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땀이 난 손바닥을 허벅지에 비비며 조심스레 김희원을 훔쳐보았다. 마침 김희원 또한 하윤을 보고 있었다. 안전요원들이 몸으로 막아서고 있는 틈 사이로 하윤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날 알아보는 걸까.’
알아본다면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김희원은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고 했었는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윤은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희원아, 김희원.”
하윤의 부름에 희원은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가, 이내 조금 이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단순히 보기엔 기쁜 것 같았지만 기쁘다는 말 하나로 응축하기엔 거슬렸다. 김희원은 하윤을 향해 입술을 달싹거렸다.
물꼬를 터 주기 위해 하윤은 자신을 가리켰다.
“……나야. 김하윤. 혹시 나에 관해서 기억나는 게 있어?”
김희원은 곧장 고개를 젓다가 잠시 멈추더니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하윤은 의문을 담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희원은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안전요원 사이를 비집고 하윤에게 다가왔다.
안전요원이 곧장 제지하자 거세게 저항했다. 안전요원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거나 입가에 닿는 요원의 신체 부위를 물려고 했다. 그들이 철수를 염두에 두는 사이 하윤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으십시오!”
“잠깐, 잠깐만요.”
하윤이 다가오자 요원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던 김희원의 동작이 멈췄다. 그는 곧장 고개를 쳐들고서 하윤을 응시했다. 김희원의 눈동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참을 말없이 하윤만 들여다보던 희원은 수갑을 찬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더듬었다.
“……아, 안경. 안 꼈네.”
처음 듣는 희원의 목소리에 하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이내 억지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게 기억나? 내가 안경 꼈던 거.”
하윤의 물음에 희원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양 입술을 깨물고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는……. 안 껴? 호, 혹시 눈 수, 수술한 거야?”
희원은 다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말을 빠르게 했고, 그 때문에 말을 조금 더듬었다.
“수술은 아니고 렌즈야. 안경이 부러졌거든.”
“새, 새, 새로 사지. 렌즈, 렌즈는 눈에 안 좋은데!”
격앙된 희원은 다시 몸으로 안전요원을 밀었다. 그러나 앙상한 그의 몸으론 건장한 안전요원들을 밀어낼 수 없었다.
“희원아, 진정해. 그리고 조금만 천천히 말해 줘.”
“하, 하지만 조금 있다가 가 버릴 거잖아.”
차마 거짓말이라도 그러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윤은 박건영을 힐긋 바라보았다. 박건영은 어깨를 으쓱일 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김희원이 별안간 하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전요원이 손을 들어 제지하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눈빛으로 하윤을 응시했다. 꼭 하윤이 자신의 편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저, 괜찮아요.”
하윤은 안전요원을 만류하며 김희원의 손끝이 겨우 닿을 거리에 섰다. 그러자 김희원은 한껏 손을 뻗어 하윤의 눈가를 더듬었다.
“렌즈 안 끼면 안 돼? 눈이 상하잖아. 그리고 색깔도 이상하고.”
‘눈 색?’
원래 눈 색이 옅긴 했지만, 눈은 초능력자들이 능력을 쓸 때 가장 쉽게 변화를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윤이 의구심을 갖는 사이 희원은 계속해서 하윤의 얼굴을 더듬었다. 미간과 콧날은 조심스레 만지다가 뺨과 턱에 다다라서는 처음의 스스럼이 없어졌다.
그리운 사람을 매만지는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윤은 김희원의 그리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건 꼭 어떤 모양인지 확인하는 것 같잖아.’
강도가 어떤지, 촉감은 어떠한지 등. 잘 모르는 물건을 확인하는 것 같은 손놀림이었다. 그때 문득 하윤은 뺨이 따끔해 몸을 살짝 떨었다.
“혹시 아팠어?”
하윤의 몸짓에 희원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뒤로 뺐다. 그러곤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윤은 따끔했던 부분을 손으로 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미안해. 그런데 너무 만져 보고 싶었어. 눈으로 보는 건 금방 잊어버리잖아. 대신 손으로 만진 건 기억에 오래 남거든.”
희원은 고개를 툭 떨궜다. 김희원은 불쌍한 사람이었다. 괴단체에 납치되어 십여 년을 사로잡힌데다 기억도 잃었다. 십여 년간 그를 그리워했던 사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를 동정할 것이다.
“희원아.”
하윤은 희원에게 성큼 걸어갔다. 이번만큼은 안전요원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귀에 끼고 있는 무전으로 지시를 받았을지도 몰랐다. 하윤은 미리 확인한 천장의 카메라를 힐긋거리고선 희원의 손을 잡았다.
손등은 부드러우나 손바닥과 손가락에 여기저기에 굳은살이 있었다. 따가움은 그 탓이었을 것이다.
‘펜 때문에 생긴 굳은살은 아닌 것 같고.’
하윤이 손을 살피고 있을 때, 희원은 돌연 하윤의 손에 깍지를 꼈다. 흠칫 놀라 손을 빼려 했으나 어찌나 힘주어 잡는지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마, 맞아. 그때, 그때 이렇게 손잡았었잖아. 그렇지? 이렇게 잡았던 것 같아. 두, 둘만 있는 방에서.”
또다시 가슴이 덜컥이고 머리가 마비된 것처럼 얼얼했다. 하윤은 희원이 하는 말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희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윤의 손을 제 뺨 위에 올렸다. 자신이 그랬듯 하윤 또한 만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윤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떨쳐 내고 싶었다.
“괘, 괜찮아?”
“괜찮아.”
자신은 만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으나 김희원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김희원은 다시 하윤의 얼굴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여, 기가 늘 어렵더라고.”
“…….”
“늘, 느, 늘 잘 기억이 안 났거든. 그냥 느낌만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보고 만지니까 확실히 알 것 같아. 내가 기억하는 게.”
“…….”
“그렇지. 내가, 내가 널 어떻게 잊었겠어. 그럴 수 없지. 절대. 이렇게 만지기만 해도 다 아는데.”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윤은 그저 눈만 깜빡였다. 분명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김희원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무경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반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윤아,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희원은 어느새 내려간 하윤의 손을 붙잡았다. 하윤이 움찔 놀라거나 말거나 잡은 하윤의 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 위에 올렸다.
“네 이름을 들으면 여기가 떨려. 지금도 봐 봐, 엄청나게 떨려.”
김희원은 나지막이 하윤의 이름을 불렀다. 진짜로 떨리는 안 떨리는지, 그가 말하는 게 단순한 맥박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아직도 하얗기만 한 머릿속에 하윤은 입술만 달싹였다. 정신을 차리라고 자신을 채찍질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하윤이 별말이 없자 희원은 잡은 하윤의 손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이것도 별 반응이 없자 손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엄지로 손등을 살살 비비다가 마디 하나하나를 헤아리듯 만졌다. 손끝에 다다른 후에도 손가락을 걸고선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 손끝만 닿고 있을 뿐인데 아직 손이 잡힌 것 같았다. 아니, 김희원의 손이 닿은 곳은 모두 그랬다. 오물이 묻은 것처럼 신경 쓰였다. 당장 닦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하윤은 저도 모르게 무경을 돌아보고 말았다.
“……!”
무경은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과 익숙한 경멸과 미움에 가득한 눈. 하윤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분명 숨을 쉬고 있는데도 공기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가슴이 갑갑했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하윤은 땀을 핑계로 희원과 손을 놓았다.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며 두어 걸음 떨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김희원은 하윤을 따라 하듯 얼굴을 비볐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하윤아, 너 담배 피워?”
“…….”
“담배 피우냐고.”
하윤이 대답하기 전 희원은 하윤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곤 손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담배 냄새가 나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모, 몸에 안 좋은 것만 다 하지. 너, 너 대체 어쩌려고 그래!”
김희원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주 큰 죄라도 되는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곤 하윤에게 두 번 다신 피우지 않겠다는 다짐하라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질린 하윤이 박건영을 돌아보자 박건영이 헛기침을 했다.
희원을 내버려 두던 안전요원들이 그제야 희원을 붙잡아 하윤과 거리를 벌렸다.
“왜 대답 안 해? 왜, 왜 대답 안 하냐고!”
낯선 목소리에 낯설지 않은 말이 쏟아졌다. 동시에 방 안의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힘겹게 숨을 내쉬던 하윤은 결국, 참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갔다.
“……!”
방을 뛰쳐나와 화장실을 찾은 하윤은 가장 가까운 빈칸으로 들어가 속을 게워 냈다. 그러나 변변히 먹은 게 없어 나오는 게 없었다. 올려 낼 것 없이 올리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갔고 구토를 멈췄을 무렵엔 몸이 덜덜 떨렸다.
머리는 어지럽고 가슴은 세차게 쿵쿵 뛰었다. 그 와중에 뭘 했는지 손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하윤은 벽에 기댄 채 통증이 가시길 기다렸으나 무엇 하나 가벼워지는 게 없었다. 하윤은 아픈 손목을 쥔 채 몸을 웅크렸다.
고단했다.
마음이 아플 거면 몸이라도 괜찮든가, 몸이 힘들 거면 마음이라도 좀 편해지든가. 이 와중에 욕심이 많아서 어느 것 하나 놓지 않았다.
‘이런 건 좀 그래도 되지 않나.’
피로한 탓일까. 눈꺼풀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하윤은 느릿하게 눈을 껌뻑이며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 몸이 늪지에 빠지듯 순식간에 잠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하윤은 언뜻 들리는 구둣발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정말 잠이 들었던 모양인지 눈이 뻑뻑했다.
하윤은 손으로 얼굴을 훑어 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스럽게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눈앞이 조명과 상관없이 어둑하게 느껴졌다. 하윤은 세면대를 잡고 서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하윤은 자신을 나무라다가 힐긋 거울을 바라보았다.
‘꼴이.’
오늘따라 유독 피곤해 보였다. 핏기가 하나 없고 입술엔 잇자국이 나 있었다. 언제 이렇게 물고 있었던 걸까. 하윤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지르다가 아예 세수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좀 차리길 바랐으나 그냥 얼굴이 조금 시원하고 축축해지기만 했다.
그때 다시 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윤은 얼굴의 물기를 손으로 대강 훑으며 거울에 비친 인영을 확인했다.