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무경은 자신의 방에 누워 문밖으로 언뜻 보이는 김하윤의 방을 바라보았다. 무엇에 그리 열중했는지 김하윤은 자신의 방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는 것조차 몰랐다.
“…….”
무경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만 좀 보라고, 대체 김하윤이 자신에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모든 신경을 다 쏟아야 하느냐고.
잠깐 안 보일 수도 있고 잠깐 일이 바빠 자신이 안중에 없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김하윤은 문지기로서 공간을 넘나드는 것이 그야말로 방문 열었다 닫는 것처럼 쉬운 사람이었다. 잠시 잠깐 다른 데 갔다 올 수도 있는 건데 왜 이렇게 하윤이 움직일 때마다 가슴을 철렁여야 하는가.
꼭 하윤이 영영 사라질 것처럼 구는가.
늘 그렇듯 답이 튀어나오지 않아야 할 머릿속에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이토록 김하윤에게서 신경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가 아주 가는 모래를 두 손 가득 쥔 사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세게, 조심스럽게 쥐고 있더라도 자꾸만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때문에 손아귀에 남은 양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두려워 자꾸만 남은 양을 확인하듯 하윤의 마음과 관심을 확인하는 것이다. 언젠가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곤 모래를 쥐고 있었다는 흔적밖에 없을까 봐.
‘대체 내가 뭘 잃어버렸다고.’
대체 뭘 잃어버렸다고. 문득 떠올린 생각 하나가 깊이 침전했던 기억을 일깨웠다. 그야말로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그러자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앳된 김하윤이 머릿속에 불쑥 떠올랐다.
앳된 김하윤은 웃고 떠들다가 스스럼없이 그의 손을 잡고 안기며 또 그를 끌어안았다. 웃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울고 짜증 내고 화도 내기도 했다. 엉망으로 일그러지고 흠뻑 젖거나 더러워지는 일도 있었으나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대체 내가 뭘 잃어버렸다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무경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러나 무엇을 잃어버린지 모르는 사람 같던 질문과는 다르게 답이 떠올라 버렸다.
가장 먼저 그는 김하윤의 웃음을 잃어버렸다.
두 번째로는 김하윤의 곁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김하윤의 사랑의 일부를 잃어버렸다.
김하윤은 자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남아 있었다. 그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와 결합되어 형태가 변하긴 했으나 김하윤은 자신을 사랑하기는 했다. 이전의 사랑은 결코 아니지마는.
‘그게 필요한가?’
자신이 잃어버린 그것들이 굳이 필요할까. 김하윤을 웃지 못하게 했던 것은 자신이었고 곁을 벌린 것도 자신이었다. 그는 김하윤이 자신에게 닿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잠결에 닿았음에도 억지로 보복했다. 욕실로 끌고 가 물을 끼얹기도 했고 그대로 침대 밖으로 밀어 버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백무경은 김하윤이 닿는 게 싫었다.
왜냐하면 김하윤의 품이 따듯했기 때문이었다.
미움을 스러지게 할까봐, 자신이 그의 품을 좋아할까 봐. 오히려 자신이 그의 품을, 그에게 발정했음에도 그래야만 하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부정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왜 그래야만 했느냐고 물었다. 그래야 했으니까. 무경은 간신히 변명을 쥐어짰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래야만 지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손실이었다.
그래야만 김하윤을.
“……아니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온몸이 쿵쿵 뛰었다. 무경은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린 양 제멋대로 들이켰다 내쉬기를 반복했다. 이불을 그러쥔 채 몸을 둥글게 말았다. 눈을 질끈 감자 물방울이 후두두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는데.
“아니야.”
무경은 계속해서 부정했다.
김하윤은 그 김하윤이 아니라고 ‘기억’으로 방어해도, 김하윤의 같잖은 거짓말처럼 김희원이라고 해도 자신이 하윤아, 하고 부르는 [기억]에 허물어졌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기억]을 조롱하고 짓밟았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억지 쓰듯 부정하다가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무경은 즉시 방문을 닫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숨죽인 채 속을 게워 내고 찬물에 얼굴을 흠뻑 적셨다. 가까스로 이성을 차리자 자신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니라 열일곱 이전의 자신이 불쑥 튀어나왔다가 들어간 기분이었다. 몸에 아직 남은 감정과 이성이 어우러지지 않았다. 이번엔 올해 생일 이후와 이전으로 자신을 구분했다. 그러자 가까스로 진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혼란을 주는 기억과 유리되었음에도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아니, 유리되었기에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무경은 자신의 사지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손이 가장 싫었다.
그에겐 팔을 대체할 염동력이 있었고 팔은 두 개였다. 하나쯤 끊어 낸다고 별문제 될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끔찍한 부위를 하나 덜어 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자.’
호흡이 정돈되지 않은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경은 휘청거리며 주방으로 나아갔다. 정리하기 쉽도록, 조리대가 상하지 않도록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도마를 올렸다. 필요 없는 고깃덩어리를 썰어 내려 예전에 선물로 받은 칼도 꺼냈다.
칼날이 단단해서 잘 토막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를 팔을 정하고 칼을 치켜든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허공에서 나타난 김하윤의 손이 그의 손을 움켜쥐며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마음이 바뀌진 않았다. 오히려 자기 행동이 김하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하나가 없다면 이전같이 짓이기고 던지지는 못할 것이다. 김하윤에겐 자기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까.
무경은 그대로 칼을 내리쳤으나, 그의 칼은 팔을 자르지 못했다. 칼이 엉뚱한 곳에 닿고, 무형의 벽이 그의 손을 튕겨 냈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칼을 놓친 않았으나 손 전체가 울릴 정도였다.
무경은 단번에 그것이 김하윤이 연 [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은 김하윤이 연 [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김하윤의 [문]은 늘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 김하윤의 능력을 싫어한 것은 이 이유도 한몫했다.
그랬기에 무경은 김하윤이 연 [문]은 자신을 거부하고 밀어내는 것을 이용한 전투 방식을 몸에 익히기도 했었다. 어떻게든 그 [문]이라는 것을 짓밟고 싶어서.
“…….”
내내 김하윤을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저열한 방법으로 괴롭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자신은 본래 타고난 성정이 잔인할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김하윤에겐 안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내가 김하윤의…….’
무경은 생각을 멈췄다. 더는 이어져선 안 된다. 머릿속이 새빨간 경고로 가득 찼다. 무경은 생각을 잇는 대신 자신을 붙잡은 김하윤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 손에서 칼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잘못도 없으면서 빌고 어르느라 찢어지고 젖은 목소리를 냈다. 문득 잔인한 성정이 너는 내게 네 목을 조르라고 시키지 않았더냐? 쏘아붙이려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입을 다물었다. 대신에 맞물린 입술의 꼬리가 조용히 올라갔다.
이 와중에 제게 쏠린 김하윤의 신경이 달가웠다. 무경은 겁도 없이 칼날에 손을 대려는 김하윤을 보며 칼을 던졌다. [문]으로 받아 냈는지 칼은 김하윤의 방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 김하윤이 방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김하윤 얼굴에 떠오른 화에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또다시 제게 남은 것을 확인한 것이다.
뒷정리한 뒤에 방에 들어가자 김하윤은 따라 들어왔다. 김하윤은 왜 그랬느냐고 묻다가, 자신이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김하윤은 잘게 떨면서도 방을 나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끌려갈지도 모르는데도, 다른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면서도.
무경은 자리에 누운 채 김하윤이 홀로 화를 삭이는 모습을 애써 뒤로했다. 그날 밤 김하윤은 방을 나가지 않은 채 무경의 침대 밑에 자리를 틀었다. 차마 곁에 와서 잠들지는 못하고 겨우 자리한 곳이 침대 밑이었다.
무경은 하윤이 잠들던 침대 가장자리 쪽에 누워서 침대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김하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문득 이 정도라도 남아 있다면 자신은 좀 더 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을 참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것 또한 그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
무경은 뜻 모를 소리를 지껄이다가 자리에 누워 아래로 손을 뻗었다. 미처 김하윤에게 닿지 못하고 그의 옷자락만 톡 건드리고 말았다.
◇◇◇
무경은 스스로도 이해 못 할 사고와 행동을 여전히 이어 갔다. 과거의 자신을 계속해서 별개의 인물로 만들어가는 중이란 소리였다. 다만 제대로 하지 못해 이따금 보이지 않는 곳에 상처를 남겼다. 뜯어내고 싶어서 몇 번씩 손톱을 박았다가, 칼을 댔다가.
이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김하윤은 무경의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경의 방은 ‘우리’의 방이 되었다. 물론 무경 혼자의 속내에서만.
김하윤은 자신을 감시하는 한편 계속해서 조사를 이어 갔다. 그러다 보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 열심을 내는가.
물론 하윤은 사건의 중심이 될 [문]이란 것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능력도 돌아온 참이었다. 상황 돌아가는 게 심상찮으니 신경이 쓰이는 건 이해 가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게 이상했다.
어찌 보면 그냥 싫은 것이다. 일에 열중한 김하윤이 그사이 자신을 잊는 게 싫었고 낯선 사람, 싫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었다.
그 옛날 싫은 게 많았던 백무경처럼.
그저 저 하나만 봐 줬으면 하고 신경을 쏟았으면 했기에.
김하윤은 무경의 묻는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점을 본 이야기를 했다. 그 소리를 듣자 김하윤이 열심을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무당이 겁을 준 모양이었다. 세상이 망한다고, 그걸 구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책임을 지운 것이다.
그런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결말은 늘 정해져 있었다. 죽거나, 반신불수가 되거나. 사지 멀쩡하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늘 일에서 멀찍이 떨어져 뒷짐 지고 있던 새끼들밖에 없었다. 무경은 김하윤이 그런 꼴이 되는 것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예전에도 생각했지만 그런 순간이 온다면 무경은 김하윤을 데리고 달아날 것이다.
그랬기에 무경은 김하윤에게 열심히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할 필요 없다. 그렇게 한들 자신이 망쳐 버릴 테니까.
그러나 김하윤은 일을 망쳐 버리겠다는 그에게 서해에 가자고 했다.
서해에 볼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보통 일이 아니리라는 예감도 들었다. 안 된다고, 얌전히 서울에나 있으라고 할 참이었으나 정말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한 일인데, 이성이 돌아왔을 무렵에 그는 운전석에 있었다.
미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