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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라스트-133화 (133/162)

133화

무경은 직업도 직업인 데다 본인이 가진 강한 초능력 탓에 운신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가 개인적인 일로 지방을 움직일 때는 상관에 사유와 함께 일정을 보고하고, 이동하는 지자체에 방문 서류를 보내야 했다.

요즘에야 전산이 잘 되어 있어 이전보다는 번거로움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절차가 필요 없는 경우와 비교하면 귀찮긴 했다. 더욱이 휴가철도 아닌데다 한창 일이 바쁜 중이었다. 아무리 주말이라 하더라도 주거지역에 상시 대기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상부 입장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여론도 좋지 않아 상부에서는 행동을 삼가길 바랐으나, 무경이 정신적인 고통과 부모의 추모를 운운하자 또 마냥 반대하진 않았다. 원래 초능력자, 특히나 정신력을 많이 사용하는 이들을 몰아세워 봤자 얻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역사가 두루 증명했으니까.

다만 이 모든 과정을 김하윤이 서해에 가지 않겠느냐는 말 한마디에 물 흐르듯 처리한 자신이 우스웠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양 굴고 있지 않은가.

사실상 김하윤이 서해에 함께 가길 바란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 년은 족히 된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무경은 긍정적인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무시했으나 한번은 대차게 쏘아붙인 적이 있었다. 같이 가자는 말도 아니었고 그냥 혼자라도 다녀오길 바랐던 말이었는데도.

그때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하자 답이 나왔다. 무경에게 있어 흔한 이유였다. 김하윤에 대한 마음이, 미움이 물러질까 봐 겁이 난 것이다.

가족이나 다름없었다는 말을 주변에서도 듣고 조사해서도 알고 있었으면서. 그 말이 김하윤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믿지 않으려 했다. 그렇다면 긴긴 불신의 끝에 왜 이번에는 승낙하고 말았는가. 그것은 그를 혼란스럽게 하는 기억 때문은 아니었다.

최근에야 김하윤의 제안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것이 그 끝에 다다랐다. 다만 김하윤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그만두었는지 무경은 세세하게 알지 못했다. 김하윤이 자신을 버리려 했던 행동 자체가 그 결과였다는 것만 알 뿐.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은 김하윤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했던 날이었다.

그래, 김하윤이 자신을 버리기 전날 밤.

식사나 하자던 그 말이 아직도 선명했다. 아직도 냉동실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는 케이크처럼.

지금처럼 격렬하게 반응하진 않았지만, 그 이전에도 김하윤은 자신과 뭔갈 잘 먹지 않았다. 아니, 그때는 먹지 못했다. 자신이 그렇게 했으니까. 그런데도 김하윤은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었다.

자의든 타의든 먹지 못할 텐데 식사를 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정한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리라. 이번 여행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무경은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저 함께 여행을 권하는 마지막 기회가 끝나지 않는 상황이길 바랐다.

“무경아?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픈 거야?”

“…….”

무경은 자신을 걱정하는 김하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하윤은 그의 시선이 닿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재차 무경의 안색이 희다고 말했다.

“내가 운전할게. 나 운전 생각보다 잘해.”

무경은 고개를 저었다. 상시 운전하는 자신과 드문드문 회사 차를 운전한 김하윤 중에 누가 더 운전을 잘하겠는가.

“됐어. 내가 운전하는 편이 편해. 위치나 입력해.”

“어어, 알겠어.”

김하윤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기 위해 몸을 붙였다. 고작 차 중심으로 다가올 뿐인데도 원래 있던 자리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제야 김하윤이 그간 차창을 바라보던 것이 창에 바짝 붙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이 따끔거렸다. 내장에 바늘 수천수만 개가 돋아 있는 것처럼, 조금 움직일 때마다 속이 찔렸다. 그동안 부재했던 양심이 자리를 찾은 것일까. 무경은 조심스레 마른침을 꼴깍였다. 속이 찔리고 쥐어짜이는 통증 속에서도 가까이 다가온 김하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비게이션 화면을 누르는 마르고 긴 손, 도드라진 손목뼈, 그 위를 쭉 타고 올라 집중하고 있는 얼굴을 살폈다. 귀와 목덜미, 턱선은 물론이고 콧대와 입술을 훑어볼 때는 자신이 변태라도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볼 것을 다 본 뒤에야 이런 생각을 하는 부분이 말이다.

무경은 애써 시선을 돌리다가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자 김하윤은 오늘 목적지가 세 곳이라고 말했다. 다만 두 군데는 미리 말했지만, 한 군데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본인도 모른다고 말했다. 가 봐야지 안다고.

처음으로 간 곳은 만리포 해수욕장이었다. 아직 해수욕할 만한 때가 아니었음에도 주말이라 그랬을까. 사람이 꽤 있었다. 사진을 찍거나 떠들고, 물에 빠트릴 듯이 장난을 쳤다. 한껏 신이 난 웃음에 문득 예전에 꿨던 꿈이 생각났다. 이제는 흐려져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으나 바다에서 놀던 장면이었다.

무경은 시선이 자연스레 하윤을 향했다. 하윤은 수면을 스치고 온 바람이 찼던지 팔을 쓸어내렸다.

“서울에선 완전히 여름이라고 했었는데, 바닷가 오니까 아직 선선하다. 그렇지?”

“그럼 겉옷 입든가.”

그러게 왜 겉옷을 벗어선. 비쩍 곯은 상태라 더 추위를 타는 것일지도 몰랐다. 무경은 하윤을 흘겨본 다음 그가 말리든 말든 차에서 겉옷을 꺼냈다.

“괜히 나중에 훌쩍거리지 말고 입어.”

“걷다 보면 더울 텐데. 그럼 내내 손으로 들고 있어야 해서 번거롭잖아.”

“네 그 잘난 문에 넣어 두면 되잖아. 그게 싫으면 내가 들 테니까 그냥 입어.”

몇 달 전만 해도 어림없던 일이 아주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제 일이었으니까. 무경은 제 생각에 의아해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예전에 김하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언제였던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하교하는 학생들을 보며 자신이 예전에 그의 가방을 들어 줬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무슨 소리냐고 했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을 것 같았다.

아니, 그랬다.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

무경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신을 덮친 당황이 가시길 바랐다. 그사이 김하윤은 허공에서 사진 두 장을 꺼냈다. 무경이 여태 보지 못한 사진이었다.

하나는 모래사장에서 모래찜질 중인 백진하의 사진이었다. 우락부락한 가슴 근육 위에 대강 만든 모래 덩이 두 개와 해초가 올라가 있었다. 여성 속옷 상의를 흉내 낸 것 같았다. 무경은 잠든 부친의 얼굴과 대조되는 진지한 얼굴의 자신과 하윤을 바라보았다.

‘아.’

잊었다고 생각했던 꿈의 한 장면이,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애를 업은 채로 따가운 여름 햇살에 덥힌 물살을 가르고 나아갔다. 꿈에서는 밀려든 파도에 그 애를 잃어버렸으나, [기억]에서는 저 멀리 밀려간 그 애를 찾았다.

그때 그는 함박 웃고 있었다. 얼굴을 흠뻑 적신 짠물을 걷어 내면서, 마찬가지로 함박 웃고 있는 그 애를 향해 걸어갔다. 손을 잡고 다시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설령 손을 놓치더라도 무경이 그를, 그가 무경을 금세 찾아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다.

무경은 어느새 성큼 앞서 나간 김하윤의 뒷모습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도 모르게 김하윤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가, 차마 잡지 못하고 손을 거두었다.

무경이 사진 속 인물을 보는 사이, 김하윤은 인물들 사이에 나오는 건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던 다른 사진, 포장마차 앞에서 눈물 젖은 얼굴로 컵라면을 들고 서 있는 김하윤과 김하윤을 바라보는 자신 뒤에도 같은 건물이 있었다.

“그때랑 많이 바뀌어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여기를 찾아야 하거든.”

때마침 김하윤이 사진을 설명하며 두 사진에서 중복되는 배경을 가리켰다. 때마침 거센 바람이 불어 사진을 흔들었다. 무경은 사진 뒷면에 적힌 익숙한 글씨를 발견하고는 사진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었다.

“어? 어어. 짐 정리하다가 나왔어.”

“어느 짐?”

“이사할 때.”

무경은 모르겠다며 눈썹 한쪽을 올렸으나 곧장 김하윤이 독립한답시고 쌌던 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찢어진, 저 혼자만 남은 사진들도 함께 떠올렸다. 이 사진은 다행히 찢기지 않고 둘이 함께 있었다. 글씨가 남아 있으니 유품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혹시 더 있어?”

무경의 물음에 하윤은 별안간 사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말을 얼버무렸다. 아까워하는 기색도 살짝 보였다. 그게 뭐라고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눈을 깜빡이는 사이 김하윤은 급히 말을 돌렸다.

시간이 얼마 없다며 근처 오래 영업한 것으로 보이는 횟집에 들어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이 간판에 들어가 있었는데, 색이 바래 희끄무레했다. 대를 이어 오십 년 동안 영업 중이라는 말에 들어가자 횟집 특유의 비릿한 해산물 냄새와 전 굽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남자 둘? 어, 저기 앉으세요.”

그냥 잠시 들어왔을 뿐이라는 김하윤의 변명은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응대를 맡았던 종업원이 곧장 주방에 손님이 있다고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밑반찬 때문이겠지만 그 말 한마디에 김하윤과 무경은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뭐 시키시려고?”

잠시 사라졌던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물과 수건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하윤은 무경을 바라보며 뭐 먹을 건지 물었다.

“먹을 수나 있고?”

“……난 너 먹을 동안 밖에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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