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무경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소 투박하게 현장을 정리하고 상사의 나무람인지 달램인지 모를 말을 묵묵히 들었다. 굳이 반박하는 것보다 그냥 듣고 흘리는 게 가장 빨랐기 때문이었다. 대신 묵묵히 들은 것과 달리 사과는 하지 않았다.
마무리라고 하기엔 팽개치듯 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내달렸다. 집으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다른 생각들은 모습을 감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짐승같이 김하윤의 흔적을 쫓았다.
그러다가 주방 옆 팬트리 룸에서 김하윤을 발견했을 때는 온 세상이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눈앞이 컴컴해졌다.
김하윤에게서 피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김하윤을 밖으로 꺼내고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외상은 없었다. 출혈은 코에서 난 것으로 일반적인 능력 과사용의 흔적이었다.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잘 모르는 애송이들이 주로 겪는 증상이었다. 무경이 아는 김하윤은 한 번도 능력 과사용으로 인한 증상을 겪지 않았다. 최대치가 워낙 크기도 크고 일반적인 상황에선 부하를 겪지도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부하가 걸려 출혈을 겪은 건 무경이었다.
그렇다면 김하윤은 능력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힘을 잘못 사용한 것일까? 집에 돌아오려고?
그게 아니면 이미 알고 있던 최대치를 초과해야만 하는 힘을 써야 했던 걸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으나 막상 묻지 못했다. 김하윤이 자신에겐 능력이 되돌아온 것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박건영에겐 말했을까?’
생각이 들끓기 시작한 머리와 달리 입은 멍청한 질문을 뱉었다. 자기 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그런 멍청한 질문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 속에서도 무경은 김하윤이 박건영에게도 능력을 되찾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박건영의 제안 내용 때문이었다.
‘평범하게 살게 해 주겠다니.’
김하윤이 사는 꼴이 영 엉망으로 보였던 것이 분명했다.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그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누리게 해 주겠다는 제안.
‘자기가 대체 뭐라고 감히.’
하지만 무경은 김하윤에게 비슷한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년 전이던가, 같잖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주기가 찾아왔을 때. 그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이냐고 김하윤을 몰아세웠다. 질려서라도 자신에게서 떨어지라고, 스스로 만든 저열함에 침몰하여 더는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과 함께 매몰되지 말라고.
물론 시간이 지난 뒤에 곱씹어서 미화된 마음이었다. 당시에는 김하윤을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상처 입히고 싶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굴어도 제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김하윤을 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결국 그때 약속했던 것처럼 김하윤은 이 년이 지난 뒤에 집을 나섰고 자신에게서 멀어졌다.
아, 매정한 김하윤.
“……무슨.”
무경은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눈을 부릅떴다.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떠올린 것만 같은 기분에 소름이 돋았다. 당장 뜨거운 물줄기를 몸에 끼얹어도 소름이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오늘 하루가 정신이 없는 탓이었을 것이다. 무경은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의 상황이 지겹게 느껴졌다. 궤도를 도는 것처럼 비슷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해 왔던 것 같았다. 거슬렀다간 소중한 무언가가 부서질까 봐 벗어날 수 없는 궤도.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무경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고개에 숨을 헉 들이켰다. 누군가 자기 고개를 들고 억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자 당연하게도 욕실 문이 보였다. 뒤늦게 눈을 질끈 감았으나 그 문 너머에 누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는 김하윤이 자신이 열을 운운하며 준 안정제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어느새 샤워기에서 쏟아지던 물줄기가 그쳤다. 자신이 꺼 버린 것이다. 그러나 무경이 의식적으로 끄려고 한 건 아니었다. 인지한 순간, 모든 감각이 얇은 막을 씌운 것같이 느껴졌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 꿈을 꾸는 것처럼 현실과 유리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무경의 기분과 달리 몸은 현실감 있게 움직였다. 몸을 닦고 간단하게 옷을 입은 다음 거실 한가운데로 향했다. 무경은 곧장 김하윤에게 향하려는 몸을 저지하려 몸을 살짝 틀었다. 그가 튼 방향 때문에 무경의 몸은 소파 뒤쪽으로 향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몸은 걸음을 멈췄다. 다시 뒤로 돌아가려는 몸에 무경은 곧장 소파 머리를 짚었다. 소파를 붙든 손끝이 희게 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 억지로 손가락을 펴듯 손가락이 하나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는 생각보다 김하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무경은 곧장 부정했다.
김하윤을 봐선 안 된다.
아니, 김하윤을 봐.
김하윤을 보지 말아.
아니, 김하윤을 봐.
꼭 녹음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충동질했다.
내가 김하윤을 보지 못할 이유가 뭐야.
그거야 내가.
여태 잘 참았잖아. 하윤이가 바라는 대로 잘 해 왔잖아. 그냥 조금만.
김하윤을 보지 마. 제발.
아주 조금만, 잠시 잠깐만. 확인만 해 보자. 누가 뺏어 갔을지도 모르잖아?
고개가 자꾸만 아래로 내려갔다. 물방울이 그의 콧대를 타고 흘러내렸다. 말리지 않은 머리칼에서인지, 아니면 그가 땀을 흘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온 감각은 소파에 잠든 김하윤을 향했다. 코피를 많이 흘린 탓에 전등불에 비친 김하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보였다.
무경은 이제 소파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윤의 몸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손과 발을 움직여 김하윤 위에 몸을 드리웠다.
“아…….”
내내 숨겨 두었던 환희가 터져 나왔다. 무경은 하윤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반듯한 이마, 살짝 찡그린 미간, 높은 콧대, 살이 쭉 빠진 뺨과 그 탓에 도드라진 턱선, 짓씹은 흔적이 남은 입술. 그리고 굳게 감긴 눈꺼풀.
무경은 조심스레 하윤의 콧대를 매만졌다. 코피를 흘린 게 다시금 생각나서였다.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운동 안 하니까 힘이 부족하지.’
그래, 운동이야 둘째치고 안 먹어서 그랬다. 기력이 없으니까. 예전이라면 그냥 넘겨 냈을 일도 몸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무경은 하윤의 뺨과 팔을 매만졌다. 본격적인 여름은 오지도 않았는데 살은 벌써 말라 버렸다.
잘 못 끌어안았다간 부서질까 봐 겁이 날 정도였다.
‘뭘 해 주면 좀 먹었더라.’
무경은 하윤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그러곤 뺨을 맞댄 채 하윤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그에게 먹일 음식을 생각했다. 뭘 잘 먹었는지, 뭘 싫어했는지. 그리고 또 뭘 먹으면 안 됐는지.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요즘엔 자신이 요리하지 않는 탓에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
그러기엔 간식거리들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은 요즘 김하윤에게 무얼 먹이고 무얼 마시게 하는 걸까.
“……이상하다. 그렇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기 때문일까. 무경은 자신의 목소리가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하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깊이 잠들었는지 그의 물음을 들은 것 같지 않았다. 무경은 이번엔 하윤의 뺨에 손등을 갖다 댔다. 하윤은 이번에도 눈꺼풀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무경은 하윤의 가슴팍에 귀를 기울이곤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하윤의 깊은 잠이 피곤한 상태에서 안정제를 먹은 탓임을 앎에도 불안한 마음이 무경의 심장을 쥐어짰기 때문이었다.
일정하게 두근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다시 위로 기어 올라갔다.
무경은 옛날처럼 하윤과 이마를 맞댔다. 깨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까이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입 맞추고 말았다.
그 순간에 거대한 감정이 그야말로 쏟아졌다. 그 앞에선 무경은 수면에 떨어진 나뭇잎 한 장이나 다름없었다. 쏟아지는 대로 흔들리고 한없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오고, 또다시 한없이 깊은 곳으로 처박히고.
뒤늦게 아차 싶어 입술을 뗐으나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다시 붙이고 말았다.
극심한 허기를 느끼는 사람이 한번 쥔 음식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처럼 무경은 하윤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말캉한 혀를 찾아 빨고 숨을 빼앗듯 마셨다. 울음 같은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 내가 이걸 얼마나. 내가.’
무경은 생각조차 맺지 못했다. 모든 것이 급했다. 입을 맞추는 것도, 품 가득 끌어안는 것도.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부족했다.
이쯤 되자 하윤이 깨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잠에서 깬 하윤이 당황한 듯 숨을 헐떡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를 밀어내려 어깨를 짚었으나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했다. 하윤이 힘으로는 자신을 밀어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무경은 그가 자신을 밀어낼까 무서웠다. 어리석은 짐승이 머리만 달랑 숨겨 숨듯 하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자신의 허기를 감추지 않았다. 하윤의 몸을 연신 쓰다듬고 그를 바짝 끌어안았다. 밀어내려는 하윤의 손에 자신의 손가락을 우악스레 밀어 넣었다. 손바닥을 바짝 맞붙이다 손을 꽉 쥐자 하윤의 손가락 또한 반사적으로 구부러졌다.
“……무경아. 잠시만.”
무경은 듣지 못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듣는다는 것을 알면 하윤이 밀어낼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파서 그래. 정말 잠시만.”
잠기다 못해 찢어진 듯한 목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곧장 몸에 힘을 빼자 하윤이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풀었다. 곧장 손을 주무르는 것이 정말 아팠나 싶어서 무경은 자신의 입술을 짓씹었다.
하윤은 이어 몸을 뒤척이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기진맥진한 상태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탓이리라. 무경은 하윤 몰래 그의 표정을 살폈다. 하윤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눈을 뜨려고 눈꺼풀을 움직였으나 금세 닫혔다.
그게 퍽 불편했던지 눈을 비비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지 한숨을 내쉬었다. 무경은 하윤의 어깨를 손으로 살살 비볐다. 그사이 하윤은 잠시 온 힘을 다해 눈을 떴다가, 다시 가라앉듯 눈을 감았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지 하윤은 눈 뜨길 포기하더니 돌연 손등으로 자신의 입술을 문질러 닦았다. 그러더니 아예 돌아누워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듯 웅크렸다. 발치에 있던 쿠션을 언제 가져왔는지 그것으로 자기 머리를 덮었다.
“……?”
무경은 하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는 중에 건드려서 화가 난 걸까. 무경은 그답지 않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하윤을 바라보던 그는 하윤이 쥔 쿠션을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손이 김하윤에게 닿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가로막았다. 불쾌하지만 낯설지 않은 힘이었다. 아니, 무경은 분명하게 이 힘을 알고 있었다.
무경은 자연스레 하윤의 웅크린 몸을 응시했다.
“…….”
순간 솟구친 서러움에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어나 보라고, 나 좀 보라고.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에 그를 감싸고 있던 막이 비눗방울 터지듯 톡 하고 터져 버리고 말았다.
“…….”
갑작스레 선명해진 감각에 무경은 몸을 움츠리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습관적으로 기운을 펼쳐 주변을 확인한 뒤 자신의 앞에 있는 김하윤을 느끼고선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는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소파에 함께 누워 있던 몸은 어느새 바닥에, 바닥에 내려와서는 벽을 향해 갔다. 벽에 바짝 몸을 붙인 무경은 입을 틀어막았다.
분명 입 밖으로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무경은 곰곰이 오늘 하루 일을 되짚었다. 이상하리만치 정신없던 하루, 집에서 사라졌다가 박건영과 밥을 먹은 김하윤. 그리고 김하윤이 있던 곳 근처에서 출현한 괴수들. 자신의 힘을 가로막아 통제를 도와주던 이상한 힘.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김하윤.
‘그래, 그게 내내 신경 쓰여서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고. 그리고.’
그리고 내가 뭘 했더라. 무경은 공백이 생기기 시작하는 기억을 붙잡으려 애썼다.
‘엉망진창인 꼴로 팬트리 룸에 숨어 있던 김하윤을 꺼내서 씻겼고, 능력을 과사용한 것 같아서 안정제를 먹였었지. 그러고…….’
무경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던 중에 습기 어린 머리카락에 끊어졌던 기억을 이었다.
‘그래, 씻었지. 또 그리고.’
꿈이라도 꾼 듯 빠르게 기억은 빠르게 휘발되었다.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는 까맣게 잊고 김하윤 위에 엎드린 것이 기억났다.
‘왜 엎드렸지?’
방에 데려가려고 했었나? 의아해하기 무섭게 그에게 입 맞춘 것이 떠올랐다. 밀어내려는 손길에도 좀처럼 멈추지 못하던 짐승 같던 자신의 모습이, 그때의 희열이 기묘하리만큼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견딜 수 없을 만큼 속이 메스꺼웠다.
“읍……!”
무경은 입을 틀어막으며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속을 게워 낸 뒤에 연신 입을 씻었다. 손으로 물을 떠 입술을 마구 비벼 대는 통에 옷이 흠뻑 젖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듯이 손끝으로 입술을 긁어 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경은 다시 거실로 나가 다시 곤히 잠든 하윤에게 다가갔다. 잠들어 놓친 쿠션을 집어 멀리 던지고 그를 깨우려 손을 뻗었다. 이번엔 막히는 것 없이 쑥 들어가는 손에 무경은 숨을 헉 들이켰다.
당황한 나머지 무경은 하윤의 몸 대신에 소파를 짚었다. 그게 하윤의 몸이라도 되는 양 손끝이 희게 될 정도로 세게 잡고선 입을 열었다.
“……김하윤, 일어나 봐. 물어볼 게 있어.”
깨워서 사실을 추궁해야지. 대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혹시 이게 반복된 일인 건지. 그랬다면 왜 숨겼는지. 하지만 추궁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게 무경은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하윤을 부르던 소리는 점점 작아져서 나중에는 바람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