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난 너 먹을 동안 밖에 있으려고.”
“그럼 나도 됐어.”
일어나려는 차에 주방에 있던 음식점 직원이 밑반찬을 들고 나타났다. 그러고는 남자 둘이면 모둠회 중짜는 먹어야 한다며 참견했다. 무경은 그를 향해 두 손으로 싹싹 빌고 있는 김하윤의 머리꼭지를 노려보다가 그냥 소짜를 주문했다.
“둘이 먹으면 양이 적을 건데…….”
“아, 저는 회를 못 먹어서요.”
“아휴, 이 맛있는걸.”
“하하. 그런데 여기서 장사 오래 하셨어요?”
“뭐 나야 여기 취직한 지 얼마 안 됐지마는, 사장님은 오래 하셨지요. 그건 왜?”
“옛날에 여기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봤던 가게가 여기인가 싶어서요. 간판이 빨갰는데…….”
라면이랑 튜브 빌려주는 포장마차도 앞에 있었다는 부연 설명에 직원이 주방에 가서 물었다. 주방 직원은 근속 연수가 오래되었는지 하윤이 물은 것을 대답해 주었다. 빨간 간판을 달고 운영했던 사람은 유 사장이라는 사람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영업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가게를 처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게를 지금 가게의 사장이 인수해서 내부를 확장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가게의 어느 부분부터 벽색이 조금 달랐다.
“인수를 안 할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대출도 잘 됐고 괜히 옆에 가게 하나 더 들어와 봤자 사장님한테는 안 좋으니까 그때 조금 무리를 해서 확장을 했지.”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게 신기했다. 그러나 이내 직원이 주방 직원을 사장님 며느리라고 소개하는 순간 의문이 풀렸다. 그사이 하윤은 횟집 벽에 걸린 사진 중에 비슷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이게 본인인지 물었다.
무경은 그렇다는 대답을 흘려들으며 하윤이 힐끔거리고 있던 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간판의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의 가족사진들과 어떤 남자들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낚시하며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럼 저 사진은 가족분이세요?”
그러자 사장의 며느리는 고개를 저었다. 유 사장이 친구들과 찍은 사진인데, 혹시 친구들이 왔을 때 자신을 찾을지도 모르니 걸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무경은 김하윤이 사진을 보며 가게를 찾던 이유가 이 사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사장의 며느리가 살갑게 질문에 대답해 준 이유가 나왔다.
“TV에 나오는 사람 맞지요? 인물이 훤칠한 게. 혹시 괜찮으면 사인이나 사진 좀…….”
“…….”
◇◇◇
김하윤은 사진에 관한 궁금증으로 무경을 팔아넘겼다. 심지어 식사로 나온 것들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음료수만 입술만 적시다가, 아예 종이컵에 따라 밖으로 나가 버렸다. 홀로 남은 무경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그를 발견했다.
김하윤은 조그마한 관상수 밑에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었다. 무경이 다가오자 급하게 덮어 버렸지만, 무경이 궁금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넌 뭐 안 먹을 거야?”
“아무래도 좀 그래서.”
들고 갔던 종이컵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먹는 척 기울이던 게 혓바닥만 적시는 것이었을 줄이야.
“원하는 건 찾았어?”
“어어, 확인해 봐야겠지만.”
차로 돌아가는 동안 김하윤은 자신이 알아낸 것을 재잘거렸다. 아마도 무경이 궁금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최근에 짐을 정리하면서 찾아낸 사진 중에 풍경 사진이 하나 섞여 있었는데, 그 사진을 모친의 방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모친이 의도적으로 남긴 사진일 것이라며 그것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왜 네가 푸는데?”
“풀어야 하는 사람이 나니까.”
“…….”
“선생님은 몇몇 문지기들과 미궁의 [문]에 관한 연구를 했어. 피노키오 일당은 그런 선생님을 위협했었지. 동료 중엔 납치되었다가 풀려나셨던 분도 있었고. 아마 그쪽이 원하는 건 연구 자료는 물론이고 실험 재료로 쓰일 문지기였을 거야. 그래서 위기감을 느끼신 선생님은 자기 연구에 관한 단서를 여기저기 남겨 놓으셨지. 그리고 내가 자기 연구를 맡기셨어. 단서들을 풀면 요즘 내가 수상쩍어하는 일에 도움이 될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본래 목적인 연구를 잇게 되는 거고. 또 그리고.”
“……그런데, 문이 안 열릴 수도 있지 않나? 단순히 네 예감뿐이라면.”
정확한 증거도 없고 시도할 재료도 없다. 그런데도 김하윤은 계속해서 문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의 과정은 결과를 두고 과정들을 유추하고 끼워 맞추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타인을 설득하고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비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고는 해도 들이는 수고에 비해 얻을 몫이 미미했다. 언뜻 보기에도 깊이 보기에도 미련한 일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앎에도 맞장구쳐 주고 있는 자신이 가장 미련했다. 상기된 김하윤을 보는 순간에 수고고 뭐고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이런 기질이 있었던 것처럼.
‘이쯤 되면 예전엔 김하윤 가방 들어 주는 건 기본이고 밥도 먹여 주고 재워 줬을지도?’
왜 아예 옷도 입혀 주고 씻겨 줬다고도 하지. 무경은 곧장 스스로의 생각을 반박했으나 어째 일리 있게 느껴졌다. 무경은 또다시 기억이 떠오르기 전에 급히 생각을 돌렸다.
“그래서 그 사진으론 뭘 알아낸 건데.”
무경은 횟집 벽에 있던 유 사장과 사장의 친구들이 바다 한가운데 낚싯배를 띄워 놓고 낚시를 하는 사진이었다. 하윤은 그 사진의 배경을 모친의 서재에서도 발견했었노라고 했었다. 반복되는 장소. 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찾으려는 것일까.
“예전에 우리가 피노키오 김득철이 갖고 있던 팔찌를 빼앗았다고 했지. 거기 달려 있던 장식이 곡옥이라고 했고. 그리고 곡옥으로 뭘 할 수 있는지도 말해 줬었고.”
“그래.”
사실 곡옥이 문지기들의 배를 가르면 나온다는 것을 알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곡옥은 문지기들의 힘의 정수로, 문을 여닫는 것 외에 어떤 효용이 있겠는가.
“[문]을 닫으려 했을 때, 이미 주변에 많은 [문]들이 깨져 있었지. 물론 그때는 그것까지 닫을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하다 보니 그것도 닫게 됐어. 그 과정에서 팔찌의 곡옥이 다 깨어졌는데, 깨질 때마다 곡옥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거든. [문]을 열면 [문]을 연 사람의 흔적이 남는 것처럼.”
“…….”
“그때 내가 못 읽는 이름도 더러 나오더라고. 아주 오래된 글자들. 이게 뜻하는 바가 뭐겠어?”
문지기들의 배를 갈라 꺼낸 곡옥. 곡옥에는 주인의 흔적이 남아있다. 무경은 하윤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아주 오래된 글자들이 튀어나왔다는 말은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 아주 옛날에 죽은 문지기들의 곡옥이라는 뜻이리라.
피노키오 집단의 연구가 아주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다든지, 아니면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곡옥을 세상으로 꺼내 왔다거나.
“이전에 보여 준 프로그램이 기억날 거야. 거기엔 각 지방에 남긴 문들과 그 주변의 설화, 전설 등을 같이 수집해서 남겼는데, 내가 따로 검색해서는 나오지 않더라고. 구전으로 전해져 오거나 고문서에서 발췌했거나. 즉 자료를 수집해서 연구했다 뭐 이런 거지.”
“그렇다는 건…….”
“피노키오도 선생님도 이 땅에 숨겨진 곡옥을 찾는 중이었을 거야. 피노키오는 몇 개 손에 넣어서 팔찌를 만들었는데, 선생님은 잘 모르겠어. 어쩌면 찾으셨다가 빼앗기셨을 수도 있고. 미궁관측연구소가 없어진 것도 자료의 손실도 많은 것도 어쩌면 그 탓일 수도 있고. 어때? 그럴듯하지?”
“……그럴 수도 있겠군.”
맞장구를 쳐 주자 김하윤은 입꼬리를 조금 끌어 올렸다. 소리는 내지 않았으나 웃음은 웃음이라 손끝이 간지러웠다. 김하윤을 톡 건들고 싶을 만큼.
“붙여 두신 전설이나 설화 속에는 인신 공양이 주로 나와. 자연재해로 세상이 어렵거나, 괴물이 나타나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거든. 그럼, 거기서 효심이 지극한 자식들을 남녀 가리지 않고 괴물이든 부처에게든 바쳐. 보통은 물에 빠트리거나 산에 두거나, 절벽에 밀어 버리거나 해. 주로 괴물의 서식지에 두는 건데, 공양할 때는 불에 태우는 경우도 왕왕 있더라. 어쨌든 그렇게 되면 죽어야 할 사람들이 다른 세상으로 가 버리거든.”
“다른 세상?”
“그래, 다른 세상. 좀 이른 시기에 나온 ‘이세계물’이었던 거지.”
“이세계물?”
무경은 하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반문했다. 하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보통 하늘나라, 용궁, 선계 요 세 개 중의 한 곳을 가. 그러면 거기서 주인공을 딱하게 여긴 원주민들이 세상을 안정시킬 방법을, 괴물을 무찌를 방법을 알려 주거든. 그럼 이제 주인공이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서 괴물을 무찌르거나 천재지변을 해결해서 세상을 안정시키지. 물론 이런 건 그렇게 많지 않고 대부분 제물로 바치거나 공양하고 끝인 것도 많아.”
“이 동네는 그럼 어떤 전설이 있었는데?”
“뭐……. 아무래도 바닷가라 바다의 용왕이 노해서 좀처럼 배도 띄울 수 없고 힘든 중에 바다에 아이를 던져 넣었더니 바다가 잠잠해졌다. 이런 거? 아, 그것도 있었다. 바다 괴물이 바닷가 마을을 덮쳤는데, 갓난쟁이가 있던 집이 휘말리게 된 거지. 다행히 아이의 부모는 화를 피했는데 아이가 온데간데없네? 그런데 멀찍이 떨어진 산골짜기에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는데 옹달샘에 커다란 연꽃잎에 감싸인 아이를 발견해. 마침 아이가 없었던 나무꾼은 부인과 함께 아이를 잘 기르는데, 이 아이가 예사 사람이 아닌 거야. 장사였거든. 어느 날 바닷가 친척 집에 가다가 괴물에게 괴롭힘을 받는 마을 이야기를 듣고 길을 나서게 돼. 그러는 중에 부처의 지혜를 받아 괴물도 무찌르고 부모도 찾고 그러더라.”
“친척 집은 왜 간 거래?”
“제사에 늘 왔는데 안 왔대. 자식도 없는 집이라 혹시 변고가 있지 않을까 걱정돼서 보러 가라고 한 거야.”
“먼 길을 혼자 보냈다?”
옛날이야기라 요즘같이 아이를 챙기지 않을 순 있었다. 장사였다고도 했으니까. 하지만 질문을 받은 김하윤은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무경의 지적이 맞은 탓이리라.
“혼자서는 충분히 갈 수 있었겠지.”
그 애가 문지기라면.
“그럼 이번엔 어디를 갈 건데?”
무경의 질문과 함께 하윤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간월암. 그 애가 부처의 지혜를 받았다는 곳. 마침 사진 속 배에 있던 표식이 딱 그쯤을 말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