언처럼 자신에게 명령했다.
‘[문]을 열어라, 김하윤.’
눈과 눈이 마주하고, 문지기가 문을 부르자 괴물의 동공에 파문이 일었다. 온몸의 세포가 타다 못해 녹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하윤은 마침내 괴물의 [문]을 마주했다.
이로써 서로가 [문]과 [문]을 마주한 셈이었다. 괴물은 하윤이 지키려던 세상의 문을, 하윤은 괴물의 정신의 [문]을.
“너야 말로 문을 열어라. 내가 거기로 들어가야겠다.”
[!]
괴물은 격렬하게 반항했으나 김하윤이 열지 못하는 [문]은 없었으므로, 하윤의 의지가 닿는 순간 괴물의 [문] 또한 열리고 말았다. 정신체 괴수의 가장 연약한 곳이 드러난 순간, 하윤은 내내 괴물이 던졌던 질문을 던졌다.
“네가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
하윤이 알지 못하는 언어, 알지 못하는 지식, 그것을 기반으로 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주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무엇이 폭발하고 일그러졌다가, 희어졌다가 검어졌는데, 그러다가 또 온갖 색이 뒤엉켰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윤은 자신이 아는 지식을 건져 냈다. 파도 소리와 같은 [문]들이 깨어지는 소리. [문]들이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더는 열릴 리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닫히는 소리. 그것들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작은 조각조각을 맞춰 나가다가 문득 괴물의 행태를 떠올렸다. 머리를 찾아 이 세상에 오기 위해 여러 세계를 넘어다녔던 것 말이다. 그렇게 남의 세상을 휘젓고 다녔으면서 세상과 세상 사이에 끼여 죽을까 봐 겁이 난 것이다.
‘이것 봐라, 이 새끼도 똑같잖아.’
하윤은 실성한 것같이 웃었다. 이 새끼 또한 가엾은 것을 가엾이 여기지 못한 응보를 받는 것이다.
[그래, 너는 찢겨 죽어라. 네가 멋대로 휘젓고 다닌 세상의 가장 약한 문에서부터!]
하윤의 몸속에서 쩌적!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그의 말은 이계의 것처럼 공간을 뒤흔들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처럼 수많은 문들이 응답하며 괴수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
괴물이 찢겨 나가며 괴상한 빛깔의 빛이 번개처럼 번쩍이고 거센 파장이 일었다. 하윤은 문틈을 막아섰다. 벌어진 문을 닫고, 부서진 사이사이를 몸으로 가렸다. 온몸이 타다 못해 녹아내릴 것 같았던 몸이 정말로 녹아 팔과 다리 한쪽이 사라지고 없었다.
하윤은 작게 웃으며 문에 머리를 기댔다.
자신의 가슴팍에서 녹색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윤은 숨을 크게 들이켜며 눈을 감았다.
‘아, 이제야 좀 편히 쉬겠군.’
그것이 의식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